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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서 읽는 역사 이야기_ 상원사에 그득 고인 세조의 영욕

장한림 2022. 3. 1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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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마루금이 나른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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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오대산 - 상원사에 그득 고인 세조의 영욕>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오대산으로 차를 몬다. 44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월정사 부도를 지나면서 비포장도로로 바뀌자 맑고 수려한 오대천 계곡에 이르게 된다.

신선골, 동피골, 조개골에서 흐르는 물이 합수하면서 오대천 상류를 형성하여 남한강의 시원이 되며, 역시 오대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내린천은 북한강의 시원이 되니 곧 한강의 발원이다

동피골 야영장을 지나 상원사 입구에 주차한 후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빛이 창창하다.

오대산은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세 번째로 크고 넓은 산이다. 월정사 지구, 소금강지구, 계방산 지구의 셋으로 나뉘는 오대산 영역은 각각의 산세가 판이하다.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여 연꽃의 마음을 품었다는 월정사 지구의 오대산 코스, 주봉인 비로봉을 오르기로 한다.

상원사 들머리에서 비로봉까지의 길은 늘 만만치 않았다. 급경사 오름길을 숨 몰아쉬며 땀범벅이 되어 버겁게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겨워하면서도 다시 찾고 또 찾는 것은 그만큼 멋진 곳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은 대개 험상궂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험상궂은 곳일수록 곳곳마다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곳이 산이다.

 

숨어있던 아름다움 하나가 실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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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스님들은 여름철 비 오는 풍광은 월정사에서 바라보고, 겨울 설경은 오대산에서 느끼라는 의미로 우중 월정 설중 오대雨中月精 雪中五臺라는 말을 했는데 사시사철 월정사와 오대산의 아름다움에 한 치 어긋남이 없는 표현이다

육중한 산세를 병풍 삼은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유서 깊은 불교 성지이다. 두 사찰 모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무수한 암자 등 산 전체가 불교 성지를 이룬 곳은 국내에서 오대산이 유일하다니 얼마나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겠는가. 상원사에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역사유물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문수동자 좌상(국보 제221)을 보고 자신도 모를 표정을 짓게 된다.

 

 

찰떡궁합인 세조와 상원사의 인연

 

오대산 상원사에 와서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의 수종사를 언급하는 게 뜬금없기는 하다. 피부병을 고치려고 금강산을 다녀오던 조선 7대 세조가 운길산 밑에서 하룻밤을 묵던 중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려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수종사水鐘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일화와 맥락을 같이 하는 상원사 문수동자를 보며 또 하나의 일화가 떠올려진다. 종기로 고생하던 세조가 이곳 오대천 계곡에서 지나가던 동자승을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한다

 

누구에게든 임금의 등을 씻어주었다고 말하지 말아라.”

 

목욕을 마친 세조가 동자승에게 당부하자 동자승이 정중히 말을 받았다.

 

대왕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씀하지 마시지요.”

 

오대 신앙을 정착시킨 신라의 보천태자가 근처 수정암에서 수양 중이던 문수보살에게 매일 물을 길어다 친히 공양했는데 바로 그 문수보살이 씻겨주었으니 불치병인들 고쳐지지 않겠는가. 보천태자가 공양한 물이 속리산 삼파수, 충주 달천수와 함께 조선 3대 명수에 속한다는 우통수于筒水이며 그 샘터가 한수의 발원이라고도 전해진다

그 후 세조의 종기는 깨끗이 치유되었고 세조는 허름했던 상원사를 번듯한 사찰로 증축시켜 임금의 원당 사찰로 만들었다. 거기 더해 기억을 되살려 화공에게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다. 그 그림을 표본으로 조각한 것이 상원사 본당인 청량선원에 모셔진 목조 문수동자 좌상이다. 세조와 상원사의 각별한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량선원을 끼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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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산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 도봉산역이나 수락산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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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선원 앞에 두 마리의 고양이 석상을 보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흘리게 된다. 상원사를 방문한 세조가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드리려 하는데 별안간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소매를 물고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이로다.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져라.”

 

결국,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있는 자객을 잡았다. 고양이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에 묘전描田을 하사하였다. 또 봉은사 등 한양 근교의 여러 곳에 묘전을 설치하고 고양이를 기르게 했다.

불교를 배척한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전국의 사찰이 황폐해졌지만, 왕의 원찰이 되는 등 오히려 상원사는 승승장구 거듭 발전하였다.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다가 1946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는데 당시 월정사 주지였던 이종욱 스님이 그 이듬해에 금강산 마하연의 건물 형태를 본떠 청량선원을 지으면서 다시 중창되기 시작했다.

막 지나온 관대 걸이라는 안내판에도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곳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세조가 피부병 때문에 금강산을 다녀오다가 결국 오대산에서 고치고 한양으로 가던 중 수종사를 지었다는 일화가 연결되는 맥락일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죽이면서 그 업보로 얻었을 피부병을 절 두 채의 값으로 고쳤으니 세조는 부가가치가 높은 거래를 한 셈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태종과 세조의 원찰이 되는 등 숭유억불 정책 속에 전국 사찰이 대다수 황폐해졌으나 오히려 상원사는 더욱 번창하였다.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다가 1946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는데 당시 월정사 이종욱 주지스님이 그 이듬해에 금강산 마하연의 건물을 본떠 청량선원을 지으면서 다시 중창되기 시작했다.

 

대찰답게 연등도 상당히 많이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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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의 다섯 개 대는 중대를 비롯해 방위에 따라 동대, 서대, 남대, 북대를 가리키고 대마다 사자암, 관음암, 수정암, 지장암, 미륵암의 암자가 있다

중대 사자암을 가리키는 길로 진입하기 전에 돌아보다가 이명처럼 은은하고도 청아한 종소리를 듣는다. 불교에서는 사찰에서 울리는 범종梵鐘 소리를 진리를 설하는 부처님의 열변과 같으므로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든 중생의 각성을 촉구하는 부처님의 음성이며 정신을 일깨우는 지혜의 울림이라는 것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인데 이 종 또한 세조에 의해 상원사로 옮겨졌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12년 후인 1466, 상원사를 확장하여 임금의 원당 사찰로 만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소리 울림이 좋은 종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다.

안동도호부 남문루에 있던 3300근 무게의 동종이 선택되었다. 경주의 에밀레종보다 100여 년 앞서 주조된 것으로 금, , 동과 주석을 녹여 만들었으며 높이 1.4m, 직경 1.2m로 용신을 틀로 하여 사방을 구분할 수 있는 비천 선녀 무늬가 있는 종으로 그 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은은하고 끊어질 듯하면서도 백리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원래 사찰의 범종이었는데 조선 초 억불정책으로 절이 쇠락하면서 안동도호부의 시간을 알리는 관가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 무거운 종을 나무 수레에 싣고 500여 명의 호송원과 100여 필의 말이 끌어 이곳 상원사까지 옮겨온 것이다.

무얼 해도 상생의 결과를 도출하는 세조와 상원사의 인연을 새겨보다가 중대 사자암 쪽으로 진입하면서 비로봉으로의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멀리 황병산이 보인다

       

불볕더위를 감내하고 오대산 정상으로 

 

이전엔 없었던 돌계단이 깔끔하게 깔려있다. 적멸보궁까지 계속되는 계단이다. 풍수지리상 적멸보궁이 자리한 곳이 용의 정수리 부분이란다

샘터 하나가 있는데 마시면 눈이 맑아진다는 용안수이다. 용안수를 지나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이곳의 적멸보궁을 왼쪽으로 두고 지나가게 된다. 두 번이나 다녀왔으므로 오늘은 들르지 않고 바로 올라간다.

없던 공원 지킴터 막사가 생기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비로봉 오르는 이 길은 그리 급경사도 아니고 긴 길이 아닌데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올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아름드리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어 크게 덥지는 않아 좋다. 처음 보는 버섯이 고목에 피었고 둥근이질풀, 투구꽃 등이 눈에 띄는가 싶더니 아기자기한 야생화 군락이 보인다. 그리고 곧 비로봉에 다다른다. 해발 1563m의 오대산 주봉과 네 번째의 해후이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무얼 망설이랴

구름 흘러 걸리는 곳

거기가 내 갈 곳

그래도 그게 아니라

산허리에 세운 이정표

걸 거리, 갈 방향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하네

     

쭉 뻗은 산줄기 한 번 멈춰 둘러보라

오른 길만큼, 솟은 태양만큼

큰마음 지녀보라

가파르고 궂은 삶

묵은 세월에 묻어두라

내려가거든

더욱 지혜롭게 살으라

그래서 산허리에 이정표 있는 거라 하네

 

한여름 마루금이 나른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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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의 산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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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의 초지가 푸릇푸릇하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 위치상 외떨어져 있어 가지 못하는 효령봉이 푸른 능선을 따라 이곳 비로봉까지 부드럽게 다가온다. 북쪽으로 점봉산과 설악산을 보게 되고 동쪽으로 노인봉과 황병산, 남쪽의 가리왕산, 서쪽 방태산 등 내로라하는 강원도의 명산들이 두루 눈에 잡힌다.

많은 돌탑과도 건성으로 눈만 맞추고 다음 행보를 잇는다. 평탄한 길 오른쪽으로 지천에 야생화가 널려있다. 수줍어 고개 들지 못하는 금강초롱을 접사하려 허리를 굽혔다가 동자꽃을 보려 또 고개를 숙인다

 

보호수 명판이 붙은 주목이 보이더니 다시 누울 듯 기울어지다가 가지를 추켜올린 기이한 모양새의 백양나무가 눈길을 잡아끌기도 한다. 3년 전 겨울엔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에 핀 새벽 눈꽃이 절경이었었다. 조금 더 지나 동상 걸릴 만큼 추웠지만 멋진 일출을 보았던 상왕봉(해발 1491m)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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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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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봉에서 중앙 멀리 가리왕산 마루금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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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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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서 효령봉을 거쳐 계방산으로 이어지는 국립공원 일대와 두타산, 청옥산에서 함백산과 태백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을 눈에 가득 담고, 굽이치며 산허리를 휘감는 응복산과 구룡령 너머로 점봉산에서 설악산 서북릉까지 눈길을 주다가 30여 분 내리막을 걸어 북대 삼거리까지 당도한다.

햇빛 받아 더 창백하게 보이는 백양나무군락을 지나고 두어 개의 무명봉을 오르내려 백두대간 두로령 표지석(해발 1310m)을 다시 보게 된다.

 

올라갈 때와 달리 비교적 수월하게 하산하여 선재길을 걸어보기로 한다선재길은 지혜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며 53명의 현인을 만나 결국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유래한 길이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찾아갔다는 이 길은 널찍한 암반 위로 쉴 새 없이 맑은 물이 흐르는데 월정사 계곡의 양옆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 덕분에 더욱 아늑하게 느껴진다

섶다리, 출렁다리, 나무다리 등을 건너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다가올 삶을 명상한다. 월정사 일주문부터 상원사까지 잘 조성된 9km의 아름다운 숲길, 활엽수의 푸름과 맑은 계류가 흐르는 쾌적한 숲길에서 지혜의 자취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길고, 무덥고, 외로운 산행을 마치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

 

선재길을 걸으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때 / 여름

곳 / 상원사 - 사자암 - 비로봉 -  상왕봉 - 두로령 - 선재길

 

 

 

https://www.youtube.com/watch?v=--AM25zUz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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