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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계곡 산행 / 물기둥과 물보라 속의 수중 산행_ 지리산 한신계곡

장한림 2022. 5. 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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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이래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데 스무 번을 넘게 왔어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면목이 서질 않는다. 

아버지는 변화가 없더라도 아들만큼은 지혜로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백무동으로 왔다. 여름 한신계곡을 오르며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산행 중에 산이 주는 의미와 가족의 애를 함께 느끼고, 향후 진로에 깨달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염두에 두었으니 아비 관점에서 얼마나 큰 욕심을 지니고 온 것인가.

한신계곡은 지리산 12 동천 중 하나로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낀다는 의미에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한신계곡 일원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평전까지 약 10㎞에 이르는 계곡으로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다. 

가내소 폭포, 한신폭포 등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폭포수가 이루는 청정 옥류와 계곡을 감싸는 울창한 천연림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입시에 지쳤을 아들에게 모두 잊고 대자연의 오묘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산을 통해 아빠와 동질감을 느꼈으면 하는 사족적인 욕구까지 곁들여졌다.

 

   

        

최적의 시기에 최적의 장소를 탐방하다 

 

 

백무동 한신계곡에 들어섰다

 

   

한신계곡은 맑고 풍부한 계류와 우거진 천연원시림이 강한 자력으로 이끄는 곳이다. 단풍이 뚝뚝 떨어져 맑은 물을 붉게 물들이던 데칼코마니의 계곡을 작년 늦가을에 다녀갔었다. 만추의 서정을 빚어내던 한신계곡에서 이번에는 싱그러운 녹음과 시리도록 맑은 물살에 땀을 쏟아내려 한다. 

 

“아빠와 단둘만의 첫 여행지가 산이 될 줄이야.”

“하하, 아빠는 아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하는 걸 소망해왔었거든.” 

 

산보다는 바다, 특히 섬을 갔으면 했지만, 녀석은 군말 없이 아빠의 뜻을 따라주었다. 어젯밤 시외버스에서 내려 민박했던 마천면에서 백무동 탐방지원센터까지 약 4km의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지리산 자락의 새벽 공기를 마신다. 

 

“우와 대박! 공기가 죽여주네요. 하늘 좀 보세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별빛 찬란한 새벽하늘이다. 이번 지리산 탐방 중 녀석이 여러 번 감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자연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이제까지의 생활과는 색다른 감미로움으로 남았으면 한다. 훗날, 후회되지 않는 인생을 꾸려가기를 바라는 맘이 강해서였을까. 막 다이빙대를 떠나 입수 직전 허공에 머문 찰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물에 떨어지면 팔을 흔들고 다리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뭍에 닿았을 때 한 톨의 힘도 남아있지 않다면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했음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전공을 놓고 고민하던 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네가 한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기를…….”

 

동이 트기 전에 함양군 백무동 탐방센터를 통과한다. 지리산의 지혜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백 명 넘는 무당이 머물던 곳이라 백무동이란다. 안개가 늘 자욱하게 끼어있어 백무동이라고도 했다가 지금은 무사(화랑)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 하여 백무동이라고 한다니 다신 명칭의 해석이 바뀌지 않을 듯하다. 

왼쪽으로 장터목대피소까지 5.8km, 오른쪽으로 세석대피소까지 6.5km. 최고봉인 천왕봉을 가야 하니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3.8km를 돌아가야 한다. 대략 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한신계곡을 통과하여 세석으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요즘 우측보행이 대세 아니겠니. 돌아서 가는 길이 지름길이란 말도 있잖아.”

 

자칫 하산 시간에 쫓길까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다. 예정했던 거건, 즉흥이건 녀석은 모른다. 그저 직급 위인 꼰대 맘이다. 더더욱 여기가 지리산인 걸, 뭐!  

돌길과 흙길이 번갈아 이어지면서 숲으로 깊이 들어섰다. 한여름이라 그늘숲에서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우렁찬 굉음을 내지르는 폭포수에 이르면서 시원한 기운이 몸을 휘감는다. 백무동에서 1.9km를 오른 지점에 첫나들이 폭포가 부자를 반긴다. 

세석평전까지 한신계곡이 이어진다. 명승 제72호의 한신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 계곡과 함께 지리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계곡으로 세석평전 꼭대기에서 물을 흘러내리고 있다.

물이 넘치는 계곡에 이르자 아들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다시 내려올 건데 뭐 하러 산에 가냐는 양 시큰둥하던 녀석이 계류에 발을 담그고 사과를 한 움큼 베어 먹으면서 어린애처럼 밝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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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온 것 같아요.”

“아무렴, 안 좋은 곳에 아들을 데리고 오겠니.” 

“자연에 마냥 섞여버리니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좋네요.” 

“자연에 안기면 그 자연스러움에 동화되는 게 사람의 본능이지.”

 

말이야, 막걸리야. 아마도 아빠만 아니었다면 녀석은 그렇게 대꾸했을지도 모르겠다. 

산이 나무와 물, 계곡과 바위 등 제 품에 안은 풍경과 두루 어우러지니 더욱 자연스러워지겠지.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산에 들어오면 속을 답답하게 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볍게 내려놓는 것일 테지. 

꼰대처럼 이렇게 말했으면 우리 부자는 다시 산에 같이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간지러운 입만 오물거렸다.   

비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넘칠 듯 수량이 풍부하여 더 다행스럽다. 아들 녀석이 지리산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살아가면서 지치면 지리산을 찾아 원기를 되찾고, 힘들 거들랑 설악산에서 심신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인간 만사가 새옹지마라는 걸 깨달아 일희일비하지 않고 다시 일어섬에 익숙해지는 걸 가까운 북한산에서 익혔으면 싶다. 

역시 아빠가 아들에게 소망하는 건, 아들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 아빠도 딴 아빠들과 다른 게 없구나." 하는 조바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아빠라는 직급, 꼰대라는 직책은 여전히 조바심 일색이고 아직 창창한 네가 하기에 어려운(아빠도 할 수 없었고, 하지 못 했던) 주문을 소망하게 된다.

 

“짐이라고 여겨지거든 끌어안지 말고 툭툭 털어버리면 좋겠구나. 그렇게 하길 바라마.”

 

앞서가는 아들을 뒤따르며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충족할 줄 아는 삶을 지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들아, 그건 아빠가 못 했던 거라서 너는 꼭 그렇게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서란다.

 

"그래서 아빠라는 존재는 꼰대의 범주를 못 벗어나나 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허다한 허술함으로 수동적이고 경쟁적 삶을 사는 또래 청춘들이 산과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상대에게 이기지 못해도 절대 불행하지 않음을 산에서 깨닫기를 소망하게 된다.

 

가내소 폭포에 이르러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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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0대 명산 탐방기와 산행안내가 글, 사진, 동영상과 함께 상세히 수록된 채널입니다.


 

몇 개의 철사교를 건너 가내소 폭포에 이르렀다. 15m 높이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며 50여 평 남짓한 검푸른 소를 이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서늘한 느낌을 준다. 낙차 심하게 떨어지는 물기둥과 굉음, 암반에 부딪히는 눈부실 정도로 흰 물보라. 여기서 귀가 먹먹해지는 건 대뇌의 모든 사고를 중지하라는 시그널이다. 그저 감상하고 감동하라는 의미이다.

나무는 쓰러져도 숲을 이루고 물은 흘러가도 계곡으로 남고, 물줄기는 떨어져 폭포를 이루니 산은 이들을 모아 사람을 끌어들여 자연으로의 회귀를 소망하게 하나 보다. 수림도 울창해 삼림욕으로도 안성맞춤인 데다 수직으로 물이 떨어지며 많은 양의 산소가 물속으로 녹아든다. 폭포 주변은 물 분자가 쪼개지면서 많은 음이온이 발생해 찾는 이들에게 건강을 덤으로 얹어준다.

 

“그래서 산은 만병을 치유하는 종합병원이고 만병통치약이라 할 수 있지.”

 

그러나 아들은 과학보다 개그에 더 흥미를 느낀다. 

 

“에이, 나의 도道는 결국 실패했네. 나는 이만 가네.” 

 

가내소에 관한 전설이 적힌 팻말을 읽은 아들이 도인의 말을 흉내 내며 재미있어 죽겠단다. 

12년간 도를 닦던 도인이 마지막 수행으로 줄을 타고 이 소를 건너던 중 선녀의 유혹에 그만 정신이 흐트러져 물에 빠지고는 그렇게 말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했나. 선녀를 데리고 떠나지.”

“하하하! 너다운 생각이다. 이 폭포에서는 기우제를 많이 지내기도 했지.”

“어떤 식으로 기우제를 지냈을까요.”

“아낙네들이 홑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렸다더라.”

“??”

“방망이 소리가 통곡처럼 울려 지리산 마고할미의 눈물을 유도하자 그 눈물이 비로 뿌려졌거든.”

“…….”

“재미없어? 또 다른 방법은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를 여기 가내소에 던졌지.”

 

산이 더럽혀지면 이를 씻어내기 위해 산신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던 옛사람들의 주술적 믿음까지도 녀석에게는 도통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세대차이가 얼마나 넓은 지를 느끼는 한 시점이기도 하다. 부자간에 그걸 좁히고자 온 지리산이기도 하다. 

 

“재미없으면 또 가자.” 

 

한신계곡은 백무동 계곡의 상백무마을 위쪽 골짜기로서 세석평전으로 이어지는 주곡은 영롱한 구슬처럼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흐르다가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한신 지곡으로 갈라진다. 오층 폭포를 지나고 백무동에서 3.7km 거리의 한신폭포에 이르러 땀을 씻어낸다.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니?”

 

뜬금없는 아빠의 말에 쫑긋 귀를 세운다. 물소리만 더 크게 들리겠지. 

 

“옛날에 한신이란 사람이 우리가 걸어온 이 길로 농악대를 이끌고 오르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거든.”

“그런데요?”

“그 후로 여길 한신계곡이라 불렀고, 지금도 비가 오면 백무동 주민들은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더라.”

“에이, 지금 전설의 고향 얘기하세요?”

 

한신계곡의 명칭 유래도 녀석에겐 시시껄렁했다. 세대 격차를 더 벌리기만 했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도 한여름에 한기를 느낄 정도로 깊은 계곡이라는 의미의 유래가 더 적절해 보인다. 

    

 수국水國 십리길 오르고 또 올라 

 보이는 곳마다 천국 

 물소리 우르렁 우르렁 울어 내리는

 백무동엔 삼복조차 녹아든다   

 

 

       

세석평전에서 천왕봉으로  

   

세석 올랐다가 정상을 향해

https://www.bookk.co.kr/aaaing89

 

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www.bookk.co.kr

 

 

 

해발 905m의 계곡 꼭대기를 지나 세석까지 2.8km를 오르지만 여간해서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상당히 가파르고 험준한 길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한신계곡의 마지막 폭포를 지나면서 더욱 급준한 경사 구간이 이어진다. 

 

“잘 따라오실 수 있죠?”

 

청정 옥수의 물소리마저 들리지 않아 건조하고 뻣뻣한 산길이다. 그런데도 앞서 걸으며 아빠한테 힘내라는 아들이 대견하다. 세석평전으로 올라서기 직전 1.3km부터 특히 가파름이 심하다가 갑자기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광대한 세석고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해발 1560m 세석, 봄이면 온통 붉은빛의 세석평전 철쭉 군락지는 지리산 10경의 한 곳이다. 세석산장의 나무벤치에 앉아 출발 직전 백무동 식당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놓는다.

 

“너무 맛있어요.”

 

산나물 몇 가지에 식은 밥이지만 아마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난 식사였을 것이다.

 

“먹었으니 또 가야지.”

 

고단하고 나른하기는 해도 마냥 쉴 수만은 없다. 당일 산행을 계획했기에 대피소 예약도 하지 않고 왔다.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 10경을 담은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부자가 걷는다는 생각이 들자 걸음이 무거워진다. 촛대봉(해발 1703m)을 지나고 연하 선경으로 이름난 연하봉(해발 1730m)에 이른다. 오가는 산객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아들은 걸음이 더 가벼워진 듯하다. 

 

 

제석봉 고사목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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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에 가면 아이스크림 있나요?”

 

순간, 온몸 불사르던 혁명이 아이스크림이 녹은 것처럼 실패한 쿠데타로 막을 내린 기분이다. 이원규 시인에게 죄스러운 마음이다.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만도 하다. 장터목까지 얼른 가고 싶은가 보다. 지리산답지 않게 너무나 쾌청하여 산 아래로 마을이 선명하게 보인다. 장터목대피소에는 수많은 산객들이 먹거리를 풀어놓고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와있을 줄은 몰랐어요,”

 

당연하다. 이처럼 높은 산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앞으론 삶은 달걀을 좋아하게 될 거 같아요.”

 

거기다 산에선 뭐든 먹어둬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했는지 제 배낭의 행동식을 죄다 꺼내먹는다. 산은 그래서 터득의 장이라고도 하던데 아빠도 그게 정리되지 않는단다. 

천왕봉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여름 바다를 엎어놓은 것처럼 맑고 푸르다. 

 

 

천왕봉이 조금은 가까이 다가왔네

 

"쨈만 더 힘내세요. 다와가네요."

 

 

“하늘도, 구름도, 산도, 공기도 모두가 예술이네요.”

 

점차 지리산과 친해지고 있음이다. 제석봉에서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묵연하게 관찰하기도 한다. 햇볕에 더욱 말라 보이는 고사목이 그저 가련하다고만 느꼈을까. 느끼면 느끼는대로,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아들아, 더 이상의 상념도, 네 나름의 해석도 필요 없단다. 지리산은 네 20년 후의 교훈을 주고 있을 텐데 너뿐 아니라 우리네 사람들은 그걸 30년이 지나서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더라.   

보기에 따라 죽음도 아늑한 평화처럼 느껴지는 곳이 지리산이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해발 1915m)에 이르자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많은 산객들이 사진을 찍고 자리를 비켜주자 정상석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철철 넘치는 산그리메에 빠져든다.

 

 

 

지리산 정산에 부자가 함께 섰다는 게 감개무량하다

 

 

“정상에 선 기분이 어때?”

“축구시합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더 감격스럽네요.”

 

첫 산행에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으니 그럴만하다. 맑은 하늘 아래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포만감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서 올라온 거죠?”

“800리면 몇 킬로미터지?”

“팔사삼십이, 320km네요.”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삼 도에 걸친 지리산 둘레가 자그마치 320km야. 올라올 만한 곳이 꽤 많겠지?”

“우와!”

“저기 노고단에서 여기 천왕봉까지가 25km 남짓인데 거길 걸어온 사람들도 꽤 있을 거야.”

 

지리산 광대한 품 안에는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1500m 넘는 20여 봉우리가 펼쳐있고, 20여 개의 긴 능선 아래로 오늘 걸어온 한신계곡 말고도 칠선계곡, 대원사 계곡, 피아골, 뱀사골, 중산리 등 큰 계곡이 많으며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봉우리나 계곡 또한 수두룩하다.

 

“저 아래에서 지금 네가 서 있는 정상만 보이고 구름 안개가 이 지리산을 모두 가렸다고 상상해봐.”

“하늘에 바위 한 조각이 떠 있는 모습일까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 조식 선생은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나 명종과 선조로부터 중앙과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선생은 지리산을 너무 사랑하여 61세 때 모든 재산과 장자長子 권리까지 동생에게 물려주고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와 지리산을 숱하게 오르면서 많은 시와 지리산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그중 천왕봉의 거대한 우직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천 석이나 되는 무거운 종은 請看千石鍾

큰 채로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非大叩無聲

만고의 세월 속 우뚝 서 있는 저 천왕봉은 萬古天王峰

하늘이 울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구나 天鳴猶不鳴    

 

꼭대기 천왕봉 부분만 살짝 드러내고 운해가 뒤덮은 지리산을 마치 종이 솟은 것처럼 보았으리라. 그 종은 무엇으로도 울릴 수 없을 만큼 우람하다. 

지리산을 학습한 아들이 경외감을 지니며 사방을 둘러본다. 기상이 넘치고 또 넘치지? 그런 이곳에서 네 기상도 거듭 발원되었으면 좋겠구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부자가 함께 보고 싶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충분히 흡족할 만한 천왕봉에서의 느낌이 들게 된다.

 

“아빠는 덕을 쌓지 못했지만 네가 덕을 쌓고, 네 아들이 또 덕을 쌓으면 훗날 네 손자는 여기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거야.” 

“내려가요. 훗날 일보다 지금은 삼겹살 생각이 간절하네요.”

 

해가 창창한 오후에 뜬금없이 일출이 웬 말인가. 어서 내려가 샤워하고 삼겹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중산리로 내려가 진주로 가서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다. 

커다란 바위 사이의 돌계단 개선문을 내려서고 서부 경남 식수원의 발원지인 천왕샘을 지난다. 천왕봉에서 2km 아래에 있는 법계사에 이르러 땀을 훔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50m)에 자리한 지리산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하였으니 15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신라 말에는 최치원이 이 절에 머무르며 법당 남쪽에 있는 바위에 자주 들러 최치원의 시호 문창후를 따 문창대라고 이름 지었다. 문창대 넓은 반석 앞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노닐며 지팡이와 짚신을 벗어 놓은 곳이란 뜻의 ‘고운 최 선생 장구 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설이 있어 고려 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되었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로 서기 1405년 조선 태종 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과 1910년 경술국치 때 또다시 왜인에 의해 불타고 6.25 한국전쟁 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그간 초라한 초옥을 지켜오다가 대웅전과 산신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계사 바로 아래 로터리 산장(해발 1335m)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중산리까지 3.3km의 거리를 좁히고 고도를 낮춰간다.

 

‘산에서 태어난 산사람 우천 허만수’

 

 법계교 인근 중산리 야영 캠핑장을 지나 날머리 가까이 이르러 자연석 위에 세워진 비석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허만수? 누구예요?”

“말 그대로 자연인이지.”

 

1916년 진주시 옥봉동에서 태어난 허만수는 일제에 강제징집당하였다가 29세 때쯤 해방되자 귀국하여 진주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33세 때쯤인 1949년경부터 지리산 세석평전에 올라 토담 움막을 짓고 살며 30년 가까이 지리산을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 우천宇天이라 칭호 하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등산로를 만들었고 험난한 곳에는 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오르내리기 편하게 하였다. 또 길 잃은 조난객들도 수없이 구조하였다. 그는 입산 후 아내의 귀가 종용에도 불구하고 끝내 지리산에 머무르다 1976년 홀연히 지리산에서 사라졌다. 1980년 6월, 그를 추모한 산악인들이 이 자리에 그의 추모비를 세운 것이다.

 

“제가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분이네요.”

 

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산의 향수 때문에 신혼의 달콤한 맛도 모르고 넘어갔다.”

 

당시 그의 회고담이라는데 지리산 신령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의 행적을 누군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쏜 가. 

 

“그냥 그분의 행적과 삶을 존중할 뿐이지.” 

 

어둠이 가라앉을 즈음에 중산리 탐방안내소를 통과하여 아들을 포옹한다.

 

“아들! 수고 많았어.”

“아빠! 수고하셨어요. 대단한 산행이었어요. 또 오고 싶어질 것 같아요” 

 

 

 

 

                   

때 / 여름

곳 / 백무동 탐방안내소 -가내소 폭포 - 한신폭포 - 세석평전 - 촛대봉 - 삼신봉 - 연하봉 - 장터목 - 제석봉 - 천왕봉 - 법계사 - 로터리산장 - 문장대 - 칼바위 – 중산리 야영장 – 중산리 탐방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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