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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1_ 연쇄납치

장한림 2022. 3. 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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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

https://www.bookk.co.kr/book/view/133247

 

 

<차 례>

 

 

연쇄 납치

주식회사 태화물산 

피의 심판

옥빛 사랑, 적색 욕구 

또 한 명의 공범 

우연 그리고 필연 

지옥에서의 조우 

베일 

두 번째 형 집행

낯선 만남 

D-3 

소유와 상실 

카시오피아 별빛 아래 

귀국 

운명의 굴절 

칸나의 뜰 

최후의 심판

탐욕의 실체

천사와의 이별 

회한 

절반의 삶, 절반의 죽음   

한 알의 밀로 죽다  

    

 

 

연쇄 납치    

 

1.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벌써 몇 시간째 굵은 눈발이 하얗게 어둠을 가리고 있었다.

경기도 분당의 L아파트. 203동 건물 뒤편의 주차장에 검은색 BMW가 한 번 앞으로 뺐다가 오른쪽으로 바퀴를 휘감아 후진하더니 양쪽 차 사이에 정확히 주차한다.

전조등이 꺼지고 운전자가 내리려 하자 챙이 길게 달린 검정 운동모자를 쓴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바깥에서 운전석 문을 세차게 들이민다. 운전석으로 엎어진 밤색 싱글의 운전자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시 안면에 짧은 스트레이트를 맞고는 고꾸라지고 말았다.

검정 모자는 빠르게 차에 올라타면서 그의 몸뚱이를 조수석으로 밀었다. 코에서 흐른 피가 잘 다듬어진 턱수염을 적셨다. 주차장 멀찍이 설치된 CCTV는 살짝 방향이 틀어져 있었다. 검정 모자는 가죽점퍼를 벗어 뒷좌석에 내던지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시동 버튼을 눌러 100여 미터쯤 움직였을 때 턱수염 사내가 허둥대며 일어나려 했다. 검정 모자가 그의 뒷머리를 잡아 사정없이 앞부분에 박아버렸다. 코가 깨져서 피범벅이 된 턱수염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눈이 가려져 있었고 두 손은 등 뒤에서 테이프로 묶여있었다.

 

 “, 누구예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놀라 기겁을 한 사내의 밤색 상의와 넥타이까지 핏물이 떨어졌다. 검정 모자는 부르르 몸을 떠는 사내를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이미 피범벅이 된 턱수염 사내의 가슴팍에 한 차례 더 충격이 가해졌다. 그러자 턱수염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만 간간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뒤로는 꽤 가파른 언덕이 있고 좌우로 낡은 조립식 건물 세 채가 폐가처럼 세워져 있다. 주변은 불빛조차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아직도 드센 눈발을 동반한 삭풍이 허름한 건물들을 날려버릴 듯 기세등등하게 몰아치고 있어 을씨년스럽고도 삭막하다. 비포장의 긴 언덕길을 막 올라온 BMW가운데 건물 뒤편에 멈춰 섰다. 역시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또 한 채의 벽돌 건물은 앞의 조립식 건물들로 인해 가려져 있었다.

그 건물 역시 창고로 사용하다가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두어 군데 나눠서 쌓아놓은 산업폐기물들이 라이트 불빛에 드러났다. 어지럽게 흩어져 보기에도 흉하고 지저분하다.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차에서 내리더니 커다란 미닫이문에 채워진 자물통을 연다. 양쪽으로 문을 활짝 열고 다시 차에 오른 그가 그대로 건물 안으로 차를 몰았다. 차에서 내려 세심하게 문단속을 마친 검정 모자가 턱수염을 차에서 끌어 내렸.

천장 높이 걸린 수은등 네 개 중 두 개가 몇 번을 껌벅거리다가 켜졌지만 그다지 밝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상당히 높고 넓은 편이다. 바닥에 초록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으나 그 칠은 거의 벗겨져 희끗희끗했다.

 

여기가 어디요? 도대체 왜 나를.”

 

겁에 질린 턱수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정 모자는 그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건물 안쪽모퉁이의 다섯 평 남짓한 방. 철문을 열었으나 방안에도 써늘한 냉기뿐이었다.

비교적 큰 키의 턱수염 사내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추위 때문에 심하게 몸을 떨었다. 검정 모자는 주저앉은 턱수염의 안대를 풀더니 문 옆의 스위치를 올렸다. 어스름한 붉은 빛의 공간, 높은 천장 위로 형광등 하나가 갓도 없이 달려있는데 등에 주홍색으로 코팅이 되어있었다.

검은색 철문이 있는 벽면만 빼고 나머지 세 면이 두꺼운 나무 벽이다. 나무 벽에도 검정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창문도 없는 좌우의 벽에는 단단한 쇠사슬이 하나씩 박혀있고 사슬 끝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두 개씩의 족쇄가 이어져 있다. 누구라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다.”

 

낮고 느릿한 목소리였지만 좁은 방에 울리면서 더욱 위압감이 들게 했다. 싸늘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검정 모자의 사내를 보자 턱수염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목을 조여 오는 압박감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으나 간신히 입을 열었다.

 

, 왜 이러는 겁니까? 도대체 당신 누구요?”

내가 누구냐고?”

 

모자의 긴 챙으로 인해 콧등까지 그림자가 지긴 했으나 다시 쳐다봐도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창백한 낯빛에 무표정한 모습이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오해나착각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

오해나 착각? 그런 거 전혀 없어. 넌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널 잘 알아. 지금부터 너도 날 잘 알게 될 거야.”

그럴 리 없어요. 난 그저선량한 시민이란 말이요.”

선량한 시민이라고? 하하하하!”

 

사내가 웃음을 멈추고는 턱수염을 쏘아본다.

 

네놈이 저지른 짓들이 하나씩 둘씩 드러날 때마다 지금 내뱉은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게 될 거다.”

…….”

나는 네놈의 죗값을 물으려 널 이리 데려온 하데스라고 한다. 하데스! 잘 기억해둬라.”

 

검정 모자 하데스가 턱수염의 멱살을 잡아끌더니 그의 체크무늬 넥타이를 풀어 거칠게 철문 쪽으로 집어 던졌. 그런 후 사내에게 벽에 달린 족쇄를 채우려는데 그가 힘을 주어 몸을 뺐다. 그러자 잠깐의 틈도 없이 하데스의 정권이 그의 옆구리에 꽂혔다.

, 커억. 그제야 턱수염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하데스의 움직임에 몸을 내맡겼다.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에 제압당한 터라 더는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순응하는 게 몸에 익지 않으면 그만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하데스hades, 그리스신화의 지옥을 관장하는 신. 그의 형제들인 제우스, 포세이돈과 함께 천하를 삼분할 때 하데스는 으슥하고 침침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세계를 맡게 되었다. 가혹하기가 극한에 달한 망령 세계에서 지내던 하데스는 지상으로 나갔다가 첫눈에 반한 여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구약성서에 죽은 자들이 있는 어둠의 지역, 즉 지옥을 뜻하는 히브리어 셰올sheol과 같은 의미로도 쓰이지만 대개 죽은 자들의 사후심판과 징벌을 관장하는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로 통한다.

 

- 넌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하데스의 지옥 맛에 익숙해져야만 할 거야.

 

간신히 숨을 고른 턱수염이 다시 내부를 둘러보니 한쪽 모퉁이에 바퀴 네 개가 달린 카트가 세워져 있고, 그 위에 검정보자기가 덮여 있다. 방 한가운데 고무 양동이에 구멍 뚫린 나무뚜껑이 닫혀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변기 대용임을 알 수 있었다.

극심한 공포의 와중에서도 하데스라는 사내의 정체에 대해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야, 여긴 내가 올 곳이 아니야. 당신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그러나 턱수염의 소리는 입안에서만 우물거릴 뿐이었다.

 

사흘간의 시간을 주겠다. 공포심이 먼저 엄습하게 되지. 그걸 이기면 배고픔이 뒤따를 거고.”

 

철컥, 철커덕. 족쇄가 왼쪽 손목에 이어 양 발목까지 조이자 그나마 몸을 지탱했던 약간의 에너지마저 일시적으로 빠져나가고 만다.

 

- 이건 꿈이야. 난 지금 악몽을 꾸고 있어.

 

턱수염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하데스라는 자의 말이 가까이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네가 왜 잡혀 왔는지 곰곰 더듬어보기 바란다. 네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엄청난 고행이 될 거야.”

 

하데스의 소름 끼치는 음성이 깜깜한 어둠 속에 퍼지는가 싶더니 쾅, 철문을 닫는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졌다. 아악!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비명이 긴 울림으로 문 닫히는 소리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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