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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우담산, 청계산의 광청 5산 종주(2-2)

장한림 2022. 4. 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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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청 종주, 여섯 도시, 열세 봉우리를 향해(2-2)

 

 

다섯 산의 끝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이어라

    

이제부터는 다섯 번째 청계산으로 접어든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청계산의 옛 이름 청룡산을 이렇게 읊었다.     

 

청룡산 아래 옛 절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깃들려 하네   

   

친구들과 함께 크게 심호흡을 한다. 

 

“여기 국사봉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코스 중 가장 가파른 구간이야.”

“힘들어 보이네.”

 

영빈이가 갈 길을 올려다보고는 좌우로 몸을 비틀어 스트레칭을 한다. 

 

“앞장서게나.”

 

중턱에 닿자 갑작스레 몰아치는 바람에 진달래 마른 꽃잎이 떨어진다, 오다 만 봄이거늘 한여름 재촉하나 싶어 오던 길 돌아보니 곳곳마다 초록으로 속속 물들이는 중이다. 

장딴지 묵직해 오건마는 시시 때때 관계없이 가는 길 무릉도원인 양 여겨지는 건 사랑하는 벗들과 산을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의기투합해 목표한 바에 점점 다가서기 때문이다. 술이 맛있어 혼자 마시겠는가. 원수와 술자리 함께 하는 일이 흔하겠는가. 

그 자리에 내가 사랑하는 이, 나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므로 해서 술맛 거나하고 얼큰하게 취기 오르는 것 아니겠나. 그들과의 산길은 숨이 목까지 차올라와도, 온몸이 땀에 젖었어도 마냥 가볍고 싱그럽기만 하다.  

쏟아지는 졸음을 떨쳐내고 청계산 첫 봉우리, 국사봉(해발 542m)에 닿는다. 화강암 기단 위에 커다란 바위를 올린 정상석을 보며 그제야 굽었던 허리를 곧게 편다. 숨을 고르고 또 고려 멸망의 시간대로 이동해본다.

 

“나라가 망했는데 목숨을 부지하는 건 개와 다름없다.”

 

고려 충신 조윤은 그래서 고려 멸망 후 자를 종견從犬이라 지었다. 개는 그저 주인을 연모할 뿐이라는 의미이다. 진정한 충신의 오롯한 충심을 어떻게 가늠하겠는가마는 국사봉과 망경대를 오가며 망국의 슬픔을 곱씹었을 조윤의 가슴속이 얼마나 찢어지고 망가졌을지는 헤아려지고도 남음이 있다. 

국사봉國思峰은 그렇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된 곳인데 낮지만 넓게 뻗은 소나무의 푸름이 충절을 대변하듯 의연하게 정상석을 지키고 서 있다.

 

“정 힘들면 여기서 탈출해.” 

 

여기서 청계사 쪽으로의 하산로가 있지만 지나쳐 이수봉으로 간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호를 종견이라고 해야겠지.”

“후유, 개처럼 기어서라도 가자고.” 

 

다소 길긴 해도 청계산 하나를 남기고 중도 탈출을 시도할 수는 없다는 눈빛들이다. 다시 예정대로의 행군이 이어진다.

이수봉二壽峰(해발 547m)은 조선 연산군 때 세자 시절 연산군의 스승이던 정여창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이곳에 숨어 두 번 위기를 모면했다고 지어진 명칭이다. 그의 호 일두一蠹도 한 마리 바퀴벌레라는 자괴적인 의미를 지닌다. 

정몽주, 김굉필과 함께 성리학의 대가라 칭송받았던 일두 정여창 선생은 갑자사화가 일어난 1504년에 죽은 후 다시 부관참시를 당했으니 두 번 살아나 두 번 죽임을 당한 셈이다. 그는 온갖 동물들이 드나들어 오막난이굴이라고도 불리는 청계산 마왕굴에서 은거하다가 밤이 되면 망경대 정상의 금빛이 감도는 샘물인 금정수를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정여창 선생이 부관참시를 당하자 달빛을 받아 금빛을 발하던 샘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하지.”

 

그 후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물러나고 복관이 되자 붉어진 샘물은 다시 금빛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의 정사와 야사가 뒤섞여 많은 이야기를 뽑아내는 이수봉 너른 터에 옛골이나 절 고개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한다. 

여기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망경대 갈림길을 지나 석기봉에서 바위 구간을 우회하여 청계산 주봉인 망경대望京臺(해발 615m)를 찍는다. 이곳 또한 조윤이 이성계를 피해 여기서 막을 치고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다. 

 

“저 물이 금정수인가?”

 

바위 밑에 금빛도, 핏빛도 아닌 샘이 조그맣게 고여 있다.

 

“아마 그럴 거야.”

 

혈읍재에 닿자 다시 정여창이 등장한다. 성리학적 이상 국가의 실현이 좌절되자 청계산에 은거했던 그가 망경대 아래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가 피눈물을 뜻하는 혈읍재라 명명했다고 한다.

청계산은 조윤이나 정여창의 일화에서 보듯 도피 혹은 은둔의 장소였나 보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명인 목은 이색이 이 산에서 숨어 살았고,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린 뒤 옥녀봉 아래에서 말년을 지냈다고 하니 말이다.

 

꾸역 꾸역 앞만 보고 진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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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길을 걸어와 막바지 청계산을 지나면서 문득 제로섬 게임 zero sum game의 이론이 떠오른다. 해외 원정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다거나 인터넷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유명인들이 화두에 오르곤 했다. 

고스톱이나 포커게임 등은 누군가가 따면 반드시 그만큼 잃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 간에 따거나 잃은 돈의 합은 거기 참가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의 액수와 같다. 딴 사람은 희희낙락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바로 옆 사람의 자조적 한숨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 정권이 기존의 정권을 뒤엎고 들어서는 허다한 사건들은 고려가 조선에 넘어가는 과정처럼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판가름 나는 win-lose게임이다. 시대의 음지로 물러선 정몽주, 조윤, 정여창, 이색 등과 달리 동시대를 풍미했던 정도전, 이방의, 배극렴 등은 개국공신으로 새 시대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다 같이 win-win이 될 수 없고 게임에 참가한 이들의 이익과 손실을 모두 합하면 그 합이 반드시 ‘0’zero이 되는 제로섬 게임을 떠올리고 만다.

어찌 되었건 청계산은 지조와 절개의 터전으로 그 유래에 깊이 스며들어 좋은 느낌을 지니고 싶은 곳이다. 지금은 도심의 허파이자 커다란 쉼표 역할을 하는 청계산이다. 그런 산이 패자의 음지로 폄하되는 게 싫다고나 할까.

혈읍재를 지나면서 지친 기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젠 다 같이 완주한다는 의미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실감할 즈음이다. 힘에 부친 일행을 달래고 설득하여 억지로 동행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매봉이 보인다

 

“좀 더 가보고…….”

“얼마나 더 가야 하지?”

 

힘들면 혈읍재 아래 샛길로 빠져 옛골로 하산할 수 있음을 부언했지만 딱 부러지게 응하지 않고 가는 데까지 가보잔다. 매봉(해발 583m)에서 숨을 돌리며 쥐가 오른 계원이의 다리를 풀어주고 이어 매바위에서 1240계단을 내려선다. 

돌문 바위에는 청계산 정기를 듬뿍 받아가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지닌 정기나마 흘리지 않고 남은 길을 가면 다행이다. 그 마지막 힘을 뽑아 원터고개를 지나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 옥녀봉(해발 376m)까지 내달았다.

전국 수많은 산에 옥녀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있다. 내려오는 전설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청계산의 옥녀봉은 봉우리 모양이 예쁜 여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소엔 그런 것도 같았는데 오늘은 옥녀봉의 미모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부 과천청사, 경마공원 등 과천시 일대를 내려다보고 마지막 하산 길에 접어든다. 서서히 서녘으로 붉게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다. 화물터미널 갈림길을 지나 통나무 계단을 내려서면서 양재동 화물터미널 날머리에 도착한다. 

 

긴 거리, 긴 시간을 왔다. 그만큼 성취감이 크다.

 

 

“실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모두 수고했어.”

 

하루 꼬박 걸리는 장거리 산행이 처음인데도 다들 큰 무리 없이 완주했다는 게 대단하다. 비교적 빠른 보폭이었음에도 전혀 거리 간격 없이 동반 완주했다는 게 놀랍다.

 

“그대들과 함께 다섯 산을 종주해서 행복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아 올릴 수 있어 행복하다네.”

 

친구들의 뿌듯한 표정을 보면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격에 젖어 양재동으로 간다. 

 

“오늘 같은 날 뒤풀이를 빼먹을 순 없겠지.” 

 

 

경마장과 그 뒤로 관악산

   

국사봉 거쳐 이수봉 지나도록 햇살 아직 뜨거운데

매봉 아랫길 일천이백사십 계단 밟아 옥녀봉 이르니

희뿌연 하현달 놓칠세라 에메랄드 황혼 뒤쫓누나.

이른 초저녁별 물 양으로 산새 한 마리 공중으로 치솟더니

막 지나온 옥녀봉 서둘러 어둠 뿌려 날머리마저 지우누나.

어둠 가린들 그 산 그대로인걸

세월 흐른 들 갈 산 거기 그대로인걸

내키면 신발 끈 조여 매고 나서면 반기는 곳

거기가 산,

거기가 희망,

거기에 바로 추억 있지 아니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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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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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1YiOmsaOc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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