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보답하는 은혜’란 과연?
“네 서모가 아직 젊으니 내가 죽거든 좋은 사람을 찾아 개가 시키도록 하거라.”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용맹한 장수 위무자는 아끼는 젊은 애첩, 조희를 두고 병석에 눕게 되었다. 조희와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위무자는 본처의 아들인 위과를 불러 당부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과는 아버지 말대로 아직 젊은 서모를 다른 곳에 시집보내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더 위독해지자 아버지가 말을 바꾼다.
“내가 죽으면 네 서모도 꼭 순장을 시켜라.”
아버지를 묻을 때 첩인 조희도 함께 묻으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위과는 고심했다. 처음에는 다른 데 시집보내라고 했다가 다시 아버지와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병이 깊어지다 보니 아버지 생각이 흐려진 것이오. 아버지가 맑은 정신일 때 남긴 유언을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했소.”
결국 위과는 서모를 죽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그 후, 진秦나라 환공이 위과가 장수로 있는 진나라를 침략했다. 위과는 왕명을 받아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첫 전투에서 위과의 군대는 두회가 거느리는 적군의 공격에 대패했다.
“청초파! 청초파!”
그날 밤, 다음 전투에 골몰하다가 잠이 든 위과는 청초파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청초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위과는 꿈에서 들은 소리가 너무 생생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휘하 장수들에게 청초파에 대해 물었다.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청초파靑草坡라는 둑이 있습니다.”
두회의 군대를 격파할 수 있는 뾰쪽한 전략이 없던 위과는 신이 꿈에 나타나 청초파에서 싸우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두회를 그리로 유인했다.
양측의 병력이 청초파에서 대치했다. 그때, 웬 노인이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을 풀 매듭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적군들이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가 풀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서 역공을 취해 위과는 적장 두회를 사로잡는 등 예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다.
“아까 풀을 엮은 노인을 찾아라. 후한 상을 내려야겠다.”
위과의 군사들은 노인을 찾았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날 밤 위과는 꿈에서 그 노인을 만났다.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가 바로 내 딸이요. 그대가 내 딸 조희를 살려주어 은혜에 보답한 것이라오.”
춘추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가 유래했는데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이다. 은혜를 베푼 위과는 그 대가를 받았고, 노인은 생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어서 갚은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따르게 되어있고, 현세에서 행한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정해진다는 인과응보因果應를 말한다. 모든 일은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거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격언과 상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삼국시대의 이밀은 진정표陳情表에 이 성어를 이용하여 ‘살아서는 목숨을 바칠 것이요, 죽어서는 결초보은 할 것입니다生當隕首, 死當結草’라고 표현한 바 있다. 엄밀한 의미로 결초보은은 죽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고, 살아서 은혜를 갚는 것은 ‘황작함환黃雀銜環’이라고 하는 게 맞다.
정체된 시내 도로에서 앞에 멈춘 승용차의 뒤창에 ‘결초보은’이라고 큼직한 문구가 적혀있다. ‘결’ 자와 ‘은’ 자는 흐릿하고 ‘초보’는 진한 고딕으로 쓴 글자다. 그 글자 아래엔 이런 문구가 조금 작게 덧붙여 있다.
‘이 은혜는 꼭 나중에 다른 초보분께 갚도록 하겠습니다.’
재치 발랄한 초보운전자의 이 문구에 누가 그의 취지를 무시하고 앞으로 끼어들 것인가. 옆으로 지나치며 창을 열고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브이V 자로 만들어 표시하게 된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 초보운전자의 차에서 풋풋한 풀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죽어서도 갚아야 할 은혜를 살아서 받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평생을 두고도 과연 그럴만한 은혜를 입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결초보은 하겠다는 마음을 지니며 사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아마도 세상은 너무나 밝고 훈훈해서 천국을 따로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세계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4 _ 동병상련同病相憐 (12) | 2022.04.16 |
---|---|
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3_ 미봉책彌縫策 (14) | 2022.04.15 |
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1_ 관포지교管鮑之交 (6) | 2022.04.09 |
초한지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구하다 10_ 토사구팽兎死狗烹 (1) | 2022.04.09 |
초한지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구하다 9_ 권토중래捲土重來 (10) | 2022.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