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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의 산

겨울 산행_ 은빛 상고대 찬란한 영봉, 월악산

장한림 2022. 12. 2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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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길고 험한 월악산, 미로의 영봉 오름길  

 

 

 

송계마을 초입에서 올려다본 월악의 어깨가 영봉의 목을 감은 목도리처럼 혹은 하얗게 센 어르신 수염처럼 영험해 보인다. 남쪽 포암산에서 발원된 달천이 여기 월악산을 끼고 흐르면서 이룬 계곡을 송계계곡이라 하는데, , 여름이면 장연대, 수경대, 학소대, 망폭대, 와룡대 등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7km의 맑은 계류와 울창한 삼림이 심신을 편안하게 보듬어준다.       

 

 

 

국립공원의 산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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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기가 월악산 영봉 오름길이기에 의미를 지니고 오른다

 

지난해 가을엔 덕산에서 신륵사를 거쳐 영봉을 올랐었는데 이번 겨울엔 딸과 함께 송계마을에서 영봉을 바라보며 오르기로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 송계리에 승병 도총 본부가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 침략 직전에 역학에 통달한 여동생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여동생이 일렀다.

 

조선에 가시거든 소나무 송자가 있는 곳을 피하세요.”

 

승병들은 일본에 잠입한 첩자를 통해 이 말을 듣고 곳곳에 송계松溪라는 팻말을 써서 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래서 마을로 들어오는 왜군들을 막을 수 있었고 야간 기습을 통해 왜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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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기승을 떨치는데 딸, 희정이가 따라나서 주었다. 막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집안에서 느긋하게 군것질을 즐길 법도 한데 잠시 망설이다가 !”하고 외치더니 배낭을 꾸리는 것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한번 결정하면 군말 없이 시행하는 딸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여고 시절 내내 짊어졌던 등짐을 막 내려놓은 참이었는데 긴장의 끈을 모두 풀어버리면 다시 시작하면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한겨울 삭풍처럼 몰아치는 기상이변에 피어난 설중매雪中梅가 떠오르고 인동초忍冬草가 딸의 모습에서 반추되는 건 자식에 대한 아빠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입김이 새어 나오는 이른 새벽 집에서 나와 월악산으로 향한다

송계에서 영봉 오르는 비탈에 눈가루가 세차게 흩날린다. 한기 가득 서린 골짜기인지라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시리다. 여름이면 철철 기운차게 흘렀을 협곡 옥수가 꽁꽁 얼어붙었다

작은 암자 자광사를 왼편에 두고 동창교를 지나면서 시린 바람 때문에 오름길이 꽤 숨차다. 딸의 손을 잡아주며 눈치를 살폈는데 괜히 따라나섰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빠는 딸이랑 오니까 하나도 안 춥거든. 하나도 안 힘들거든.”

제가 뭐라 그랬나요.”

! 아빠가 바람 소리를 들었었나 보다.”

 

시린 바람 좀 분다고 망설일 게 무어 있나. 새벽 공기 맞으며 나섰는데 더 추워지고 눈발 나부껴도 올라가야지. 뿌연 연무 둥둥 떠다니고 세찬 바람 훼방 놓듯 몸 밀쳐도 여긴 날씨랑 상관없는 곳, 여긴 발 디디면 안식과 평화를 주는 곳. 오늘 새벽 아린 바람, 찬 공기는 우리 부녀 환송하는 정갈한 인사였지 않았는가.

 

 

 

치악산과 함께 급경사의 험준한 오르막을 빗대 자가 괜히 붙었겠느냐며 고개 흔드는 곳이 월악산이다. 오늘따라 더더욱 굳센 야성미를 느끼게 한다. 뚜렷이 드러난 산세에서 단단한 화강암의 힘찬 맥박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 경관과 조망의 멋스러움으로 동양의 알프스라고 비유한 곳. 충주호반, 그 짙푸른 호수와 삼삼한 조화를 이루는 구담봉 그리고 옥순봉. 수려한 모습으로 월악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주흘산, 도락산 등을 두루 탐방하며 가까이 접했지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매번 여름을 피해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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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소나무들이 솟구친 군락지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데 가지도 없이 두 줄기 기둥으로 나뉘어 높이 뻗어 오른 소나무가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보인다거친 세상을 기력으로 버텨온 세월의 연륜이 진하게 묻어나는 걸 보고 부녀가 미소를 짓다가 다시 행군을 강행한다

철제 계단과 돌계단에 얼음길 구간 그리고 다시 가파른 너덜 오르막. 영봉까지 1.5km를 남겨둔 지점이 송계 삼거리다. 햇살 받은 눈꽃들, 바위에 얼어붙은 고드름에 걸음 멈추었다가 잡담 나누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능선이다

 

 

 

어서 오시게. 오늘은 부녀가 동반했구먼. 보기 좋네.”

 

투명한 상고대와 은빛 눈꽃들이 화들짝 반겨준다. 저만치에서 최고봉도 지긋한 미소 띠고 오랜만의 방문객을 자애롭게 내려다본다.

언제나처럼 영봉은 그 신령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아빠! 너무 멋있어요.”

   

은빛 서리꽃의 영롱함에 도취한 딸의 땀방울 송송 맺힌 얼굴에 희열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게시된 팻말에서 도종환 시인의 산경을 읽으며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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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이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나의 산행기_ 도서 정보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https://www.bookk.co.kr/book/view/135227종이책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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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얼굴, 팔 늘어뜨리면 잡힐 것처럼 머리가 올려다보이는 영봉의 턱 바로 아래에서 정수리까지가 한참이다. 100m 길이의 깎아지른 수직 벼랑을 그대로 드러냈다

늘 그렇듯 거대한 범선의 뱃머리를 올려다보는 기분이다. 봄이 되어서도 양지는 미끌미끌한 진흙밭이고 음지는 눈길, 얼음길 반씩인 영봉 오르막은 계단을 설치해 한결 나아졌어도 여전히 길고 험한 미로이다.

 

 

 

여길 가을에도 왔었다고요?”

.”

이렇게나 힘든데 몇 달 만에 다시 또 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요.”

힘들어도 보람 얻는 일은 다시 하게 되지.”

 

그게 삶이지. 무어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는 일이 거저 이뤄지는 경우가 있을까. 산행 초기의 겨울 산은 너무 힘들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눈은 고르게 내리지 않고 횡으로, 사선으로 마구 흐트러졌다

몸속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이 마치 악귀의 손톱으로 살갗을 긁는 것 같아 산에서 내려가면 다신 올라오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월출산 영봉 오르는 길, 지난가을에도 습한 낙엽으로 엄청 미끄러웠었지. 단풍 물 빠지자마자 눈 덮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거든. 아빠는 이제 힘든 거에 많이 무뎌졌거든.

 

 

 

네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던 건 작년까지 힘들게 공부해서잖아.”

아빠! 그건 지금 대화 주제랑 완전히 다른 거잖아.”

 

너도 아직 기억에 생생하지? 아빠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너랑 네 오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위에 눌릴 만큼의 고통을 때때로 잊게 하며 세상과 융화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준 건 바로 너희 남매가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거였고, 또 하나는 산이었단다.

 

 

 

아까 저 아래에서 도종환 시인의 산경을 읽으면서 그 시의 1인칭이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혼자 산에 다니시는 아빠 뒷모습이 슬플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지금은 행복해 보여요. 그래서 가끔 아빠 따라 산에 가서 알고 싶었어요.”

산을?”

아니, 아빠를. 어렴풋이나마 아빠가 산에 가는 의미를요. 그런데 그 시를 읽으면서 살짝 알 것도 같아요.”

우리 딸! 이젠 조그만 여고생이 아니네. 다 컸어. 하하!”

 

 

 

모자를 바로 씌워주고 영봉을 향해 손짓하자 갑시다.”라며 딸이 앞서 걷는다. 이제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신입생이 되는 네가 펼친 캔버스, 진작부터 붓은 들었어도 그 백지에 무얼 그려 넣을까. 아직 네 캔버스는 백지 그대로, 네 바람도 순수 그대로. 그대로 남아있기를.

난간을 붙들고 온 힘을 다해 올라서는 딸을 보며 계속 혼잣말을 뇌까리게 된다. 아빠의 지난날처럼 서둘러 너 자신을 재촉하지 말거라

다시 그리려면 탁한 덧칠이 될 수가 있단다. 아직 네 시절은 세상을 계산할 때가 아니라 수행하듯 자신을 연마할 때란다. 아빠 인생 교훈 삼아 저처럼 바위와 소나무의 긴한 어우러짐 배울 때란다

 

 

 

영봉은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다고 믿어 국태민안을 비는 제를 올리기도 해 국사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러 장소에서 보이는 영봉은 보는 장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데 영봉 북서쪽 충주지역에서는 긴 머리를 위로 늘어뜨린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북동쪽 제천 수산, 청풍에서는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모습이 어떻든 두 번을 쉬었다가 올라와 다시 만난 영봉(해발 1097m)의 문패가 무척이나 정겹다.

어이쿠, 오늘은 따님이랑 왔구먼. 잘 오셨네. 지난가을엔 날씨가 안 좋아 곳곳 구경을 다 못 시켜주어 미안했었네.”

 

 

 

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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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단풍도 볼품없는 끝물인 데다 끝없이 펼쳐졌을 첩첩 산들이 뿌연 연무로 인해 사라진 안쓰러움에 영봉의 널찍한 이마에 주름이 팼었다

 

천만에요. 다시 올 이유를 남겨두고 떠났으니 또 이렇게 찾아온 것이지요.”

 

주인도, 객도 활짝 웃으며 춥긴 하지만 갠 날 다시 만남을 반가워한다.

 

감사합니다. 언제 올라와 봐도 어르신은 여인네의 외면적인 매력과 부처님의 자애로움을 모두 갖추셨습니다.”

허허! 낯간지럽긴 하지만 듣기 싫지 않구먼. 길이 미끄러우니 따님이랑 조심조심 잘 살펴 구경하다가 무사히 귀가하시게나.”

 

 

 

월악산 산행의 묘미 중 하나가 충주호와 어우러진 절경들을 눈에 담는 것이다. 중봉과 하봉 아래로 충주호가 얼어붙은 듯 낮게 구불구불 물길을 잇고 있다. 굽이굽이 마루금 너머 주흘산, 조령산이 늘 그 자리에서 말갛게 미소 짓는다. 거기에 눈길을 던진 딸의 모습이 어여쁘고 대견하다. 오늘은 장엄한 산맥의 사방 펼쳐짐을 가득 품을 수 있어 더더욱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저기 보이는 저 산들 대다수가 아빠랑 만났었지.”

아빠가 오래오래 산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그랬어?”

 

 

 

아빠가 지금처럼 늘 강건한 체력을 유지하고 내면적으로도 편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시죠? 쑥스러워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게 제 속마음이라는 걸요. 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살면서 겪는 세상 시달림이 어찌나 매서웠는지, 동면에서 깨기까지 얼마나 추웠던지 아빠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놓을 수 없는 삶인지라 애타게 부여안았더니 잉태의 순간 다가오는 듯하구나.

딸아, 그 호된 기억들, 잠깐의 선잠이라 여기고 태동의 환한 미소 함께 짓자꾸나.

 

! 나중에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겨운 일이 생기거든 오늘 영봉 오른 기억을 되새겨봐.”

 

 

 

암봉과 단애의 근엄한 위용

산은 그 지질 형태에 따라 보통 흙산과 바위산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 산 중 암봉과 기암으로 유명한 바위산들을 추렸습니다. 그런 산들은 대개 험산 준령이라든가 악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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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한 조각에 잊히는 게 허기 아니던가요. 지나고 나면 한바탕 봄 꿈같은 게 지난 일 아니던가요. 이젠 힘든 일쯤은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도 같아요. 화사하게 붓꽃 피고 진달래 다시 피거들랑 이젠 그 시절에 더 아름다워지게끔 공들여 보듬고 손 내밀어 쓸어줄래요.

딸과 어깨동무하고 보는 산정에서의 설경이 멋지다. 함께 보는 하얀 눈꽃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황홀한 심연에 녹아져

촛농 같은 진한 눈물 떨구며

신령한 영봉 자락 붙들고 피었다가

지는 하얀 눈꽃이면 좋겠다 

 

 

 

올라오면서 산양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산에 산양이 있어요?”

, 국립공원에서 산양을 방사했는데 최근까지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더라.”

 

산이 깊고 청정한 월악산에 종 복원센터에서 복원한 산양 여섯 마리를 방사했었다. 새끼의 배설물이 발견됨으로써 자연증식이 이뤄졌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산양의 배설물이 있는 곳에서 뽕나무가 더 싱싱하게 자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맞아. 산양을 풀어놓은 것도 생태계 조절을 통해 자연을 보전하기 위함이지.”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동식물의 생태계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이제 환경운동가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화되었다. 산에서, 숲에서 먹이사슬의 자연스러운 균형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지리산 반달곰처럼 이 산에서도 산양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네요.”

동감이야.”

 

월악산은 충북 제천, 충주, 단양과 경북 문경 일대에 걸쳐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금수산, 도락산, 용두산과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명산 비경을 두루 갖춘 데다 청풍호반과 충주호반을 끼고 있으며 계곡 일대에는 월광폭포, 월악 영봉, 자연대, 수경대, 학소대, 와룡대, 망폭대, 팔랑소의 8경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산양뿐 아니라 인근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지만 그건 훗날 배필 될 사람을 만나거든 그때 같이 봐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세찬 바람에 눈가루 흩날리는데도 월악산 꼭대기 여기 영봉이 마냥 푸근하기만 한 건 저만치 멀리 존재했던 것 같은 딸과 함께 올라 푸른 하늘빛 목화 구름 탄 양 잠시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리라.

얼굴에 퍼붓는 눈보라 그대로 맞아가며 가쁜 숨 몰아쉬어 오르고 올라 거기서 또 비켜 돌아 당도한 이곳 영봉에서 긴 회상에 젖다가 하산 준비를 한다.

나무계단이 올라올 때보다 내려설 때 더 아찔하다. 덕주사 날머리까지 4.9km. 급경사의 계단이 거듭된다. 계단을 거의 내려설 무렵 딸의 무릎이 꺾이는가 싶더니 그예 넘어지고 만다.

 

 

 

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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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내가 여길 어떻게 올라왔지?”

 

툭툭 손바닥을 털며 일어서더니 고개를 흔들어댄다. 걷는 걸 보니 다친 거 같지는 않다.

 

아무리 조심스레 발 디뎌도 어느 순간 넘어질 수 있는 데가 산이야.”

 

어느 순간 평화에 금이 가고 행복이 위급으로 바뀔 수 있다는 면에서 산은 삶과 비견된단다. 그러할 때 얼마나 위기를 잘 극복하느냐가 순탄하게 평화와 행복을 지속하는 것 못지않은 지혜로운 처세 아닐까 싶구나. 딸아이의 넘어짐에서도 처세 운운하는 생각이 뇌리에 감돌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꼰대 취급을 받기 싫은 것이다.

 

 

 

휘이잉, 위잉. 굵은 자국 남기는 회오리에 휘감기고 휘둘려 멍한 이명에 아픔조차 못 느끼며 길게 무기력해지는 나약한 존재로 머문다면 젊어 배운 학습 어디라서 빛나겠니. 가파르고 미끄러운 바윗길, 숱하게 나타나며 시험 들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게 삶. 발길마다 추억으로, 흔적마다 교훈으로 새기고 또 새기어 무심히 올랐다가 내려가며 평화 얻는 정중동의 의미를 오늘 월악산에서 조금이나마 깨우쳤으면 좋겠구나

 

 

 

동창교에서 올라와 만나는 송계 삼거리를 거치고 신륵사 삼거리를 또 지날 때는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조망대에서 영봉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고 너덜 길과 경사 심한 계단을 거듭 내려선다. 그리고 화강암 벽에 조각된 길이 14m에 이르는 마애불(보물 제406) 앞에서 멈추었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을 품은 불상이지.”

마지막 신라의 설움이 담긴 불상이라서 그런지 바위벽이 더욱 싸늘하게 느껴지네요.” 

 

 

 

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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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하다가 월악산에 머물렀는데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마애불을 만들면 억조창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남매는 함께 월악산 최고봉 아래 북두칠성 별빛이 비치는 절벽을 골라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곳이 바로 덕주사 자리라고 한다

 

 

 

오누이가 부친인 통일신라 마지막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덕주사에는 마애불 외에도 이들 남매를 기리는 시비가 있고 미륵리 절터에는 보물 95호와 96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이 서 있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여 산행을 마치자 바람이 더욱 드세다. 달이 넘다 걸려 월악산이라 했던가. 내려와 올려보니 지는 노을마저 미끄러운지 해거름 석양빛이 머뭇거리며 영험한 영봉의 모습을 쉬이 사라지지 않게 만든다.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거 같아요.”

아빠도 그럴 거야.” 

 

모처럼 딸과의 산행이라 영봉은 기억 속에, 가슴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이다.  

  

 

 

때 / 겨울

곳 / 한수면 송계리 - 동창교 매표소 – 송계 삼거리 – 신륵사 삼거리 - 영봉 – 신륵사 삼거리 - 덕주사 마애불 – 덕주사

 

 

 

https://www.youtube.com/watch?v=XHcphVAkv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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