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아팠던 이가 그 아픔을 치유하고도 진정 소통한다면
춘추시대 초楚나라 전통 가문 출신인 오자서가 오나라로 망명 오기까지 16년의 긴 세월이 걸렸다.
16년 전 초나라 태자 건의 소부였던 비무기는 진나라로 태자비를 간택하러 갔다가 초 평왕平王의 환심을 사려고 태자비를 초 평왕에게 바쳤다.
- 평왕이 승하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초 평왕 사후를 불안해하던 비무기는 태자 건이 반란을 꾸민다고 모함해 태자를 없애고자 했다. 이에 태자 건의 태부인 오사가 잡혀왔는데, 그가 바로 오자서의 아버지였다.
비무기의 농간에 넘어간 초 평왕은 오사를 인질로 삼아 오사의 큰 아들 오상과 작은 아들 오자서까지 잡아들이려 했으나 오자서만 태자 건이 피신한 송나라로 도망쳤다.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죽임 당하자 오자서는 초나라에 복수를 결심했다.
오자서는 송나라에서 다시 정나라로 갔다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오吳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초나라를 떠난 후로 16년이 지나서였다.
오자서는 오나라의 공자 광光이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는 걸 알고 그에게 자객 전저를 소개해 주었다. 광은 전저를 시켜 사촌지간인 오나라 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이 사람이 바로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합려이다.
“내 곁에서 오래도록 나와 함께해 주시오.”
합려는 오자서를 대부로 임명하고 국정을 함께 수행했다. 초나라의 이민자 출신인 오자서가 재상의 자리에 오르면서 오나라의 국력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러던 중 각지의 인재들을 등용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내정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백비가 관직을 원하여 찾아왔다.
백비는 초나라의 대신으로 지낸 조부와 선친이 비무기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자 오나라로 도피해 온 것이었다.
“나만큼 고생했겠구나.”
오자서는 합려에게 백비를 추천했다. 많은 신하들이 백비가 물욕이 심하고 강직하지 못하다고 평했으나 오자서를 무한 신뢰한 합려는 백비를 대부에 임명했다.
그러자 백비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던 대부 피리가 나서서 오자서에게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백비는 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인물입니다. 왜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중책을 맡기십니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은 서로 동정하는 법이오. 백비는 나와 같은 병을 앓아왔으니 나를 잘 이해하고 내 뜻에 따를 것이오. 또 나와 그는 똑같이 초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으니 초나라를 멸하는데 뜻을 같이 할 수 있지 않겠소?”
초 평왕의 방관 속에 비무기의 농간으로 오자서의 집안이 무너졌고, 백비 또한 비무기의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가문이 멸문해 오나라로 도망 온 것이었다.
남의 칼을 살해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칼 주인에게까지 누명을 씌우는 교활한 농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몸을 피해온 백비에게서 같은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오자서가 하상가河上歌의 구절을 인용하여 피리의 우려가 기우라는 걸 납득시키는 것이었다.
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同病相憐
같은 걱정이 있으니 서로 구해 주네 同憂相救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은 驚翔之鳥
서로 따르며 날아가고 相隨而飛
여울 따라 흐르는 물은 瀨下之水
그로 말미암아 다시 함께 흐르네 因復俱流
오월춘추吳越春秋의 합려 내전闔閭內傳에 나오는 일화로 오자서가 인용한 하상가의 한 구절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유래했다. 유사한 뜻의 숙어로 동우상구同憂相求, 경상지조驚翔之鳥가 있다.
오왕 합려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기원전 506년에 오자서를 모사로, 손무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다섯 번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초나라를 떠나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을 죽음으로 내몬 초 평왕의 시신에 채찍질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자서와 백비 두 사람은 오왕 합려를 보필하며 끝내 초나라를 무찌르고 오랜 원한을 풀게 된 것이다.
“딱 여기까지만.”
초나라를 공격해 승리를 거둔 오왕 합려는 이어 월나라를 공격하다 월왕 구천에게 대패하고 숨을 거두었다.
합려가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자 그의 아들 부차가 오왕에 등극하였다.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전쟁은 거듭되었다. 이 와중에 일신의 영달을 꾀하고자 백비는 오나라와 오자서를 배신한다.
백비는 월나라에 매수당해 은덕을 입은 오나라를 멸망에 몰아넣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으며 오자서마저 무고로 분사憤死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피리의 충언을 간과함으로써 오자서는 더 큰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오늘날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끼리, 혹은 적의를 품은 대상이 같은 사람끼리 공조하고 협력하여 일을 도모하다가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그 성과를 독점하려 하거나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사례가 허다함을 경계하는 의미로 이 말이 활용되기도 한다. 결국 동병상련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일 때 함께 나누는 아픔이 된다는 것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함께 하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히 상대의 기쁨을 내 것처럼 함께 한다는 건 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진정성이 하나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똑같이 공유할 수 있다면 그들은 오롯한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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