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창작 글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21_ 낯선 만남

장한림 2022. 5. 17. 23:41
반응형
728x170
SMALL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21.

 

 

 

 본사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정후는 천천히 전철역 쪽으로 걸었다. 정후가 옷깃을 여며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을 피한다. 여민 양복저고리 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차라리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누군가 손가락으로 등을 쿡 찔렀다.

 

 “부장님! 무슨 걸음이 이렇게나 빠르세요?”

 

 정후가 고개를 돌리자 인력관리팀의 문세희 대리가 맑게 웃었고 그 뒤로 기획팀의 조윤아 대리와 최경주가 따라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헉헉거렸다.

 

  “약속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닌데, ?”

 “호호호! 부장님! 딱 한 잔, 어때요?”

 

 경주가 눈웃음치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을 취한다.

 

 “나한테 할 말 있어?”

 “금세 출국하시잖아요. 또 한동안 못 보기 땜에 얼굴을 가까이서 익혀두려고요.”

 

 세 사람 중 제일 후배인 경주는 정후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논현동 로터리에 있는 브뤼셀에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아직 애인도 없는 거야?”

 “왜 저만 쳐다보면서 그런 말씀 하세요?”

 

 정후가 앉으면서 말하자 윤아가 고개를 치켜들고 툴툴거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조윤아 대리가 제일 걱정돼서 그러지. 똥차가 길을 비켜줘야

 “부장니임! 겨우 스물아홉이에요. 벌써 똥차 취급받기엔 억울하단 말예요.”

 

 윤아는 정후의 말을 자르며 눈을 흘겼다.

 

 “그래요, 부장님! 똥차는 좀 너무했다. 아직까진 반도 차지 않았는데.”

 “! 혼 좀 나볼래?”

 

 경주가 빈정거리자 윤아는 경주의 팔을 꼬집었다.

 

 “부장님이 유럽에 가신지도 1년이 훨씬 넘었네요.”

 

 잔잔하게 미소를 흘리던 세희가 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부장님이 안 계시니까 사장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세요.”

 “그럴 리가.”

 

 경주는 세희의 말을 받아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뿐만 아니라 직원들 대다수가 부장님이 빨리 본사로 복귀하길 바라고 있어요. 부장님은 직원들 자존심을 챙겨주시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하셨어요. 강함과 유함을 적절히 보여주면서요.”

 한잔 받아. 웬일로 네가 내 칭찬을 다 하냐? 다른 사람도 아닌 최경주가 말이야. 하하하! 기분 좋은데,”

 

 

반응형

 

 정후는 일단 회사를 벗어나면 부하직원들 누구에게나 편하게 말을 놓았다. 직원들도 그게 좋았다. 공사분별이 뚜렷한 이 부장의 처신도 좋았지만, 업무를 떠나서는 더욱 다감한 그를 대다수 여직원이 오빠처럼 따랐다.

 

 “칭찬받으시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으세요.”

 “후후! 고맙군.”

 

 정후는 마주 앉아 듣는 칭찬을 어색해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얼굴 대하고 듣기가 거북스러워 가볍게 웃어넘겼다.

 

 “부장님은 결혼 안 하세?"

 “결혼?"

 “부장님한테 프러포즈하려고 맘먹은 여직원들까지 있는 거 모르세요?"

 “경주, 너는 거기 끼지 않는 거지?”

 “무슨 뜻이에요?”

 “내가 이래 봬도 눈이 꽤 높은 편이거든.”

 “언니! 부장님 좀 봐. 내가 모처럼 기분 풀어드리려고 했더니 바로 붕붕 뜨시네. 호호호!”

 

 경주가 윤아의 어깨를 잡으면서 웃자 윤아가 거들었다.

 

 “경주가 칭찬할 땐 그냥 듣고 계시는 게 상책이에요. 그런데 사귀는 분은 있으신 거예요?”

 “그 부분은 상상에 맡길게.”

 “, 얘기해주심 어디가 덧나나요?” 

 

 경주가 새치름하게 입술을 오므렸다.

 

 “, 덧날 거 같아.”

 

 길게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여긴 세희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부장님은 보스기질이 있으세요.”

 

 세희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정후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한 번도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걸 못 봤어요. 잘된 건 직원들 몫이고 힘든 과제는 언제나 부장님이 떠맡으셨어요. 그런 부장님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어요. 솔직히 조금은 가식적으로도 생각되었어요.”

 

 세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와인 잔을 비웠다.

 

SMALL

 

 “그런데 부장님 진심을 알고부터는 부장님의 그런 욕심 없는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더라고요.”  

 “문 대리가 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욕심이 없는 게 아니. 오히려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거야. 큰 도둑은 작은 물건은 탐내지 않는 법이거든.”

 

 정후는 입에서 잔을 떼고 다시 말을 이었다.

 

 “유능한 사병들을 부하로 둔 장교는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 게다가 내가 뭔가에 욕심 낼만큼 잘한 게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 간신히 기본을 채웠다고 평가해준다면 감지덕지할 따름이지.”

 

 정후의 말에 세희는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과의 인연은 직원들 모두에게 의미로 남을 거예요. 우린 태화물산에서 대단한 분을 만났어요.”

 

 잔을 비운 정후가 겸연쩍게 웃었다.

 

 “이렇게 오래 나가계실 줄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정후는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멈춘 경주에게 얼굴을 돌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장님한테 이 최경주가 여자라는 걸 진작 알려드렸을 텐데.”

 “하하하!”

 

 경주의 너스레에 정후는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독일로 훌쩍 떠난 게 천만다행이군. 못 볼 꼴 볼 뻔했잖아, 휴우!”

 

 그들 대화에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던 윤아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부장님! 너무 고마웠어요. 부장님 덕분에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듣기 과분한 말이야. 나야말로 조 대리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진작 했어야 되는 건데.”

 “저한테요?”

 “늘 솔선수범했잖아. 표현은 않고 있었지만 조 대리가 팀원들 배려하고 작은 불만들을 무마시키면서 결속력을 다지는 데 앞장 선 거 잘 알고 있어. 모른 척했지만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

 “그런 거 아셨으면 밥 한 끼라도 더 사주셨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고마움을 표시할 기회가 있겠지.”

 

 경주가 땅콩껍질을 벗겨내면서 나직이 묻는다.

 

 “부장님! 특별히 염두에 둔 여직원은 없었나요? 총각이시잖아요.”

 “총각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한테는 다들 한결같다고 할 수 있지, . 편파적이지 않은 게 내 장점 아냐?”

 “잘 알죠. 한결같이 사람 대하시는 부장님 스타일을 알다 뿐이겠어요. 그래도 속으로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묻는 의도가 다분히 검게 보이는데?”

 

 정후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경주 얼굴을 살폈다.

 

 “푸후후! 부인하지 않을게요.”

 “한 사람있기는 하지.”

 “어머! 있구나. 누구예요?”

 

 세 사람이 동시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수선을 떨었다. 정후는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할 수 없어.”라면서 입을 다물었다. 경주가 비밀 절대 보!”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경주를 어떻게 믿어? 떠난 다음에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거든.”

 

 정후는 프리지아를 염두에 두고 고개를 저었다.

 

 “절 믿으세요, 아무려면 제가 존경하는 부장님을 욕되게 하겠어요?”

 

 경주는 호기심이 극에 달한 듯 애교와 강요 섞인 투로 졸라댔지만, 정후는 모른 척 남은 잔을 비웠다.

 

 - 프리지아! 내일이면 보게 되는가. 칼립소라고 했지.

 

 

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 

 

온라인출판플랫폼 :: 부크크

온라인출판플랫폼, 온라인서점, 책만들기, 에세이, 자서전,무료 출판

www.bookk.co.kr

 

 

 그녀는 본사 출장을 오기 전에 막 받은 편지에서 내일 정오에 명동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후가 잠시 프리지아와의 교신을 떠올리는데 이번에는 세희가 재촉했다.

 

 “부장님! 궁금하단 말예요. 혹시 금발의 독일 여자는 아니죠?”

 

 정후는 혹시라도 그녀들이 프리지아라는 닉네임을 들어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들 세 사람 중에 프리지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혹이 스치기도 했다. 그녀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만 지을 뿐 특별한 변화를 읽어내기 어려웠다.

 

 “그 주인공이 본사에 있나요?”

 

 세희의 물음에 정후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누굴까? 궁금해요. 누군지 얘기해주세요, 절대 모른척할게요. 언니들도 약속할 수 있지?”

 

 경주가 윤아와 세희에게 다짐하자 두 사람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만 알자.”

 

 알려줄 수가 없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그녀였다. 정후도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개인감정이라곤 전혀 개입될 것 같지 않은 부장님이 누군가에게 휠을 받았나 봐요. 사건인데요?”

 

 - ? 그런 걸까.

 

 정후는 현주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미지의 프리지아한테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부장님이 다시 떠나시면 누군지 꽤 서운해하겠어요.

 

 윤아는 가슴에 손을 얹더니 안타까운 듯 말했다.  

 

 “나도 서운해.”

반응형
그리드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