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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5_ 와신상담臥薪嘗膽

장한림 2022. 4.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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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더미에 눕거나 쓸개를 핥지는 않을지언정

 

“이 기세를 몰아 월나라로 진격한다.”

 

기원전 496년, 초나라를 무찌르고 기세 등등한 오나라 왕 합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위세를 떨치며 점차 강국으로 성장하던 월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 원정 때 합려가 나라를 비운 사이에 월나라가 침입했었기 때문에 매운맛을 보여주려던 참이었다. 월나라의 왕권 교체기를 틈타 공격을 감행했으나 월나라는 예상보다 강했다. 합려는 오히려 대패하고 부상을 입은 채 귀국했다. 

 

“월왕 구천에게 이 아비의 원수를 갚아다오. 나를 죽인 건 월왕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반드시 월왕의 목을 아버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오왕 합려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면서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당부했다. 이후 오왕 부차는 선왕의 복수를 결심하고 혹여라도 그걸 잊을까 봐 장작더미에 누워서(와신臥薪) 잠을 잤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오왕 합려에게 부상을 입힌 2대 월왕 구천은 오왕 합려와의 전쟁에 죄인들로 구성된 자살 부대원들을 투입해 스스로 목을 찌르며 아군 진영을 혼란케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오나라 군을 급습했기에 오왕 부차는 더더욱 분을 가누지 못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가 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잊었느냐?”

 

복수심에 이를 간 부차는 와신에 더해 궁을 오갈 때마다 신하들에게 이렇게 외치도록 했다. 그러한 부차였기에 쉼 없이 군사들을 훈련시켜 전의를 다져나갔다.

 

“더 드세지기 전에 오나라를 쳐야겠다.”

 

합려가 죽고 2년이 지난 기원전 494년, 오나라의 세력을 견제한 구천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으나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에게 밀려 후퇴를 거듭했다. 

 

“승세를 몰아 월나라의 뿌리를 뽑아버릴 것이다.”

 

오나라는 월나라 수도 회계까지 쳐들어갔다. 구천과 5천여 명의 월나라 군사들은 회계산을 포위한 오나라 군에 의해 산꼭대기에 갇히고 말았다.  

 

“백기 투항하겠소.”

 

항복 외에 달리 방법이 없던 월왕 구천은 신하들에게 나라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오왕 부차에게 두 손을 들었다. 

 

“전하께서 이렇게만 해주실 수 있다면 나라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왕 구천은 재상 범려의 말에 따라 매우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청했다. 

 

“나는 오나라 왕의 신하가 되고 내 아내는 오왕의 첩으로 바치겠소.”

 

월왕 구천의 제안에 재상인 오자서는 극구 반대했지만, 북쪽으로의 영토 확장을 꿈꾸던 오왕 부차는 이를 받아들였다. 어쨌든 오왕 부차는 복수에 성공했다. 

 

“그렇게 하겠다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주마.”

 

항복을 받아들인 부차는 월왕 구천을 오나라로 데리고 가서 자기 노예로 삼았다. 강화 체결 후 오나라에 온 구천은 오왕 부차의 말을 끌어 주고 마구간 청소를 하는 등 3년 동안 부차의 종처럼 생활했다. 

구천은 누가 보아도 성실한 노예처럼 열심히 맡은 일을 수행했다. 심지어 부차가 병이 들자 그의 대변까지 맛보면서 정성껏 간호하기도 했다.

 

- 이 자가 이젠 노예 신분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구나. 그만 풀어줘도 될 듯하다. 

 

오왕 부차는 과거의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구천이 행하는 정성에 마음이 누그러져 그를 놓아주었다. 

기원전 491년에야 월나라로 돌아온 월왕 구천은 치욕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그는 자기 마음이 나태해질까 염려해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았다. 그러고는 시시 때때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상담嘗膽)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너는 절대 지난날에 당한 치욕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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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은 이렇듯 복수를 다짐하며 기회를 노렸다. 그는 손수 밭을 갈고 부인은 길쌈을 하였다. 또 고기반찬을 먹지 않고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후하게 대접해 관리로 삼았다. 

더불어 오왕 부차에게는 환심을 사기 위해 미녀 서시를 보내 정사에 소홀해지도록 하고 해마다 조공을 받쳐 월나라에 대한 경계를 늦추도록 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를 즈음 오나라는 충성스러운 제후국 월나라를 아예 제쳐두고 제나라를 정복하고 진나라, 노나라 등을 공격하며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이때다. 바로 지금이 오나라를 격파할 때다.”

 

월왕 구천은 부차가 없는 틈을 이용해 오나라 수도를 함락해 오나라의 태자를 죽인 이후 4년이 더 지나 다시 오나라를 공격했다. 기원전 473년, 드디어 양산에서 오왕 부차를 포위했다. 

그는 오왕 부차를 불쌍히 여겨 항복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범려가 회계에서의 일을 상기시키며 반대했다. 부차 또한 그 호의를 뿌리치고 스스로 목을 베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비롯되었다. 원수를 갚고자 부차가 장작더미 위에 눕고 구천이 쓸개를 맛본 것처럼 정한 목표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 낸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 말, 초나라를 위협한 것은 중원에 위치한 강국이 아니라 장강 하류 변방의 오나라와 월나라였다. 초나라는 오나라에게, 오나라는 다시 월나라에게 패자의 자리를 내주면서 춘추시대는 월나라가 패권을 잡으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쓰이는 와신상담은 살아오면서 흔하게 되새겨지는 용어이다. 쓰디쓴 쓸개지만 핥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그 맛에 적응되어 씁쓸한 맛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이든, 정한 목표의 달성 욕구든 흐지부지 되면서 쓸개와 친분만 생기고 만다. 각고의 노력과 인내가 함께 따라줘야 와신상담이 그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장작더미에 눕거나 쓸개를 빨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지키고자 한 결심 정도는 끝까지 지켜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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