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창작 글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9_ 두 번째 형 집행

장한림 2022. 5. 17. 23:25
반응형
728x170
SMALL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9.

 

 

 

두 번째 형 집행

 

 

 세 사람이 지옥에서 만난 사흘째 되는 날, 하데스는 빠른 속도로 심리를 진행했다. 이틀간 금테안경이 그간의 돌아가는 사태를 충분히 인식했을 거라고 여겼다.

 

 “난 정상적으로 대가를 지급했어요. 저 친구한테 말입니다. 합당한 조처를 하고 인수한 거라니까요.”

 

 -대가? 합당한 인수?

 

 당당하기까지 한 금테안경의 답변에 하데스는 미간에 세로금을 그었다. 금테안경이 무슨 말인가를 덧붙이려다 사내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 묻겠다. 그 땅이, 그런 식으로 대가를 지급한다고 해서 정당하게 매입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다지 많지 않은 숱에 희끗희끗한 금테안경의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이마로 흘러내렸다. 하데스는 이제 금테안경의 사내에게도 존칭을 쓰지 않았다.

 

 “경제전문가인 당신의 논리로는 그게 정당하고 합당한 거래였단 말이지.”

 “…….”

 

 금테안경은 입을 오물거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양심이나 윤리 같은 걸 저버리고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으려 하는 게 사는 수단이고 또 목적이라면 그것보다 쉬운 게 또 있을까.

 

 하데스가 꼿꼿이 서서 쏘아보자 금테안경은 몸을 더 굽혀 말을 급조해냈다.

 

 “우리, 제발순리대로 풀어갑시다.”

 “순리라고? 당신이 순리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저 친구와 상의해서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조치해놓겠소.”

 “하하하! 대통령이 당신을 곁에 두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청와대에선 임기응변으로 조치를 잘 하는 게 능력의 잣대겠지.”

 

 신중한 검토 없이 정책을 입안했다가 벽에 부닥치면 또다시 꼼수를 부려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는 정책입안자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그에게 질타하고픈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하데스는 곧 그럴 가치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금테안경의 피폐한 몰골에서 그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손가락으로 턱수염을 가리키며 지금 다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주체가 아직도 당신이나 저자라고 보면 큰 착각을 하는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다시 낮게 말을 이었다.

 

 “이건 줄 당기기 같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야. 당신이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오다 보니까 사태파악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데.”

 

 금테안경의 떨리는 목소리가 하데스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요, 내가 욕심이 앞섰어요.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배상이라.”

 

 오물 가득한 구덩이를 가리기 위해 그 수단으로 지폐뭉치를 택하자 하데스는 파안대소했다.

 

 - 고약한 냄새까지 없애지는 못해, 그렇게 덮어서는.

 

 하데스는 갑자기 대통령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자를 가까이 두고 국가 경제를 함께 논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 청렴이나 올곧은 지혜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저런 자에게 국가 경제를 맡기다니.

 

 진정 국민을 염두에 둔 고위공직자에게는 사사로운 욕심이 있지 않으므로 지닌 본심 그대로 국가이익을 추구할 것이지만, 기교나 술수를 통해 개인의 이권이나 명성추구에 급급한 자는 되돌려 받아야 할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그런 자의 성취는 곧바로 국민의 피해로 파급될 수밖에 없다.

 

 

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 

 

온라인출판플랫폼 :: 부크크

온라인출판플랫폼, 온라인서점, 책만들기, 에세이, 자서전,무료 출판

www.bookk.co.kr

 

 

 “만일 여기서 살아나가게 된다면 당신이 그토록 탐냈던 돈이나 명예가 얼마나 무가치한 건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늦은 깨우침이겠지만.”

 

 금테안경은 살아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자 더욱 다급해졌다.

 

 “그렇다면 원하는 게, 원하는 게 뭐요?”

 “당신의 죗값.”

 

 결연하게 잘라 대답하는 사내의 말에 누더기나 다름없는 모포를 몸에 얹고 쥐죽은 듯 숨을 죽이던 덩치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곧 벌어질 피의 향연, 그 향연이 곧 시작될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도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하데스라는 사나이는 결코 돈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죄목, 그 일들의 당사자도 아닐 텐데 죗값을 물어 복수의 한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세 사람이 공모해 벌인 일들을 파악하고 한 가지씩 끄집어내면서 응징하고 있는데 그 울분과 증오심이 너무나 섬뜩하다.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기에 그가 더욱 무서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더 잔인해지고 죄가 드러날 때마다 그의 형벌은 훨씬 가혹해질 게 틀림없었다.

 

 - 혹시 그 사건까지 알고 있는 걸까?

 

 심복인 박 기사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목표물을 제거했다고 했다. 덤프트럭으로 목표물이 탄 승용차를 휴짓조각처럼 구겨버렸고, 그 즉시 덤프트럭을 서해안까지 몰고 바닷속에 처넣어버렸다고 했다. 박 기사의 일 처리와 보고는 충분히 믿을만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일이 잘못돼 그 내막까지 하데스라는 사나이가 알게 되었다면? 만일 그렇다면?

 

 - 후우우. , 살아남기 어렵겠어.

 

 덩치는 조직 간의 다툼도 이권이 걸렸을 때보다 복수심이 발동했을 때 더더욱 잔악해진다는 것을 떠올리며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사주를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행동의 중심에 선 건 자신이다. 저지른 죗값이 호될 것을 인식한 덩치가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때 하데스가 어투를 강하게 바꿔 톤을 높였다.

 

 “, 죄인이 죄를 인정했으면 그다음 절차는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벌을 청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게 뉘우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 어떻게 생각하나?”

 “, 맞습니다.”

 

 하데스는 숨죽인 채 몸을 웅크린 덩치를 향해 물었고, 덩치가 굽실거리며 대답을 덧붙였다.

 

 “?”

 “, 그렇습니다.”

 

 

반응형

 

 

 턱수염은 간신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하데스라는 사내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다리의 통증과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그가 누군지에 대해 골몰했다. 그간 일어난 일들, 비밀리에 추진했던 일들을 거의 꿰뚫고 있다.

 주변의 누군가에 의해 청부를 받아 이런 일을 대신하는 걸까. 그렇다면 누가 저자에게? 이런 일을 시킬만한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범위를 폭넓게 잡아 그럴 가능성이 있을 법한 인물들을 떠올려보았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그들은 이미 죽었다.

 턱수염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다시 몸을 움찔했다. 하데스가 손에 쥐었던 단도를 다시 목판에 박았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꽂힌 단도에서 눈을 돌려 세 사람을 번갈아 주시했다. 낫자루든, 밤나무든 주야가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삼자대면을 하고, 게임이론을 적용하자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그들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늘 결국, 그들이 작당해서 땅을 착취한 경위의 대부분이 드러났다. 사촌 형인 금테안경과 달리 오로지 운동과 싸움에만 소질을 보이던 덩치는 군산 최대조직의 보스 자리에 오른 후에는 사촌 형의 비호까지 받으며 세력을 넓혀가기에 이른다.

 청와대 후광을 얹고 전북 도지사출마를 앞둔 사촌 형의 위세를 등에 업어 기세등등하게 주변 조직들을 흡수해나가는 중이었다.

 

 “무조건 그 친구와 협조해서 일이 되게끔 만들어. 그게 날 돕는 일이야.”

 

 사촌 형의 지시를 받은 덩치는 그다음 날 즉각 서울로 와서 턱수염을 만났다.

 

 “이 일은 아무래도 자네가 적격이 아니겠는가. , 이건 선금이야. 일이 끝난 다음에 두 배를 더 지급하겠네.”

 

 덩치는 사촌 , 그리고 친구와의 공모 사실을 털어놓으며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팔뚝으로 훔쳤다. 그리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라며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다.

 “너희 둘은 지금까지 저자가 한 진술에 대해 반박 진술을 해도 좋다.”

 

 하데스가 금테안경과 턱수염을 향해 말했으나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수단과 방법까지 저자한테 일임한 건 사람을 죽여도 좋다는 뜻이었겠지?”

 “, 그건 아닙니다.”

 

 금테안경이 게슴츠레한 눈을 올려 뜨며 부인하자 덩치가 나서며 반발했다.

 

 “저놈은 내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밀어붙이라고 했어요.”

 

 덩치가 제 사촌 형을 가리키며 침을 튀겨 덧붙였다.

 

 “동생한테 살인을 지시하는 놈이에요. 그런 놈이 무슨 짓을 하며 살아왔는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겠습니까.”

 

 덩치가 심리에 포함되지 않은 진술까지 털어놓자 금테안경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하데스가 앉았던 나무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만! 여기서 중간심리를 마치겠다. 너희 세 놈이 작당하여 갈취한 건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갈취당한 이의 영혼이었다.”

 

 

SMALL

 

 

 하데스는 먼저 금테안경을 지적했다.

 

 “너는 끝을 알 수 없는 이기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최후까지 변명과 책임회피에 급급한 네놈에게 지금까지 드러난 죄만으로도 모가지를 따는 게 당연하나 아직 묻지 않은 죄가 또 남았기에 일단 숨통은 붙여둔다. 네놈의 죄를 물어 왼쪽 다리 절단형에 처한다. 형은 지금 즉시 집행한다.”

 

 일사천리로 선고를 마친 하데스는 카트를 끌어당겼다. 금테안경은 눈을 치뜨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양쪽 벽에 묶인 두 사람을 쳐다보았으나 그들 역시 겁에 질려 사지를 떨고 있었다.

 금테안경의 시선이 자꾸만 턱수염의 짧아진 다리로 향한다. 하데스는 느긋하게 헤엄치던 방게가 자기가 일으킨 물소리에 놀라 허둥거린다고 생각했다.

 

 - 네놈의 다리는 저놈보다 더 짧아질 거야. 국가정보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던 턱수염은 성한 오른쪽 다리마저 쥐가 났는지 축 늘어진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내 재산의 반을드리겠습니다. 제발살려주세요.”

 

 다급해진 금테안경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했다.

 

 “반이라고? 하하하! 자꾸 웃게 만드는군. 나머지 반은 남겨서 뭣에 쓰려고?”

 “…….”

 

 하데스는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예수를 영접한 세리稅吏 사께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고 부당하게 징수한 세금의 네 배를 당사자들에게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당시 악의 표상이었던 사께오는 예수의 은혜를 입어 인생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공개되지 않은 재산까지 합하면 2천억이 넘는 재산가라더니 과연 씀씀이가 작지 않군. 당신이 부당하게 모은 돈의 네 배를 남은 천억으로 다 갚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금테안경은 숨을 고르지 못하고 드리겠소. 제발 다리만은.”이라며 다리를 움켜잡았다. 그의 하반신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설마 이 상황에서도 도지사에 미련을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데스는 금테안경이 끝까지 돈으로 죗값을 때우려는 걸 보면서 세상의 수많은 비리가 돈에 묻혔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 돈으로 다시 더 높은 권력을 취하면서 부패의 고리를 거듭 이어갔을 것이다. 그는 더 대꾸하지 않고 금테안경의 발목을 끌어당겼다. 역시나 금테안경이 허둥거리며 발을 뺀다.

 

 “동생 보기 부끄럽지 않은가.”

 “제발 살려주시오. 이러면 다 망하게 됩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나. 나한텐 더 잃을 게 없어서 망할 것도 없어.”

 

 망하는 게 무서울 정도로 지킬 게 많은가. 나는 그런 게 없어서 아주 편해. 네놈들 덕분이야. 내가 볼 때 네놈들한테는 지켜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아. 비굴한 처세, 상식을 벗어난 윤리, 몰염치한 양심, 거짓과 속임수, 그런 것들을 먼저 버려야 해. 하데스의 눈이 싸늘하게 접혔다.

 

 - 그런 게 속에 꽉 들어차 있는 한 특히 네놈은 대통령의 권위는 물론이고 나라 살림까지 축낼 게 뻔해.

 

 명예로운 면이 없는 자가 사력을 다해 얻는 게 있다면 그건 명예가 아닌 명성일 게 뻔하다. 명성에 치중하는 자는 절대 명예를 얻을 수 없다.

 

 - 실로 진실한 청렴에는 청렴하다는 표현조차 쓰이지 않는 게 이치거늘.

 

 하데스는 몸까지 잡아 빼려는 금테안경을 끌어당겨 목을 비틀었다.

 

 “어어억!”

 

 하데스는 강한 힘으로 금테안경의 입안에 부직포를 쑤셔 넣었다. 금테안경의 흰자위로 여러 갈래의 붉은 실핏줄이 드러난다. 그리고 금테안경의 왼 다리를 두 개의 목판에 올려놓았다. 발목과 무릎을 목판에 달린 가죽 띠로 각각 채웠다.

 

 - 이미 네 육신은 한강에서 투신했어.

 

 그를 데리고 오던 날, 올림픽대교 위에 그의 지갑과 구두를 가지런히 놓아두었었다.

 

 - 물에 빠져 익사하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거야.

 

 금테안경의 무릎에 검은색 선이 그어진 흰 천을 덮었다. 검은 선이 무릎 바로 아래에 놓였다.

 

 “몸을 움직이면 표적이 어긋날 수도 있다. 도끼가 이 선을 벗어나면 더 큰 고통이 따른다. 당신 하기에 따라 한 번에 끝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도낏자루를 두 손으로 모아 쥔 하데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머리 위로 두 팔을 추켜올렸다. 금테안경의 눈가에 깊게 주름이 패는가 싶었는데 빠르게 하데스의 몸이 굽혀졌다.

 

 “아아아악!”

 

 지옥 불에 떨어지는 비명이 입마개에 스며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던 턱수염과 덩치가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치켜든 하데스의 도끼가 한 번 더 내리쳐진 후였다.

반응형
그리드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