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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13_ 대통령의 여자

장한림 2022. 5. 1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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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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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통령의 여자

 

 

 

 

늦가을 기운이 교정 곳곳에 쓸쓸하게 묻어났다. 살지고 풍성했던 나무들이 거뭇한 나신을 초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들을 망연히 바라보는 오수연은 괜히 심란하기까지 했다. 졸업이 다가오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심통이 생기기도 했다.

 

- 오수연! 넌 뭐니? 4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니?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축 늘어진 기분으로 교정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데 누군가의 손이 살며시 어깨에 올려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유현수 선배다. 그가 가을 하늘처럼 청아한 웃음을 띠고 자연스럽게 수연에게 어깨동무한다.

 

뭐야? 오수연답지 않게 그늘이 잔뜩 드리워서 말이야.”

쓸쓸하네요, 가을을 타나 봐요.”

가을 탈 땐 소주가 약이지. 한 잔, 어때?”

 

현수가 소주잔을 꺾는 자세를 취하자 수연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그럴까요.”하고 받았다. 기분이 가라앉은 탓이었을까. 상대가 유현수라는 인물이기 때문이었을까. 우울하고 초조하기까지 해서 술자리가 내키지 않았지만 그만 아무 생각 없이 동의하고 말았다.

수연은 현수가 입대한 후에 막 신입생으로 입학했었다. 육군을 만기제대하고 현수가 복학했을 때 이미 학내에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을 들어왔던 터라 약간의 경외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J 대학의 명물 중 명물로 재학생들의 입에 진작부터 오르내린 유현수 선배를 처음 본 건 그의 복학기념 환영회 때였다. 그가 군에 가기 전인 3학년 때 그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비록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교 내에서는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국내영화사 중 세 손가락 내에 꼽힌다는 TH 프로덕션에서 제작했다.

학부 내에서 전설처럼 회자하던 그를 처음 보면서 준수한 외모뿐 아니라 지성과 감성이 적절히 버무려진 모습과 행동에 호감이 갔다. 환영회에는 이미 졸업한 선배들까지 참석해서 그의 복학을 축하했다.

 

장래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끌 유현수를 위하여!”

위하여!”

 

졸업생이자 현수와 입학 동기인 M 방송사의 김제훈 PD가 잔을 높이 들어 선창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따라 외치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현수는 환하게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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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선배!”

 

수연은 술자리가 무르익자 앞자리에 앉은 그에게 빈 잔을 건네며 싱긋 웃었다. 나란히 앉은 경진이와 함께 묶어 스타 지망생들이군.” 하며 잔을 받았다. 예쁘게 생긴 후배를 지레짐작해서 배우나 방송탤런트 지망생쯤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는데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출연도 하고 싶어 별도로 연기학원을 다니며 수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극작가나 시나리오작가로서의 공부에 더욱 매진해왔고 문학 강좌도 가능하면 빼먹지 않으려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시나리오 창작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에게 더욱 호감을 지니게 된 건지도 몰랐다.

수연은 환영회가 있고 난 뒤에 유현수 선배와 더욱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습작에 열중하는 것을 알게 된 그가 시나리오의 소재 발굴이나 주제선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영화의 현주소를 꿰뚫다시피 했다. 예술성과 흥행을 고려한 현실성에 섬세하게 접근했다. 많은 영화를 그와 함께 감상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기탄없이 토로했다.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그의 지도로 학업이 더욱 즐거울 수 있었다.

남자로서의 호감도 느꼈지만, 지 그런 쪽으로의 접근은 어려웠다. 그는 친구나 선배로서 더없이 다감했어도 이성으로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에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는 일면이 엿보였다. 수연은 그에게 여자로서 접근했다가 괜히 천박하게 여겨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학교 앞 주점, ‘심산유곡에 마주 앉아서도 수연은 괜히 현수가 어렵다. 그에게 이성 간의 감정을 내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참으로 멋진 남자라는 느낌을 지녀왔었다. 그 느낌은 언제든 그와 교제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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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선배는 나랑 단둘이 있어도 후배라는 생각 외엔 별다른 느낌이 없죠?”

 

두 잔을 거푸 마신 다음에 다소 어색한 느낌을 지우려 던진 말인데 어휘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선배랑 마주하면 내가 돌멩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요.”

 

현수는 한 잔을 단번에 비우더니 카아! 술맛 좋군.” 며 다시 잔을 채웠다. 수연은 그를 빤히 바라보기가 어려워 잔을 입에 대면서도 슬쩍 시선을 피했다.

농담처럼 속내를 비쳤지만, 수연은 현수로부터 별 대응이 없자 썰렁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몇 안 되는 손님들은 대개가 학생들이다. 취업이 어려워 학생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이미 사회에 진출도 하기 전에 중늙은이처럼 죽을상들이다.

 

- 어떤 돌멩이가 남자 가슴을 설레게 하겠니.

 

소주를 들이켜며 본 그녀의 옆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여전히 수연은 이지적이고 아름다우며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현수는 수연에게 여러 면에서 동질성을 느껴왔었다.

가난한 고학생이란 공통점이 그랬고 학과 내의 몇 안 되는 작가 지망생이. 실력도 탄탄했다. 여학생이기는 하지만 소신이 뚜렷했고 어려움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동지 의식에서 출발한 수연의 이미지는 나무랄 데 없는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빛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그녀야말로 속으로 그리던 이상형이라고 여겨오면서도 후배로 대하는 언행 이상은 자제했었다.

 

- 수연이의 말은 여자로 보아주길 바란다는 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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