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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9_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장한림 2022. 5. 1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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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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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마담 셋이 부른 또 하나의 마담.

이른 아침부터 거의 한나절이나 걸려 승부를 낸 그 날의 포커판이 떠오르자 여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울산 진하 해안 인근, 정태찬의 하우스. 수많은 승부를 펼쳐보았었고 숱하게 이겼었지만, 그토록 짜릿한 승리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결정적 승부처에서 마도로스 최를 꺾은 건 실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속임수만큼은 프로에 가까웠어도 정당하게 겨뤄서 큰 승부를 겨루기에는 턱없이 실력이 모자란다는 걸 여치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급하게 더 많은 돈이 필요했기에 배짱과 근성만으로 카드 판에 앉았었다.

상대가 울산에서 알아주는 노름꾼 마도로스 최인데도 부족한 돈을 여기서 채워야 한다는 어긋난 승부욕이 앞섰다.

다섯 명이 시작한 포커판은 저녁나절이 되어서 40대 초반의 마도로스 최와 부산에서 온 50대 중반의 민경찬 사장, 그리고 20대 초반의 젊은 여치, 세 사람만이 게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해안에 어스름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마도로스 최가 카드를 몇 차례나 능숙하게 섞고는 돌렸다. 여치는 정면에 마주 앉은 그를 눈여겨보았다.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표정이나 자세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다. 소문대로 고수다웠다. 민 사장은 이미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남은 게임은 실상 마도로스 최와 여치가 자웅을 가리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 장을 받는 평범한 세븐 카드 게임이었지만 무제한으로 베팅을 할 수 있는 프리 베팅 룰로 겨루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밑천이 바닥날지 알 수 없다. 다섯 명의 선수한테서 나온 판돈 총액은 딱 15천만 원이었. 한 사람당 3천만 원씩 일시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돈이 떨어진 사람은 판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사전에 최종승자 한 사람이 결정될 때까지 판을 계속하기로 다섯 명의 선수가 게임 방식을 정한 것이다.

15천만 원이 한 사람의 선택된 승자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 판돈이 마도로스 최와 여치에게 각각 절반 정도씩 몰리고 있었다.

오랜 경력의 뱃사람답게 우람한 근육질의 마도로스 최는 수염까지 덥수룩해서 더욱 강인하게 보였다. 반면 여치는 새파랗게 젊고 곱상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이런 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어울리지 않았다.

 

 

 

여치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젊은이로군.”

 

게임이 시작되기 전, 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마도로스 최가 정태찬의 소개를 받고 웃으며 던진 말이었다.

 

명성은 진작부터 들었습니다. 오늘 제대로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여치는 정중하게 고개 숙여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다른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원탁 테이블에 앉았었다.

나약하고 여린 느낌을 주는 여치. 여치는 마도로스 최뿐 아니라 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의 눈이나 머리에 자신의 인식이 그렇게 심어졌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 인식을 싹 뒤집어버리겠다는 다짐과 각오로 판에 앉아 지금까지 견뎌왔다.

그런데 거의 막바지에 수북이 쌓인 상대의 밑천이 초조하게 만든다. 그의 돈은 어지간해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그 말은 뒤집으면 내 돈이 그에게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조급해지고 있는 걸 의식했다.

마도로스 최에게 위압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다. 패가 돌려졌다. 여치는 카드 패로 눈길을 돌렸다.

아아! 이게 웬 행운인가! 처음 받은 세 장의 패가 모두 마담, Q, queen, 이었다.

마담 트리플 출발, 여치는 다른 판과 마찬가지로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이번 판에 끝내리라고 마음을 다져 먹었. 더 끌면 불리해진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나흘간이나 한 자리에서 승부를 가려 결국 최종승자가 됐다는 마도로스 최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에피소드에 다소 과장이 섞였다 해도 완전히 지어낸 말은 아닐 터였다. 오늘 한나절 동안 그의 진가를 충분히 확인했다.

보스인 민 사장이 넉 장째의 카드를 먼저 받았다. 받자마자 바닥 돈만큼 베팅했다.

그러자 마도로스 최가 나직한 저음으로 레이스를 불렀다. 여치가 콜! 다시 민 사장이 되받아 레이스! 마도로스 최가 꼬리를 내리며 콜! 여치도 콜!

다섯 장째. 여치는 마담 세 장에 날개를 달지 못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의 레이스 행렬에 콜을 부르며 따라붙었다. 보아하니 지금까지 이어온 판 중 가장 크게 불붙을 게 분명했다.

이미 수북이 쌓인 판돈이 막바지 화력에 부채질하는 분위기였다. 진작 손을 털고 일어선 두 사람이 꿀꺽, 침을 삼키며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하우스 주인인 정태찬도 팔짱을 낀 채 조용히 판을 주시했다.

게임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카이저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가 마시는 걸 보고서야 그제야 옆에 캔맥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이저는 진작 세 사람 자리에 맥주 한 캔씩을 놓았었다. 여치가 맥주를 땄다.

메마른 입에 맥주를 부어 넣자 이를 데 없이 시원했다. 다른 두 사람은 캔에 손도 대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민 사장은 넉 장째에 나인9, nine 트리플이 붙은 것 같다. 나인 타이틀과 스트레이트를 동시에 노리면서 무리한 레이스를 하고 있지만, 그도 아직 메이드가 되지는 못했다.

마도로스 최는 다섯 장째 하트 무늬 네 장의 포 플러시를 맞추고 한 장의 하트를 더 기다림 직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여치는 오로지 마담 타이틀만을 노리고 무조건 이 판에 승부를 결정짓기로 한 처음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다. 이제까지의 승부처와 달리 불안감이 몰려든다. 여섯 장, 여치가 손으로 입가를 문지른다. 정확히는 한숨이 새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가렸다는 게 옳다.

여치의 카드는 그대로 마담 트리플에서 진척되지 않았다. 입안에 침이 말랐다. 포커를 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무늬목으로 상대 눈치를 보며 서서히 판돈을 챙기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미리 조작한 카드, 탄을 이용해 어느 한순간을 노리며 상대 선수들을 견제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긴박감이 여치를 짓누른다. 이런 압박을 느끼며 패를 받기는 처음이다.

손놀림이나 기술이 전혀 배제된 진검승부였기에 그렇기도 했겠지만, 이 자리의 판돈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패를 살핀 민 사장이 사이드를 표시했다. 이미 판돈을 모두 들이밀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건 돈만으로 나머지 패를 봐야 한다.

마도로스 최와 여치의 승부가 관건이다. 마도로스 최가 에이스A, ace 하트를 받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광분하다시피 판돈을 밀어 넣는다.

플러시 메이드? 그러나 여치는 그렇게 보아주지 않았다. 이제 겨우 넉 장의 하트를 채웠음이다.

여치는 그의 패를 그렇게 읽었다. 설사 다섯 장의 하트로 플러시 메이드가 되었더라도 꼬리를 내릴 수는 없었다.

마도로스 최도 이번 판에 사활을 걸기로 했음이 분명했다. 다행이다. 그 또한 조급함을 보인다. 조급증은 선수로서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승부처라고 판단하고 평정을 잃는 순간 승부사의 무덤이 될 수 있는 게 도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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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는 그가 밀어 넣은 돈의 두 배를 밀어 넣으며 판을 키웠다. 낮고 작은 여치의 목소리를 마도로스 최가 재빠르게 가로챈다.

레이스! 여치가 한 차례 숨을 들이마시더니 콜! 민 사장이 자신의 패를 쥐고 눈을 감는다. 실의의 의미. 그런 민 사장을 보고 아주 잠깐 마도로스 최가 야릇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여치는 민 사장의 속처럼 자신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혀로 입술을 적시려고 문질렀지만 침이 묻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 탓에 침이 말라버렸음이다.

희든 싸움에서 한 번만 더 레이스가 붙으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최후 승자가 될 상황이다.

일곱 장째 마지막 카드가 돌려졌다. 여치는 히든카드에 손도 대지 않았다. 마도로스 최가 자신의 마지막 카드를 살짝 들춰보고는 베팅을 했다.

레이스! 여치는 카드도 보지 않고 두 배의 판돈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한 가닥 실낱같은 기대를 마도로스 최가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다시 레이스를 외친다.

그의 얼굴에 조금 전보다 짙은 미소가 스쳤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여치는 그의 냉소에 거부감을 느꼈다. 불안스러운 초조감이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마도로스 최는 이미 승리를 장담하는 것 같았다. 플러시가 떴을까! 떴어도 할 수 없다. 히든카드를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마담 트리플로 출발한 자신의 카드가 날개를 달지 못하고 트리플에서 굳어버렸어도 이젠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물러서 봐야 회복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되받아 레이스! 여치가 판돈 전부를 밀어 넣었다. 끝까지 히든카드를 보지 않고 내내 쌓아온 판돈 전부를 걸었다. 진작 마담 타이틀, 풀 하우스로 메이드 되어있음을 알아달라는 허접스러운 제스처였다.

한 번 더, 남은 돈으로 불씨를 살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는 걸 암시하려 했지만, 마도로스 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따라 들어왔다. 마도로스 최가 콜을 외쳤다.

오늘 판돈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금액이 테이블 한가운데 쌓였다. 이제 바라는 건 히든에서 날개가 붙어야만 한다. 상대는 최소한 플러시가 확실하다.

힘없이 카드를 펼친 민 사장은 나인 트리플에서 날개를 달지 못하고 히든에서 스트레이트로 메이드 되었다. 민 사장도 마도로스 최한테 밀렸다고 판단했다.

마도로스 최의 엷은 미소가 주름까지 팬 웃음으로 변했다. 마도로스 최의 카드가 펼쳐졌다. 크윽! 여치는 그가 카드를 펼친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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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에이스 세 장에 킹K, king 두 장. 고작해야 플러시일 거라 여겼던 그의 카드는 에이스가 떨어지면서 에이스 타이틀이 된 것이다.

그가 광분한 모습을 보였던 건 상대를 끌어들이려는 액션이었다. 얼마나 흥겹게 베팅을 즐겼을까. 소리 없는 승자의 웃음이 갑자기 시끄러운 환호처럼 들렸다. 마도로스 최가 처음으로 씩, 입을 벌리고 웃는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객기를 부리더니 자업자득이야. 아직 나랑 게임을 하기에는 실력이 멀었어. 마도로스 최가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여치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틀어막았다. 승부엔 져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히든카드를 젖힐 기운마저 빠지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오던 대로 마담이 날개를 달았으면 더욱 비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체념한 상태에서 힘없이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기대도 하지 않던 일곱 장째 카드는 마담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카드, 바라지도 않았던 나머지 마담 한 장이 세 장의 마담을 찾아온 것이었다. 마담 넉 장, 퀸 포커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실제처럼 들렸다. 그날의 긴 승부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민 사장이 혀를 내두르며 놀란 토끼 눈을 치떴다.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놈, 별명처럼 곱상한 놈에게 어이없이 당한 울산 최고의 승부사, 마도로스 최. 비웃음 띄운 그의 얼굴이 장승처럼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백지장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타이어 소리가 뿜어졌다. 맥주를 마시던 카이저가 왼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고, 거구의 정태찬도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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