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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에 걸쳐 있는 비슬산琵瑟山은 정상의 바위가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하여 비파와 큰 거문고를 의미하는 비슬을 명칭으로 하였다. 또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포산苞山 혹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불렸었다.
대구에서 팔공산과 더불어 명산으로 자리매김한 비슬산은 1986년 달성군 군립공원으로, 1993년에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정상 일대 30여만 평에 달하는 평탄한 언덕에 참꽃(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되어 매년 봄 비슬산 참꽃 축제를 열기도 한다.
예로부터 비슬산은 영험 있는 수도처로 알려져 왔으며 성인 천 명이 난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특히 명승 일연은 20대에 비슬산 보당암에 머물면서 다양한 신앙과 경전을 접하며 수도했는데 이는 훗날 삼국유사의 폭넓은 사상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분홍은 더 붉어지려 꽃잎 활짝 펼쳐 햇살을 흡입하고
이른 새벽 서울에서 출발하여 세 시간여 달려 닿은 곳은 유가사 주차장이다. 버스와 승용차 전부를 주차하기엔 공간이 부족해 보였는데 마침 탑승객들을 내려준 버스가 막 빠져나간다. 차에서 내린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가볍고도 화사하다.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의 향연을 즐기러 온 그들에게서 진한 동지의식을 느낀다.
유가사 일주문을 지나 유가사 입구 갈림길에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유가 다원이 있고 거기 세운 이정표의 한 방향이 수도암을 가리키고 있다. 그쪽으로 들머리를 잡고 수도암을 지난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하고 철쭉은 독성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꽃이라 개꽃이라고도 부른다. 참꽃이 진달랫과에 속하는 다른 꽃이라고 이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진달래가 바로 참꽃이다.
재작년 참꽃 축제 때 친구들과 함께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왔다가 자연휴양림에서 올라 소재사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이번엔 다른 코스를 통해 비슬산 진달래를 감상하고자 유가사 원점회귀를 택했다.
유가사를 지나 산행로 입구에 ‘비슬산 가는 길’이 석비에 새겨져 있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첩첩萬疊疊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시인이자 승려인 조오현 선사의 시비이다. 편안한 임도를 벗어나면서 금세 1000m 고지의 이름값을 한다. 급하게 경사지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바윗길이 반복되다가 숨이 가빠질 때쯤 도성암에 이르게 된다.
비슬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라고 한다. 도성암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성국사가 도를 깨쳤다는 도통 바위에 도착한다. 꽤 올라온 이곳까지도 유가사를 창건한 신라 도성국사의 자취가 뻗쳐있다.
휴식을 취하며 정상인 천왕봉을 가늠해보고 거기부터 횡으로 굽이치는 시원한 마루금에 눈길을 머문다. 봄은 이미 신록을 거쳐 초여름 짙은 녹음으로 진행 중이라는 걸 숲이 알려준다. 그래도 여기 비슬산 진달래의 분칠은 초록보다 강렬하다. 오르면서 그 향은 어지러울 정도로 온 산야의 공기에 파고든 듯하다.
파란 하늘이 넓게 열린다 싶었는데 어느새 주 능선이다. 도통 바위부터는 조망도 트이고 암봉과 오솔 숲길이 번갈아 나타나 지루하지 않게 올라왔다. 분홍은 더 붉어지려 꽃 이파리를 활짝 펼쳐 햇살을 흡입한다.
햇살 그득 담고 산바람 고인 진달래 군락에 많은 사람이 취해있다. 만개한 진달래에 취하고 화사한 공간에 취했으며 파란 여백의 자유로움에 마냥 취한 모습들이다.
정상 천왕봉(해발 1084m) 일대는 막힘이 없다. 지붕도 열리고 벽도 뚫려 약간의 거리낌조차 없다. 시원한 조망을 만끽하다가 강우 레이더 기지가 세워진 조화봉으로 향한다.
이른바 비슬 평원이라 부르는 진달래 군락지이자 평탄한 고원지대가 넓게 이어진다. 과거에는 비슬산 일대가 지금보다 낮고 완만한 구릉지였었는데 광활한 산지가 융기하면서 주변에 하천의 침식이 부활하여 고도 800m 이상에서 평탄한 고원이 형성되고, 양쪽 사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대견봉 쪽으로도 붉은 물결이 일고 있다. 유가사로의 하산로가 있는 사거리를 지나 월광봉(해발 1003m)에 이르러 지나온 천왕봉을 돌아보고 많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광활한 진달래 군락지에 다다른다.
군락지 삼거리에서 내려다보니 데크는 온통 산객들이 운집하여 발 디딜 틈이 없고 그 주위로 만개한 진달래 무리는 저마다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야흐로 산객들과 진달래 무리는 하늘 바로 아래에서 서로 엉켜 흥겹도록 봄 춤을 즐기고 있다.
참꽃뿐 아니라 바위와도 뗄 수 없는 산
능선 분기점에서 조화봉 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산 위에 놓인 석재 다리를 지나게 된다. 산악 현수교나 출렁다리가 아닌데 제법 길다. 기상관측소로 차량이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든 다리이다.
레이더 기지 우측에 수북하게 널브러진 큼직하고 날카로운 바위들도 이채롭다. 이 암괴류岩塊流는 다량의 각진 암괴가 사면의 최대 경사방향 혹은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려 쌓인 형태인데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이루어졌다.
세계 곳곳의 수많은 암괴류 중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라는 직경 1~2m, 두께 5m에 이르는 비슬산의 바윗덩어리들은 2003년에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해발 1000m 부근에서 시작하여 450m 지점까지 사면을 따라 가장 넓은 폭은 80m에 길이 2km나 쌓여 비슬산만의 특출한 경관을 연출한다.
조화봉에서 기상관측소 주변을 둘러보고 비슬산 해맞이 제단이라고 적힌 석재 제단이 놓인 걸 보고 인근의 대견사로 향한다. 대견사지로 불리며 100여 년간 방치되었던 사찰 터를 2013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대원사 오른쪽 도로로 미니버스가 대견사 입구까지 오르내리는 걸 볼 수 있다. 1000m 고지까지 4000원을 주고 올라와 정상 일대의 참꽃 축제를 즐길 수 있으니 설악산이나 대둔산의 케이블카에 비하면 가성비가 꽤 훌륭한 편이라 하겠다. 여러모로 이채로운 비슬산의 모습들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도망친 노비를 쫓는 노비 사냥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추노’의 촬영 장소였던 대견사와 3층 석탑 옆에서 시원한 조망을 즐기다가 다음 행로로 움직인다. 조화봉에서 대견봉으로 가는 길의 군락지는 더더욱 멋들어져 그야말로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분홍 참꽃 만발한 캔버스에 흰 참꽃, 붉은 참꽃이 채색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주는 듯하다.
대견봉 정 상석(해발 1083m) 인근도 만원이다. 인증 샷 티켓을 끊고 줄을 선 이들과 한껏 포즈를 취하고 곳곳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 산객들 모두 참꽃처럼 환한 표정이다.
그들과 하늘정원 비슬 평전을 뒤로하고 유가사 쪽으로 하산한다. 하산 길은 가파르다가 완만하고 그러하길 거듭하다가 계곡에 접어든다.
유가사 닿기 전의 등산로 주변에도 색색 참꽃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대구시민들이 가족 나들이 등으로 즐겨 찾는 곳이 여기 유가사라 한다.
동화사의 말사인 유가사는 신라 도성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옥 유瑜, 절 가伽 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역시 비슬산은 참꽃뿐 아니라 바위와도 뗄 수 없는 산임이 분명하다.
비슬산에는 유가사 외에도 소재사, 용연사, 용문사, 임휴사, 용천사 등 많은 사찰이 있어 불교 성향이 강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올라갈 때의 유가사 삼거리에 다다르자 산행을 했다기보다는 한동안 붉은 융단을 타고 하늘을 유영했었다는 기분이 든다. 가을 억새로도 장관을 연출할 비슬산이기에 어느 해 가을에 다시 또 불쑥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진달래 꽃잎 활짝 펼쳐주어 사뿐히 지르밟고 잘 다녀갑니다.”
때 / 봄
곳 / 유가면 주차장 - 수도암 - 도통 바위 - 천왕봉 - 월광봉 - 진달래 군락지 - 톱바위 - 조화봉 - 관측 레이더 기지 - 대견사 - 대견봉 - 유가사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QHLEtb2bWDo&list=PLk1KtKgGi_E5Hmrr7WVs_I40SvW54I1B6&index=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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