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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구하다 10_ 토사구팽兎死狗烹

장한림 2022. 4. 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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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뼉 칠 때 떠나야만 가마솥 신세를 면하는가

 

 

천하를 통일하고 한나라 고조高祖에 등극한 유방은 민감해지고 의심도 많아졌다. 특히 초나라 왕으로 임명한 한신의 명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세력이 힘이 커지는 게 몹시 거슬렸다.

 

 “더 크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물이야, 그러기 전에 싹을 도려내야 할 텐데.”

 

한신이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까지 떠돌아 불안해진 유방은 사냥을 핑계 삼아 제후들을 불러 모은다.

 

“모처럼 사냥을 하고 큰 연회를 열고자 하니 제후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모이기 바라오.”

 

사냥과 연회를 빌미로 한신을 노린 거였다. 그걸 모르지 않는 한신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 어찌해야 옳은가. 나를 노리는 게 분명한 데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게 되었군.

 

한신의 고민을 눈치챈 수하 장수가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를 죽여서 그 목을 바치면 의심도 받지 않고 황제의 노여움도 풀릴 거로 사료됩니다.”

 

종리매는 항우 휘하에 있던 장수였다. 항우가 죽은 뒤 한나라의 포로가 되었는데 뛰어난 무예 실력을 지녀 한신은 그를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었다.

유방은 한때 종리매에게 원한이 있어 한신에게 그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이미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한신은 종리매를 숨겨 둔 채 명령을 따르지 않아 더더욱 황제의 눈밖에 나던 중이었다. 

항복한 사람을 거두었다가 죽인다는 게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종리매는 죽이기에 너무 아까운 장수였다.

 

- 도대체 풀어지지 않는 현안에 거듭 부닥치는구나. 

 

한신은 종리매를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고 의견을 물었다.

 

“그 말인즉 내 목을 내놓으라는 말이 아닙니까?

 

종리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을 이었다.

 

“유방이 왜 그동안 당신을 치지 않고 머뭇거렸겠습니까. 내가 그대 곁에 있었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제 유방의 비위를 맞추려고 나를 잡겠다는 것이니 나 스스로 이 자리에서 목숨을 내놓겠소.

 

종리매는 칼을 꺼내 자기 목에 대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사라지면 그다음엔 바로 당신 차례라는 걸 알아두시오.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 이걸로 사태는 수습되는 건가.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에게 갔다. 유방의 마음이 풀어질까 기대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방은 종리매가 죽었다는 걸 알고 그 즉시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 아, 종리매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구나.

 

한신은 뒤늦게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지면 활을 부러뜨리며 적국이 망하고 나면 장수들을 내친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나. 내 그동안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무찌르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건만 이제 천하를 손에 쥐었다고 나를 잡아 없애려 하다니.”

 

한신이 길게 탄식했다. 여기에서 비롯된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한신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나온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춘추전국시대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월왕 구천의 심중을 꿰뚫은 범려가 관직을 내놓으며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범려는 초야에 숨어 화를 면하였으나 함께 그만두지 않은 문종은 구천에게 충성을 다하다 트집을 잡혀 목숨을 잃는다. 

한신은 운몽에서 유방에게 사로잡혀 압송될 때 이 고사를 패러디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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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 긴요하게 쓰고 필요조건이 사라지면 매정하게 버리는 비정한 인간 세상을 꼬집은 말이다. 현대에서도 정치판이나 기업에서 숱하게 보아 온 일들이 아니겠는가. 토사구팽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로도 흔하게 쓰이는데 그만큼 비정한 면면들이 우리 삶 속에 진득하게 내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은혜나 보답에 앞서 배신과 경계가 상식처럼 된 세상에서는 어우러짐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게 되어있다. 우리라는 복수의 개념은 희석되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내 기업의 이기적 사고만이 팽배하게 될 것이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기원전 201년인 한 고조 6년, 초왕의 지위에 있던 한신은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고 처지를 비관하던 중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몰래 내통하여 병사를 일으켜 황후인 여후와 태자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비밀이 새 나가 한신은 여후와 재상 소하의 계략에 걸려 장락궁長樂宮으로 유인당한 뒤 여인에게 참살당했다.

소하의 천거로 한나라 대장군에 등극하더니 끝내는 소하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평생의 동지도, 평생의 적도 없다 하겠다. 

 

공적이 뛰어나 군주를 놀라게 한다

 

한신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군사적인 능력은 천부적 능력을 갖췄으나 대인관계나 정치적 권모술수는 부족함이 많았다. 가난했던 시절의 근성 때문인지 대인의 풍모가 떨어지고 겸양의 덕이 부족하여 주변의 경계를 불러일으켜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사마천이 역사의 패자 항우에 대해서는 인물됨을 높이 평가한 편이었는데 승자인 한신에 대해서는 군사적 능력은 높게 평가하였으나 인물평은 꽤 박하게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신이 불세출의 영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견이지만 삼국지의 여포를 능가하고 관운장만큼 호감을 갖게 하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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