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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3_ 미봉책彌縫策

장한림 2022. 4. 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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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던 춘추시대에 왕실인 주나라와 휘하 제후국 사이의 위계질서까지 무너져 상명하복의 명령체계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제후들 간에도 서로 싸움을 일삼아 힘이 부족하면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대로 왕권이 쇠락하게 놓아둘 수는 없다.”

 

주나라 환 왕은 무너져 가는 왕실 권위를 되찾고자 노심초사했다. 이즈음 제후국인 정나라 장공이 환 왕의 승인도 받지 않고 다른 나라로 쳐들어갔다. 

 

“장공, 이놈이 많이 컸구나. 가뜩이나 눈엣 가시 같았었는데 잘 걸렸다. 네놈부터 아예 싹을 도려 내주마.”

 

환 왕은 장공이 누리던 제후의 벼슬을 박탈했다.

 

“폐하! 제가 뭘 잘못했다고 저한테 이러십니까?”

 

환 왕의 처우에 불만을 품은 장공은 왕실에 바쳐오던 조공을 중단했다.

 

“네가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기다렸다는 듯 환 왕은 장공의 반발을 트집 잡아 이 기회에 정나라를 쳐부수기로 했다. 

환 왕은 다른 제후들에게 참전을 명해 괵 · 채 · 위 · 진나라와 연합해 정나라 정벌에 나선다. 환 왕은 직접 총사령관이 되어 진두지휘를 한 것이다. 춘추시대에는 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나간 적이 없었다.

 

“예상은 했다만 너무 많은 병력이 동원됐구나.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장공이 근심하자 공자인 원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저들의 동원 병력이 많기는 하지만 약점이 있습니다. 연합군 왼쪽 진영을 맡은 진나라 군대가 바로 구멍입니다. 이들은 그동안 정세가 어지러워 살림도 궁한데 억지로 동원되었습니다. 오승미봉법으로 진나라 군대를 먼저 치면 연합군의 대열이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오승미봉법이라고 했느냐?”

“예. 전차 부대가 앞으로 나아가고 그 뒤에 보병 부대를 세운 뒤, 또 다른 전차 부대가 그 뒤를 잇게끔 하는 것입니다. 전차 부대 사이의 빈 공간을 보병 부대가 메우는 전술이지요.”

 

장공은 공자의 의견을 수용해 그대로 전술로 활용했다. 환 왕은 크게 힘도 써보지 못하고 연합군의 대열이 무너지고 초토화되는 패배를 맛보았다. 

환 왕은 어깨에 화살까지 맞아 부상을 입은 채 후퇴했다. 장공의 부하 장수가 도망치던 환 왕의 군대를 계속 추격하려고 했으나 장공이 이를 말렸다.

 

“군자의 도리 중 하나가 부러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을 욕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에 임한 것이었으니 우리는 얻을 걸 다 얻었다.”

 

이 전쟁의 승리로 장공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가 쓴 ‘오승미봉伍承彌縫’의 전법에서 미봉책彌縫策이라는 말이 비롯했다. 

춘추좌씨전, 환 왕조桓王條에 이렇게 적혀있다.

 

‘만백이 우군이 되고 채중족이 좌군이 되었으며, 원번과 고거미가 중군으로 장공을 모시는 어려진魚麗陣을 폈다.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보병이 이를 뒤따르되 보병이 전차부대의 틈을 연결시키는 전법이다.’

 

다시 정리하면 선봉에 전차부대가 나서면 그 후미의 전차부대와 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빈틈을 보병부대가 실로 꿰매듯 메움으로써 약점을 보완한 강력한 전법으로 작용해 적군을 격퇴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승미봉伍承彌縫이 실제 존재했던 전법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봉책은 모자라는 부분을 바느질하듯 빈틈없이 메우는 방책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허술한 부분이나 잘못된 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해진 옷을 기워 입듯이 눈가림만 하는 일시적인 방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임시방편적인 땜질 처방으로 그 의미가 변질된 것이다. 

고식지계姑息之計, 목전지계目前之計, 동족방뇨凍足放尿, 인순고식因循姑息 등이 비슷한 의미이고  언 발에 오줌 누기, 눈 가리고 아웅,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등의 속담이 역시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미彌와 봉縫은 두 단어 모두 꿰매거나 깁는다는 뜻이다. 미싱으로 탄탄하고 촘촘하게 박은 꿰맴이 그 본래의 의미인데 어설프고도 불충분한 처리의 미봉未縫으로 여겨왔던 모양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요즈음엔 아무리 잘 꿰매도 흔적과 자국이 남는 것은 완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옷이라 치면 완벽하게 바느질하여 찢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바느질 자국이 없고 아무런 흔적도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수많은 정책들, 특히 부동산, 금융, 교육정책들 중에는 툭하면 실밥이 터지는 미봉未縫의 땜질 정책에 국민 혼란이 가중되어 왔고 지금도 크게 달라짐이 없다. 흔적이나 표시가 남더라도 한 번 꿰매면 그 옷의 유행이 지날 때까지 입을 수 있게끔 만들지는 못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에게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가 만든 천의무봉의 기술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건 나무에서 생선을 바라는 연목구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한 자리에 있는 정책가들이라면 야구공처럼 빨간 실밥이 확실한 바느질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ydCDiOEbAnU 

 

 

 


 

https://www.bookk.co.kr/aaaing89

 

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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