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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에서 읽는 역사 이야기_ 궁예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 울음터

장한림 2022. 3. 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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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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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의 흔들림에서 궁예의 울음 소리를 듣는 명성산

<명성산 - 궁예의 울음이 내내 그치지 않는 울음터> 

 

 

 

붉게 그을린 단풍이 제 살 식히려 수면까지 길게 가지 늘어뜨린 산정호수의 정취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데 다시 와 헤아리니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물안개 자욱했던 아침 호수, 호숫가 산책로를 걸으며 둘러보면 세월 흘렀어도 풋풋한 기억으로 되새겨지는 곳이다.

 

산행 전 산정호수를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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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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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개용 저수지로 조성한 인공호수이지만 세월 흘러 다시 찾았어도 엊그제 왔던 것처럼 정겹고 푸근하고 올곧은 곳이다. 시선에 박히는 주변마다 끈끈이 이어져 알알이 각인되는 산정호수다.

울음산이라고도 하는 명성산, 품에 안기듯 하늘거리는 억새 물결 능선을 물기 머금은 단풍의 배웅을 받으며 오르기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시 산정호수를 끼고 올라 정상에 닿으면 거긴 강원도 철원에 속한다. 양쪽으로 식당들이 늘어선 골목길에 들어섰는데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먹거리가 다양하다. 이 길을 통해 명성산 억새밭으로 향한다.

아직 이르다 싶었는데 계곡 초입부터 단풍이 물들고 있다. 초록을 바탕으로 주황과 빨강, 간간이 노랑을 덧칠하여 더는 붓질할 부분이 없는 완벽한 수채화다. 

     

“가을이 온통 붉기만 하다면야…… 홍록이 어우러지니 단풍이 더 돋보이는 거지.”

    

파란 하늘 흰 구름 아래로 맑은 계류 흐르고 초록과 다홍이 어우러져 이만한 가을 하모니가 또 있을까 싶다.

 

 

궁예의 울음이 폭포 되어 내리네.

 

등룡폭포를 오른편에 두고 오른다

 

바위와 부드럽게 스킨십하며 찬찬히 물을 흘리는 등룡폭포를 우측에 두고 올라간다. 

     

“장차 나라에 이롭지 않은 인물이니 내다 버리는 게 좋을 것이요.”  

   

예언에 따라 아이를 강보에 싸서 다락 밑으로 던졌는데 집안의 시녀가 몰래 받게 되었다. 그때 시녀의 손에 눈이 찔리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으나 한쪽 눈이 멀고 말았다. 그 시녀가 어머니처럼 아이를 키웠으나 불행한 예언을 듣게 된 궁예는 일찌감치 키워준 어머니를 떠나 승려가 된다.  

   

“이대로 중이 되어 살 수만은 없어.”  

   

절을 떠나 3년째가 되는 서기 894년, 궁예는 강릉을 거점으로 3500명 이상의 휘하 병졸을 거느린 장수가 되었다. 이즈음부터 궁예는 혼란한 신라 말기의 빈곤한 백성에게 미륵보살로 군림하게 된다. 금상첨화로 출중하기 그지없는 왕건을 부하로 두면서 더욱 승승장구한다. 남서쪽에서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1년 뒤 궁예는 후고구려를 탄생시키는 절정의 시기를 구가하게 된다. 

서기 901년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부르며 맏아들을 청광 보살, 막내아들을 신광 보살이라 하였다.  

강원도 철원군청 현관에는 지금은 비무장지대(DMZ)인 태봉국 궁예왕의 도읍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실물 모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모형을 보노라면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궁예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궁예의 성공담을 회상하며 명성산을 오르는데 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계곡이 끝나고 돌길을 지나 다다른 억새군락은 화전민 터였던 곳이다. 나무 둥지에 울음 터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 1950년대까지 밭을 일구다가 화전민들이 떠나자 억새군락이 조성되었다고도 하고, 한국전쟁 중에 울창한 숲이 타버리면서 자연적으로 억새가 자라났다고도 한다. 

마침 구름을 벗어난 태양이 환하게 비추자 억새밭은 은물결로 넘실댄다. 영남알프스 신불산이나 재약산의 억새평원처럼 광활하지는 않아도 고루고루 잘 다듬어 눈길 붙드는 억새 정원이다. 

 

울음터로 이름 지은 명품 억새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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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산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 도봉산역이나 수락산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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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못 이겨 통곡하자 억새도 따라 울었다는 울음산은 마의태자 못지않게 궁예의 참담함이 곳곳에 서려 있다. 

911년에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바꾼 그는 점점 포악해져 갔다.    

 

“왕이 수범이 되지 못하고 그릇된 일을 하면 민심을 잃게 됩니다.”

“네가 다른 놈과 간통을 하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구나”   

  

915년, 부인 강 씨가 충언을 올렸으나 궁예는 관심법이라고 하는 자기 신통력을 들먹이며 아내와 두 아들까지 죽여버렸다. 미치광이처럼 변한 궁예에게서 벗어난 왕건은 궁예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방 호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군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려 노력했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무신을 휘하에 두게 된 왕건은 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새 나라를 세우기로 한다. 끝내 궁예는 왕건과 자웅을 겨루게 되지만 패자로서 수모의 길을 걷게 된다. 

후고구려를 세워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승승장구 세력을 확장했다가 왕건에게 패해 도망쳤다는 패주골, 왕건 군사의 추적을 살피던 망무봉 등이 그곳이다. 

이 산에 은거했다가 왕건과의 최후 격전에서 대패하여 온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하여 명성산鳴聲山으로 불린다.

궁예의 한은 조금 더 지나 약수터에도 생생하게 서려 있다. 궁예도 울고 궁예의 백성들도 울고 또 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나라 잃은 궁예의 한을 달래주려는 양 눈물처럼 샘솟았다는 궁예 약수는 극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어 천년수千年水라 칭하고 있다. 천 년간 눈물을 흘렸으니 동공은 얼마나 쓰라리겠는가. 

눈물 젖은 역사의 이어짐이라고나 할까. 명성산에 올라 북쪽을 향해 시선 머물면 산과 들이 맥맥히 이어지지만, 그 가운데쯤 평야 지대에서 남과 북으로 그 방향을 확연히 가르고 있다. 바로 국토를 둘로 쪼갠 분계선이다. 

 

능선 초입에 팔각정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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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 올라서도 펼쳐진 억새밭 너머로 서글픈 역사의 흔적들이 자꾸 들춰진다. 전쟁 전 38선 이북의 땅이었던 이곳에서 가을 억새의 흔들림을 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1년 후에 받는 편지’     

 

팔각정 아래 명성산 표지석 옆에 빨간 우체통 하나가 세워져 있다. 1년간 발전적으로 변화된 삶을 모색하고 1년 후 다시금 반성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체통을 바라만 보다가 고도를 높이며 또 다른 억새군락을 지나게 되는데 아직 은빛 치장 못 한 억새들은 휑해 보이는 게 아니라 뜨끈한 온천욕 후 갈아입을 설빔을 연상시킨다. 

 

능선 아래로 곳곳이 억새군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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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란한 조경사의 손으로 숱한 세월 매만진 듯한 노송들은 세월 흐름이 연로의 과정이 아니라 연륜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비탈길 비스듬히 기대서서도 튼실하기 그지없는 소나무 잔솔들은 여전히 푸름을 더한다. 

자연 그대로인 곳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린 나무와 다듬어 심은 나무는 뿜어내는 생기도 다르고 향도 다르다. 인위적으로 가공한 품위가 자연 그대로의 멋을 따라잡을 수 없음이다. 

그러하지 않던가. 서울 강남의 알아주는 성형외과를 출입한 미인의 모습이 모태 미인 그대로의 모습을 따라잡을 수 있던가 말이다.  

    

지친 발걸음 조심스레 내딛을 무렵 해거름 주홍 노을

속에 담아 돌아오면 너무 그리워

다시 오게끔 하는 그 찬연한 풍광

소매 잡아끌려 몸 맡기면

은빛 억새 하늘거리고

늙은 고목 기침 뱉는 곳

그 무어로도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유혹

난 그예 

그 산

그 깊은 품에 푸근히 안겨있다. 

   

삼각봉 가는 능선이 한가롭다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건 패자가 감수해야 할 숙명이자 필연이다 

 

이 길, 삼각봉 가는 바윗길은 천손 만객 영접했어도 예의 윤기 번지르르한 웃음을 띠고 있다. 주야를 내달려 일그러진 고달픔이 앙금처럼 고인 영혼인 걸 알아차려서일까. 나직이 속삭여 충고해준다. 

    

“공수래 아니었던가. 번민을 지녔다는 건 이미 꽃 한 송이라도 피웠다는 증거 아니겠나?”   

  

풍족하지 않은 건 흘러넘칠 일이 없음이요.  

   

“공수거 아니겠는가. 무겁게 무얼 지니고 싶은 겐가?”   

  

미련 남아있다는 건 지금도 저 아래 폭포수처럼 다 흘려보낼 수 있음이요, 평생 일군 텃밭에 비록 잡초만 허허롭더라도 다시 불 바람이 밀알 될 씨 뿌려줄 터이니 가라지 뽑다 보면 다시 수확할 일도 생기지 않겠는가.

인위적으로 콘티 짜고 정성 들여 디스플레이 한들 시간 지나면 색 바래고 먼지 쌓이는 게 예사 건만 여기 명성산 능선은 그만한 풍우와 폭설 후에도 전혀 달라짐이 없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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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봉 정상석 해태상 앞에서

 

삼각봉 정상(해발 906m)도 우람하게 세워진 정상석 외엔 달라진 게 없다. 정상석 뒷면에 조선시대 문인이자 명필인 봉래 양사언의 태산가泰山歌가 한자어로 새겨져 있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컫는 양사언은 4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정이 없었고 유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청문회에서 이미 부정 축재의 빌미를 제공해 임명된 자리마저 그저 지붕에 올라간 닭 바라보듯 침이나 삼켜야 하는 요즘의 실태와 견주게 되니 태산가가 한 번 더 읊조려진다. 상식을 벗어난 윤리, 몰염치한 양심, 거짓과 속임수…… 지켜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 아니던가.     

삼각봉에서 명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포천과 철원의 경계 표지판이 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넘어서게 된다.

 

명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해발 923m 명성산 정상은 삼각봉만큼 확 트인 조망권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하늘 공간 틈새로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흐릿하게 대성산까지 담을 수 있다. 그 뒤로 북한지역은 뿌연 장막을 치고 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와 산안 고개 방향으로 하산한다. 

뒤돌아 올려다보면 삼각봉이 보이고 반대편으로 궁예봉도 보인다. 

 

오른쪽부터 삼각봉, 명성산과 궁예봉이 나란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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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산을 잇고 또 나를 잇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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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편안한 하산로는 계곡 합수점까지 이어지면서 단풍 곱게 물들이며 아래로 뻗어가는 중이다. 

산안 고개 안부에서 600m 비켜선 궁예봉으로 틀어 올라간다. 바위에 길게 늘어진 밧줄이 편한 길이 아니란 걸 대변한다. 궁예인들 편한 길을 택해 도망쳤겠는가. 궁예의 입장이 되어 바윗길을 오르니 측은지심이 생긴다.

궁예봉(해발 823m)에 세워진 정상 표지목이 썰렁했는지 왕수 산악회라는 곳에서 아담한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봉우리 아래로 층층 쌓은 듯한 바위가 보이는데 궁예의 침전이라고들 부른다.

 

“잠자리인들 편할 리 없었겠지.” 

    

쫓기고 또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식은땀 흘리며 깼을 층층 바위를 안쓰럽게 바라보게 된다. 궁예는 이 산 깊숙한 곳까지 도망쳐왔지만 백성들에게 붙잡혀 최후를 맞았다, 역사에서도 악한 군주, 실패한 군주의 이미지로 남겨지고 만다. 패자는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역시 패자가 감수해야 할 숙명이다.   

되돌아온 산안 고개 안부 갈림길에서 내리막 계곡은 더욱 사납고 미끄럽다. 몇 차례 마른 계곡을 건너다가 명성산 정상 직전의 산안 고개에서 내려오는 하산로와 만난다. 이후 하산 내리막은 완만한 편이다. 

양봉장을 지나 펜션 지역을 통과하여 산정호수 상류에 이른다. 호수 둘레길을 걷노라니 가을을 담은 수면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주변 상가에 하나씩 둘씩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산정호수의 진득한 낭만이 피어날 가을 저녁 무렵에도 궁예의 울음은 그치지 않고 있다. 천년 신라를 부정하고 부처를 자처하며 동아시아 이상 국가를 염원했던 궁예는 우리 역사상 단 한 명의 왕으로 끝난 유일한 왕조 국가, 태봉의 왕이었다. 승자는 신화를 만들되 패자는 우울한 야사를 지어낼 뿐이다.  

     

하산 후 산정호수로 내려와서

 

 

때 / 초가을

곳 / 산정호수 관광단지 - 등산로가 든 - 비선폭포 - 등룡폭포 - 억새군락 - 천년 약수 - 팔각정 - 삼각봉 - 명성산 - 산안고개 안부 - 궁예봉 - 산안고개 안부 - 산정호수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Xp6d1rtO9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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