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종주 산행, 연계 산행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 동두천 6산 종주(2-1)

장한림 2022. 5. 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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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이틀, 동두천 여섯 산을 휘감아 돌다(2-1)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 6산 종주>

 

 

 

 

 

 

경기도 동두천시와 양주시 그리고 포천시를 경계로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의 여섯 산을 연계하여 산행할 수 있는 종주 코스가 있다. 칠봉산 아래 일련사 입구에서 마차산을 하산한 동광교까지 무려 50여 km의 산행로를 조성하여 많은 등산 마니아들을 뒤숭숭하게 하거나 몸살 나게 한다.

 

“왜 산 타는 이들은 무리이다 싶을 정도의 강행군에 연연하는 것일까. 나는 또 왜?”

 

3 산, 4 산, 5 산, 6 산…… 여러 차례 산을 이어 탐방하면서 그저 사람의 타고난 습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 이기적 욕심이 배인 그 본성.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그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코스가 있었군.”

 

알아보니 길도 잘 조성되어 있고 이정표도 제대로 설치되어 길을 헤맬 염려는 접어도 될 듯싶었다. 북한산에서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을 거쳐 불암산까지, 혹은 불암산에서 거꾸로 북한산을 연계하는 수도권의 5 산 종주 길보다는 수월해 보인다.

 

“그렇다면 해야지.”

 

동두천으로 간다. 거기 있는 여섯 산을 종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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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행차에 맞춰 명명된 일곱 봉우리  

   

 

수도권 1호선 전철을 타고 지행역에서 내려 송내 삼거리로 간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8시가 조금 지나서이다. 숙고 끝에 산행 시작을 이 시간대에 맞추는 게 여러모로 수월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조형 탑 맞은편 전철 교각 아래로 통과하니 일련사 입구에 동두천 6 산 종주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6 산 종주 시작이라는 방향 표지판에는 종주 끝 지점인 동광교까지 50.3km라고 적혀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팔다리를 흔들며 스트레칭을 한다. 산을 다니다 보니 더러 달밤에 체조하게 된다.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이리저리 비춰본다. 새 배터리로 교체해서 무척 밝아졌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쉬이 진정되지 않는 긴장감을 추스른다.

보호난간이 설치된 왼쪽 계곡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작은 사찰 일련사가 있다. 정적이 깔린 사찰 왼편을 조용히 걸어 화단과 장독대 사이로 올라간다. 일련사 삼거리 0.2km라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수도권 불수사도북과 북도사수불의 다섯 산을 혼자 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낯설다. 이곳의 여섯 산 중 소요산과 왕방산은 다녀간 적이 있지만, 나머지 산들은 미답지이다. 고작 인터넷에서 지도를 검색한 정도의 정보력만 지니고 맞서니 생소하여 껄끄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깜깜한 밤중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더 혼자라는 의식이 불안감을 동반하는 것 같다. 

 

“혼자일 리가 있나. 지금 여섯 명이나 되는 친구를 사귀러 왔지 않은가.”

 

일련사 삼거리에서 칠봉산 정상까지 3.7km를 걸으면서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마음을 다진다.

     

여정 아무리 길다 한들 있는 노자 

다 지니고 갈 셈인가

먼 산 오른다고 등짐 가득 채워 

걸음 옮기기조차 힘들어할 텐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지녀 편할 만큼만

필요한 만큼만

딱 그만큼만 등에 지고

유유자적 유람하듯, 

옛 벗 찾아가듯 자연에 녹아드세

오른 산에설랑

그나마 욕구의 찌꺼기가 채운 괜한 무게까지

훌훌 털어놓고 내려가세     

 

 

 

동두천시 탑동동과 송내동, 포천시 설운동, 그리고 양주시 봉양동에 걸친 칠봉산七峰山은 양주시 내촌동 뒷산에서 보면 일곱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단풍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단풍나무 사이의 기암괴석이 한 폭 비단 병풍과 흡사하여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렸다.

가을도 만추에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질까 우려가 없지 않았는데 신선한 공기가 밤길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멧돼지가 덤벼들진 않겠지.”

 

현실성 없는 걱정일 거라고 위안하며 칠봉산의 첫 번째 봉우리에 닿는다. 임금이 산을 오르기 위해 떠난 곳이라는 발리봉發離峰이다. 

 

 

https://www.bookk.co.kr/book/view/135227

 

 

 

“어떤 임금이지?”

 

밧줄을 붙들고 경사 급한 바윗길을 내려오면서도 궁금증이 동한다. 아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 안 될 것 같아 무어든 떠올리고 몰입하려는 본능 의식일 게다.

두 번째 매봉(응봉)은 임금께서 수렵할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매를 날렸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매가 날아갔을 법한 곳엔 점점이 희미한 별빛들이 그나마 산중에서의 적막감을 덜어준다. 

평범한 바위 옆에 표지판이 있어 랜턴을 비춰보니 아들바위라고 적혀있다. 곳곳에 수수하나마 산행하는 이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루함을 덜어주어 고맙다. 널찍한 공터 깃대봉은 임금이 수렵을 시작한다는 표시 깃발을 꽂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그냥 지나쳐 다음 봉우리로 향한다. 

 

“이 봉우리엔 돌이 꽤 많구나.”

 

임금이 이렇게 말해서 석봉石峯(해발 518m)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봉우리에 이르러 어느 임금인지 유추해본다. 조선 시대 이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는 수도 한성부와 가깝고, 산과 들판이 알맞게 펼쳐져 있어 왕실의 강무장, 즉 임금이 공식적으로 사냥하던 곳이었다. 

성종 때에는 백성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농한기에 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왕조 초기 임금들이 양주에서 자주 강무를 하였는데, 태종은 11회, 세종은 36회, 단종은 5회, 세조는 26회, 성종은 21회, 연산군은 15회 등 자주 양주 땅으로 거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칠봉산은 세조가 왕위찬탈 과정 중에 많은 신하를 죽인 것을 참회하여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다가 사냥을 하러 이 산에 오른 것이 계기가 되어 어등산於登山으로 불렸었다고 한다. 어쨌든 사냥하기 좋아하는 조선조의 왕들이 이 산봉우리 명칭의 원인제공을 한 건 분명한 것 같다.

MTB 산악자전거 코스로 길이 이어지다가 투구봉鬪具峰에 이르니 이곳은 임금이 쉬자 군사가 따라 쉬면서 갑옷과 투구를 벗어놓은 곳이라 한다. 여기서 내려서면 MTB 코스와 등산로가 갈라진다.

오늘 밤부터 내일 저녁나절쯤까지 이어지게 될 여섯 산의 첫 산인 칠봉산 정상(해발 506m)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는다. 묵직해진 어깨 근육을 풀려 스트레칭을 하고 적당히 허기도 채운다.

 

“돌이 많으니 두루 조심들 하여라.” 

 

임금께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해서 이곳 정상은 돌봉突峰이라고도 부른단다. 누군지 몰라도 돌에 민감하고 신하들 안전을 배려하는 살가운 임금이다. 

다시 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던 곳이라 해서 일컫는 수리봉(솔리봉率離峰)까지 일곱 봉우리를 모두 지났다. 각 봉우리마다 화천 1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임금님께서’로 시작하는 명칭 유래를 적어 세워놓아 임금님이 행차하는 착각에 빠져 지루하지 않게 올라왔다. 밤이지만 칠봉산은 거칠지 않은 등산로여서 진행에 무리가 없었다. 
칠봉산을 벗어나면서 이어지는 숲길은 깊어 가는 밤과 함께 더욱 적막하고 스산하다. 가족들을 떠올려보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회상하면서 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고요를 벗 삼아 해룡산과 천보산의 갈림길인 장림고개를 지난다. 밝은 낮이었으면 천보산을 다녀왔다가 해룡산으로 갔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냥 지나치며 칠봉산에서 능선으로 연결되어 양주와 포천을 가르는 산줄기의 중앙부에 솟은 시커먼 실루엣만 훔쳐본다. 

조선 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해 이 산에 피신하여 목숨을 건지자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를 구하기가 어려워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天寶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설화야말로 약장 밑에도 명졸이 있음을 방증한다고 하겠다. 옛날부터 이 일대 주민들은 천보산도 뭉뚱그려 칠봉산으로 불러왔다.

 

“어명에 따라 금은보화로 치장했더라면 이 지역주민들은 대대손손 부자로 살았을 텐데.” 

 

생뚱맞은 생각을 하다가 해룡산으로 진입하여 임도를 지난다. 동두천시와 포천시 선단동 경계에 있는 해룡산海龍山은 정상 일대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비가 내리기를 빌며 연못 주위를 밟고 뛰어다니면 비가 내리거나 적어도 날씨가 흐려지는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연못은 조선 시대 때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데 연못 주변을 밟고 뛰었으니 무너져 연못이 메꿔졌을 거로 추측하게 된다. 또 해룡산에서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산에 살던 이무기가 그 물을 이용해 용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역시 해룡산의 명칭과 관련한 무수한 허구 중 하나일 것이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4대 명필인 봉래 양사언이 이 산을 즐겨 찾았다고 하는데 유명한 시조 태산가를 짓고 금강산에도 자주 다녔다니 그분 또한 원효대사나 최치원 못지않은 알피니스트alpinist였던가 보다.

해룡산(해발 661m)의 실제 정상위치인 군사시설은 주변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용의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밤길 적막한 고독은 끈끈한 동반보다 더 푸근할 때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x0MtMX4uU 

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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