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종주 산행, 연계 산행

불수사도북 5산 종주

장한림 2022. 3. 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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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epilogue_ 불수사도북 5산 종주

불암산 –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https://www.bookk.co.kr/book/view/135227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불수사도북 5산 종주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딴 나라 사람들의 소재거리였다. 

불암산과 수락산을 연계 산행해봤지만,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산행의 적정선이라고 여겨왔다. 거기에 사패산을 다시 올라 도봉산과 북한산을 잇는다는 건 넘볼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산 좀 다녔다는 사람들이 툭하면 입에 올리는 말, 검색해보니 수두룩하게 나오는 그 용어, 그 불수사도북이란 단어가 뇌리에서 맴돌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등산에 취미를 붙인 지 2년 여쯤 지나서였다.

     

 “한 번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관심의 도를 넘어 꿈틀거리는 도전 의식은 마치 욕정을 품은 수캐처럼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겠는가. 타고난 기질이 맘먹으면 일단 부딪쳐봐야 직성이 풀리는걸. 그렇게 해야만 내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님을 알고 깨끗이 포기하는 체질인걸.    

 

“그 산들의 부드러운 품에 한껏 안겨보자. 그 산들의 관절 곳곳을 한껏 애무해보자. 그렇게 해자.”  

   

중도하차라는 오명은 자기 자신만 곱씹으면 된다. 누구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혹여 심장발작 같은 사고라도 당한다면? 그래, 생명 부지가 우선이다. 가까운 후배이자 같이 산을 다닌 산우, 계원이한테만큼은 알리자.

거기 덧붙여 그래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재산이랄 것도 없는 알량한 통장 두 개의 갈피에 비밀번호를 적은 쪽지를 꽂아 놓고…… 

금요일 조금 일찍 퇴근해서 메모해두었던 준비물 쪽지를 펼쳐가며 먹거리며 옷가지, 장비 등 준비한 것들을 꾸역꾸역 배낭에 꾸려 넣었다. 

     

“북한산 갔다가 오는데 이틀씩이나 걸린다구요?” 

    

이해 못 하는 아내를 설득하느라 에너지 낭비하기 싫었다. 캠핑이라도 간다고 여겼는지 아님, 중국 황산이라도 다녀오는 걸로 생각했는지 아내는 솔직하지 못한 남편이 못마땅한 것이다. 

바람피우러 나가는 남편 대하듯 시큰둥한 아내를 뒤로하고 준비한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아무리 잘해도 전쟁영웅처럼 화랑무공훈장 같은 거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 암기하고 있었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그냥 입에서 읊조려지고 있을 뿐이다. 

 

“저부터 보살펴 주시옵고, 여유 있으시면 내 아내의 의심을 떨쳐내게 하옵소서.”  

   

다른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무사히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최상, 최선의 결과를 얻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얼 하고자 하는데 이처럼 떨린 적이 있었던가.

초등학교 시절 독감 예방 불주사 맞을 때보다 더 떨려온다. 처음 총각 딱지를 뗄 때보다 더 긴장된다. 나다운 건지, 전혀 나답지 않은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어둠이 깔린 저녁 6시경, 집을 나서는데 제일 먼저 오르게 될 불암산은 이미 루비콘강이었다. 강물이 불어 되돌아갈 수 없는……. 진작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도 이처럼 갈등이 이어지는 건 처음이었던 듯싶다. 

 

 

"넌 내가 지켜줄 터이니 걱정 떨쳐내고 네 길을 가거라."

 

오후 6시 50분 하계역 5번 출구로 나와 중계본동까지 걸어갈 요량으로 불암산 들머리 청록 약수터를 묻는데 버스를 타서도 20분이 넘게 걸린단다. 산행 지도를 펼쳐보니 몇몇 구간은 생소했다. 한 번도 산행해보지 않은 등산로. 그래 어딘들 태초의 인간이 밟은 땅이 있었던가.

 

“그런데 이런 걸 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체력 점검? 의지력 확인?”

 

그 어떤 것도 대수로운 명분이 되지 못한다. 그래. 그런 의미나 명분조차 따지지 말자. 아담과 하와가 무얼 헤아려가며 선악과를 따먹었던가. 

    

“오로지 거기 그 산들이 존재하므로 내가 간다.” 

    

버스를 타고 1142번 종점까지 와서 쉽지 않게 청록 약수터 진입로에 들어섰다. 아직 이른 저녁인데도 주변이 너무나 고요하다. 적막하고 을씨년스럽다.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가 맞는가 두리번거리게 된다.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데 더욱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골목 모퉁이에서 그분이 나타나셨다.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예수님이 떨리는 마음을 풀어주신다. 

 

    

“넌 내가 지켜주마. 그저 네 길을 가거라.”  

   

불암산 들머리, 다섯 산의 첫 진입로 담벼락에 어떻게 예수님이 왕림하셨을까. 우연이지만 두고두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가 정각 7시 30분, 생애 가장 불안한 행로의 초입에 예수님이 나와 마주쳤다

 

무신론자나 다름없는 나에게 그분은 어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 나를 안심시켜주는 것이었다.

청록 약수터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서울의 마지막 재정비구역이다. 불이 켜진 집이 거의 없다. 조만간 모두 철거될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스치는 느낌만으로도 분위기가 도통 아니다. 이런 데서 서울시나 관할 행정청인 노원구의 철거처분이 떨어질까 봐 속 졸여가며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얼마나 여유로운 것인가.

     

“일단 자유로울 수 있잖아. 능동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판단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야.”

 

 

어둠을 벗 삼아

 

학도암을 지나치게 된다. 불빛 밝은 내부를 보니 고시촌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시 공부를 하거나 경을 읽으며 정진하거나 다 무언가를 위한 고행일 텐데 어둠 밝히며 수고하는 그들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며 어둠을 뚫고 올라간다. 점차 도심의 불빛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저 불빛들마저 없었다면…….”

그나마 도심 불빛이 위안이 된다

    

 

“한국전력이여! 만에 하나라도 정전사태를 일으키는 실수를 범하지 말기를…….”

    

뇌까리는 것마다 서원이고 기도다. 평생 오늘처럼 저 자신을 누르고 빌며, 부탁하며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는지를 회고해 보게 된다.  

   

“늘 자만에 빠져 그런 적이 없었어. 오늘처럼 직접적인 위기의식을 미리 느껴본 적은 있었을까.”  

   

안일하여 혹은 신중하거나 섬세하지 못하여 절실하게 살아오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된다. 하고자 마음먹고도 진지하거나 성실하지 못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무사안일주의로 살아왔음이 부끄럽다. 

     

“그래서 지금 내게 산을 친구로 사귀게 한 건지도.”  

   

산의 가르침, 산에서 얻는 새로움을 자각하면서 지금 금맥을 캐들어가는 광부의 심정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산은, 계절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만 달리해도 새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깜깜한 산이지만 보이는 게 무수하고 보이는 것마다 새롭다. 저처럼 넓은 곳을 밝혀주면서도 또 수도 없이 많은 단점을 가려준다. 

보이지 않아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속속 가슴으로 이전하여 좋은 것들을 새겨두게 한다. 세상으로 내려가면 잊을지언정 산에서만큼은 고운 생각만 떠오르도록 한다. 산이기에 그런 것들을 간직하게 하고 또 아닌 건 잊을 수 있게끔 한다. 

산 아래 도심 불빛과 하늘 아래 어둠을 벗 삼아 불암산 정상(해발 508m)에 올랐다. 헬기장 너머로 남양주 쪽 야경이 곧 겨울이 올 것을 알리는 양 스산하다.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최불암 씨가 불암이란 이름을 빌려 쓰며 불암산을 칭송한 글이 있지만 막 녹화 마치고 잠든 최불암 씨가 깰까 조심스러워서 거긴 들리지 않기로 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애국가 가사는 오자가 없더라. 정상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찢어질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드센 바람이다. 총 도상거리의 1/20도 못 왔으나 시작이 반이라지 않던가. 

따끈한 커피 한 잔에 스스로 위로하고 가야 할 방향을 잡으려는데 두꺼비 울음소리가 들린다. 두꺼비바위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이명처럼 귀에 담고 정상 바로 아래의 쥐바위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수락산으로 향한다.

두꺼비바위가 눈물을 글썽이며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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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으로의 이음 길인 덕릉고개를 통과한다. 고개 아래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를 잇는 국도에는 간간이 차량만 빠르게 이동할 뿐 한산하다. 

 

 

두 번째 수락산으로

 

산 아래 불빛을 내려다보며 여러 상념에 잠긴다

 

여기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불빛 속 어딘가에서 참이슬에 취기가 오르는 중이 아니었을까. 두 주 전부터 주말 약속을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바로 지금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종주 산행, 어둠을 사르며 산으로 향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나 자신이 의아하고 신기하다.

불빛을 위안 삼아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발광發光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도솔봉에 닿았다. 도솔봉에서 그다음 진입로가 보이지 않아 잠시 헤매다가 조심조심 바위를 돌아 개구멍처럼 드러난 소로를 발견했다. 낮이었으면 바로 보이는 길이 깜깜한 밤인지라 자칫 길을 놓칠 우려가 크다. 

도솔봉 아래부턴 다시 넓은 길이 나오고 이어 수락계곡 갈림길까지 무난히 왔다.

치마바위를 지나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땀을 식히니 뿌옇게나마 구름 사이로 달빛이 보인다.   

   

“한가위도 아닌데 달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구나.”  

    

코끼리바위에 이르자 달은 좀 더 높이 솟아 더 밝아져서 다소나마 몰려드는 외로움을 덜어준다. 달빛을 오른팔 삼고 보무당당하게 어깨를 펴본다. 철모바위를 지나며 이 철모를 쓰는 군인은 상당히 짱구일 거란 생각을 하며 억지 미소를 짓는다.

철모바위에 이르러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주봉으로 향한다

 

수락산 주봉(해발 637m)에도 태극기는 굳건히 펄럭이고 있다. 슬슬 시장기가 몰리기 시작하지만 무얼 꺼내먹자니 귀찮다. 내려가서 사패산으로 가다가 요기하기로 하고 바로 자리를 뜬다. 제법 긴 능선을 걸어야 한다.  

    

“여명이 밝을 때까지 가는 길을  밝게 비춰주렴.” 

    

높이 뜬 달을 보며 읊조리며 홈통바위를 우회한다. 석림사 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통과하고 내처 걸어 도정봉도 지나친다. 130m에 이르는 긴 계단을 내려서서 수락산 날머리 동막골까지는 완만한 경사로의 내리막길이다. 

두 개의 산을 지나 동막골로 하산했다

 

자정이 막 지날 즈음 24시간 해장국집을 찾아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게을러질 수 있다고 옛 분들이 말씀하셨다. 바로 도심을 가로질러 사패산 입구로 걸음을 옮긴다. 

 

 

어둠을 헤치고 내려와 다시 어둠 속 산으로 

 

회룡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진다. 지금부턴 더 고되고 더 위험할 수 있다. 몰려오는 졸음을 견뎌야 하고 소진된 체력에 자칫 낙상사고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패산 오르는 회룡골 입구에서 회룡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범골로 올라왔으면 사패산 정상까지 왕복 1.2km의 능선길 수고를 덜지만 와보지 않은 회룡사 길을 택해서 오르기로 한다. 

    

“사서 고생이 아닌 공짜니까.” 

    

회룡사 스님들도 모두 주무시는지 안에선 기척이 전혀 없다. 계단이 유난히 많은 회룡사 계곡을 한차례도 쉬지 않고 올라 2,6km 거리의 사패산 능선에 도착했다. 산 아래 불빛도 졸린 모양이다. 점점 흐릿해진다. 

여기서 600m를 더 가 사패산 정상을 찍고 돌아와야 한다

 

“의정부 사는 친구 인섭이는 잠들었겠지? 사패산 꼭대기에서 멧돼지 안주 삼아서 한잔하자고 하면 올까?” 

    

역시 단순한 생각을 떠올리며 사패산 정상에 이르렀다. 산행을 시작한 후로 산에서는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멧돼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다시 이어 가야 할 길들을 살펴본다

 

잠시 의정부시 야경을 내려 보다가 포대능선 쪽으로 향한다. 사패산에서 도봉산으로 가는 길은 안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하산하지 않고 곧바로 능선을 따라 자운봉까지 갈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난다. 이제 사패능선을 지나왔고 도봉산 포대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자운봉이 가까워지면서 졸음이 몰려오려 한다. 도봉산 정상을 지척에 두고 날이 밝아온다. 삶은 달걀 두 개를 꾸역꾸역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곤 일출을 기다린다. 

10여 분쯤 웅크리고 앉아 졸았을까. 소리 없이 밝아오는 여명에 한결 정신이 개운해졌다.

 

도봉산에서 맞이하는 정갈한 새벽

도봉산 능선에서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순간을 반갑게 맞이한다

 

날이 밝자 사위에 낯익은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는 가슴을 크게 열어 새벽 정기를 들이마신다. 언제 보아도 도봉산 바위 절벽들은 섬세하게 조각한 것 같다. 멋진 절경이다.

 

“소나기는 피해 가자.”  

   

반쯤 몽롱한 정신으로 Y 계곡 릿지 등반길을 내려가다간 자칫 가루가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게 상책이다. 소나무와 바위가 평화롭게 어우러진 우회로를 택해 느긋하고도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딘다. 

자주 접했고 그래서 친숙하고, 다감한 도봉산 암봉을 끼고 정상으로 향한다. 아무리 이른 새벽이지만 자운봉과 신선대 부근이 이처럼 한적하다는 게 신기하다. 이처럼 신선한 기운을 혼자 독점한다는 게 감사하고 감회가 새롭다.

숱하게 와봤으나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도봉산을 접한다

 

Y 계곡 우회로를 거슬러 올라와 다시 계단을 오르면 도봉산의 주봉이자 최고봉 자운봉(해발 740m)이 의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절리의 면면마다 잘 발달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공에 의해 잘 다듬어진 바윗덩어리 여러 개를 포개 놓은 모습의 자운봉은 만장봉, 선인봉, 그리고 신선대와 함께 도봉산 사령부를 형성하고 있다. 

망월사 오름길인 원도봉 쪽에서 올라오다가 전망대에 서면 바로 전면의 이들 봉우리가 야박함이라곤 전혀 없는 너그러운 풍모를 보게 된다. 

그래서 도봉산은 대가족이 모여 사는 가정처럼 다복하다.  찾는 이들에게 심적 풍요로움을 안겨주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탐방객이 많은 산으로 존재하는 거로 생각한다.

도봉산 으뜸 봉우리인 자운봉紫雲峰은 높은 산봉우리에 붉고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있으니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봉우리라는 의미이다.

붉은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드리운 자운봉다운 광경을 보게 된다     

 

도봉산 사령부를 이루는 이들 네 봉우리는 미국을 빛낸 네 명의 대통령, 즉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나란히 조각된 러시모어Rushmore 산을 떠오르게 한다. 

흔히 우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비교 대상으로 주목받곤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며 자운봉과 마주 선 신선대로 향한다. 

     

“명색이 5산 종주인데 그 산들의 정점은 찍고 가는 게 당연하겠지?”  

   

이른 새벽, 사람 한 명 없는 신선대에 오른다는 게 괜히 뻘쭘하긴 하다. 자운봉이 도봉산의 최고봉이지만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은 신선대(해발 725m)다. 

신선대에서 사통팔달의 새벽 북한산국립공원을 쭉 둘러본다. 울산바위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대청봉에 비해 모자람이 있는가. 새삼 도봉산 가까이에서 산다는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가운데 우이암부터 그 뒤 1시 방향 인수봉과 왼편의 백운대를 거쳐 뒤로 펼쳐진 북한산 곳곳 봉우리들이 지금부터 가야 할 길이다.

도봉 주 능선 너머 지금부터 가게 될 북한산이 멀고도 넓게 펼쳐졌다

 

“어! 그런데 저렇게나 멀었던가?”   

  

다른 때보다 유난히 멀어 보여 침이 마르는가 싶더니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과 아득히 문수봉, 비봉 등 그림처럼 여겨지는 북한산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힘이 나는 느낌이다. 

수동적으로 이끌려 산에 왔다가 점차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자주 오르내리게 된 산행이다. 그런데 불수사도북!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상상인들 했겠는가. 바로 여기 도봉산의 매력에 푹 빠졌고 북한산과 사랑을 나누면서 산에 눈이 멀고 말았다. 

또 어딜 찾아갈 것인가. 또 어떤 산이 날 끌어당길 것인가. 잠시 회상에 잠기는데 불현듯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이 떠오른다. 죽을 때까지 산을 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그래, 누가 뭐래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는 거야.”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아득한 것처럼 원근감이 뚜렷한 북한산의 숱한 봉우리들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걸 보고 신선대를 내려선다. 신선대에서 내려와 주봉 쪽으로 향할 즈음 뒤늦게 구름을 빠져나온 일출 광경을 보게 된다.

능선 서쪽의 주봉과 칼바위를 지나노라면 의연하고도 견고한 산세와 변화무쌍한 조망에 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다. 사방 원근 두루두루 시선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이암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잠시 멈췄다     

 

도봉 주 능선을 지나면서 소귀 빼닮은 우이암을 점차 가까이하다가 오봉능선으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질감, 또 달라진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다섯 중 네 개의 봉우리가 머리에 상투를 튼 것처럼 바위 하나씩 올려놓은 모습이다. 

다섯 총각이 사는 고을의 원님에게 아주 어여쁜 외동딸이 있었는데 총각들 모두 원님의 딸을 사모했다. 누구를 사위로 삼을지 고민에 빠진 원님은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이곳 우이령에서 저 산을 향해 바위를 제일 높이 던진 사람에게 내 딸을 주마.” 

    

그렇게 해서 총각들이 던진 다섯 개의 봉우리가 이곳에 떨어져 나란히 세워졌다고 한다.  

   

“올해엔 더더욱 우의 있게 지내세요.”

“올해는 우리 막내 장가를 보내야 할 텐데 중매 좀 서게.”  

   

초롱초롱한 매무새의 다섯 형제, 오봉(해발 660m) 중 장형이 어려운 부탁을 한다.

 

“조금 더 있으면 어여쁜 여인네들이 올라올 텐데 돌을 멀리 던진 여인을 고르시는 게 어떨까요.” 

오봉은 나름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

 

오봉 중 상투가 없는 봉우리를 흘깃 보며 건성으로 내뱉고 등을 돌렸는데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올 때마다 자태를 달리하고 그 달라짐이 새로운 조화의 모습임을 깨닫게 하는 곳이 도봉산이다. 

특히 오봉은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어떤 틀에 의해 정연하게 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카오스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 형제의 규칙 감과 거기 짙게 밴 형제애를 느끼게 한다.

사계절 다르지 않게 도봉산은 가슴 한복판을 톡 쏘아 속을 산뜻하게 해 준다. 맑고도 신선한 특유의 정기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정지되곤 하는 현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부수는 곳, 편협한 시각을 새로이 자각시키는 곳. 거기가 바로 도봉산이다. 

그러하기에 수시로 찾아 탐심이라 할 만한 것들을 내던지고 정작 필요한 그 무엇으로 버린 자리를 채우게끔 한다.

도봉산을 하산하기 전에 북한산을 바라보니 가야 할 길, 백운대가 천리만리 아득하게 잡힌다. 이미 많이 지쳤다. 허기도 진다. 가장 길고도 먼 북한산을 통과해야 한다는 게 점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일단 도봉산에서 내려가자.”  

   

원통사를 지나 도봉산 날머리 우이동에 도착하니 졸음이 몰리고 몸이 축 처진다. 음식점에서 들어가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갈등이 이어진다.   

  

“이쯤 했으면 됐어.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

“난 할 수 있어. 겨우 하난 남겨놓고 포기할 거야?”

 

 

다섯 번째 북한산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 산으로

 

“그래, 가지 않을 수가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도봉산에서 내려와 청산가든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우이령 가는 길이 마지막 종주길 북한산 들머리이다. 11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아직은 가을임이 분명하다며 이파리 빛깔 바래지는 걸 거부하고 있다. 

청운 산장 직전 왼편 용덕사 가는 길이 불수사도북 다섯 산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여정의 진입로이다. 영봉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군에 입대할 때 까까머리 장정들을 마구 몰아넣는 교관의 지시봉처럼 보인다. 

북한산으로 향하면서도 무엇엔가 끌려가는 기분이다

 

심리적 중압감 때문일까.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시큰하게 당기는 듯하며 기분 나쁘게 저려온다. 저 아래로 보이는 그린파크 쪽 사우나에 가서 온탕에 지친 몸을 푹 담그고 싶다. 이쯤에서 걸음을 되돌리고 싶어 진다. 그런데 왜 돌아서지 못할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 나랑 가장 많이 접했던 산, 인수봉이 있고 백운대가 있는 북한산. 그런 북한산이기에 쉬이 등을 돌리지 못한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수도 없이 만나 서로 정을 쌓고 진정한 의를 품게 한 북한산이기에 그의 품 곳곳에 다시 안기기로 한다. 그의 딱딱한 관절들을 마디마디 주무르기로 한다. 

막 지나온 도봉산 암봉들도 고개 내밀어 유종의 미를 거두라고 성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내 여행에 있어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던가. 진정한 벗이 있는 곳은 거기가 어디든 무릉도원이요, 유토피아 아니던가.

소피스트의 궤변 같은 혼잣소리에 그나마 힘이 솟는 듯했지만 다리는 더 심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오른발을 내딛을라치면 왼 다리가 잡아끈다. 스틱에 잔뜩 상체를 의존하고 올라와 너른 공터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아 쉰다. 눈 아래 보이는 세상, 연무 뿌연 공간, 그곳에서의 시리고 저린 인생 1막 2장을 되뇌다 보니 지금 이 정도에 겨워 갈등했었다는 게 부끄러워지고 만다.   

  

“겨우 그 주제에 배부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아직 멀었어.”

영봉 건너편에서 오봉이 힘을 실어준다

 

자책은 자아를 일으켜 세운다. 반성은 그 즉시 멈춤을 움직이게 한다. 산은 역시 그 무엇에 견줄 수 없는 멘토이며 교훈의 산실임을 새삼 깨우치고 툭툭 엉덩이를 턴다. 

영봉 가는 길, 고개를 지나면 보이지 않을 것을 아쉬워하는 오봉 다섯 형제가 담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들어준다. 

    

“하얗게 눈 덮인 그대 형제들을 보러 곧 올 테니 혹여 그 안에 막내 장가가거든 꼭 알려주세요.” 

  

아래로 도선사 입구가 보인다

 

밑으로 도선사 입구를 내려다보고 영봉에 이르렀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영봉에 닿을 때까지도 등산객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주말이기 때문에 늦가을 정취를 맛보고자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영봉은 정면에 인수봉이 우뚝 서 있는 게 최대 조망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숱하게 산화한 인수봉의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곳이다. 

바위 속에 단단히 뿌리를 묻고 인수봉을 바라보는 소나무는 대할 때마다 달라짐이 없다. 늘 푸른 솔잎을 강단 있게 펼치면서 사계절 단 한 번도 그 푸름을 잃지 않는다. 마주 보이는 인수봉 단애에 매달린 클라이머들의 무사 산행을 염원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므로 낮은 소나무는 더욱 경외심을 지니고 바라보게 된다. 

소나무 앞에서 좌정하고 인수봉과 수인사를 나눈

“잡념이 많은 사람이구먼. 이젠 하루재로 내려가시게. 오늘 중으로 이 산 저 끝까지 가서 내려가려면 걸음을 재촉해야 할걸.” 

“알겠습니다. 손님을 쫓아내는 북한산 봉우리는 여기 영봉이 처음이군요.” 

     

인수봉 밑의 작은 암자와 비탈진 암벽에서도 꿋꿋한 생을 이어가는 소나무들에서 시선을 거두고 하루재로 걸음을 옮긴다. 영봉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바위 자락도 장관이다. 그냥 가려면 자꾸 눈에 차서 걸음을 더디게 한다.

머물러 쉼이 곧, 가고자 함이다. 산에서는 힘이 소모되기 전에 쉬어야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갈 수 있다. 거친 숨 몰아쉬면서도 지친 걸음 옮기는 데만 집착하다가는 볼 곳 보지 못하고 주는 것 받지 못하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 반 토막 산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합리화하며 쉼표를 찍었다가 다시 길을 간다.

인수 산장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인수봉엔 강인하고도 의지 충만한 클라이머들이 이미 인수봉 중턱을 올라가고 있다. 경이로운 장면이다. 단 한 번의 방심으로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긴장의 공간일 것이다. 

그들의 굽힘 없는 행동이 무탈하게 성취감으로 이어지길 진정으로 바라며 걸음 멈춰 올려다보면서 카메라 포커스를 맞춘다.

그들에겐 수직 비탈의 좁은 공간도 진한 우정과 조화로운 삶이 어우러지는 한없이 너른 터전일 것이다.

저들의 용기와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산과의 일체감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백운대가 점점 가까이 보인다. 지은 죄가 커서일까. 백운대를 직벽 하단에서 바라보았을 땐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의 신이 인간들의 두루 짓거리를 살피는 것처럼 여겨져 오싹할 때가 있다. 

백운대 바로 밑인 백운봉암문(위문)까지 올라서자 부지런한 산객들이 벌써 올라와 있다. 북한산 사령부에 해당하는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의 세 봉우리로 인해 삼각산이라고 칭하는데 이들 세 봉우리는 각각 워킹 산행, 암릉등반, 암벽등반인 클라이밍을 대표하는 명품 봉우리이기도 하다. 

    

제 몸 살라 영혼 깃들었던 가을 잎

활짝 펼치었다 슬금 오므라들더니

진통 떨치려 함인가, 스스로를 떼어내네.

은빛 엷은 햇살 풋풋하여

최고봉 백운대와 하늘 사이 고즈넉 바윗길 

눈에 차는 것마다 정갈하여 

신선한 새로움을 뿜어내는데

아아, 나만 그런가 보다.

가슴 뚫어질 듯

애수에 젖어드는 건. 

   

그냥 슬쩍 지나칠까 하다가 북한산 정상을 오르고 만다. 최고봉 백운대白雲臺(해발 836m)까지 올라온 건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 앞에서 정상까지 올라왔음을 인증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인수봉(해발 810.5m)을 보고 싶어서였다. 

인수봉 거대한 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심신에 묻은 티끌과 오염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상쾌하다. 

백운대에서 가야 할 성벽 길을 줌인해 본다

 

북한산은, 특히 백운대는 언제 누구랑 올라오든 감동의 공간이다. 하지만 혼자와도 감동 넘치는 환희의 장소임에는 조금도 달라짐이 없다. 

태극기 없는 빈 게양대 옆에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산길은 살아온 삶처럼 회한에 젖어들게 할 때가 있다. 

삶이 산과 다른 건 뿌듯한 성취감이 뒤돌아본 그곳에 반드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취가 사라진 행적은 얼마나 공허하고 슬픈가. 성벽 길을 내려다보고 백운대에서 내려선다. 바로 맞은편의 만경대(해발 799.5m)가 고개를 내밀어 수고로움을 치하해준다. 

만경대를 마주하고 백운대를 내려선다

 

백운봉암문 주변으로 훨씬 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다.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다. 산은 찾아온 이 단 한 사람뿐이어도 호젓하고 멋지지만, 사람들이 있으므로 해서 더욱 아름답다. 짙푸른 저고리, 울긋불긋 색동옷들을 모두 벗어던진 늦가을 허허로운 산엔 원색 차림의 산 사람들로 인해 중후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세상사 시름을 다 거둬들여 찾은 이들에게 새로운 의욕을 부어주기에 그렇게 어우러진 산과 사람들의 모습은 여백을 은은히 흐르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다시 행보를 이어간다.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용암문이 예전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대동문에서 오이 하나를 깨물고 곧장 걸음을 재촉한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지니 평지에서나마 속도를 내야 할듯싶다. 

보국문에 이르렀을 때는 다리가 떨리고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들어 조금만 내리막길이어도 게걸음이 되고 만다. 

거리 감각마저 상실 직전이다. 용 비늘처럼 길게 늘어진 성곽을 봐도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데로 내려가고 싶다.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 데나 쓰러져 눈을 붙이고 싶다.

긴 성곽을 보면서도 감각이 없다

 

대남문에서 비봉능선으로 접어들어 걷는지 기는 건지 모르게 흐릿한 정신을 스틱에 의지하다 보니 승가봉에 닿았다. 사모바위 인근에서 여유롭게 식사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누군가가 그랬다. 위를 보고 살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하다고. 밑을 생각하며 다리에 힘을 주자. 

    

“북한산만도 8할은 족히 걸었을 거야. 이젠 철조망 통과하듯 누워선들 못 가겠어?”

비봉능선이 유난히 길어 보인다

 

산과, 삶과 사람과……. 살아오면서 거듭되었던 기복, 그때마다 생겼던 사람들과의 갈등, 세상과의 매듭에 대해 산은 어떻게 풀어야 현명한지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특히 종착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이번 산행에서 잊을 건 잊게 하고, 버릴 건 버리게 하며, 때로는 풀어내게끔 지혜를 얻기도 했다.

 

 

죽을힘을 뽑아내 사랑과 우정을 지켜내다

 

이젠 도시가 그립다. 산이 아닌 속세가 더 좋아지려 한다.  

   

“과유불급이었어. 내 능력에 아직 턱도 없이 부족해.” 

    

자책이든 자학을 하건 이젠 그런 것도 내려가면서 할 일이다. 노을 지면 금세 어둠이 휘감을 것만 같아 불안하다.

 

“노을 첩첩이 쌓이기 전에 난 내려가려네. 해 짧아진 늦가을 어둠 몰려와 내 몸 휘감으면 난 울적해질 것만 같다네.”  

   

마지막 봉우리 족두리봉까지 왔다. 불광동이 내려다보이는데 울컥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족두리봉에서 잠시 무박 2일의 5산 종주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보려는데 오만에 대한 반성과 주제를 모르고 날뛰었다는 소크라테스의 불호령에 정신 가다듬고 마지막 내리막길을 더욱 조심하지만 1단 기어에 브레이크까지 밟은 대각선 갈지 자 걸음이 되고 만다.

마지막 족두리봉을 올려다보며 작별을 고한다

 

“잘 계시게! 어제오늘 다섯 산 수도 없이 많은 봉우리들 중 마지막 봉우리여!”   

  

속세로 향하는 길이 오늘처럼 반갑긴 처음이다.

 

거기가 그대,

북한산이 아니었으면

저는 분명 슬그머니

걸음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설악보다도, 지리산보다도 훨씬 더

그대를 사랑했기에

전,

죽을힘을 다 뽑아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렇다고 하더군요.

못할 게 가히 없는 거라고.

살아 진정한 친구 하나가 있다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게 살아있는

우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대와의 사랑을 지키려다

전,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단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사랑하다 다 못하고 죽으면 그건

정녕 완벽한 사랑이 아니란 생각에

전,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대와의 사랑,

그대와의 우정 지켜낸 지금

저는

복받치는 희열

끓는 그리움으로

마냥 뜨거워진 심신을 식히지 못한답니다. 

 

 

              

때/ 늦가을

곳 / <불암산 구간1142번 종점 - 중계 복지회관 - 청록 약수터 - 학도암 - 봉화대 - 두꺼비바위 - 불암산 정상 - 폭포 약수터 갈림길 - 덕능 고개 - <수락산 구간송신탑 - 도솔봉 – 치마바위 - 철모바위 – 수락산 주봉 – 도정봉 – 동막골 - <사패산 구간범골 탐방지원센터 - 회룡사 - 회룡골 계곡 - 회룡골 삼거리 - 사패능선 - 사패산 정상 - 사패능선 - 산불감시초소 - <도봉산 구간포대능선 - Y계곡 우회로 – 신선대 - 우이암 - 원통사 - 우이동 - 우이동 탐방지원센터 - <북한산 구간육모정 통제소 - 육모정고개 – 영봉 – 하루재 - 백운봉암문 - 백운대 - 대동문 - 대남문 - 비봉능선 - 승가봉 - 사모바위 - 비봉 - 향로봉 - 족두리봉 - 불광동 탐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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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www.bookk.co.kr

 

 

 

https://www.youtube.com/watch?v=0f85W21Yo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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