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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2_ 연쇄납치

장한림 2022. 3. 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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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https://www.bookk.co.kr/book/view/133247


2.

“그자를 데려오겠다. 그다음에 너희 두 놈을 한꺼번에 처리하마.”

사흘 후, 같은 모습의 하데스는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턱수염을 쏘아보다가 목판에 은빛 단도를 내리꽂았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입가에 잡채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턱수염이 깜짝 놀라 오른손에 쥐었던 만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데스는 방 밖으로 나와 자물통을 채웠다.

- 역시 그놈이 엮여있어. 내가 생각했던 대로야.

방에서 나와 모자를 벗은 하데스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턱수염을 잡아 가두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 사흘 만에 철문을 열고 불을 켜자 기운이 소진된 상태에서도 턱수염은 몸을 움직거려 자세를 고쳐 잡으려 했다. 방안은 배설물 냄새가 지독했으나 하데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묵직하게 소리 냈다.

“네놈이 지은 죄에 대해 지금부터 그 죗값을 묻겠다.”
“…….”
“미리 말해두지만 네가 지은 숱한 죄들에 대해 이미 다 알고 널 잡아 온 것이다. 너 외에 또 다른 공범이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턱수염 사내의 팔이 경련을 일으키자 손목에 연결된 쇠사슬이 철렁거린다.

“네 입으로 그 공범을 말하지 않으면 넌 이대로 죽는다. 갈증과 배고픔, 그리고 추위를 이틀 이상 더 견뎌내지는 못할 것이다. 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입을 다물겠다면 난 철문을 닫고 나가서 이틀 후 냄새나는 네놈의 시체와 함께 여기를 태울 것이다.”
“으으윽.”

턱수염이 겨운 신음을 내뱉었다.

“또 다른 선택은 공범을 잡아들일 때까지 죽음을 잠시 보류하는 것이다.”
“살려주세요, 제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역시 죽음의 냄새를 지척에서 맡은 자답게 생명을 연장하는 쪽을 택한다. 바깥세상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 오른손으로 치켜들려 진 왼팔을 주무르다가 만두가 담긴 봉지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킨다. 겨우 만두 냄새에 자신의 목숨을 연명시키고 대신 동료 공범의 목숨을 내놓는다.

- 죽어 마땅한 놈들.

건물 현관 밖으로 나오자 멀리 산 너머로 노을이 붉게 깔리고 있었다.

- 죽음을 목전에 둔 네놈들의 몰골을 한껏 즐겨주마.

건물 안에 세워있던 그랜저 승용차에 오른 하데스는 약간의 지체도 없이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쳐 혈관이 더워지는 것 같았다.

- 네놈들이 악으로 얼룩지게 만든 과거를 되돌려놓겠어. 이제부터 네놈들의 고통이 내게는 절정의 쾌감으로 다가올 거야.

전북 군산의 S나이트클럽. 숱이 많은 짙은 눈썹,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180cm쯤 되어 보이는 키에 얼추 100kg은 됨직한 사내가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이트클럽 입구를 빠져나왔다.
검정 줄무늬양복에 진회색 코트를 걸치고 머리를 뒤로 넘긴 사내는 체구도 컸지만, 어깨와 가슴이 딱 벌어져 한눈에 근육질의 체격임을 알 수 있었다. 사내가 벤츠의 뒷좌석에 오르자 열 명 남짓한 부하들이 질서정연하게 좌우로 늘어서더니 90도로 허리를 꺾는다.
벤츠가 저만치 모퉁이를 돌아서서야 검정 양복 차림의 부하들이 허리를 편다. 벤츠는 도심 한복판을 빠져나와 바닷가 쪽으로 20여 분을 더 달리더니 깨끗한 전원주택단지로 들어섰다. 막 조성이 시작된 단지처럼 보였다.
아직 드문드문 세워지기는 했지만 2층짜리 전원주택들은 평수도 넓고, 한눈에 봐도 최고급 자재들로 건축된 걸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이 단지를 환하게 밝히긴 했으나 주민들이 거의 없어 아직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조경된 가로수의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금세라도 부러질 것만 같다.
벤츠가 파란색 지붕의 넓은 주택 아래 낮은 언덕길에 이르자 승용차 한 대가 비스듬히 세워진 채 진입로를 막고 있다. 누군가가 차를 고치는지 보닛을 열고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봐요, 차 빼요.”

벤츠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으나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기사가 내리면서 짜증을 낸다.

“차를 저리 빼라니까. 입구를 막고 있으면 어떡해.”

어깨가 벌어지고 허리까지 굵직한 기사가 대뜸 반말로 쏘아대며 수리 중인 차 쪽으로 다가갔다. 검정 모자에 가죽점퍼를 입은 사내가 보닛에 놓인 쇠몽둥이를 천천히 집어 든다. 기사가 가까이 오자 쇠몽둥이를 치켜드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목과 등줄기를 연거푸 후려쳤다. 기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사내는 빠른 걸음으로 벤츠로 가더니 뒷문을 잡아당겼다. 올백 머리의 덩치가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휙, 쇠몽둥이가 바람을 갈랐다.

“허억!”

손목을 내리치고 다시 턱을 올려치자 덩치가 신음을 내뱉었다. 가죽점퍼가 상체를 굽힌 덩치의 어깨를 내리치면서 사태는 불과 1분여 만에 종료되고 말았다. 쇠몽둥이의 중간 부분을 쥐고 휘두른 가죽점퍼는 마지막으로 덩치의 목을 찍어 눌렀다.
비록 최고급의 벤츠였지만 좁은 뒷좌석에 상체를 들이밀고 취한 가죽점퍼의 동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날카로웠다. 올백 머리 덩치가 정신을 잃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쇠몽둥이를 거둬들인다. 힘겹게 덩치를 그랜저 승용차의 트렁크에 쑤셔 넣고 입과 양손, 양발을 테이프로 감았다.
길게 숨을 내뱉는 가죽점퍼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사내는 아직도 쓰러져서 어깨를 움켜쥔 기사에게 짤막하게 내뱉고 차에 올라탔다.

“너희 두목은 내가 데려간다.”

가죽점퍼의 그랜저 승용차가 전원주택단지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흐릿한 어둠 속을 멍하게 바라보던 기사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서려다 상체의 통증을 느끼고 상을 찡그렸다.


“네가 막 들어선 곳은 지옥의 문턱이다.”

창고에 도착해 트렁크에서 꺼내진 덩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테이프로 양팔을 칭칭 감고 입을 봉했으나 그는 여전히 사나웠다. 그가 다시 하데스의 힘 실린 정권에 명치를 맞고 나동그라졌다.
이미 사정없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어깨에 피멍이 들었고 머리가 터졌으면서도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데스는 쇠망치를 들고 쓰러진 덩치한테 다가가더니 왼손으로 그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오른손을 치켜들고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 머무는 동안 넌 죽거나, 병신이 된다.”

그리고 죽지 않을 만큼 내리쳤다. 하데스가 덩치를 방에 처넣었을 때 그는 맥없이 무릎을 꺾고 말았다. 크게 피멍이 든 덩치의 머리는 붕대로 칭칭 동여매 있었다.

“겨우 깡패 짓거리로 세상의 한 모퉁이를 쥐락펴락하던 곳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다.”

하데스가 근엄하게 소리쳤다. 긴 울림으로 목소리가 겹쳐 더욱 크게 들린다. 하데스는 야릇하게 짓던 미소를 거두고 먼저 잡혀 온 턱수염한테 눈길을 돌렸다.

“친구를 데려왔다. 이젠 덜 따분할 거야,”

족쇄에 채워져 쭈그려 앉은 턱수염은 간간이 신음만 낼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앉은 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냉소를 흘리다가 하데스는 덩치를 잡아끌어 턱수염의 맞은편에 달린 족쇄를 채우려 했다.
덩치가 반사적으로 몸을 빼며 하데스를 노려봤다. 살기 가득한 눈빛만은 잡혀 올 때와 별반 달라짐이 없었다. 명색이 폭력조직의 두목인지라 쉽사리 굴복하지 않을 태세다.

“명을 재촉하는군.”

하데스는 목판에 꽂힌 은빛 단도를 빼내 덩치의 왼손 등에 박았다.

“끄아아악.”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몸이 먼저 망가진다.”

하데스는 손등에 박힌 칼을 빼내 덩치의 상의에 문질렀다. 그리고 입에 감은 테이프를 풀어주었는데 덩치는 연신 거친 신음만 내뱉었다.

- 너 같은 놈을 다루는 것쯤이야.

이런 놈을 다루려면 그에게서 인간 태초의 본성을 끌어내야 한다. 훈련되기 이전의 본성. 거품을 물고 쓰러진 덩치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왼 손목과 양쪽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뒤였다. 덩치의 머리와 손등에 감긴 붕대를 보며 턱수염은 파랗게 변한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 세상에는 생겨남으로써 해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너희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야. 존재 자체로 백해무익한 것들은 사라지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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