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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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산행, 연계 산행

광교산, 백운산, 바라산, 우담산, 청계산의 광청 5산 종주(2-1)

장한림 2022. 4. 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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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청 종주, 여섯 도시, 열세 봉우리를 향해(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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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경기대학교 캠퍼스 후문 쪽에 있는 광교산 반딧불이 들머리에 네 명이 모여 스틱을 펼쳐 잡고 등산화 끈 조여 매니 이때가 아침 8시 경이다. 병소, 영빈, 계원 모두 표정들이 밝다.

광교산에서 백운산, 바라산, 우담산을 통과하여 청계산까지 약 28km를 걷게 된다. 10시간 남짓 걸어 어둑해질 무렵 청계산 아래 화물터미널 쪽으로 내려서기로 했다. 다들 무사히 완주했을 경우의 전제이다. 

광교산光敎山은 수원시 장안구와 용인시 수지구에 걸친 산으로 수원천의 발원이자 백두대간 한남정맥의 주릉이며 수원의 진산이라 할 수 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막아주어 풍수지리에서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게 한다는 장풍 득수藏風得水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넓고 크지만 평탄한 흙산이라 초반은 가볍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더운 날씨지만 우거진 수림이 햇빛을 막아주어 체력 소모도 덜어줄 거로 판단된다.

올해 들어 첫 장거리 산행이다. 몸도 정신도 나태해지려 할 즈음에 자신을 스스로 보듬고 친구들과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 여겨진다. 열세 개의 봉우리, 수원, 용인, 성남, 의왕, 과천, 서울의 여섯 도시를 좌우로 접하며 걷는 긴 길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 형제봉을 오르는 첫 계단을 내디디며 늘 그랬던 것처럼 무탈한 안전산행을 기원한다. 

 

“바라옵건대 오늘의 산행이 우리 네 사람 모두의 몸에 무리 없이, 마음은 더욱 풍요하게, 거기 더해 자연의 정기까지 듬뿍 담아 오늘 이후 새로운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래서 5월에 아름답지 않은 산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짐으로써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 유역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를 한남정맥이라 하는데 곧 이르게 될 형제봉과 광교산, 백운산이 거기 해당한다.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가 서두르지 말라며 걸음을 멈춰 세운다. 묵직한 메시지를 안겨주는 팻말 앞에서 시를 음미하고 산을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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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형제봉 질러 오르는 바윗길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 들고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 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로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 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고려 야사에 전해 내려오기를 광악산 혹은 광옥산으로 불리다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서기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광옥산 행궁에 머물며 군사들을 치하하던 중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채를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친히 광교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광교산에 올라와서 보니 왜 도시 이름을 수원水原이라고 했는지 알겠군.”

 

영빈이가 광교저수지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는데 역시 산 주변에 저수지가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정상인 시루봉(해발 582m)에서 내려서면 두 그루의 큼지막한 노송 옆으로 자그마한 통나무집이 한 채 세워져 있는데 노루목 대피소이다. 

재작년 하얗게 눈 덮였던 노송의 자태가 그럴듯했었다. 수원 8경 중 광교 적설光敎積雪을 으뜸으로 꼽는다니 한겨울 따로 시간을 내어 이 산을 걸으며 하얀 여백을 음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신대(송신소)를 지나면서 광교산을 벗어나 다음 백운산으로 넘어서게 된다. 한남정맥을 쭉 둘러본다. 

 

“우리나라는 눈길 닿는 곳마다 산이 뻗어있어서 좋아.”

“은행에 쌓인 돈뭉치를 보는 것보다 훨씬 넉넉해지지?”

“아무렴. 유동자산보다 부동산이 훨씬 효율적이지.”

 

꽃과 신록의 어우러짐, 진초록과 진분홍, 바이올렛violet의 조화로움을 눈여겨보라. 꽃은 아름답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신록이다. 신록은 산의 얼굴이며 상징이다. 

 

“그런 게 은행엔 없잖아.”

“그래서 5월에 아름답지 않은 산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먼저 산에 다녔다고 해서 아는 척하면 들어주고, 정확하지 않아도 먼 산 가리키며 설명하면 고개 끄덕여준다. 기특한 친구들이다. 산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양 따져 묻고 들이대겠지만.

두 해전에 흙더미, 눈 더미 마구 뒤섞인 이곳 한남정맥 주 능선은 싸늘한 한기 가득해서 더욱 멀고 고독한 길이었었다. 지금 광활한 수림의 짙은 초록은 에너지 활기차게 뿜어내고 더더욱 친구들 함께하니 어디인들 힘들쏜가. 저 아래, 저 높이, 저 멀리서 성큼 다가오는 대자연의 무한 기운을 우리 가슴속에 한가득 부어 담고 우리 우정에 진득이 버무리어 그렇게 또 나아가세나. 

 

백운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도심이 미세먼지로 뿌옇다

 

백운산白雲山 정상 지대에는 백운호수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붐빈다. 백운산(해발 567m)은 의왕시 관할이니 수원과 용인을 지나온 셈이다. 정상 공터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신록의 향연에 심취된 모습들이다. 환하다. 

다시 걸음 내디뎌 백운산과 바라산을 잇는 고갯길, 완만한 능선을 걸어 고분재까지 간다. 백운산과 바라산을 잇는 소담한 산길에 의왕대간이란 이정표가 자주 눈에 띈다. 

고려가 망한 후 충신들이 도읍인 개성에서 이곳으로 몸을 피해 왕王 씨를 모시고 기리고자 왕의 획이 들어간 의義 자를 써서 의왕이라 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의왕시도 생긴 듯한데 고려 말부터 조선 초의 일화가 유독 많은 곳이 이 부근의 산들이다. 

고려 때 안렴사를 지냈던 조견은 그의 형 조준이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청계산으로 들어갔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내리고 여러 번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여생을 마친다.

 

“내 묘비에 고려 때의 벼슬만 적고, 조선 때의 훈명은 적지 말도록 해라.”

 

그렇게 유언하고 눈을 감았는데 자식들은 후환이 두려워 개국 이등공신 조견 지묘라고 묘비를 세웠다. 

 

“그런데 그날 밤 벼락이 쳐 개국 이등공신이라는 글자만 부서졌다더군.”

“하늘이 조견의 손을 들어준 셈이야.”

 

살다 보면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고 해도 또다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을 꺾고 뒤틀어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연이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조견 또한 굴절된 삶에 휘둘리다 스러지는 걸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여 필연적 운명을 맞이한 인물이었다.

 

바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운호수

https://www.bookk.co.kr/aaaing89

 

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www.bookk.co.kr

 

 

백운호수를 시계방향으로 끼고돌면서 우담산으로  

    

잠시 고려와 조선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충절과 배신을 새겨보다가 바라산으로 향한다. 

바라산(해발 498m)은 망산望山이라 불렸었는데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풀어 바라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개성은 시야에 없고 산 아래로 백운호수가 보인다. 백운호수를 시계방향으로 끼고돌면서 우담산으로 향하게 된다. 

바라재로 내려가는 24절기 철제 계단, 365 희망 계단이라고 명명한 이 계단은 1년 365일을 15일 간격으로 구분한 24절기를 소재로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건강과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니 감사한 일이다.

동지부터 소한까지 365개의 계단을 내려서서 돌아보면 성큼 한 살을 더 먹은 느낌이 든다. 광교산 들머리부터 대략 10km를 지나온 셈인데 아직은 다들 끄떡없어 보인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곳이 산이다. 바라재에서 다시 고도를 높이게 된다. 뙤약볕 능선이 거의 없다는 것이 오늘 산행의 큰 복이다. 

 

“자, 여기서 점심 먹자.”

 

우담산 정상 지척에 자리 잡고 배낭을 푼다.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을 차려 점심을 먹는다. 

 

“산에서의 즐거움 중엔 먹는 일도 크게 차지하지.”

“난 그게 전부인 거 같아.”

“그래, 넌 산에 다니면서 살이 더 붙었어.”

 

노동이나 훈련에 휴식이 없다면 얼마나 고되겠는가. 산행을 잠시 멈추어서 바리바리 챙겨 온 먹거리를 나눠 먹는 건 그럴듯한 만찬 못지않다. 산에서는 갈증을 느끼기 전에, 허기를 느끼기 전에 물을 마시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먹는 모습들을 보니 식사가 조금 늦었나 보다. 너무 맛있게 먹는다. 어렸을 적 소풍 나와 먹는 것처럼 맛있다. 

한 시간여 정찬을 즐기고 바로 우담산(해발 425m)에서 네 번째 인증 사진을 박는다. 볕 뜨거운 산정, 지치고 땀 젖었어도 카메라 앞인지라 미소 띠면서 서로를 다감하게 끌어안는다. 

푸릇한 생동, 환희의 빛이 가슴에 자리하고 눈에 들어찬다. 멀리 눈길 던져도 튕기듯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 되돌림 속에 시름과 한숨이 사라지고 미소와 긍정, 그리고 삶의 참한 미소가 풍성하게 담겼으면 좋겠다.

거리상으로 딱 반 정도 왔다고 할 수 있는 영심봉을 지나 하오고개로 내려간다. 그리고 폭 높은 나무계단을 내려가서 우담산과 청계산을 잇는 교각, 외곽순환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식사 후의 산행길이라 피로하고 지칠 법도 한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행을 이어간다.

 

하오고개에서 바라보는 청계산 국사봉과 망경대가 아득하다

우담산과 청계 산을 잇는 교각, 외곽순환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LVUTs3Rz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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