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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대야산大耶山은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하면서 충북 괴산군을 경계로 경북 문경시와 접하고 있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홍수가 났을 때 봉우리가 대야만큼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적고 있다.
35곳 괴산의 명산 중 하나로 문경 8경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용추계곡, 선유동계곡의 청정 계류가 흐르는 대야산 자연휴양림을 끼고 있다.
휴양림 인근에 봉암사, 견훤 유적지, 운강 이강년 생가터, 문경새재 등 역사·문화적으로 유명한 학습장소가 산재해 있어 시간에 맞춰 산행과 계곡 탐방, 유적지까지 두루 둘러볼 수 있는 다양성을 갖춘 탐방지역이라 할 수 있다.
계곡과 수림과 조망이 어우러진 산
대야산 아래 벌바위 주차장에 바로 산행 들머리가 있다. 두 번째 방문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둔덕산으로 올랐다가 대야산을 거쳐 원점회귀 산행을 한 게 재작년인데 이번엔 제법 비가 내려 수량이 많을 용추계곡의 시원함을 느끼고자 여름에 날을 잡았다.
차에서 내려 함께 온 세 명의 산우들과 함께 스틱을 펼치는데도 땀이 흐른다. 산행 안내도와 큼직하고 매끄러운 자연석 옆의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700m 전방에 용추계곡이 있고 대야산까지는 4.8km이다. 역시 곧바로 맑은 계곡물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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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많은 용추계곡이 있다. 그중 경기도 가평 연인산 자락의 용추계곡과 경남 함양 기백산의 용추계곡이 물 좋고 계곡 수려하여 각인되어있었는데 여기 대야산 용추계곡도 거기 못지않다는 걸 알게 된다.
울창한 숲이 에워싼 계곡미가 우선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계곡에서 솟듯이 불어주는 바람이 한여름 불볕더위를 진정시킨다. 넓은 암반 너머 무당소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3m 정도의 수심으로 물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녀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어 무당소라고 부른다는데 두 명이나 빠져 죽었어도 무당소의 물은 여전히 맑고 투명하다. 허리 굽혀 막 흐르는 땀을 씻어낸다.
마른장마에 펄펄 끓는 폭염
그럼에도 소매 잡아끄는 짙푸른 섬광
뿌리칠 수 없는 원심력처럼 순순히 몸 실어
무심결에 나섰더니
야생초, 낙엽송 무성하고 햇살마저 초록 빛깔
흡인력 강한 카리스마에 끌려
이 산 깊은 품에
꼬옥 안기고 말았네
이어서 용소암이 나온다. 용추계곡에 머물던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르다 바위에 발톱이 찍혀 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자국이 용의 발톱에 의한 게 틀림없다면 그 용은 고지라만큼이나 엄청 큰 놈이 분명하다.
또 하트 모양으로 깊게 팬 소沼를 통하면서 2단으로 흐르는 용추폭포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 형상이 볼수록 특이하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양쪽 화강암 바위에 승천하며 용트림하다 남긴 용 비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용추계곡의 비경으로 꼽는 이들 증거가 완벽해 사실이 아니란 걸 주장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점입가경이다. 푸른빛 감도는 맑은 계류는 좁은 홈을 타고 아래 용소의 웅덩이로 흘러내리는데 용이 승천하기 전에 알을 품었다는 곳이라고 한다.
“알은 부화시키고 하늘로 오른 걸까.”
암수 두 마리의 용만 승천했다면 부화한 용은 이무기로 남아 이곳 대야산 어딘가에 있는 걸까. 형사 콜롬보가 되었다가 셜록 홈스로 변신해 추론을 거듭해보지만, 사건은 미궁을 맴돈다. 용과 관련한 전설은 늘 의구심을 남긴다.
한동안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다. 바위도 많고 수량도 풍부하여 국내 명품 용추계곡의 반열에 넣지 않을 수가 없다. 계곡과 수림과 조망이 잘 어우러진 산이다. 용추계곡을 한껏 즐기다가 다시 산죽 군락의 등산로로 접어들어 물소리를 멀리하게 된다. 우람한 근육질의 소나무들이 늘어서서 반기고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지면서 밀재에 다다랐다.
대야산까지 딱 1km를 남겨둔 지점이다. 계단을 올라 거북바위를 보고 그 뒤로 시원스러운 조망 공간에서 가쁜 숨을 가다듬는다. 쉼표 위에 서서 관람을 즐긴다. 힘들게 올라와 잠시 쉬는 곳이 전망 좋은 장소일 때 거긴 쉼터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를 보강하는 충전소가 된다.
밧줄이 설치된 바위 구간과 계단이 이어지지만,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기름을 가득 넣은 세단처럼 단숨에 올라섰다. 탄력을 받아 코끼리 닮은 바위를 지났는데 계단 중간의 전망대에서 정지신호를 받고 멈춰 선다. 굽이치는 마루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튀십니다.”
“내가 좀 그런 편이지. 허허!”
허옇게 암벽 드러난 희양산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노인의 백발이 그의 머리에서 면류관처럼 보일 때 그는 그저 나이 든 노인이 아니다. 노련한 경륜가로 존재감을 부각하게 되는데 희양산이 그렇다. 괴산과 문경 일대의 산들을 두루 아우르는 형세라 더욱 그런 인식을 하게 된다.
다시 올라 대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하는 대문바위를 본다. 밑으로 굴러 떨어질 듯한 커다란 바위가 비스듬히 놓인 채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틈새가 벌어져 있다. 또 다른 바위는 자연적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볼수록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이들 바위와 어우러진 노송과 고목도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나무다리를 건너 바위 구간을 통과하고 계단을 걸어 대야산 정상인 상대봉(해발 930.7m)에 도착하였다. 이화령 너머의 백화산과 희양산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와 위치한 대야산은 남쪽으로는 속리산으로 이어진다.
정상 언저리에 둘러친 쇠 울타리 너머로 속리산 주 능선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낮게 깔린 뭉게구름이 조령산의 마루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희양산의 벗겨진 근육도 더욱 우람하게 도드라진다.
정상 아래 삼거리에서 월영대 방향으로 하산로를 택한다. 계단과 너덜바위 구간이 나타나긴 하지만 비교적 경사 완급이 수수한데 여기서도 암릉의 묘미를 만끽한다.
한참을 내려와 맑은 물에 비친 달을 볼 수 있다는 월영대에 이르렀다. 여기 월영대의 수려한 계곡미와 물길에 마냥 젖어들면 넓은 암반 위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이 이룬 소에는 밤이면 고개 숙여 달을 볼 것만 같다. 월영대를 지나 월영대 삼거리에 닿으면서 다시 올라갈 때의 용추계곡 초입에 이르렀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어여쁜 꽃이 방긋 웃고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산은 같은 길이라도 등산 때와 하산 때의 느낌이 판이한 경우가 많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걷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기운이 떨어지는 오르막에서는 걸음걸이에 신경 쓰다가 보지 못했다가 내려오면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 ‘그 꽃’은 그래서 내려올 때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때 / 여름
곳 / 벌바위 주차장 - 용추계곡 - 무당소 - 용추폭포 – 월영대 삼거리 - 밀재 - 대야산 - 월영대 – 월영대 삼거리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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