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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7_ 상사병相思病

장한림 2022. 4. 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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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리

 

송나라 강왕의 신하 한빙의 부인 하 씨는 절세가인이었다.

 

“너한테는 많이 과분한 여자다. 네 아내는 내가 잘 먹여 살릴 테니 넌 산골처녀라도 찾아봐라.”

 

한빙의 아내가 탐난 강왕은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변방으로 귀양을 보내고는 하 씨를 후궁으로 삼았다. 춘추전국시대 때 대국인 송나라는 강왕 때에 이르러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왜 내 밑에서 입에 풀칠하는 건데?”

 

강왕은 다혈질 성격에 포악하여 정사를 논하면서도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신하가 있으면 가차 없이 죽이곤 하였다. 등나라 등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한 군주였으나 허세 가득한 성품이 큰 약점이었다.

 

 “내가 쏜 화살에 하늘이 피를 흘리리라.”

 

높은 장대에 소의 피를 담은 자루를 걸어놓고 그것을 맞춰 하늘이 피를 흘린 것처럼 연출하는 등 강왕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길 원했다.

제 아무리 강대국의 반열에 선 나라일지라도 지도자의 처세에 하자가 있으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법이었다. 

강왕은 나라일은 소홀히 한 채 주색잡기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며 매번 반복되는 생활에 흥미를 잃을 즈음 하 씨를 곁에 두면서 새로운 삶을 얻은 듯했다. 하 씨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의 본질을 모르는 이한테는 돼지 목에 건 진주 목걸이가 바로 사랑이었다. 

 

“비가 많이 내려 강은 넓어지고 물이 깊어졌는데, 해가 뜨면 마음을 먹을 것입니다.”

 

남편만을 속에 품던 하 씨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하 씨의 편지는 한빙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알듯 말 듯 야리꾸리한 이 편지의 내용을 제대로 해석해 보거라.”

 

하 씨의 편지를 손에 넣은 강왕이 수수께끼 같은 편지의 뜻을 묻자 그 자리에 있던 신하인 소하가 뜻을 풀이했다.

 

“비가 많이 내리듯 애틋한 그리움이 넘쳐나고 강이 넓어지고 물이 깊어져 서로 오갈 수 없으니 해가 뜨면 죽을 결심이 섰다는 뜻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예쁜 아내를 둔 죄로 낮에는 도적을 지키고 밤에는 성을 쌓으며 귀양살이를 하던 한빙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젠 오롯이 내 품에 안기겠지.”

 

한빙이 자살하자 강왕은 하 씨의 온전한 마음이 자기한테 돌아올 것이라고 여겼다. 마음 둘 곳이 사라졌다. 땅에 묻힌 시신을 사랑할 수는 없을 거였다.

 

“전하, 날씨도 좋은데 함께 산책이나 하시지요.”

 

- 역시 내 생각대로군. 죽으면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게 이치구나.

 

하 씨의 제안에 강왕은 희희낙락했다. 하 씨는 은밀히 옷을 너덜하게 만들어 입고 길을 나섰다. 강왕과 함께 누대에 올랐을 때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양쪽에서 신하들이 급히 붙잡았으나 끊어진 옷자락만 건졌다. 옷자락 띠에 그녀의 유언이 적혀 있었다.

 

‘왕은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만 첩은 죽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옵건대 저를 제 남편과 합장해 주십시오.’

 

왕과 함께 사는 것이 자신에게는 큰 불행이니 차라리 죽어서 한빙과 함께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런 못된 년! 죽어서도 그놈과 사랑을 나누겠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너희들 능력껏 무덤을 하나로 합쳐 보아라. 그것까지는 내가 막지 않겠다.”

 

화가 치민 강왕은 일부러 두 사람의 무덤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마주 보게 만들었다.

바로 그날 밤, 무덤 끝에서 나무 두 그루가 자라더니 열흘도 안되어 아름드리나무로 자랐다. 나무는 서로를 감싸듯 휘어져 위로는 가지가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맞닿으며 연리지로 자라나는 것이었다. 거기 더해 한 쌍의 원앙새가 그 나무에 앉아 서로 목을 겹치며 슬피 울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 원앙새를 한빙과 부인 하 씨의 넋이라 여기고 새가 앉았던 나무를 서로 애타게 그리워하는 나무라 하여 ‘상사수’라 불렀다. 여기서 ‘상사’라는 말이 유래했다.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몹시 그리워하여 생기는 증상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동진東晉의 간보가 지은 야사,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문자대로라면 서로를 생각해서 나는 병으로 해석되지만 상사병은 짝사랑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면 병이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상사병은 강박장애로 보기도 하는데 세로토닌의 감소가 나타나는 증상이나 뇌의 활성도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라 한다. 우울장애가 오게 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권하기도 한다. 심한 마음고생을 동반하니 한빙과 하 씨 부부도 자살에 이른 게 아니던가.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더라도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사람이 행했던 일들이 지금과 달리 뚜렷한 족적을 남겨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리움에 사무칠 정도로 고인이 된 분들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때의 세상은 아주 행복했거나, 아니면 작금의 세상이 너무 처절한 불행으로 점철된 세상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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