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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명소 탐방/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_ 종묘

장한림 2022. 9. 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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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_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보물에 비견되는 서울 종묘

 

 

중국 고대 역사를 통해 익히는 고사숙어의 지혜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고사숙어 혹은 사자성어는 대개 한자문화권 국가인 중국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공자, 맹자 등 제자백가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춘추전국시대부터 소설 초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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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외대문(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2번지에 자리한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유교 사당으로 1963118일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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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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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正殿

 

원래 의미의 종묘는 정전正殿을 가리키며, 태묘太廟라고도 하는데 면적은 186,786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전제왕조 당시 왕실과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였다.

 

 

영녕전永寧殿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종묘가 세계 최고의 건물 중 하나이며,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언급한데 이어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일본의 건축학자들도 한국의 종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동양의 파르테논이 아닐까 하는 기록을 남겼다

 

 

공신당

 

중국의 우虞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종묘 제도는 은殷·주 시대에는 7대조까지 묘廟에 봉안하는 7묘제가 시행되다가 명明나라 때에는 9묘제로 바뀌었다.

 

 

제정

 

우리나라의 경우 종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92(고구려 고국양왕 9)에 보이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7묘 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7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를 조천祧遷이라고 하였다.

 

 

 

 

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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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

 

종묘의 정전에는 19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모셨다. 신주의 봉안 순서는 정전의 경우 서쪽을 상으로 하고 제1실에 태조가 봉안되어 있으며, 영녕전에는 추존조追尊祖인 4왕(목조·익조·탁조·환조)을 정중正中에 모시고 정전과 마찬가지로 서쪽을 상으로 하여 차례대로 모셨다. 이를 소목제도昭穆制度라고 한다.

 

 

어정

 

종묘의 조영造營1394(태조 3) 12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동쪽에 영건營建을 시작하여 다음 해9월에 1차 완공하였다. 그 뒤 1546(명종 1)까지 계속되었으며,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광해군 즉위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궁궐을 짓는 일보다 먼저 서두른 공사가 바로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1394(태조 3) 10월에 한양으로 천도하여 종묘를 짓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124일에 시작한 종묘 공사는 다음 해인 1395(태조 4)929일에 끝났다.

 

 

망묘루

 

이때까지만 해도 종묘에는 정전正殿만 있었으나 1419(세종 2)에 정종이 세상을 떠나 신위를 모셔야 할 상황에서 기존의 정전 5실이 만원이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2년 뒤 정전 서쪽 곁에 별묘인 영녕전永寧殿을 세웠다

 

 

칠사당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왕들은 점점 늘어나고 신위를 모실 종묘의 방이 점점 모자라자 명종 때 정전을 4칸 더 증축해 11칸으로 규모가 커졌다. 영녕전은 1608(선조 41)에 종전보다 4칸을 더 증축한 10칸 규모로 중건되었다. 이후 1667(현종 8)2칸을, 1836(헌종 2) 다시 4칸을 더 증축하여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

 

 

 

향대청

 

재위 도중 폐위된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은 공식적으로 임금이 아닌 왕자 신분으로 강등되었으므로 신위가 모셔지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숙종 때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조선왕조 재위 임금 신위 총 25위가 모셔지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영녕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제실에 의민 태자와 자행 비의 신위를 모시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전과 영녕전의 감실이 정확히 딱 채워진 것이다.

이 외에도 정식으로 재위한 임금은 아니지만 덕종, 원종, 장조, 문조 등 추존 임금들도 종묘에 모셔져 있다.

 

 

종묘광장공원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1985년 종묘광장공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1991년 민자 유치로 종묘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면서 임금이 종묘에 배향할 때 쓰던 우물인 어정御井이 마르고 상당한 지하 유물이 멸실되었다.

 

 

 

 

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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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월에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11, 율곡로가 개통된 지 90년 만인 2022720일에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로 8가량의 수풀을 덮어 끊어졌던 녹지 축을 잇는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722일에 개방되었다.

 

 

북신문

 

새로 조성한 녹지공간엔 참나무와 소나무, 국수나무 등, 우리 고유의 나무를 심었으며 왕이 종묘를 방문할 때 이용했던 ‘북신문’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위로 길이 나 있어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는 개방되어 들어갈 수 있으며, 북신문 앞에서는 철 담장 너머로 작게 창경궁이 내다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를 오가듯 창경궁과 종묘 사이도 바로 오갈 수 있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

 

 

전사청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 157

 

문의 및 안내

TEL. 02-765-0195

 

홈페이지

http://jm.cha.go.kr/

 

 

 

 

https://www.youtube.com/watch?v=8RLd51o_f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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