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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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산행, 연계 산행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 동두천 6산 종주(2-2)

장한림 2022. 5. 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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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내버려진 듯한 고독감이 때론 달콤한 향으로


군사시설 왼쪽으로 차도가 닦여있는데 아마도 보급로인 듯하다. 이 길을 따라 오지재烏知滓고개에 닿는다. 동두천시 탑동에서 포천시 선단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지금은 왕방 터널이 생겨 대다수 차들이 그 길을 이용한다. 오지재란 옹기를 굽고 난 후에 남는 찌꺼기를 의미하는 말인데 이 주변에 가마터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내처 걸음을 빨리하여 대진대학교 갈림길에 이르니 능선 길의 시작이다. 인근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멎으면서 다시 고요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내버려진 듯한 고독감이 때론 달콤한 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나 적막한 고독은 차라리 끈끈한 동반보다도 더 푸근할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일 때에도 홀로의 세상을 감내하고 즐기기도 하는 것일 게다.

돌탑 위로 몇 점의 별들이 점멸한다. 여치 소리도 들리고 어디선가 맹꽁이도 운다. 왕방산 정상(해발 737.2m)까지도 그리 험한 경우를 접하지 않고 도착했다. 포천읍 서쪽에 우뚝 솟아 포천의 진산으로 불려 온 왕방산王方山은 동두천과 접해 있다. 

신라 헌강왕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이곳에서 수행하던 도선국사를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이 산에 있는 사찰을 방문해 체류하여 왕방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왕방사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설에는 고개를 흔들게 된다. 왕위에서 물러난 이성계는 왕자의 난을 접하며 수많은 절을 방문했었는데 그 절들은 왕이 방문했다는 의미를 사찰 이름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천보산맥의 북단에 자리한 왕방산의 호병골에 들어서면 맑은 계류가 흐르는 수려한 산세를 보며 여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이라 그 길로 올라왔던 기억만 떠오른다. 

왕방산에서 내려와 국사봉으로 향하면서는 크고 작은 봉우리를 반복해서 오르내리게 된다. 국사봉으로 가는 1.2km의 오름길은 오늘 걸었던 길 중 가장 고되고 숨이 차다. 넓은 헬기장인 국사봉(해발 754m)에 이르러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힌다. 

왕방산의 상봉上峰을 국사봉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3 은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이 속세를 떠나 이 산에 들어와 삼신암이란 암자를 짓고 은신했다 하여 국사봉이라 칭했으며, 왕이 이색을 염두에 두고 이 산을 바라봤다 하여 왕망산이라 부른 것이 왕방산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역시 스토리의 편집일 것이다.

부대 좌측의 담장을 끼고 걷다가 구불구불한 군사도로를 따라 1.3km 더 내려가면 수위봉고개에 이른다. 수위봉고개 왼편으로 올라가서 소요산과 국사봉이 갈라지는 이정표를 보게 된다. 뒤돌아 올려다보니 국사봉과 정상의 군부대가 거무튀튀한 실루엣으로 아직도 먼 길을 배웅해준다. 

https://www.bookk.co.kr/book/view/135227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새목고개에 도착했다. 여기서 임도를 따라가면 동점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소요산 칼바위 능선까지 6.3km이며 종주 코스의 종점인 동두천 동광교까지는 약 31.6km가 남았다. 

‘동두천 방향으로 미군 사격장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약 0.9km에 걸쳐 철조망이 있어 산행에 조심해야 한다.’

소요산에서 수위봉 철조망 구간에 대한 안내판에 랜턴을 비추니 남은 거리 때문에 부담스럽던 차에 기분마저 축 처지고 만다. 조심스럽다. 수도 없이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꽤 많이 다녀간 소요산逍遙山이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수많은 전설을 지닌 명승지를 품고 있어 경기 소금강이라 칭하는 소요산을 매월당 김시습처럼 유람하듯 소요했었다.


 “그런 소요산을 이렇게 오르다니.”


지금까지의 산들과 달리 소요산은 바위산이다. 게다가 이름 그대로 칼바위로 향하니 바위 구간의 밤길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어서 거의 기어오르게 된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낀다. 

칼바위 능선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자 졸음까지 몰려온다. 잠시 쉬며 눈을 붙이려 했지만, 한기가 파고들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상백운대(해발 560.5m)에 이르러서도 어둠은 걷힐 줄을 모른다. 여기서 300m를 지나 왼쪽의 중백운대로 향하는 길이 보통 소요산을 일주하는 산행코스인데 여섯 산의 마지막 남은 마차산을 가려면 덕일봉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감투봉이라고도 부르는 덕일봉(해발 535.6m)에서 포천시 신북면과 연천군 청산면으로 각각 길이 갈라진다. 아무 상념 없이 던진 시선에 까만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보인다. 완전히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가 헤드 랜턴을 접었다. 그나마 머리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덕일봉에 이르러서야 지나온 국사봉과 왕방산의 실체를 본다



말턱고개를 가리키는 청산면 방향으로 무거워진 걸음을 내디뎌 안전로프가 설치된 경사 지대를 더듬더듬 내려선다. 낙엽 수북한 내리막길도 골프장 울타리 옆으로 철조망이 엉켜있어 걸음을 더디게 한다. 근근이 차도로 내려서자 세상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초성리 버스정류장 옆의 말턱고개 약수터를 지나 한탄강 관광지 방향으로 가면서 거리를 두리번거린다. 문을 연 식당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고 싶다. 



“어이구, 젊지도 않음시롱 뭔 고생을 요로콤 사서 한다요. 어여 앉으쇼.”



무조건 들어가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한 시간여 쪽잠을 잤다가 다시 출발할 때는 조금이나마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꼭 완주하시쇼잉.” 



식당 주인한테 손을 흔들고 초성교를 건너는데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가며 찬바람을 일으킨다. 다리 건너로 보이는 연천군 입간판 뒤로 마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과 동두천시의 경계 선상에서 경원선 철길을 사이에 두고 소요산과 마주하고 있음에도 소요산의 유명세에 밀려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이슬 먹은 낙엽이 매우 미끄럽다. 밧줄에 의지하며 급경사 깔딱 고개를 올라 임도에 이르러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차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임도와 무성한 수풀 지대, 밧줄 늘어뜨린 비탈 경사 구간을 고루 지나는 중에 급격하게 몸의 감각이 무뎌지는 걸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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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로 남고 그리움으로 품어진 그 산, 아득한 그 길들 

   

양원리 고개를 지나 간신히 정상 직전에 다다르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듯한 산성이 보인다. 예로부터 이 지역이 군사요충지였음을 알려주는 마차산성의 흔적이다. 또 참호가 자주 눈에 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초, 북한의 군사 동향이 심상치 않아 춘천 북방에서 마차산과 임진강 일대를 연결하는 방어선을 치게 된다. 마차산은 한국전쟁 당시의 치열한 격전장이었으며 이 산 계곡에는 시신이 가득 덮였다고 전한다. 

쓰라린 상처를 품은 마차산의 정상은 고요하게 찬바람만 흘려보내고 있다. 날씨도 그다지 청명하지 않아 정상부의 높은 수리바위에서 철길 건너 소요산이 제대로 보일 뿐 파주 감악산까지 연결되는 능선은 흐릿하게 끊어져 버렸다.

그래도 전방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수고했노라고 성원을 보내주고, 갈색 억새들이 치어리더처럼 여린 허리를 흔들며 응원해준다. 

정상석 뒷면에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적혀있다. 각지의 영험한 산을 골라 다산과 풍요를 베푸는 마고할미가 세상의 만사를 주재하다가, 이곳 정상 수리바위에 앉아 옥비녀와 구슬을 갈고 옷매무새를 고쳤다고 한다. 그래서 산의 이름도 갈 마磨와 비녀 차釵 자를 써서 마차산磨釵山으로 명해진 것이라고 한다.

어렴풋하게나마 어제부터 지나온 길들을 더듬어보고 하산 길을 챙긴다. 늦은맥이 고개로 내려서고 감악지맥 간파리 방향의 갈림길에 이르러 작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무가 흔들리고 숲이 회전한다. 진작 경험해보았던 증세다. 허기지고 갈증도 나고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다. 앉은자리에서 한 시간 가까이 흘려보내며 그럭저럭 원인을 해소하고 일어선다.

산불감시초소를 내려선 다음 만수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면서 긴 종주의 끝자락을 보게 된다. 칠봉산에서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돌아보고 동두천 6 산 종주의 마지막 이정표를 대하자 쿵쿵 가슴이 뛰다가 아릿하게 저린다.

막 내려와 걸음 멈추고 뒤돌아보노라니 아련하기만 하다. 등성이마다, 고개마다, 봉우리마다 숨 가쁘고 뚝뚝 떨어진 땀방울로 축축하다. 한세월 지나고 나면 지워져도 그만일 자취일 수 있겠지만 지금만큼은 내면 깊숙이 여며두고 언제든 펼칠 수 있게 포개 두고 싶다. 

눈에 가득 드리웠던 갈색 나뭇잎들, 뇌리에 깊이 박힌 각진 바위들, 푸름 잃지 않은 소나무와 막 떨어진 낙엽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 저 너머 너머라 이제 보이진 않아도 내가 걸어온 그 산 그 봉우리들 가슴 가득 향수로 남는다.

동두천경찰서를 지나 마을에 들어섰다가 동광교에 이르렀다. 세상에서 보았던 수없이 많은 다리 중 가장 반가운 다리에서 다시 걸음 멈춰 또 한 번 온 길을 되돌아본다. 향수로 남고 그리움으로 품어진 그 산, 아득한 그 길들은 쿵쿵 감동으로 울림 되고 눈물 되어 두 뺨을 흥건히 적실 것만 같다. 



                   

때 / 늦가을 
곳 / 송내 삼거리 - 일련사 - 일련사 삼거리 - 칠봉산  - 장림고개 - 천보산 갈림길 - 해룡산 - 오지재 고개 - 왕방산 - 국사봉 - 새목고개 - 나한대 갈림길 - 소요산 - 상백운대 - 중백운대 갈림길 - 덕일봉 - 동막고개 - 동막골 갈림길 - 소요지맥 갈림길 - 임도 - 말뚝 약수터 - 초성교 - 한탄강 임도 갈림길 - 임도 갈림길 - 천둥로 이정표 - 양원리 고개 - 마차산 - 늦은 고개 - 흰돌 바위 - 산불감시탑 - 광덕사 갈림길- 동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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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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