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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구하다 2_ 배수진背水陣

장한림 2022. 3. 2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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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자 덤비는 자를 어찌 당할쏜가

 

 

한나라의 개국공신 한신(BC 231 ~ BC 196년)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명장이다. 그의 군사적 공적은 중국 역사상 병선兵仙으로 추앙받고 있을 정도로 대단하고도 위대했다.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은 제후국들을 평정하던 중 위나라를 무찌르고 조나라의 재상 진여의 20만 병사와 격전을 앞두고 있었다. 불과 2만여의 병력이었다.

 

-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 군사들을 데리고 저 많은 적을 맞상대해야 하다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이판사판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한신은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심이 선 듯 기마병 2천을 뽑아 깃발을 한 자루씩 나눠주며 명령했다.

 

“저 성 근처에 몰래 숨어 있다가 우리 군사가 도망치는 척하고 물러나면 적이 쫓아올 것이다. 그 틈에 성안으로 들어가 적의 깃발을 뽑고 우리 깃발을 꽂아라.”

 

그런 다음, 한신은 군사 1만여 명을 데리고 큰 강물을 뒤에 두고 진을 쳤다. 목숨을 담보로 한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조나라 군사들이 한신을 비웃었다.

 

“한신이 명장이라더니 헛소문이었구나. 병법을 거슬러 강을 등지고 진을 치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한신은 조나라 군사들과 몇 차례 싸우는 척하다가 후퇴했다. 

 

“한나라 군은 이제 독 안에 든 쥐 신세나 다름없다. 한신을 잡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조나라 군사들은 한신의 군대를 얕잡아 보고 무작정 쫓아 강가로 몰았다. 적장을 잡아 공을 세우려는 조나라 군사들이 성까지 비우며 추격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를 틈타 한신의 군사 2천여 명은 성으로 진격해 들어가 깃발을 바꿔 꽂았다. 한신의 첫 번째 계락은 성공하였다. 그런데…. 

 

“대장군! 이제 어떻게 하지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습니다.”

“강물에 떨어져 죽겠느냐, 아니면 싸워 이겨서 살겠느냐?”

 

강을 등진 한신의 군사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젠 더 도망칠 수도 없거니와 항복한다고 산다는 보장이 없었다. 한신과 그의 군사들은 온 힘을 다해 조나라 군사들과 맞섰다. 

뜻하지 않은 강한 저항에 조나라 군사들이 당황했다. 죽을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한나라 군의 거친 기세를 감당하지 못한 조나라 군사들이 후퇴했다. 그런데 성으로 돌아가려 하니 그곳에는 한나라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성을 지키던 병력까지 모두 한나라 군에 사로잡힌 거로 생각한 조나라 군사들은 혼란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고 전의를 상실한 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한신의 병력은 그들을 추격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2만 명의 군사로 열 배나 되는 조나라 대군을 완파한 것이다.

 

“만세! 우리가 이겼다. 한신 대장군 만세!”

 

싸움이 끝나고 부하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서 이르기를, 진을 칠 때 산은 오른편이나 뒤에 두어야 하고, 강은 앞이나 왼편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장군께서는 우리 군사들에게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싸움엔 이겼지만 당최 이해가 안 갑니다.”

“또 다른 병법엔 사지에 몰리면 살게 되고, 망할 지경이 되면 일어나는 일만 남았다고도 했지. 바로 여기 해당하는 전법일세.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자국의 군사들이 강을 등지고 진을 쳤으므로 더는 물러설 데가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처음엔 두려웠겠지만 결국 죽음을 불사하고 대항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는 대장군의 말을 듣고 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이길 수 있다는 격언과 상통하는 고사다.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어 스스로 싸우게 하지 않고, 빠져나갈 틈이 있는 곳에 진영을 세웠다면 달아나다가 적의 포로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조나라와 전쟁의 결과는 대승이었다. 단순히 배수의 진을 전술로 활용했다고 승리를 이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군의 심리를 적절히 활용하고 적군의 장단점을 꿰뚫은 한신의 용병술과 지략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배수진은 의도적으로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자국 군사들을 몰아넣어 싸우게 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말이다.

배수진은 목숨을 담보로 한 비장의 전술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물을 등지는 형태의 군진은 아니지만, 신라 세속 5계에서 이르는 임전무퇴退도 이와 같은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이 배수의 진을 쳤고, 권율의 행주대첩도 한강을 등진 배수진이었다. 또 김시민의 진주 대첩도 남강을 뒤로 둔 배수진 형태의 싸움이었다.

이순신 장군도 필사즉생必死則生 행생즉사幸生則死라는 말로 군사들을 독려했었다. 즉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의지로 왜군과의 싸움에 임했으니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하겠다.

     

한때 국가대표 축구팀을 맡았던 허정무 감독이 인용한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말은 배수진보다 더 강한 어조라 할 수 있겠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워 승리를 쟁취하여 국민 여망에 보답하겠다는 의미의 출사표였다. 

진나라 장수 장한과 거록에서 맞선 초나라 항우는 사흘 치 식량만 남긴 채 타고 온 배까지 불사르며 전투에 임했다. 그때는 성을 대신 점령해줄 여유 병력도 없어 한신보다 더 다급한 상황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낸 것이다. 

 

“배수의 진을 치고 경기에 임한다.”

“배수진의 각오로 이번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어떤 일에 처해서 마음을 굳건히 다지고 임할 때 흔히 이런 표현을 쓴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무릇 이루고자 하는 목표의 중차대함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은근히 날이 선 송곳처럼 살벌함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대개 몇 번쯤 배수진을 칠 때가 있다. 그런 게 없는 삶이 실로 평화로운 삶인지도 모르겠다. 더더욱 방어를 위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공세적  배수진이라면 반드시 피해야만 할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 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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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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