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종주 산행, 연계 산행

영남알프스, 1000m급 고산 준봉 7산 태극 종주 (2-1)

장한림 2022. 3. 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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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1000m급 고산 준봉 7산 태극 종주

운문산-가지산-천황산-재약산-영축산-신불산-간월산

 

2https://www.bookk.co.kr/book/view/135227<이 글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글 머리에

 

초조함을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애태워 기다립니다.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가고 싶은 산을 가기로 했을 때 더러 이런 그리움을 품어보았을 것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산을 다녔지만, 수도 없이 많은 산을 아직 가보지 않았기에 그리움에 젖을 날들이 그만큼 많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왜 산 타는 이들은 무리이다 싶을 정도의 강행군에 연연하는 것일까. 나는 또 왜?”

 

산의 분신이 되고 싶어서, 저 바위에서 분리된 돌 부스러기가 되고 싶어서, 그러다 한 줌 흙 되어 밟으면 소리 내는 마른 땅이고 싶어서.”

 

이처럼 산에 연정을 품게 된다면 아무리 험산 준령이고 먼 길인들 산은 힘든 대상일 수 없습니다.

 

산은 그 높이 못지않게 거리도 중요한 가늠의 잣대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1개의 대간大幹1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누고 각 정맥에서 산이 갈라지면서 지맥을 형성합니다. 위로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산이 곧 분수령이라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이렇듯 산은 산을 이으며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입니다.

 

3, 4, 5, 6이러한 우리나라 산들의 이음새는 등산의 명품 코스로 개발되기도 하였고, 산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그 산들을 이어서 등반하는 추세입니다.

이 책은 그 산들을 연계하여 산행한 종주 산행기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되뇌고, 교만해지려 할 때 인자요산仁者樂山의 귀한 의미를 새기면서 거기로부터 충분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자연에서의 행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땀과 갈증, 누적되는 피로에 자칫 고된 노동이 될 수도 있는 산행을 두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시켜 산행의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그 산에 담긴 역사의 숨결과 설화 등을 대화하듯 끼워 넣고 그 산에 관한 문화와 정보를 소개하여 최소한 자신이 가는 산이 어떤 산인지 자연스럽게 알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한 기행문이나 산행기록과는 차별화된 승화된 가치의 산행 기록물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감히 책으로 꾸며 세상에 내어놓는 무지한 용기를 발휘한 것은 산이 주는 행복을 보다 구체화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더욱 즐겁고 보람된 산행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장 순 영

 

 

연계 종주 산행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차 례>

 

1. 영남알프스, 1000m급 고산 준봉 7산 태극 종주_ 7

  운문산-가지산-천황산-재약산-영축산-신불산-간월산-천황산

2. 북도사수불 5산 종주_ 42

  북한산-도봉산-사패산-수락산-불암산

3. 지리산 화대 종주_ 79

  구례 화엄사에서 유평 대원사까지 지리산 횡단

4. 어유소중삼통 6산 종주_ 115

  어비산-유명산-소구니산-중미산-삼태봉-통방산

5. 육십령에서 구천동까지 육구 종주_ 135

  남덕유산-무룡산-덕유산

6. 한강 이남 수도권의 5산, 광청 종주_ 162

  광교산-백운산-바라산-우담산-청계산

7. 화악지맥, 몽가북계삼 5산 종주_ 185

  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삼악산

8. 거제도 바닷길 남북 5산 종주_ 206

  망산-가라산-노자산-선자산-계룡산

9. 충북알프스 종주_ 230

 구병산과 속리산 관통

10. 동두천 6산 종주_ 256

 칠봉산-해룡산-왕방산-국사봉-소요산-마차산

11. 오대산 환종주_ 282

 비로봉-상왕봉-두로봉-동대산

12. 남도 땅끝의 7산 종주_ 303

 만덕산-석문산-덕룡산-주작산-두륜산-대둔산-달마산

13. 소백산 죽구 종주_ 335

 죽령 넘어 구인사까지 소백산 횡단

14,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공룡능선으로_ 357

 내설악 인제 남교리에서 외설악 설악동 소공원까지

15. prologue & epilogue / 불수사도북 5산 종주_ 384

 불암산 –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작년 가을에 시간을 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곱씹다가 또 한해를 넘기고 봄이 오는 길목에 영남알프스를 찾았다. 초조함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애태워 기다린 적이 있었다. 영남알프스로 향하며 그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너무나 멀고 시간 내기 어려워 늦고 말았다는 건 실제 부닥쳐보면 허접스러운 핑계였다는 게 여실히 밝혀진다. 집착일지도, 아니면 순간의 감성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속 안의 움직임마저 거기 일곱 개의 산으로 다가서며 생애 손꼽을 만남에 설렘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다.

울산광역시, 밀양시, 양산시, 청도군과 경주시로 이어지는 경상남북도의 경계 지역에 해발고도 1000m를 넘고 전체면적이 약 255에 달하는 광활한 산악지대를 일컬어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에 고헌산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들 육중한 산들의 수려한 능선과 풍광이 가히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 칭한다

사계절 모두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뽐내거니와 특히 가을에는 사자평을 비롯해 신불재, 간월재 등 곳곳마다 억새군락이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내기에 알프스라는 수식을 붙인 것인데 그다지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단호하고도 강인하며 동시에 유연한 포용을 느끼게끔 꼿꼿한 바위 봉우리와 급준한 단애, 광대하고 부드러운 고원이 조화를 이뤄 찾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또한, 각 산자락에 통도사, 표충사, 운문사, 석남사 등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유적지로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운문산을 오르며 영남알프스의 시발점을 내딛다 

친근한 지인 중에 긴 산행의 동행을 권할 만한 산우가 얼른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나 홀로 산행에 익숙할 때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혼자 떠난다. 호젓한 유람이 될지, 아니면 고독하고도 지독한 고행이 될지는 직접 부딪쳐서 결과를 얻기로 한다. 집에서 네 번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교에 도착한 건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열심히 검색해서 예약한 운문산 아래의 청림산장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기로 한 것이다.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운문산 위로 별들이 쏟아지는 걸 보다가 잠을 청한다. 낯선 지방에서의 수면이 달콤할 리 없겠지만 새벽 네 시 반에 눈을 떴을 때는 머리도 맑고 몸 상태도 개운한 편이었다. 어젯밤 쏟아지던 별빛 대신 촉촉하게 습기 머금은 새벽 기운이 산 아래로 퍼져 내려오고 있다.

운문산 들머리인 석골사 입구의 청림산장에서 그 대장정을 시작한다

 

잘 쉬고 갑니다.”

이거 받으세요. 나물 몇 가지랑 잡곡밥 조금 쌌어요. 운문산에서 가지산으로 가시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드세요.”

 

맘씨 후덕한 산장지기는 환한 웃음으로 배웅을 해주며 도시락까지 건네준다. 지갑을 열려는데 강하게 만류한다.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출발 직전부터 느낌 좋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늘과 내일로 이어질 종주 코스를 도상으로 이으면 태극 모양을 보여 영남알프스 태극 종주라 일컫기도 한다. 내디딜 첫 산이 운문산이며 그 시발점이 경남 밀양의 석골사 입구이다

겨울 녹아 물 흐르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으므로 행복이 뭔지 불행이 무언지 가늠할 게 없을 터. 태풍 전야처럼 고요해서 산골에 동트기만 기다리니 진정한 자유가 이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이정표에 운문산 정상까지 5.1km라고 적혀있다.

 

이정표의 거리는 의미가 없어.”

 

거기 적힌 숫자에 속박되지 않기로 했다. 염두에 둘 건 오로지 처녀 산행에서 방향을 잘 잡아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면 행복한 유람의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물줄기가 제법 드세고 물소리도 옹골찬 석골폭포를 오른쪽으로 두고 계속 오르막길을 걷게 된다.

석골폭포의 물줄기가 제법 드세고 물소리도 옹골차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멀고도 긴 대장정의 진입로에 들어서면서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게 되는 건 밀양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도의 대표적 통속 민요인 밀양아리랑은 이 지역 영남루에 얽힌 비극, 아랑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밀양에는 순결을 지키려다 한을 남기고 숨져간 아랑阿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매년 음력 416일에 열렸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규수가 제관이 되어 제사를 모시는 아랑제이다. 봄에 지내던 아랑제와 가을의 밀양문화제를 합하여 밀양 아랑제라 개칭하고 그 시기를 음력 4월 말에서 5월 초의 농한기에 열고 있다.

밀양 부사의 딸이며 어질고 아름다운 여인 아랑을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이 사모하게 된다. 영남루에서 통인에게 욕을 당할 지경에 이르자 끝까지 반항하다가 통인에게 칼에 찔려 살해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자 밤이면 이 고을 태수의 방에 귀신이 나타나 놀란 태수들이 부임 첫날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밀양 태수 자리가 비었으나 아무도 가려 하지 않자 조정에서는 자원자를 구해 보냈다. 새로 부임한 태수가 불을 밝히고 앉아있는데 불이 꺼지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목에는 칼이 꽂힌 귀신이 들어왔다

 

네가 그 귀신이냐? 기다리던 참이다.”

 

이제까지와 달리 태수가 담대하게 다그치자 귀신은 자신의 원통한 사연을 밝혔다.

 

 “너무 원통하여 이런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태수가 아랑을 죽인 통인을 잡아 처형하자 그 뒤로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장화홍련전처럼 익숙한 설화를 떠올리며 급경사의 너덜 오르막에 접어든다. 억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암벽에는 아직 한기가 서려있다

 

이른 봄 새벽녘 산길은 무척 서늘하다. 어슴푸레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홀로 산자락은 서늘하기는 해도 조금도 을씨년스럽지 않다. 산중 특유의 고즈넉함과 새벽 낭만이 속속 배어 있어 기분이 들떠있다

저만치 운문산 정상이 우뚝 모습을 드러내고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도 다감하게 미소를 짓는다. 거친 너덜바위 위에 억산億山 정상석(해발 944m)이 세워져 있다. 들머리에서 4km를 걸어왔고 운문산까지 4.3km를 더 가야 한다. 운문산 서쪽 능선에 솟은 억산은 하늘과 땅 사이 수많은 명산 중의 명산이라는 의미의 억만지곤億萬之坤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억만산億萬山 또는 덕산德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운문산과 그 뒤로 옅은 운무를 끌어안은 가지산을 훑어보고는 억산을 떠난다. 궤적 뚜렷한 길 따라, 신선한 공기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 걷다가 삼지봉(해발 904m)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 번째 봉우리인 범봉(해발 962m)에서 바람막이를 벗는다. 해가 뜨면서 서늘한 산 기운은 온화한 봄볕으로 바뀌었다

억산과 운문산을 이어주고 석골사와 운문사가 갈라지는 사거리 고개 딱밭재에서 행동식을 꺼내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운문산을 1.8km 남겨둔 딱밭재까지 석골사를 통해 올라왔으면 거리를 단축할 수 있었겠지만, 영남알프스에 온 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곳곳을 섭렵하려 했기 때문이므로 꽤 긴 거리를 우회한 셈이다.

2.6km 아래의 석골사는 애초 석굴사로 불리었듯 예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이란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태조 왕건이 풍요한 도움을 주어 고려 건국 후 아홉 개의 암자를 거느리게 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활약하던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봄과 겨울이 잠깐의 거리를 두고 공존한다

 

딱밭재를 지나 헐벗은 나목들이 겨울은 지났는지 모르지만 봄이 오지는 않았다는 걸 표현하듯 뻗은 가지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상운암 계곡의 암벽들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그다지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거칠고도 냉랭한 모습으로 눈길마저 피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아직 썰렁한 계절의 홀로 방문이 의아스러운 밧줄이다. 청승맞게 혼자 산길 오르는 걸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곳곳에 아직 녹지 못하고 고드름처럼 매달린 얼음기둥들도 저들보다 더 썰렁한 방문객을 경계하는 눈치다.

 

유별나게들 보지 말게나. 나도 똑같은 코리언일세.”

 

첫눈에 허름하고도 다소 부실해 보이는 상운암에 도착하여 수통 가득 약수를 채운다. 물맛은 너무 시원하여 세 시간 30분여의 수고로움을 단번에 덜어준다.

허름한 암자가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를 연상하게 한다

 

석골사의 산내 암자인 상운암은 예로부터 천진보탑으로 이름난 정진 장소였는데 6·25 전쟁 직후 빨치산 소탕 작전의 목적으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1960년에 지어진 현존 암자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촘촘하고도 수북한 뭉게구름 아래로 막 지나온 억산, 삼지봉, 범봉 능선과 주변 조망에 고루 눈길을 던진다. 이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동굴이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자연 동굴이다. 거리를 더욱 좁혀 운문산雲門山 정상(해발 1188m)에 이르자 가슴이 뭉클해진다.

첫 정상에서 뻘줌하게 셀카 인증을 한다

 

영남알프스 첫 정상에서 가슴 울렁임을 느끼니 마지막 정상에서의 감동이 어떠할지 쉽게 상상이 된다.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에 접한 운문산은 신란 진흥왕 때 창건하고 고려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려 운문사라 칭하게 된 사찰명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가르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운문사에서 딱밭재를 거쳐 이곳 운문산으로 오를 수도 있다.         

 

오늘이 첨이자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천년이 지나도 부디 지금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잘 가시게. 가지산 형님한테 안부 전해 주시게.” 

 

오늘 지나게 될 능동산 능선을 바라보고 가지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넓은 능선을 지나 비좁은 산죽 오솔길을 걷다가 동굴 앞에서 멈춰 섰다.

고개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암반 아래 그늘진 바위에 고드름이 달려있고 얼음 바닥인 동굴을 들여다보는데 싸한 냉기가 돈다. 동굴 크기로 보아 허준이 수술한 얼음동굴은 아닌 듯하다

가지산 가까이 이르자 사면 암릉이 매우 가파르다

 

이곳 산내천 계곡지대에는 지형 특성상 초여름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처서가 지난 뒤에야 녹는 시례빙곡時禮氷谷, 즉 얼음계곡인 밀양의 남명리 얼음골이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참을 내려와 닿은 아랫재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햇살 좋은 암릉에 자리를 잡는다.

출발할 때 산장지기가 싸준 도시락을 여는데 입안 가득 군침이 고인다. 조미되지 않은 담백한 자연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자 몸도 마음도 포만감으로 나른해진다. 10여 분 지났을까. 잠깐이지만 눈을 붙였다가 떼니 들머리에 들어섰을 때처럼 개운하다

저만치 가지산 정상이 보인다

 

가지산 정상 아래의 헬기장에서 걸음을 빨리하여 산장에 이르자 눈썹을 그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덩치는 큰데 무척 순하다. 산장 오른쪽의 바위 지대인 정상까지 꼬리를 흔들며 앞서간다. 개의 안내를 받아 정상에 올라서기는 처음이다.

가지산加智山 정상석(해발 1241m) 앞에 몇몇 산객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그 옆에 낙동정맥의 구간임을 표시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영남알프스의 산군 절반 이상이 낙동정맥 상에 걸쳐있다. 13정맥 중 한 곳인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의 산줄기로 태백산에서 서남쪽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태백산 북쪽에서 벗어나, 경북 울진 백병산, 영덕 용두산, 청송의 주왕산을 지나고 남쪽으로 뻗어 경주 단석산, 청도 운문산, 언양 가지산, 양산 취서산, 동래의 금정산을 지나 엄광산에서 그 줄기가 멎는다.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의 순으로 영남알프스 한복판을 낙동정맥이 관통하며 양옆으로 운문산이나 재약산 등을 끼고 있는 형국이다.

가지산 정상에 이르자 바람이 드세다

 

운문산 아우님이 안부 전하더군요.”

, 거기서 오는 길이 신가. 우리 아우 잘 있던가?”

. 안색이 밝으시더군요.”

그래. 신불 아우, 간월 아우 등 아직 남은 다섯 아우와도 기쁜 만남 가지시게.”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화재나 관광명소가 많아 통도사 지구, 내원사 지구 및 석남사 지구와 더불어 1979년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가지산과 운문산은 암산女山이라 수도승이 각성할 무렵이면 여자가 나타나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석남사는 주변의 운문사, 대비사와 더불어 비구니 전문 수도장으로 지금도 많은 비구니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과연 유럽의 알프스를 인용한 표현이 과장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첩첩이, 겹겹이 산들이 포개지고 골골 깊숙이 우거진 수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멀리 막 지나온 운문산과 약 10거리의 이곳 가지산이 나란히 솟아있어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봉우리처럼 보일 듯하다

이 일대는 화강암 지질 기암괴석의 바위 봉우리가 많지만, 가지산의 북동쪽 사면은 완만하여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니 참으로 복잡다단한 형세를 갖춘 산군이라 하겠다. 이런 만큼 영남알프스의 산행 행태 또한 동서 혹은 남북으로 넘나들기도 하는 등 매우 다채롭다

영남알프스의 7산군은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과 천황산, 재약산, 그리고 운문산, 가지산에 고헌산을 포함한 3개 권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세 지역은 배내천, 동천 등의 하천을 이룬 커다란 계곡으로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높고, 깊고, 넓은 산에 들어서서도 이정표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어 방향과 거리에 대해 세세하게 표시하고 있다

 

다음 행보를 잇기 위해 하산을 서두른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무얼 망설이랴

구름 흘러 걸리는 곳

거기가 내 갈 곳

그래도 그게 아니라

산허리에 세운 이정표

걸을 거리, 갈 방향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하네     

쭉 뻗은 산줄기 멈춰 둘러보라

오른 길만큼, 솟은 태양만큼

큰마음 지녀보라

가파르고 궂은 삶

묵은 세월에 묻어두라

내려가거든

더욱 지혜롭게 살으라

그래서 산허리에 이정표 있는 거라 하네 

   

<영남알프스, 1000m급 고산 준봉 7산 태극 종주 (2-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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