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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 100경

국립공원 100경 중 12경_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보길도 세연정

장한림 2022. 5. 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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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를 음미하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보길도 최상의 명소 세연정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며 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유유히 흐르는 바닷 물결이 어우러진 명소이다.

완도 화흥포항이나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길도로 들어갈 수 있는 배편이 있다. 가는 방법이 있다. 완도에서는 31.9km 거리로 완도 면적의 12% 정도이며 인구 2,700여 명, 1,2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완도군에서는 현재 보길도와 예작도를 잇는 인도교 건설을 추진 중이다.

 

 

 

보길도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원림유적과 어우러져 멋들어진 해양 경관과 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사색의 장소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는 병자호란 때 인조 대왕이 그예 청나라 군대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한다. 그는 제주도로 향하다가 접하게 된 자연경관에 탄복하여 아예 그곳에 머물렀는데 거기가 보길도다. 보길도에는 동양의 자연관과 성리학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한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골룡알 해변. 촉촉하게 젖은 몽돌과 얌전한 물결이 거듭 스킨십을 하며 서로 하나임을 강변하는 듯하다

 

보죽산 인근 보옥리에 있는 해변에는 검은 자갈인 갯돌이 공룡알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공룡알 해변이 있다. 바람이 심하면 파도가 드센 편이라 돌이 반지르르하게 닦였다. 물이 출렁일 때 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이 해안을 ‘뽀래기 갯돌밭’이라고도 한다. 

 

 

 

윤선도가 51세이던 인조 15년(1631년)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루어 낸 곳이다. 또한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명칭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이라 하였고, 그 건너 산중턱 위에 집을 지어 ‘동천석실’이라 하였다.

계곡의 동북쪽에는 ‘세연정’을 세워 책을 읽고 뱃놀이도 하며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 

 

 

보길도 몽돌해안
 

고산은 연꽃처럼 생긴 동네에 정착하게 되었다면서 그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지었고, 격자봉(해발 433m) 기슭에 살 곳을 마련해 낙서재樂書齋라 명명했다.

부용동의 동천석실洞天石室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부용동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 장소이다. 고산이 시를 읊고 묵상을 하던 곳으로 산 중턱 암벽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인데 밑에서 보면 그야말로 절경이다. 

 

 

 

주변경관이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세연정洗然亭은 고산의 풍류와 내면의 지식이 흥건히 묻어나는 정자로 보길도 최고의 명소이다.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였다.

 

 

 

청별항에서 황원포를 거쳐 솔섬 낚시터 방향으로 해변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망끝전망대는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맑은 날에는 추자도와 함께 제주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끝없이 탁 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일몰 광경이 일품이다. 해안에 서면 모래섬, 상도, 미역섬, 옥매도, 갈도 등의 자잘한 섬들이 노을 물에 멱을 감는 듯이 보인다.

 

 

 

예송리는 무성한 상록수림을 뒤에 두고 예작도와 고깃배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아늑한 해변이다. 봄철 몽돌밭에는 늘 미역 줄기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 예송리 앞바다에는 예작도, 갈마도 등의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데 이 섬들이 거친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바다가 호수처럼 아늑하고 잔잔하다. 전복을 비롯하여 미역이나 톳을 양식하는데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XEJ-b4a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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