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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이슈 1_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2-1)

장한림 2022. 3. 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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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시를 읊어 서로의 속을 주고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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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야. 지금 바로 그들을 쳐야 한다. 벽란도로 가자.” 

     

해주에서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진 이성계가 크게 다쳤다.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벽란도에서 요양을 하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정몽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라 여기며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마지막까지 고려 왕조를 지키려고 노심초사하던 중에 이성계가 다쳤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 거였다.

     

“느낌이 좋지 않다. 아버님이 다친 건 단순히 아버님의 부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즉시 벽란도로 가자.” 


정몽주가 보았던 한줄기 햇빛은 이방원에 의해 차단되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이방원이 한밤중에 벽란도로 달려가 아버지를 개경으로 모셔옴으로써 일단의 위험을 피해냈다.

이방원 때문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으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부상 정도를 파악하고자 병문안을 핑계로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방원이 직접 정몽주를 맞이했다.

     

“이렇게 문안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거의 쾌차하셨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주안상을 차려 정몽주와 마주 앉은 이방원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시를 읊는다.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보는 이방원의 표정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새로운 왕조를 섬기는 게 결코 그간 섬겼던 고려 왕조를 배신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 새 나라는 하늘의 뜻에 따라 필연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으며 거기에 동참해 공신으로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자는 뜻.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어려서부터 흠모해오던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 하여가何如歌를 읊어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였다. 

겉으로는 땅바닥에 놓인 돌덩어리처럼 커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너무 깊이 박혀서 오히려 거센 풍우風雨를 튕겨 나가게 하는 바위의 묵직함, 그리고 고요. 

그런 포은圃隱의 반응을 기다리는 방원은 아마도 태풍의 눈과도 같은 긴박감에 젖었으리라. 

    

 “저도 한 수 읊어도 될까요?” 

    

진작 예상했던바. 열정과 진심을 담은 혁명 실세의 설득에 바위처럼 꿋꿋하게 미동조차 없던 정몽주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늘이 스치는가 싶더니 그렇게 묻고는 미소를 머금는다. 

이방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더욱 긴장되어 몸이 굳는 느낌을 받는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의연하게 시를 읊은 정몽주가 여전히 맑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 반면 이방원은 금세 흙빛이 되어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 과연 내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 이분이야말로 이 시대 충신 중의 충신이로다.

      

포은 정몽주, 그는 비록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절대 고려 왕조를 외면할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표명한 거였다. 동시에 고려를 뒤엎으려는 역성혁명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였다. 

이방원은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실망감이 몰려들었다. 하늘처럼 공경해오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적으로 몰아 죽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새로운 나라, 얼마나 절실히 원해왔던가. 개국開國, 얼마나 꿈같은 일이던가. 

아무리 정몽주라도 새로운 왕조 건립에 등을 돌린 그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단심가丹心歌. 포은의 결연한 시조를 되뇌노라면 검붉은 선혈이 서리는 듯하다. 칼보다 날카롭고 모정보다 끈끈한 절의,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는 듯한 기개. 더불어 연상되는 선죽교善竹橋의 음울한 최후….

후세들은 포은의 ‘단심가’와 개성 선죽교의 오래도록 붉은 핏자국을 떠올리며 그의 흔적을 기억한다. 정몽주의 흔적은 충절 그 자체이다. 

산 아래까지 저물어버린 왕조, 이미 저물다시피 한 태양, 고려에 스스로의 심장을 바친 이. 되뇔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포은은 끝내 고려인으로 생을 마감하고 영원토록 고려 사람으로 추앙받는 충신 중 충신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오로지 충절을 위해 보장받은 영화를 마다하고 기꺼이 삶을 거부한 포은의 절의는 이해타산에 급급하여 변절과 배신으로 치닫는 요즘 세상에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그의 시, 단심가는 이리 느끼고 저리 읊어도 전혀 무디지 않다. 그의 단심가는 소리 내어 읽노라면 가슴으로 기리게 하고, 속으로 되뇌면 머리로 추앙하게끔 한다. 요즘 현실에는 접하기 어려운 참멋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뜬금없고 어리숙한 생각인 게 분명하겠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가 바뀔 즈음, 이방원이 뜨거운 감자처럼 정몽주를 죽여야만 했을 즈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당시의 고려나 조선도 유럽의 왕국처럼 왕이 바뀌면서 왕조의 명칭만 바뀌었다면? 

중국이 수나라, 당나라를 거쳐 송, 원, 명, 청나라로 나라 명칭을 바꾸었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지만, 고려의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왕조의 명칭만 바꿨다면 정몽주도 살아 더욱 애국할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발상이 드는 것이었다.

고려 말의 유신 중에는 정몽주 외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수없이 많았다. 태조 왕건부터 이어 내려온 왕 씨 왕족의 고려라는 나라가 이 씨 왕조의 조선이라는 나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해 모두 죽거나 숨어버림으로써 그로 인한 후손들의 손실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고이곤 하는 것이다. 

    

“나라를 통째 바꿔야 하오.”

“혁명의 진정성은 백성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 도들 넘으면 그건 혁명이 아니라 역모가 됩니다.”

 

정몽주는 1364년, 고려군이 화주에서 여진과 격전을 치를 때 이성계를 따라 종군했는데, 이때 그의 인품에 감화되어 이성계와 노선을 같이 해왔다. 

     

- 이 사람이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기울어있구나.

 

그런데 후일 고려 개혁의 방법을 놓고 이성계와 갈등하게 되는데 그가 왕권에 욕심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면서 괴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굽힘 없는 소신으로 인해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그리고 이방원과 정몽주(2-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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