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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3_ 지존의 죽음

장한림 2022. 3.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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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https://www.bookk.co.kr/book/view/133094

 



3.

 

삼계탕 대신 자장면 곱빼기를 뚝딱 먹어치운 규태는 중국집을 나와 곧바로 도곡동으로 차를 몰았다.

Y 세브란스병712호 특실. 박정민 사장이 입원한 병실을 노크하자 그의 부인이 문을 열었다.

 

강남서 이규태 형사입니다.”

 

신분증을 본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가 고개를 들어 눈인사를 건넸다. 오뚝한 콧날에 귀티가 줄줄 흐르는 박정민 사장은 키까지 커서 환자복 차림인데도 어딘가 우아한 멋이 풍기고 있었다. 팔뚝에 꽂은 링거는 거의 바닥이 보였다. 간호사가 링거를 새로 갈고 있었다.

박정민의 아내 정현숙도 처녀 때는 여러 영화에 주연을 맡은 톱스타 출신답게 나무랄 데 없는 미인이다. 약간 살이 붙었을 뿐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문득 그녀가 나신으로 출연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가 떠올랐다.

 

- 제목이 뭐였더라.

 

영화를 좋아하는 규태는 비록 영화관 출입자주 못 하지만 비번인 날에는 TV 영화방송에 채널을 고정해 놓고 시간을 죽이기 일쑤였다. 그 영화에서 전라의 몸매를 뽐냈던 정현숙의 샤워 장면이 떠올라 규태는 괜스레 그녀를 마주 보기가 민망했다.

 

- 정말 눈부신 장면이었어.

 

병실이지만 화사함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한 부부의 모습을 보니 병원에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이런 사람들 속에 있는 내 모습은. 제길, 김 팀장 말대로 머리라도 좀 빗고 들어올 걸 그랬나.

 

링거를 교체하고 간호사가 나가자 규태는 정식으로 신분을 밝히며 인사를 건넸다. 남편을 부축하던 정현숙이 얼른 일어나 의자를 권했다.

 

박 사장님께 몇 가지 여쭤볼 게 좀 있어서.”

알겠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켜드릴게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정현숙은 뜻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자태에서 미모 못지않은 교양과 바른 예의를 보았다.

규태는 다시 정민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이미 사건 당일 잠깐 양평경찰서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사건을 직접 조사하거나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었다.

 

다치신 데는.”

괜찮습니다. 충격이 좀 크긴 했지만.”

 

정민이 살짝 들춘 어깨에 압박붕대가 감겨 있었다.

 

치료보다는 기자들을 피하려고 숨어 있을 뿐입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렇게 생각이 든 규태는 다행입니다.”라고 받으며 본격 질문을 하고자 말을 이었다.

 

불편하시겠지만 몇 가지만.”

괘념치 마십시오, 최대한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범인들을 빨리 잡아야 남 교수님도 편히 눈을 감으실 테니까요.”

 

성공한 사업가답게 정민의 풍모나 어투는 기품이 있었다. 그런 그가 환하게 미소까지 지으며 시원스레 응해 준다.

 

어딜 가시는 길이었나요?”

 

이미 소문난 바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명분은 다음에 찍을 영화의 배경 장소를 물색하는 길이라고 기자들한테 둘러대기는 했습니다만. 사실은 밀월여행 같은 거였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정민은 머리까지 긁적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 너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송구스럽기까지 하군요.”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내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규태는 40대 중반의 나이라는 정민의 외모가 10살쯤 아래인 자신보다도 젊어 보인다고 느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섹스파트너와 밀월여행을 즐기는 것쯤이야 이미 다반사처럼 흔한 일이다. 그걸 손가락질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열등의식일 뿐이다. 규태는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언감생심 그런 꿈조차 꿀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차라리 초라하게 인식되고는 했었다. 서른다섯의 노총각이 독신자 원룸의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끝내고 난 뒤, 자신의 꼬락서니가 한탄스러워 땅이 꺼지라고 한숨 내쉰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젊은 여자들과 중년 유부남들의 쌍쌍여행이라는 게 약간 거슬리기는 했지만, 규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규태가 다시 물었다.

 

목적지는 어디였나요?”

, ! 사건 현장에20여 분만 더 가면 제 전원주택이 한 채 있거든요. 그리 가는 중이었습니다.”

소문처럼 현소영 씨는 남 교수님의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 교수님의 대학 제자이기도 하고. 잘 아시겠지만 남 교수님의 원작인 세컨드 레이디를 통해 스타반열에 들어섰지요.”

 

규태는 애인이라고 해야 할지, 파트너라고 해야 할지 어휘 선택에 잠시 망설였는데 정민이 눈치 빠르게 알아서 대답해주니 후련한 만큼 고맙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시원하게 답변해줄 거라고 확신하면서 규태는 짤막하게 물었다.

 

그럼, 오수연 씨?”

, 제 파트너였습니다. 수연이 역시 남 교수님 제자고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지요. 현소영과는 대학 동기였고요.”

그럼 남 교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인가요?”

그렇긴 하지만. 파트너나 여자로 소개받은 건 아닙니다.”

 

정민은 손을 저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컵에 물을 따랐다. 물컵을 입에서 뗀 정민은 규태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답했다.

 

영화제작을 하다 보면 종종 출연 섭외를 받게 되지요.”

 

작년 12,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중 방화와 외화를 통틀어 최대 관객을 동원했고, 지금도 그 기록을 경신 중인 세컨드 레이디흥행 성공으로 박정민 사장의 JM 시네마는 몇몇 경쟁사들을 제치고 국내 최대의 영화사로 우뚝 서게 된다.

남현태 교수가 정치권을 배경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에 로맨스를 가미한 세컨드 레이디의 시나리오를 들고 JM 시네마를 방문했다. 그전에도 그의 시나리오 두 편을 영화로 만든 적이 있기에 남 교수와 박 사장은 비즈니스 이상의 교분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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