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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과 산청군 경계에 있는 황매산黃梅山은 가야산과 함께 합천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정상 일대에 넓고 평평한 벌판이 있는데 이 너른 뫼를 경상도 사람들이 누른 매로 발음하여 한자로 풀이하는 과정에서 황매산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 꽃잎을 닮아 마치 매화꽃밭에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고 의미를 업그레이드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한자어의 노란 매화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명칭이다. 황매산 중 합천군 일대의 일부 지역은 1983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에는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에 선정하였고, 2015년 산림청에서 발표한 한국 야생화 군락지 100대 명소에도 선정되었다.
풍요의 상징, 황매산
작년 가을, 능선을 따라 일렁이는 그윽한 억새의 풍광을 보았었고 올봄엔 황매산의 봄을 수놓는 만개한 철쭉을 보러 왔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황매산은 억새도 멋들어지고 곧 보게 될 철쭉군락도 아름답지만, 만물상처럼 펼쳐진 기암 준봉들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황매봉을 중심으로 모산재, 국사봉, 효렴봉과 장군바위, 망건바위 등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암봉, 암석들에 이끌려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 마을에 내린 인원은 버스에 함께 탄 30여 명 중 여덟 명이다. 다른 이들은 철쭉 축제장을 중심으로 자유 산행을 하고 최종적으로 모산재 주차장에 집결하여 귀경하기로 하였다.
산청군은 군내 일부 지역이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임야가 군 면적의 77%를 넘게 차지한다. 군의 서쪽에 솟은 천왕봉을 기점으로 지리산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있으며, 북쪽에는 황매산과 송의산이 있고 군의 중앙부에 웅석봉과 둔철산이 솟아있다.
도상거리 약 11km의 산행이므로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다. 장박에서 700m 정도 올라오면 황매산 진입로가 나온다. 초입부터 연분홍 철쭉이 활짝 피었다.
2km를 올라와 너백이 쉼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는 산청군에서 세운 이정표다. 그리고 600m를 더 걸어 2.6km 지점에 세운 이정표는 황매산 군립공원이라 표기하여 합천군에서 세웠다. 정상까지 1.5km가 남았음을 표시한다. 여전히 철쭉은 만개했고 두 군의 꽃잎이 그 모양이나 색깔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척촉蹢躅이라 한다지. 그 색이 너무 고와지느냐는 선비의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고 하여 철쭉을 표현하는 말이다. 멈출 것도 없이 철쭉은 걸음 따라, 걸음에 맞춰 한껏 색감을 뽐내고 있어 황매산을 유람하는 선비는 그저 웃음만 흘리면 될 것이었다. 더더욱 평탄하여 걷기 좋은 능선이 이어지며 정상을 좁혀간다. 이번엔 산청군과 합천군에서 같은 자리에 이정표를 세웠는데 거리 표시가 서로 다르다.
“경남도청이 직접 나서서 조정하거나 중재해야 할 사안은 아닌 듯도 하고……”
동반한 일행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등을 돌린다. 황매산 정상 황매봉(해발 1108m)에는 먼저 온 산객들이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바위 위의 좁은 정상석 앞에 줄을 서 있다. 아래로 잔잔하게 물결 일렁이는 합천 호반이 내려다보인다. 저 푸른 물에 이 산의 그림자가 잠기면 매화꽃이 잠긴 것 같다고 하여 수중 매라고도 불리는 합천호이다. 호수에서 눈을 건져 올리면 지리산, 덕유산과 가야산 등 육중한 명산들을 일일이 접할 수 있다.
정상에서 하산하다 다시 올라선 바위 봉우리에서 넘실대는 황매평전의 붉은 물결을 대하게 된다. 황매평전은 1000m 높이의 산정에 자리하여 남북으로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을 이루며 뻗어있다. 수십만 평의 고원에 펼쳐진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선홍 빛깔이 한낮의 봄 햇살까지 받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과 함께 3대 철쭉 명산으로 꼽히는 황매산의 만개한 철쭉을 직접 보자 개인적 견해로는 이곳을 첫 손에 꼽고 싶을 정도로 광활하고 그 색감도 아름답다.
초가을에는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겨울이면 티끌 한 점 없는 대설원으로 변신할 고원의 중심에 서보니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여 전체적으로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는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철쭉 군락지인 황매평전 아래에 많은 차가 세워진 주차장이 보인다. 산정 바로 아래까지 차량이 올라올 수 있다. 모산재로 향하는 하산로가 평전을 두 쪽으로 갈라놓으며 이어졌다. 내려와 돌아보면 봉우리의 왼쪽은 온통 붉은색이고 오른쪽은 초록이다. 철쭉나무는 산 등을 중심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심었나 보다. 보기 드문 풍광에 많은 이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모산재, 삼라만상의 기암 절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황매성문과 성곽을 지나 해발 1000m 고지에서 모산재로 방향을 꺾는다. 황매산 철쭉 제단이 놓여있고 제단 뒤로 많은 깃발이 세워져 바람에 펄럭인다. 모산재에 이르는 철쭉 군락지는 꽃길로 만들어져 여기서도 많은 이들이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저 꽃들이 모두 지면?”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철쭉 꽃잎이 모두 떨어진 황매평전을 떠올리자 갑자기 스산해진다. 그러나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는 자연 섭리에의 순응이자 반복이라 여기니 텅 빈 평전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 이형기 -
곧 다가올 녹음을 예비하며 떨어지는 꽃잎에서 이별을 성숙하기 위한 결별의 의식으로 승화시킨 이형기 시인의 작품이 연결되는 것이다.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나의 청춘은 꽃답게……”
한 구절 시구를 웅얼거리면서 자연석을 세워 고도를 표기한 모산재(해발 767m)에 닿았다. 신령스러운 바위산을 뜻하는 영암산으로도 불리는 모산재는 합천 8경의 하나답게 삼라만상의 기암 절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주변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두텁게 흙이 깔린 평지와 우거진 숲이 감싸고 있다.
보기에도 신비할 정도로 바위 끝부분이 갈라진 순결바위는 평소 사생활이 문란한 사람이 이 바위틈으로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높은 쇠사다리 위의 널찍한 바위에 돛대처럼 우뚝 솟은 돛대바위가 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은하수로 가던 중 배가 바위에 걸렸다는 곳이다. 또 고운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득도바위, 국내 제일의 명당이라는 정상 부분의 무지개 터까지 모산재는 그야말로 갖출 걸 모두 갖춘 독립된 산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황매산의 무학 굴은 합천에서 출생한 무학대사가 수도한 동굴로 전해진다. 황매산은 ‘삼무의 산’이라고도 전해지는데 수도승 시절 무학의 어머니가 산을 왕래하며 수발하다 뱀에 놀라 넘어지면서 칡넝쿨에 걸리고 가시에 긁혀 상처 난 발을 보고 100일 기도를 드려 뱀, 칡, 가시가 없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황매산은 여러 코스의 등산로가 있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다면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사시사철 자주 찾고 싶은 곳이다. 이 산 멋진 암릉을 두루두루 섭렵하며 사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싶어 진다.
때 / 봄
곳 / 산청 장박리 - 너백이쉼터 - 헬기장 - 황매산 - 황매평전 - 베틀봉 - 모산재 - 황포돛대바위 - 합천 중촌리 주차장
https://www.youtube.com/watch?v=LFwpDGuXCCQ&list=PLk1KtKgGi_E5Hmrr7WVs_I40SvW54I1B6&index=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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