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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 한국 침공 11_ 대승그룹 수난의 서막

장한림 2022. 5. 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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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ic State 이슬람국가 한국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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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중년 사내가 사우나탕에서 칼에 난자당해 죽었다. 지문은 물론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범인은 유유히 살해 현장을 빠져나갔다.

 

대낮에 사우나탕에서 칼에 맞아 죽어 나자빠졌는데 목격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서초경찰서 강력2팀의 박진철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건 발생 두 시간 전부터 사우나탕 전체를 대절했답니다. 보일러실 정비를 핑계 삼아 그때부터 손님을 받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 게 가능해?”

도박하는 작자들이 종종 그런 관행을 만들어놓아서요.”

현장 조사를 마친 강진우 형사의 답변이 박진철 팀장의 속을 더욱 뒤집어놓았다.

 

“CCTV?”

그게 말입니다. CCTV도 그 시간대에 작동이 멈춰버렸답니다.”

뭐야?”

범인은 프로킬러인 거 같습니다.”

프로면 안 잡을 거야? 프로건 아마추어건 무조건 잡아. 더 찾아봐. 뭔가 나올 거야.”

 

그렇게 다그친 박진철은 사건 파일을 다시 살폈다.

 

! 이거 말이야. 대승사건 때랑 가해 수법이 닮지 않았어?”

그렇네요. 똑같습니다.”

빨리 죽은 임상진이라는 사람의 프로필을 조사해봐.”

!”

 

진철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강진우 형사의 보고를 받았다.

 

대승건설이 시행한 신도시 아파트 공사에 상진건설에서 골조건축 하도급을 맡은 적이 있었답니다. 임상진은 상진건설의 대표이사고요.”

 

역시 대승과 관련이 있었다. 피살자는 사우나탕의 밀폐된 공간에서 살해되었다. 손목과 양쪽 귀가 떨어져 나간 임상진은 과거 여러 폭력 전과가 있는 인물이다. 조직의 물을 먹은 건장한 체구의 폭력배를 제압한 자는 누구일까.

만일 범인이 대승 볼보사건 때의 범인과 동일인이라면 그는 완력과 머리가 모두 뛰어난 놈이다. 무서운 놈이 아닐 수 없다. 엽기적일 정도로 잔인하고 대담한 수법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처럼 몹쓸 기분이 든다.

박진철은 답답한 마음을 누르지 못해 다시 한번 현장을 살펴보기로 하고 서를 나서려는데 윤태수한테 전화가 걸려 왔. 5분이 지나지 않아 태수가 들어왔다.

 

대장님! 잘 지내셨어요?”

대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저한테는 영원한 대장입니다.”

널 보면 자꾸 산 생각이 나서 말이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대원들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저며 온다.

휴가 맞춰서 설악산이라도 한 번 다녀올까요?”

 

그런 진철의 마음을 읽은 태수가 등산을 언급했다. 진철에게 설악산은 위안이고 휴식이며 평화라는 걸 태수는 잘 알고 있었다.

 

대승계열사 사장이 둘씩이나 살해되었는데 그룹 경호팀장이 휴가나 갈 수 있겠어. 나도 대승사건 때문에 다른 일엔 신경도 못 쓰고 있다네.”

그렇겠군요.”

왜 왔어?”

수사는 진전이 있나요?”

 

태수의 되물음에 진철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대승화학 유상천 고문 저격범을 만나보고 싶어서요.”

얼마 환영 행사 때 범인 말이야?”

.”

김규석, 그자는 모르쇠야. 확실한 동기도 밝히지 못하고 집어넣었잖아.”

수원교도소에 있다고 했죠. 대장님! 저랑 같이 가서 그자를 만나보죠.”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거야?”

어쩌면요.”

 

태수는 수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대승사건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진철에게 설명했다.

 

김규석의 조카가?”

김규석을 만나보면 뭔가 얻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태수, 너 아니면 난 경찰 짓도 길게 못 해 먹을 거야.”

 

진철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다가 오지게 엮인 매듭이 풀리는 느낌이다.

 

하하하! 이 사건 해결해서 승진하면 한잔 사세요.”

사건이 해결된다면야 한잔뿐이겠어.”

 

이번 대승사건이 해결된다면 제일 먼저 태수와 함께 설악산을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북 능선을 걸으며 태수와 함께 갔던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추억 삼고 싶었다.

 

너랑 처음 마나슬루를 오르면서 네 존재를 실감했지.”

내 존재가 어땠는데요.”

태수의 물음에 진철은 미소만 흘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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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존재? 마치

 

마치 버트레스 같았어. 정상을 지지해주는 거대한 암벽처럼 느껴졌지. 다시 로체에 갔을 때 너는 감동 그 자체였어. 해가 지자 로체 남벽은 검은 하늘이 가린 것처럼 더욱 거대한 위용으로 우리를 압도했었지. 그런데도 너를 위에 두고 안자일렌anseilen을 하면서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쏟아지는 낙석에 스노우 샤워를 로프 위에서 감수하면서도 넌 밑의 내가 다칠세라 신경을 곤두세웠었어. 고산 거벽맹추위 속에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더라. 그런데 네가 없는 안나푸르나는 무척이나 쓸쓸하고 위태롭더구나.

진철은 슬그머니 태수의 손을 잡으면서 오래전 로체에서의 하강을 회상했다.

베이스캠프를 떠나 닷새째 되던 날, 하늘 아래 유일하게 매달려 숨이라도 고를 수 있는 곳이 수직에 가까운 얼음벽이었고 탈수를 극복하려 입에 넣을 수 있는 게 빙벽에서 떼어낸 얼음조각이었다.

예정보다 하루 반이 지나도록 베이스캠프의 망원렌즈에 잡히지 않으니 거기 있는 대원들은 박진철 대장과 윤태수 대원이 조난되었을 거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겨우 스무 살의 태수는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피켈을 박고 다시 로프를 끼우며 연신 소리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아무리 악력이 강해도 저 정도면 손이 부어오르거나 감각을 잃을 터인데 태수는 고통스러운 내색 한번 없이 내리막 빙벽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

 

대장님! 괜찮으시죠?”

 

간신히 발 네 개 디딜만한 공간을 확보한 그가 오히려 위를 올려다보며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게 아닌가.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딱딱하게 굳은 초코파이를 하나씩 먹으며 젊은 태수가 거대한 등받이처럼 아늑하게 느껴졌었다.

 

- 그게 너, 윤태수였어.

 

그 후로도 태수는 그때 로체에서처럼 볼 때마다, 떠올릴 때마다 아늑하고 강했다. 단 한 번도 상대를 조바심 나게 하거나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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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한 명 있던데 수감된 동안 한 번도 면회 온 적이 없더군요.”

 

수원교도소 특별접견실에서 태수가 단도직입적으로 조카를 언급하자 감은 듯 뜬 듯 고요하던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누님이신 김윤숙 씨의 복수를 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거군요.”

…….”

 

이준명 회장을 향해 두 번째 총을 발사하려 할 때 태수의 발차기에 맞아 넘어졌지만, 김규석은 태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태수는 형사처럼 굴었다.

 

조카인 이명규에게도 당신이 복수심을 심어준 건가요?”

 

태수의 말에 김규석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그렇다면 당신 조카는 외삼촌 때문에 사람다운 삶을 한 번도 살지 못하고 생을 마치게 되는 겁니다.”

내 조카는 그 애 첫돌 때 본 게 첨이자 마지막이요.”

 

김규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답했으나 다분히 흥분이 담긴 어조다.

 

당신 누님 부부가 죽은 그 해에 당신 조카도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그게 어쨌냐는 건지, 형사의 접견이 귀찮다는 건지 김규석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당신이 보호했겠지요.”

…….”

이 안에서도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대승그룹 계열사 사장 두 명이 닷새 걸러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진철은 옆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침을 삼켰다. 여전히 김규석은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당신 조카의 짓인지 아니면 또 다른 당신의 공범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범인은 당신과 달리 범행을 즐기고 있어요. 당신하곤 확연히 구별되는 프로킬러고요.”

 

김규석이 고개를 치켜들어 천정에 시선을 박더니 눈을 감았다. 더는 무슨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는 어깃장이다.

 

그자는 이미 우리가 쳐놓은 덫에 다가와 있어요. 곧 당신과 만나게 될 겁니다. 이 안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태수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살핀 김규석의 표정에서 그가 흔들리는 걸 보았다. 처음과 달리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다. 진철이 따라 일어났다.

 

태수, 넌 경찰이 되는 게 나을 뻔했어.”

 

수원교도소에서 김규석을 만나고 나오면서 진철은 태수의 등을 두드렸다.

 

김규석, 놈의 심리를 잘도 파고들더군.”

전쟁터에서도 심리전은 기본에 속하는 전술이죠. 이 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생각과 같아. 이젠 조카라는 놈의 행방을 찾는 게 급선무겠지.”

대장님! 다음 표적은 대승 캐피탈일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태수가 대승 캐피탈 대표를 언급하자 진철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 대승화학의 생산직 근로자 이현우 부부가 사망했고 최근 들어 대승화학의 이세준 대표와 그 당시 총무부장이던 전승현 대승중공업 대표가 연이어 살해당했다.

 

그렇다면 대승 캐피탈 대표도 동일선상에 있는 인물이라는 거야?”

그럴 겁니다. 범인이 이명규라면 말이죠.”

 

대승화학의 당시 자금 부장이 지금 대승 캐피탈 대표이사 오규철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 두 사람 외에는 당시 대승화학에 재직한 인물 중에 대승그룹계열사 CEO로 승진한 사람은 없었다.

 

대승에다 수사본부를 차리는 게 낫겠군.”

 

태수의 설명에 진철은 푸념처럼 읊조렸다가 어제 일어난 사우나탕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태수야, 그렇다면 이명규가 더욱 혈안이 돼서 찾아야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을까?”

…….”

죽은 대승의 사장들이 직접 이명규 모친을 살해하진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말이야.”

살인을 대행한 청부업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진철은 어제 오후에 P 사우나탕에서 일어난 사건을 언급했다. 진철의 얘기를 귀담아들은 태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어제 일어났다고요?”

, 아까 너 오기 전에 우리 서에 사건접수가 됐어.”

5일 간격이네요.”

 

이세준 대표가 살해되고 닷새 후에 전승현 대표가 살해되었다. 그리고 또 닷새가 지나 임상진 상진건설 대표가 살해된 것이다. 우연이라고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역시 사우나탕에서 죽은 임상진이 사주를 받아 부인을 살해한 범인일까.”

그런 거 같아요.”

건설회사에 금융업체까지 운영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그 일을 해낸 후 부자가 된 거죠. 그 일에 관련된 대승의 누군가가 그를 부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 테고요.”

 

진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강 형사! 난데 죽은 임상진을 더 조사해봐. 10년 전 행적이랑 살해된 대승사장들과의 연관성까지.”

 

진철은 임상진에 대한 과거 행적을 조사하고 대승과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면 사건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는 드러날 것으로 판단했다. 태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이명규를 추적하는 일일 겁니.”

널 만나니까 잿더미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다.”

또 불길한 일이 생기면 대장님이랑 저는 다시 산이나 다닙시다.”

 

이만큼 수사상황을 진척시켰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또 다른 살인사건이 생긴다면. 진철은 소름이 돋을 것처럼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태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된다면 경찰복을 벗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승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저녁 8시 뉴스를 보는 김규석의 마음이 어둡고 착잡했다. 같은 방 수감자가 뉴스를 보며 내뱉은 말처럼 대승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서는 느낌이다.

 

누군지 보통 잔인한 놈이 아니야.”

 

피살자의 사인을 언급하는 리포터의 빠른 말을 들으며 또 다른 수감자가 거들었다. 대승화학과 대승중공업 사장에 이어 또 다른 사람이 사우나탕에서 벌거벗은 채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제 오후, 사우나탕에서 죽은 임 아무개라는 사람은 대승건설의 하도급업체인 상진 건설의 사장이라고 한다.

 

- 그렇다면 저들이 누님을 죽인 거야?

 

대승그룹에 대한 무작위보복이 아닌 듯하다. 특정 인물을 선정해 저토록 잔인하게 죽였다면 명규는 복수의 대상, 즉 제 엄마의 살해범을 알아낸 듯하.

피살자들은 하나같이 목뼈가 부러졌고 눈과 가슴이 찔렸다는 경찰발표를 인용한 리포터의 말을 들으며 누나의 훼손된 시신 상태가 눈에 선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부위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건 틀림없이 제 엄마의 죽음 모습을 뇌리에 담고 있던 거였다.

 

범인은 당신과 달리 범행을 즐기고 있어요. 당신하곤 확연히 구별되는 프로킬러고요.”

 

아까 다녀간 젊은 형사가 말했듯 명규는 더욱 대담해지고 잔인해졌다. 군대에 가서 응어리진 복수심이 가라앉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녀석은 완벽한 살인 병기로 만들어져 제대한 것 같았다. 제대한 이후에도 녀석은 대승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대승에 대한 자료를 속속 수집하고 있었다.

 

그자는 이미 우리가 쳐놓은 덫에 다가와 있어요. 곧 당신과 만나게 될 겁니다. 이 안에서 말입니다.”

 

형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명규는 절대 잡히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도 명규는 칼을 손에 쥐고 또 다른 사건의 중심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심란한 건지도 몰랐다.

여기 들어와 생각하니 복수에 집착하며 증오심을 꺾지 못했던 게 후회스러웠다. 아니, 하나뿐인 조카의 복수심을 가라앉혀주지 못하고 되레 키우게끔 관망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대승의 등반 환영행사장에서도 명규와 세웠던 저격계획을 어기고 먼저 총을 빼든 것은 오로지 녀석을 위함이었다. 두 사람 모두 붙잡혀 영어의 몸이 될 수는 없었다.

아직 창창하게 젊은 조카가 살인범으로 평생 옥살이를 한다면 죽어서도 누나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죽은 매형과 누나를 위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으나 생각을 돌리고 행동을 멈추기엔 너무 늦고 말았다.

 

- 제 어머니의 시신을 보게 하는 게 아니었어.

 

너무나 비참하게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도 녀석은 오열을 참는 대신 증오를 키웠다. 돌이켜보니 학생인 조카에게 그때부터 심리적으로 끌려다녔던 것 같다.

 

조카인 이명규에게도 당신이 복수심을 심어준 건가요?”

 

그러나 형사의 말과 달리 오히려 조카의 분노에 부응하고 증오에 동조하며 나 자신도 그 심정에 동화되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 처음부터 그랬듯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힘겹게 살아온 누나였다. 일찍 고아가 된 남매는 보육원에서 컸다.

 

규석아, 누나는 괜찮아. 저분들을 따라가. 미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

 

열두 살 때 세 살 위인 누나를 떠나 미국인 부부 가정에 혼자만 입양되었다. 그 후 누나를 다시 본 건 누나 결혼식 때였다. 누나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명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야 처음으로 조카를 볼 수 있었다.

누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하나뿐인 아들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고 반듯하게 성장시키려 사력을 다했다. 미국에서의 생활 터전을 확고하게 잡지 못한 탓에 누나 가정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매형이 다니던 공장에서 화학약품에 중독되어 사망했고 뒤이어 누나가 실종되더니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명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즉시 명규를 데리고 미국으로 왔다. 명규를 아들로 입적하여 미국 국적을 갖게 할 수 있었다. 이미 명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말수도 급격히 줄었지만, 미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자원입대하여 3년여 군대 생활을 마치고 전역해서 또 수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명규는 한시도 대승을 뇌리에서 떨쳐내지 않았던 것 같다.

복수의 방식이 이렇게 나타나리라곤 꿈에도 짐작할 수 없었다. 불길하다. 일이 터져버렸는데 불길한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 왠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어. 더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아이! 명규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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