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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_ 창덕궁

장한림 2022. 9.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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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_ 국내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에 등재된 창덕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의 조선 5대 궁궐 중 1997년에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의 주소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4(태조 3)에 한양으로 천도해 정궁(법궁)으로 경복궁을 지었는데 3대 태종 이방원은 향교동에 이궁移宮 건설을 명해 1405(태종 5)에 창덕궁을 짓게 하였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이러한 양궐 체제兩闕體制의 두 궁 사이를 오가며 거주한 경우가 많았다. 태종은 스스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경복궁을 기피했다. 그래도 중요한 나랏일은 주로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회루 등에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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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태종 5) 창건 당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 내전 118칸 규모였다. 궁궐로 기능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들은 거의 갖춘 상태였지만, 완공 이후에도 창덕궁을 계속 증축했다. 1412(태종 12)에는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세웠다.

 

 

 

4대 세종이 집권 후반기부터 경복궁에 머무르며 창덕궁의 활용이 줄어드는 듯했으나, 5대 문종 이후 조선 전기 동안 여러 왕들은 창덕궁을 애용했다. 7대 세조를 거치면서 창덕궁 후원 규모는 태종 때보다 3배나 더 커졌다. 9대 성종 때는 창덕궁 옆에 있던 수강궁壽康宮을 개축하여 창경궁이라 명명하였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가 한양을 피해 떠나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 전란이 끝난 후 선조는 경복궁을 중건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물자가 소모될 것으로 예측되자 경복궁 중건을 포기하고 창덕궁을 먼저 중건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죽기 3년 전인 1605(선조 38)부터 창덕궁 중건 공사를 시작했다.

 

 

 

창덕궁은 광해군 즉위 후인 1609(광해군 1)에 중건하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610(광해군 2)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창덕궁을 법궁으로 선포했다. 창덕궁과 경희궁은 재건되었으나 흥선대원군 집권 이전까지 재건되지 못한 경복궁은 긴 세월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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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이후 창덕궁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조선 후기 내내 정궁으로 존립했으며, 조선 후기 대부분 정치적 사건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창덕궁은 조선왕조 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의 주된 거처로 쓰인 궁궐이었다.

 

 

 

1868(고종 5)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창덕궁은 정궁의 지위를 상실했으나 그 이후로도 고종과 왕실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며 거주하는 등 여전히 창덕궁을 중요한 궁으로 인식하고 활용했다. 그러다 1897(건양 2)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이 환궁한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나서 경운궁(덕수궁)을 황궁으로 사용했으나, 1907(융희 원년) 순종이 즉위한 후에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39년 만에 다시 정궁이자 황궁이 되었다.

 

 

 

1910(융희 4) 경술국치 이후에는 구 대한제국 황실이 창덕궁을 소유하여 거주했다. 전 황제였던 순종은 이왕李王으로 강등당했고,, 창덕궁은 순종의 궁호로도 쓰였다. 1912년 일제는 후원 및 인정전 등 창덕궁 주요 전각을 일반에 공개했다. 1917년의 화재로 내전 일곽이 전소해 조선총독부에서 경복궁의 전각을 옮겨다 재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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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덕수궁이나 경복궁 못지않게 근대화의 영향을 받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궐 내부에 덕수궁 석조전 같은 양관이 세워지지 않았을 뿐 주요 전각들의 내부는 서양식 형태이며, 정전인 인정전이나 임금의 집무실 격인 선정전, 생활공간인 희정당과 대조전 내부에는 전구가 달려 있다.

 

 

 

일제가 패망한 후인 1947년에는 미군정에서 몰수하여 정부 소유가 되었고 그 후 대한민국 정부(문화재청)의 소유가 되었지만, 정부의 배려로 1960년대 이후 순정효황후, 영친왕, 이방자, 덕혜옹주 등 구 황실일족이 일부 전각(창덕궁 낙선재)에서 거주하였다. 그러다 19894월에 이방자의 별세를 끝으로 완전히 구 대한제국 황실과의 인연이 끊어졌다.

 

 

 

창덕궁 전각들은 인정전을 포함한 대부분이 원형이기에 궁궐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특히 돈화문敦化門, 인정전仁政殿, 선정전宣政殿 등 많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조선의 다른 궁궐들보다 상대적으로 창덕궁의 가치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창덕궁은 건물들이 지형을 따라 자유롭게 흩어져 배치되어 있다. 궁궐의 정문과 정전이 완전히 틀어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는 창덕궁의 지형이 주변 언덕과 어우러졌으며, 특히 창덕궁 바로 남쪽에 위치한 종묘의 지맥을 훼손하지 않고자 조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축 배치는 동양의 다른 궁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창덕궁은 대한민국의 독특한 궁궐 건축 배치를 보여주는 궁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의 아름다운 풍경 중 으뜸은 궁 북쪽의 정원인 창덕궁 후원後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이 정원의 명칭은 후원이 가장 많고 이외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의 금원禁苑’, 궁궐 북쪽 정원이란 뜻의 북원北苑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동안 이 정원을 칭했던 이름은 비밀의 정원이라는 뜻의 비원秘苑으로 통용되기도 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 관련 문건에도 후원을 칭하는 명칭은 비원Piwon, the Secret garde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201051일부터 시간제로 관람하였던 창덕궁은 후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 전면 자유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종묘가 시간제 관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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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관람으로는 창덕궁 달빛기행이라는 테마를 설정하여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두 달 정도 사전예약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단풍철은 후원 관람의 최고 성수기에 해당하는 만큼 발 빠른 인터넷 예매가 필수다. 창덕궁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늦은 11월 중·하순까지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상 창덕궁의 명소로 꼽힘는 후원(금원)의 경우 정해진 시간마다 해설사와 동행하여 약 100여 명의 일정한 인원만 입장 가능하며 관람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이다. 출입이 통제된 만큼 내부 자연경관의 보존이 잘 되어 있어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입장 통제 등의 이유로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가 권역상, 행정관리상 분리되어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이 세 곳이 하나의 큰 권역으로 인식하였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담장 하나를 맞대고 선 하나의 궁궐로 보아 두 궁을 합쳐 동궐東闕’(경복궁의 동쪽 궁궐)이라 불렀다. 종묘의 경우 제례공간으로써 일상생활과 정치를 펼치는 궁궐과 성격상 판이하게 다르지만 북악산에서 뻗은 봉우리에 함께 위치하여 지맥을 공유하는 하나의 권역으로 인식했다.

 

 

 

문의 및 안내

TEL. 02-3668-2300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개방시간

매일 09:00~18:00 (2~5, 9~1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https://www.youtube.com/watch?v=kLQmn07iu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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