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가 안개에 가린 천황봉을 아쉬워했었다
1988년 스무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오랜 세월 해류에 부딪혀 솟아오른 화강암으로 형성되었다. 56.22k㎡로 크지 않은 면적이지만 다양한 식물과 국보급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호남정맥의 거대한 암류가 남해와 부딪치면서 솟아오른 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원적외선을 뿜어내는 산이다.
화강암 복합체 월출산은 바위의 8할이 사람에게 이로운 원적외선을 내뿜는 맥반석이라 한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영암아리랑의 노랫말처럼 월출산은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대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도갑사 가는 장군봉 능선과 천황봉으로 가는 사자봉 능선의 갈림길인 바람재 삼거리에 오르자 아직 겨울의 끄트머리가 잔해처럼 남아있다.
무수한 격전을 치른 노련한 장군의 형상, 구정봉을 머리에 얹은 장군바위가 많은 기암 중에서도 유독 튀는 모습이다.
바람재에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월출산의 기암 봉우리들을 둘러보니 그 위로 뜨는 보름달의 모습과 달빛으로 치장한 바위 도포의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월출산 구정봉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이 늘어섰는데
천탑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
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
노산 이은상 선생은 구정봉의 수많은 기암괴석을 창검과 천탑에 비유하여 바위 박물관이라 일컬으며 달과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는 월출산을 4 행시로 생생하게 표현한 바 있다.
마주한 곳을 묵묵하게 혹은 감회에 젖은 모습으로 주시하는 장군의 얼굴에 주름이 짙고 턱밑 수염은 더부룩하다.
영암 어디에서나 월출산이 보인다고 하니 영암과 월출산은 하나라고 하는 말이 실감 난다.
구정봉에서 이 산의 최고봉 천황봉을 바라보노라면 수많은 고깔이 줄지어 섰는데 어찌나 옹골차고 역동적인지 고깔 하나가 쓰러지면 도미노 현상으로 줄줄 넘어져 최고봉까지 기울게 할 듯하다.
구정봉 바로 아래로 베틀굴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 굴에 숨어 베를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0여 m 깊이의 굴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고도 부른다.
줌인한 천황봉에서 많은 산객들이 주변을 조망하며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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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 삼거리를 지나 천황봉을 향해 줄지어 늘어선 고깔들 무리에 섞인다.
이런 곳에 어찌 이런 산이 있을 수 있는가. 논밭 위로 우뚝 솟았다는 것만도 기특한데 어쩜 이처럼 수두룩 기암 묘석만으로 꾸며질 수 있단 말인가.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파라다이스? 그처럼 월출산은 무어로 비유해도 부족할 듯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탁 트인 능선, 두루두루 눈길 바쁘게 하는 조망. 달이 뜨는 남도의 명산이란 칭송만으로는 그 표현이 턱없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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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보드라운 바위섬 산정에서 아래로 넓게 펼쳐진 논밭 물결에 눈길만 주어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월출산에서 영암을 내려다보노라면 영암아리랑 가락이 이명처럼 귓전을 울린다.
매일 아침 영암 전역에서 천황봉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충만한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두툼한 갑옷을 걸치고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의 모습이다.
진지를 수호하며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건 월출산 바위들이 하나같이 기골장대한 풍모라서 그럴 것이다.
천황봉의 카리스마는 어디서나 도드라진다. 근엄한 위용이다.
양방향에서 오가는 산객들이 자주 교차할 무렵이다.
천황봉에서 구정봉으로, 구정봉에서 천황봉으로 움직이지만 그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 천천히 눈에 담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능선 멀리 서나 가까이에서나 볼 때마다 천황봉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다.
야무진 압봉들 사이로 탐방로는 잘 다듬어져 있다. 수많은 탐방객들의 발길이 닿았으니 오죽하겠는가.
발길 머무는 곳이 조망터이고 쉼터이다.
암봉과 바위들이 정연한 질서를 갖춘 틀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조직사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월출산 꼭대기에서 빛을 내뿜자 도열한 바위 봉우리들이 일제히 기립한다.
뾰족한 투구마다 섬광이 인다.
바위는 날카롭고 장대하지만 능선 길은 매우 평탄한 편이다.
크게 가파르지 않은 능선이라 안전하게 트레킹 하며 즐길 수 있는 월출산이다.
속리산 문장대에서의 조망과 도봉산 다락능선 오름길을 섞은 듯한 풍광이다.
베틀굴이 향하고 있다는 남근석이 우람하고 꼿꼿하다.
안개가 깔리지 않아 무척 다행이다. 준엄한 서릿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칼바위들의 윤곽이 햇빛을 받아 다감한 느낌을 주었기에 더 그렇다.
어둠이 내려앉아 이곳 찾은 이들 모두 내려가도 월출산엔 정적 대신 장엄한 점호가 이뤄질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저들끼리의 정립된 시스템이 있으므로 해서 수많은 화강암 봉우리 간에 정연한 질서가 생성되었을 것만 같다. 그처럼 월출산은 많은 걸 보여주고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월출산의 밤은 달 뜨는 수석 전시장이다.
영암아리랑의 노랫말처럼 월출산은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대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바람재에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월출산의 기암 봉우리들을 둘러보니 그 위로 뜨는 보름달의 모습과 달빛으로 치장한 바위 도포의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은 수많은 산의 최고봉들 중 그리 향하는 이들에게 가장 균형 잡힌 구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거리에 관계없이 삼각 봉우리가 잡아끄는 느낌이다.
해발 809m. 천황봉은 그 실제 높이보다 훨씬 높다. 바닷가에 위치해서 들머리부터 고도를 형성하지 않는 탓이다.
봄볕 보드라운 바위섬 산정에서 아래로 넓게 펼쳐진 논밭 물결에 눈길만 주어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잘 정돈된 전답이 마을 전경과 함께 평화로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안개가 걷힌 덕분이다.
고산 윤선도가 안개에 가린 천황봉을 아쉬워했었다.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려도
햇빛이 나면 안개가 아니 걷히랴
아직 살얼음이 낀 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들도 제 세상을 만난 양 힘이 넘쳐 보인다.
화승 조천火昇朝天, 아침에 하늘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산세라 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월출산을 그렇게 표현했다.
어디에 터를 잡아도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월출산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구름다리에 이르렀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6형제봉 등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처럼 견고 부동한 주변 경관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구름다리 아래에서 구름다리를 올려다보는 산객들을 보게 된다.
운무에 젖고 눈서리 시리던 비탈에 봄볕이 드는 중이다. 참 고운 봄빛이다. 아침부터 축축하다 때맞춰 걷어진 구름, 동시에 드러난 햇살. 춘삼월 바위 골짝 해빙 중에 피어나는 봄이라 더 곱고 더 아련하다.
바위 사이 봄 오는 길과 함께 회백색 봉우리들 사이로 빨간 구름다리가 보인다. 서너 시간 걸리던 매봉과 사자봉을 5분 거리도 채 안 되게 단축한 이 다리는 해발 510m, 지상 높이 120m에 길이 54m로 2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천황교를 지나고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산행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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