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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11_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장한림 2022. 5. 1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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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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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카이저는 보름 후 퇴원했다. 여치는 보름 내내 카이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남들과 달리 손목이 없다. 그것도 오른 손목이. 오른손잡이였던 카이저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왼손잡이가 되어야 한다.

카이저의 눈은 그 일 이후 초점을 잃고 있었다. 수염이 꺼칠하게 자랐다. 멍한 동공으로 가끔 자신의 빈 손목을 보고는 허허롭게 웃기도 하고 갑자기 양 눈의 미간을 좁히기도 했다.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심한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게 분명했.

 

! 가자. 그리 가보자, 울산으로.”

 

여치가 카이저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카이저는 그런 여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도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여치는 알았다, 카이저의 생각을. 그가 얼마나 복수에 혈안이 되어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증오심만으로 증오를 잠재울 수는 없는 법이다.

 

형 기분, 잘 알아. 형이 어떤 생각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리 있겠어?”

 

글라스에 가득 채운 소주를 단번에 털어 넣은 여치는 선배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여길 떠나야 했다. 지금도 홍사진의 부하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는 중이다.

이저의 갈등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오야붕의 인내가 한계를 보이기 전에 무조건 사라져야 했다. 사진파의 참모 중에서도 카이저는 오야붕한테 두텁게 신임받던 최측근 참모에 속했다. 그런 카이저가 배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 후유증이 더 커지기 전에 그림자까지 지워버리는 게 현명한 처신을 하는 거다. 그게 상책이었다.

제천 시내 미림모텔의 주차장과 복도에 늘어선 사진파 식구들이 두 사람이 떠나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한솥밥을 먹는 동료가 아니었다.

 

그래, 뜨자. 여치야! 뜨자, 미련 없이.”

 

카이저가 왼손으로 여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 ! 잘 생각했어.”

 

여치는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저의 결단이 너무 고마워 그의 오른팔을 쥐고는 꾹, , 두 번을 주물렀다.

 

- 힘이 생길 때까진 어쩔 수 없잖아, 아무리 분해도 말이야. 형보다 내가 더 미칠 것 같았어.

 

퇴원 후 사흘째. 왼손에 낡은 가죽가방 하나를 들고나오는 카이저의 모습이 힘에 겨워 보였. 얼굴은 멍투성이인 데다 다리까지 절뚝절뚝 절었다.

여치는 얼른 가방을 받아서 트렁크에 넣었다. 여치의 눈에 짧아진 그의 오른팔이 아직도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여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곳곳을 둘러보다가 운전석에 올랐다. 울산으로 가기로 했다. 쫓겨서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이 한탄스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둘 다 살고 봐야 했다.

여치는 떠나는 길에 잠시 집에 들러 어머니한테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지방에 취직이 되어 내려간다고 둘러댔다. 카이저는 부모님이 모두 계시지만 집에 들르지도 못했다. 병신이 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었다.

여치는 슬그머니 카이저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굳어진 표정이 다시는 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의 짧아진 팔이 원래대로 길어지지 않는 한 그의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치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깊이 바람을 들이마셨다. 고향을 등지는 여치의 머릿속에 그날의 숨 가쁜 순간이 형형하게 떠오른다.

 

- 바로 그 한순간으로 우리 운명도 이렇게 추락했고 제천의 지도도 바뀌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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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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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간. 문상호 사장은 목이 타는지 맥주를 주문했다. 패를 들추던 카이저가 여치에게 눈짓했다.

여치는 군말 없이 방 밖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고 카이저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손수건을 펼치니 한 목의 카드가 있었다. 여치는 그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캔맥주를 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막 끝난 판의 판돈을 L 텔 나이트클럽의 김태산 사장이 자기 쪽으로 쓸고 있었다. 양에 차지 않는지 김태산 사장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고맙네, 젊은 친구!”

 

H 관광호텔의 소유주인 문상호가 캔맥주를 받으며 여치에게 웃음을 흘린다. 김태산의 오른쪽에 앉은 카이저가 카드를 끌어다 간추리고 있다. 거액의 판돈은 누구에게나 갈증을 일으킨다.

여치는 문상호와 김태산에 이어 카이저에게도 캔맥주를 건넸다. 여러 번 카드를 섞은 카이저가 캔맥주를 받아 한쪽에 놓고는 곧바로 카드를 한 장씩 돌렸다. 김태산은 자기 자리의 수표 뭉치와 현금을 분리해서 챙기는 중이었고, 문상호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젖힌 채 스트레칭을 했다.

여치의 손에 카이저가 막 섞은 카드가 건네졌고 동시에 여치가 새로 가지고 온 카드는 카이저의 손에 쥐어진 후였다. 판에서 물러난 K 백화점의 심재형 전무가 캔맥주를 마시느라 고개를 젖혔으며 김태산과 문상호의 등 뒤에 각각 한 명씩 그들의 경호원이 서 있었지만, 누구도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카이저와 여치의 카드 바꿔치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여치는 테이블 위의 재떨이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바꿔치기한 카드를 카이저의 책상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깨끗이 비운 재떨이를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았을 때는 이미 김태산이 첫 베팅을 하고 카이저가 한 번 레이스로 되받았다. 마지막 문상호가 콜을 부르며 두 사람이 베팅한 만큼 돈을 밀어 넣었다.

다시 김태산이 판돈만큼 레이스를 외치자 잠시 망설이던 카이저가 김태산이 내지른 액수만큼 받기만 했다. 문상호도 콜. 장째부터 판돈만큼 베팅이 가능한 무제한 레이, 프리베팅의 게임. 지켜보는 여치의 손에 땀이 배었다.

보스인 김태산은 받은 세 장의 카드 중 10 스페이드를 펼쳐놓고 있었다. 장째 카드가 돌려졌다. 그 즉시 쌓인 판돈만큼 김태산이 질러댔다. 카이저가 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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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문상호가 호기롭게 받아쳤다. 기다렸다는 듯 김태산이 레이스를 외치며 되받아친다. 멈칫하고 망설이던 카이저가 도살장에 끌려들어 가는 망아지처럼 돈을 밀어 넣었다.

 

.”

 

문상호도 박자를 늦추고 김태산이 박은 만큼만 들이민다. 이미 쌓인 액수가 3억 원이 넘고 있었다. 진작 테이블에서 물러나 두 사람의 승부를 관전하던 심 전무도 숨을 죽였다. 여치는 세 사람을 번갈아 살피며 침을 삼켰다.

다시 다섯 장째의 카드가 돌려졌다. 문상호 앞에 펼쳐진 세 장의 카드는 9, J, 9. 그가 나인 원 페어로 보스가 되었다. 김태산은 10, 7, 에이스A, ace 모두 스페이드 무늬였. 카이저는 8, 9, 10으로 나란히 숫자가 뜨기는 했지만, 무늬가 제각각이었다.

문상호가 먼저 베팅을 하고 김태산이 여기까지 와서 꼬리를 내릴 수는 없다는 듯이 레이스로 감았다. 카이저가 콜! 변화가 없던 문상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시 콜! 여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이저가 엮어놓은 탄, 바꿔치기해서 돌리고 있는 지금의 패가 어떻게 떨어질지 감을 잡았다. 김태산은 이 판에서 거덜이 나게 될 수밖에 없다.

지난주에 두 번의 승부가 있었는데 김태산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오늘 세 번째 게임에서 그는 어쩌면 자신의 지하 나이트클럽을 문상호 사장에게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 결정적 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카이저는 김태산에게 10 타이틀이 가게끔 엮었을 것이다. 문상호의 감춰진 두 장의 패는 아마도 자니J일 게 틀림없다. 다섯 장째 자니 타이틀, 풀 하우스가 된 게 틀림없다. 카이저의 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바람을 잡아 판돈을 키우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그런데 실탄이 바닥나면서 더는 판돈을 키우기도 어렵게 되었다. 문상호가 여섯 장째 카드를 빠르게 손에 쥐었다. 그에게 떨어진 패는 8 스페이드였다. 문상호에게 떨어진 패를 보고 김태산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혹시나 했던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날아간 게 아쉽다는 표정일 게다. 카이저한테는 6 스페이드. 김태산의 미간이 더 좁혀졌다. 점점 플러시 메이드의 희망도 줄어들고 있다.

김태산에게는 10 클로버가 떴다. 별 의미가 없는 패. 그러나 문상호에게는 희희낙락하기에 충분한 패였다. 개미구멍만 한 불안이겠지만 그나마 10 포커도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판돈만큼.”

 

역시 문상호가 풀로 베팅했다. 아예 기를 죽여 놓겠다는 심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김태산이 낮은 저음으로 레이스를 외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문상호가 베팅한 만큼의 돈을 넣고 다시 그 두 배를 밀어 넣었다.

문상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놈이 미친 거 아냐? 상대 패를 가늠이나 하고 이러는 거야, 뭐야. 문상호는 김태산을 쏘아보다가 콜을 불렀으나 눈빛이 조금 전 자신만만하게 베팅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카이저는 남은 돈만큼을 모두 판에 쓸어 넣고 사이드를 표시했다.

드디어 히든카드. 이상했다. 여치는 자신의 판단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러시 메이드? 아니, 설사 10 타이틀을 잡았어도 너무 지나치다. 상대에게는 버젓이 10 카드 바로 위의 자니가 깔려있다.

그걸 보고도 되받아친다는 건 도대체가 상식 밖이다. 더구나 평소의 김태산 스타일이 아니다. 여치는 고인 침을 삼켰다. 히든카드를 받은 문상호가 수북하게 쌓인 판돈 위에 수표 뭉치를 잔뜩 들이밀었다.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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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산이 조금의 간격도 없이 레이스를 불렀다. 카이저는 조용히 두 번 테이블을 두들겼다. 자신은 돈이 바닥나 그대로 사이드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 카이저를 보다가 문상호가 되받았다. 50억 원이 넘는 판돈이다. 김태산이 또다시 레이스를 외치며 뒤에 선 부하에게 봉투를 받아 판에 들이밀었다.

판을 벌이기 전, 문상호와 약속했던 김태산의 L 텔 나이트클럽 양도계약서였다. 이미 80억 원으로 나이트클럽의 가치를 책정한 바 있다. 그 봉투, 80억 원짜리 나이트클럽이 테이블 한가운데 올려졌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의문스럽다. 상대의 패가 자니 타이틀일 확률이 큰데도 이처럼 무모하게 되받아치다니. 이만큼의 판돈을 들이밀고 자니 타이틀로 물러날 사람은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없다.

그렇다면? 김태산의 패는 자니 타이틀보다 높다? 여치가 막 생각한 것처럼 문상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시 김태산의 패를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절대 포커는 없다.

의뭉스러운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힐끔 카이저를 살폈다. 이상 없는 거지? 혹시 실수한 건 아니지? 여치는 문상호의 눈빛이 그렇게 묻는다고 판단했다. 카이저는 담배를 꺼내 물었을 뿐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문상호는 김태산의 나이트클럽을 욕심냈었다. 자신의 호텔에도 나이트클럽이 있기는 했지만, L 나이트클럽에는 미치지 못했다. L 나이트클럽은 두고두고 눈엣가시처럼 문상호에게 스트레스를 주어왔었다. 문상호는 그걸 취하려고 지난주부터 김태산을 공략했다.

문상호가 판에 남아 있던 5억 원을 밀어 넣자 뒤에 서 있던 그의 경호원이 가방을 열었다. 주식양도계약서를 꺼내 75억 원의 금액을 적어 넣었다.

역시 처음에 김태산과 합의했듯이 이 판에서 문상호가 지면 그의 H 관광호텔의 지분을 양도한다는 뜻이다. H 관광호텔의 총지분 중 약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태산이 계약서와 문상호의 인감증명서를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쪽에 양도인 문상호라고 적혀 있었고 그의 인감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H 관광호텔이 김태산에게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

길은 하나. 이 판은 이미 연출된 각본에 따라 엮인 무대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역시 제천시 최대의 L 나이트클럽, 김태산의 재산이 문상호에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카이저가 엮은 탄으로 인해, 단 한 판의 승부처에서 김태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마도 제일 먼저 제천 일대 주먹세계에 일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제천의 폭력조직은 문상호와 김태산, 두 사람의 호텔과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문상호의 H 관광호H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하는 사진파와 L 나이트클럽의 태산파가 제천을 양분하고 있었다. 여치는 그런 지각변동을 예측하며 축축하게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김태산의 패배에 일조한 자신이다. 카이저에게 넘겨준 카드로 그가 쓰러진다. 여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카이저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여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내리감았다.

그 순간, 여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의식했다. 카이저 선배가 실수를? 만일 그렇다면 큰일이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여치의 심장이 더욱 크게 뛰었다.

이어 들리는 김태산의 목소리, 이젠 내가 자네 호텔의 대주주네. 역시 자니 타이틀인 문상호의 패를 보고 그가 내뱉은 말에 여치는 까무러칠 뻔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심하게 박동 치던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김태산의 패는 평생에 한 번 잡아보기도 힘들다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였다. 10, J, Q, K, A의 다섯 장이 모두 스페이드 무늬였. 마지막 히든카드에 킹 스페이드를 받으면서 그 이상 높을 수 없는 패를 완벽하게 갖춘 것이었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확인한 문 사장의 동공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판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작위적이지 않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후우우, 카이저의 입에서 한숨인지, 탄식인지 구분키 어려운 소리가 새어 나오는 걸 여치는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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