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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군인에 의한, 군인을 위한 7_ 5·17 쿠데타

장한림 2022. 3. 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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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 결국 봄은 오다가 말았다

 

서울의 봄

 

“운명하셨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은 박정희는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나라님이 돌아가셨다는데 대놓고 웃을 수는 없고 이거 참, 표정 관리하기가 쉽지 않구먼.”

 

10·26 사건 이전의 한국 정치는 너무나 음울하여 희망이 사라진 암흑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은 독재 유신체제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목소리와 함께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다. 

아직 엄동의 계절이긴 하지만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세상엔 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참으로 긴 세월을 참고 살아왔다. 아니 억압과 강요와 폭력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지금부터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참다운 민주주의가 들어설 거야.

“암, 그래야지. 당연히 그렇게 돼야지. 우리 아이들까지 독재의 그늘에서 살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서울엔 여느 해보다 일찌감치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따뜻했다. 혹한이 물러간 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했다. 이 시기를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자유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에 견주어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다.

 

“즉각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해야 합니다.”

  

정치 원로들과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최규하 내각에게 빠른 시일 내에 나라를 바로 세우도록 촉구했다. 최우선으로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적 선거에 돌입할 수 있도록 현 정부 체제를 풀가동하라는 거였다. 

 

“대통령 궐위 시 3개월 이내 후임자를 선출한다는 현행 4 공화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우선 선출하되 새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빠른 기간 안에 민주헌법으로 개헌한 후 이에 따라 다시 선거를 실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1979년 11월 10일, 최규하 권한대행의 특별담화는 야당 정치인을 포함해 대다수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이에 따라 12월 6일, 최규하 권한대행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이틀 후인 12월 8일에는 이 나라 사회 전반에 설치됐던 올무가 제거되었다. 바야흐로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된 것이다.

 

“아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민주화 여망은 현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들은 그간의 악법을 뜯어고칠 수 있는 개헌에 관심이 모아졌고, 그간 긴급조치로 활동을 하지 못하던 재야인사들이 속속 복권되며 모습을 보이자 삼삼오오 모이면 그간 쉬쉬했던 정치인들을 화두 삼아 대화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국민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하면서 여당의 독보적 주자라 할 수 있는 김종필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에 주목했다. 당연히 재야 진영에 웅크리고 있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 행보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면서 이른바 3김씨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듯했다.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

 

비상계엄을 확대할 거니까 미리 준비해.”

 

1980년 5월 들어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 등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곧 대학교 개강이 다가온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설 거야.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 계획에 불을 붙인다.”

 

계엄하에 있으므로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나면 군인들이 출동할 수 있다. 학생들이 시위를 마치고 해산하기 전에 군부대를 출동시켜 시위대를 자극시켜야 한다.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는 정권 장악을 위한 대전제 조건이었다.   

 

군이 학생들 시위 진압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국회 소집을 못하게 막아야 돼.”

 

계엄 해제 권한이 국회에 있으므로 국회의원들의 의결을 사전 차단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다.

 

“까짓 거, 해산시켜버리는 쪽으로 가자고.”

 

가장 깔끔한 방법이긴 하지만 학생들의 시위만으로 국회 해산의 명분을 삼기에는 역시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북풍을 일으켜야지. 제갈량이 비를 내리게 한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북한군을 남침시키기로 했다. 전쟁이 터지면 국가비상사태가 되므로 당연히 계엄을 선포할 빌미가 생긴다. 북한군이 쳐들어온다는 허위소문, 즉 북풍은 두고두고 쓸모 있는 전략 책이었다. 

하지만 북괴의 남침 소문이 효과를 거두려면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을 모두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확실한 근거. 그 근거지이자 신뢰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일본이었다. 

 

북한의 남한 침공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제2의 한국전쟁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물밑 정치계의 거물을 접촉하면서 곧 한국전쟁이 발발할 거라는 일본의 공식 발표가 보도되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정보기관으로부터 북풍이 몰아칠 거라는 기상예보가 있자 한국 정부도 촉각을 곤두 세웠고 국민들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호사다마라더니 이럴 때 저놈들이….”

“딱 이때를 노린 거겠지. 정치가 어수선한 이때를 김일성이 노리고 있었던 거야.

“피난 준비를 해야겠지?

 

시나리오 작가들은 한 술 더 떠 북한이 배후에서 학생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선전하였다. 학생들의 시위가 갈수록 격해지는 건 북한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증거라면서 학생들의 시위를 왜곡했고 국민 다수와 이간질하는 꼼수를 썼다.   

이로써 예정되었던 국회 소집마저 연기되고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3김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 사람들이 골칫덩어리야. 여론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으니까 신중하게 방법을 모색해야 할 거야.” 

JP는 부정축재로 몰고 DJ는 용공으로 몰고 가는 게 좋아. 그 둘을 아예 구속시켜서 세상과 단절시켜버리자고.” 

YS는?”

YS까지 구속시키면 이 사람들 세력이 연합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YS는 집안에 가둬두고 감시를 붙여야겠지.”

“가택연금이라, 오케이. 그렇게 방향을 잡고 진행하자.”

미국 측에 도움 요청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세부지침을 마련하는 거로 하자.”

 

 

3김의 목줄을 죄고, 봄 오는 길목을 완전히 차단하라.”"

 

3월 개강과 동시에 어용 교수 퇴진, 학생회 인정, 학내 언론자유 요구 등 학생들 간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교수들도 군사교육 개선책 모색, 대학별 교수협의회 구성 등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이건 아니야. 다시 군벌 정치 체제로 돌아갈 조짐이 보여.

“우리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야 돼. 이대로 두면 민주주의고 뭐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5월에 접어들자 학생들은 민주화 추진에 대한 최규하 정부의 지지부진한 태도와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의지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왔다. 5월 14일과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은 계엄령 상황임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가두행진을 벌였다. 

 

국회와 협의해 모든 정치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으니 학생들은 정부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현확 국무총리는 15일 담화문을 발표해 학생들의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정부의 발표를 믿으며 향후 논의를 지켜보고자 잠시 시위가 누그러지는 듯했으나 신군부는 이런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치상황을 전개해 나갔다. 

이제 학생들과 군부의 대립은 일촉즉발의 상태에 다다르고 있었다. 반면 신군부는 큰 차질 없이 애초의 각본대로 추진해가는 중이었다.  

 

한국의 운명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미국은 이 나라 구 정치세력들이 다시 정치일선에 등장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1월 중순 방한했던 홀부르크 미 국무성 차관보는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와 함께 공화당과 신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곧바로 공화당 내부에서는 부패 일소 등 그간의 잘못된 정치관행을 쇄신하자는 ‘정풍 운동整風運動’이 일어나면서 공공연히 김종필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4월에는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의 정보가 뉴스위크지에 보도되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의 미국과 일본 주요 언론 보도기사를 보면 미국은 3김의 집권을 원치 않았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난다.

 

‘김종필은 경상도 출신이 아닌 데다 부정 축재자이며 친미보다 친일 성향이 강하다.’

‘김대중은 전라도 출신으로 군부에서 용공분자로 보고 있어 쿠데타 발발의 원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김영삼은 국민들에게 어용 야당 인사로 비쳐 왔고 기회주의자 기질이 다분하며 국가 지도력이 결여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3김이 집권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도한 내용이었는데 한국의 차기 대통령에 관한 미국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신군부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호재였다.

전국 대학생이 가두로 뛰쳐나왔던 5월 13일, 주한 미군과 한국군은 연합 방공 훈련을 실시한다. 다음날인 14일, 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이 갑작스레 귀국했다. 위컴이 미국으로 돌아간 사이에 비상계엄 확대, 즉 5·17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12·12 반란으로 군사력을 동원했을 때는 주한 미군에게 사전 통고하지도 않고 휴전선 인근의 최전방 부대를 동원하여 미국의 화를 북돋았는데 이번에는 군대 움직임도 앖이 여야 정치인, 재야 세력 지도자들을 체포·구금하면서 미국에 미리 통보한 것으로도 쿠데타 시나리오의 일환이었다는 걸 의심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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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확대

 

그리고 5월 17일이 되었다.  

 

“당장 전군 지휘관 회의를 소집시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권정달을 보내 주영복 국방부 장관으로 하여금 전군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서 계엄확대를 결의하라고 통보했다.

 

“서약서에 찬성 서명만 하면 됩니다.

 

군 서열상 상급자이긴 하지만 전두환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국방부 장관은 전군 지휘관들에게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찬성 의사표시를 제안했다. 

 

“군을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도저히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나회 소속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 외의 지휘관들은 반론조차 못하고 자필서명을 하고 만다. 

전두환은 주영복을 대동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군지휘관들의 서명서를 내밀었다. 계엄 확대와 더불어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국회 해산 등에 대해 재가하기를 강권했다.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5·16 때의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본뜬 것으로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한 국책 사항을 심의·의결하여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거나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분의 기구였다.

군 통수권자인 최 대통령은 그때까지 계엄 확대를 검토한 적도 없었거니와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군 지휘관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국보위는 현재 정부 기관으로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는 사안이고, 국회 해산은 위헌이라 대통령인 나도 어쩔 도리가 없소.”

 

결국 최 대통령이 전국 계엄 확대를 재가하면서 후속 절차로 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 국무회의 장소인 중앙청 외곽과 회의장 주변은 노태우의 수경사 병력 600여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곳곳마다 소총을 든 군인들이 포진해서 국무위원들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붙으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 나라 꼴 하고는, 국무회의장이 아니라 조직폭력 집단이구먼.

 

위협적인 회의장 분위기 속에서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이 비상계엄 확대가 의결되었다.

 

“작전 개시! 김종필과 김대중부터 잡아들여.”

 

비상계엄 확대가 결정되기도 전에 공수부대원들을 전국으로 배치하였는데 대통령의 재가를 받자마자 즉각적으로 학생들의 시위에 대비하고자 했음이다.

 

“이 중대한 시기에 일부 정치인, 학생 및 근로자들의 무책임한 경거망동으로 우리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 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가 되어가는 판국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더 이상 계속된다면 우리의 국기마저 흔들릴 우려가 없지 않아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습니다.

 

5월 17일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최규하 대통령의 특별선언이 방송을 타고 국민들에게 전파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심상치 않군. 이 시간에 저런 담화를 발표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터지겠어.”

 

아니나 다를까. 5월 18일 0시, 그때까지 제외되었던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으로 확대하여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제주도를 포함하기 전에는 부분 계엄에 해당하여 계엄사령부가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받지만,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계엄사령관이 행정·입법·사법의 모든 권한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당시 육군 대장인 이희성 계엄사령관(육사 8기)은 바지사장으로 앉혀놓은 인물이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육사 11기)이 전권을 행사하는 군부 내 실세 중의 실세였다.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표하여 정치활동 금지, 휴교령, 보도검열 등의 조치들을 내렸다. 당연히 5월 20일로 예정되었던 임시국회도 무산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정치 활동이 정지되었고, 김대중과 김종필을 비롯한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부지기수로 투옥되었으며 김영삼은 가택 연금되었다. 

전국의 각 대학과 주요 도시에는 공수특전단을 비롯한 예하 군부대를 투입했다. 5·17 조치로 신군부가 권력은 물론 전국 주요 도시를 완전히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광주에서만 조직적인 항쟁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발단된 광주 5·18 민주항쟁은 신군부의 명령을 받은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도시 전체를 피로 물들였고 역사의 장마저 핏자국이 선명한 채 지금까지도 현재 진형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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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다시 혹한의 겨울로 돌아서고 말았다 

 

5월 24일, 신군부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련된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을 대법원 판결 확정 후 즉결심판으로 처형했다. 

3김마저 손발을 묶어버린 지금 이 세상엔 두려울 만한 것이 모두 사라졌다. 아니 그런 요소들의 씨를 완벽하게 말려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풍지대를 형성한 것이다. 

모든 정치인들의 활동이 정지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국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캠퍼스는 공수 특전단을 비롯한 군부대가 점령하였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분명 봄이 왔다 싶었는데, 이 땅에 온기가 뿌려지는가 싶었는데 끝내 그렇지 않았다.

서울의 봄은 프라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는 듯하다가 잠깐만에 뒷걸음치고 말았다. 세상은 다시 꽁꽁 얼어붙었고 더욱 어두운 흑암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 낼 때까지 한참을 참고 견디며 또 투쟁해야 했다.

 

“이제 남은 건?”

 

새 명함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최규하 대통령이 8월 16일, 역대 최 단임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8월 27일,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이로써 신군부는 성공한 쿠데타로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취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지키는 것이야.”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기존의 대통령 간선 기관인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약간 변형시켜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였다. 전국에서 5,278명의 대통령 선거인을 선출해 그들의 투표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방식이었다.  

3김씨가 모두 배제된 대통령 후보에 민정당 전두환, 민한당 유치송, 국민당 김종철, 민권당 김의택의 4명이 출마하였다. 기존 정치인들 중 색깔이 흐릿하고도 무미건조한 성향의 인물들을 출연시켜 대통령 선거라는 구색 맞추기를 연출했다.

선거 결과 전두환 후보가 유효투표수의 90.23%인 4,755표를 얻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5공 정권이 출범한다. 

대통령 임기 7년, 탁하고도 음울한 7년의 세월이 군인들의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전두환과 그의 신군부는 지키는 것마저 무난하게 수행함으로써 또다시 취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에게는 시절도, 운도 따라주었다. 불의와 독선으로 점철된 이에게 그런 호재가 진득하게 들러붙는다는 게 경이롭다. 그를 돕는 신이 경이로우면서도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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