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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연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가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 진입한다. 소나무와 철쭉, 다양한 산야초가
자생하는 산길에서 다양한 기암괴석과 남해를 조망하며
제암산이 호남의 명산임을 각인하게 된다.
주말 철쭉 산행을 한다는 산악회의 연락을 받고 망설인다. 이름도 낯선 산에 멀리 전라남도 보성까지 원정 산행을 한다니 선뜻 나서 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리무진 버스로 아주 편안하게 모실 겁니다.”
산악대장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북한산 숨은 벽 능선을 가려던 계획을 바꾸고 만다. 설친 잠을 버스에서 편안하게 보충하고 눈을 뜨자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의 제암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이다. 휴양림의 첫인상은 아담하고 깔끔하다.
전라남도 동남부 해안마을 보성군은 예로부터 의향, 예향, 다향의 3보 향으로 불려 왔다. 미곡 작물, 원예작물과 남해안에 면한 산록을 이용한 차 재배와 약용작물의 생산이 많은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전국적으로 보성 녹차가 유명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으로도 정평이 난 지역이다.
한반도가 해방과 분단을 맞은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한국전쟁 휴전 후 분단이 굳어진 1953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남도여관(보성여관), 홍교, 부용교와 제암산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성군 벌교읍에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 건립되어 있다.
바로 이 지역 보성군에서 장흥읍 북동 방면으로 경계를 이루는 제암산帝巖山은 곰재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주위에 사자산, 매봉과 억불산 등이 있어 그 지맥이 동쪽으로 고흥반도까지 이어진다. 넓은 풀밭으로 이루어진 산정에 있는 3층 바위를 향해 주위의 낮은 산과 암석들이 엎드린 형상이라 임금바위帝巖라 칭하며 산의 명칭도 그런 연유로 지어졌다.
드넓은 철쭉평원에서 다도해를 조망하다
휴양림 안의 도로를 따라 걷다가 곰재 쪽으로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정표에 곰재를 거쳐 정상까지 2.61km라고 표기되어 있다.
분홍 철쭉이 늘어선 돌길을 따라 철쭉평원과 제암산 임금바위로 갈라지는 곰재에 이른다. 임금바위가 있는 정상 일대를 찍고 와서 철쭉평원을 감상하기로 한다.
곰재에서 10여 분 더 올라가 서로 밀착하여 선 형제바위를 보게 된다. 제암산 아랫마을에 우의 좋은 형제가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먹을 게 떨어져 어머니가 병들어 눕게 되자 형제는 산으로 나물을 캐러 갔는데 동생이 미끄러져 추락위험에 처하고 되었다.
“내 손을 꼭 잡아. 내가 구해줄게.”
그러나 동생을 구하려다 힘이 빠진 형까지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형제가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과 산을 헤매다가 낭떠러지 밑에 죽어있는 형제를 발견하였다. 슬피 울다가 형제를 묻어주었는데 그 위에 갑자기 바위가 솟아나는 것이었다. 형제가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과 닮아 형제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쯧쯧, 굶어서 힘이 빠져 떨어져 죽은 건 추락사일까, 아사餓死일까. 기구한 형제의 슬픈 죽음에 엉뚱한 의문을 갖다가 명복을 빌어준다. 형제바위 50m 아래에는 좌우로 의상 암자와 원효 암자가 있다.
형제바위를 지나 돌무더기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면 제암산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에 붉게 만발한 철쭉군락이 나타난다. 능선엔 많은 등산객이 줄지어 정상을 향하고 있다.
봄의 향연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가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에 진입한다. 소나무와 철쭉, 다양한 산야초가 자생하는 산길에서 다양한 기암괴석과 남해를 조망하며 제암산이 호남의 명산임을 각인하게 된다.
제암산 정상석(해발 807m)은 임금바위 밑에 세워져 있다. 많은 이들이 임금바위 위에 올라섰거나 또 암벽을 오르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우뚝 솟구친 임금바위는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 있다.
‘사고 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장흥군에서 암벽등반을 제한하는 팻말을 설치해 놓았으나 많은 사람이 이미 올라있다. 그런 팻말보다는 밧줄이나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현명할 거라는 생각이다. 임금바위에 올라 멀리 무등산과 월출산, 천관산을 조망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 다도해까지 눈에 담을 수 있는데 다소 위험스러워도 누군들 올라서지 않겠는가.
제암산의 철쭉은 오직 붉은색 산철쭉만 피어 단색이지만 무척 화려하다. 다도해를 향해 뻗친 철쭉은 진달래가 생기를 잃을 즈음인 4월 하순에 피기 시작하여 바로 이 시기인 5월 중순에 남해 훈풍을 받아 화려하게 만개한다.
가까이 있는 병풍바위를 바라보고는 내려서서 올라왔던 곰재로 걸음을 옮긴다. 빠른 걸음으로 곰재까지 내려와 10여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곰재산(해발 627m)이다. 이정표와 커다랗게 누운 바위가 곰재산 정상임을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드넓은 철쭉평원이 펼쳐진다. 붉은 물결의 평원에는 소나무와 드문드문 바위들이 많은 산객과 어우러졌고 뒤로 사자산이 솟았다. 길게 늘어선 평원의 철쭉 길은 걸으면서 둘러보아도 장관인데 제암산 철쭉평원(해발 630m)의 표지석을 지나 사자산 쪽으로도 평원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사자산으로 향하다 커다란 암릉의 왼쪽 자드락길을 지나 간재(해발 571m)에 이른다. 간재에서 가풀막진 비탈을 오르고 침목계단을 올라 사자산 정상(해발 668m)인 미봉尾峰에 닿는다. 사자산은 엎드린 사자가 머리를 치켜들어 도약하려는 형세라 한다. 저만치 보이는 두봉頭峰이 치켜든 사자 머리이다.
걸어온 능선을 따라 곰재산과 더 뒤로 제암산 정상을 보고 사자 꼬리를 밟은 다음 머리로 거슬러간다. 미봉과 두봉 사이 등짝 부분쯤에 546m 봉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제암산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이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지나 무등산의 입석대 축소판 같은 선바위를 보고 사자두봉(해발 570m)에 이른다. 괜한 걸음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했었는데 그런대로 조망도 좋고 상큼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보성 일대의 차밭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사자산으로 돌아간다. 길이 곱고 꽃이 아름다워 유람하듯 되돌아 다녀갈 수 있다.
사자산에서 급격한 경사 지대를 내려서면 순탄한 호남정맥의 능선이 이어진다. 원두막 쉼터가 있는 고산이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골치재로 내려간다. 호남정맥과 갈라져 인근의 일림산과 삼비산을 바라보며 길게 임도를 따라 걷는다.
숲이 깊어 숲 속에 들어가면 해를 볼 수 없는 산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일림산이 2.5km 남짓한 거리에 있지만, 오늘 거기까지 다녀오긴 벅차다.
고산이재에서 흘러내려오는 용추골 계곡물이 무척 맑고 차다. 제암산은 골짜기마다 샘물과 개울이 많은 산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담안 저수지를 끼고 걷게 된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으로 회귀하여 지나온 산들을 올려다보니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기약할 수 없어 무척 아쉽군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서운함이 몰려든다.
때 / 봄
곳 / 제암산 자연휴양림 – 곰재 삼거리 - 형제바위 - 제암산 임금바위 – 곰재 삼거리 - 곰재산 - 제암산 철쭉평원 - 간재 - 사자산(미봉) - 두봉 - 사자산(미봉) - 고산이재 - 골치재 - 임도 - 담안 저수지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6SZCRdCc1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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