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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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추워죽겠네. 비번인 날까지 불러내서 출동시키고 말이야.
이규태 형사가 구시렁거렸다. 이규태의 고향은 용문산자락에 있는 양평의 용문면이다. 형님 내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자주 오기는 어렵지만, 가끔 근무가 없는 날을 택해 들르고는 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어머니와 형한테 “장가 안 갈 거냐.”는 성화에 시달리다 돌아오기 일쑤다. 오늘도 그런 소리 외에는 달리 화젯거리가 없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김계현 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서울로 오는 길에 현장을 둘러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건이 될지도 몰라서 그래. 수고 좀 해줘.”
피살자의 주소가 청담동이기도 했거니와 그와 강남경찰서와의 관계상 사건을 이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이규태는 간간이 호통을 쳐대며 수사를 지휘하는 양평경찰서의 형사계장 김현석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쏘나타에 올라탔다.
더 길게 현장을 살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살펴본 바로는 강도 사건일 가능성이 큰데 놈들은 지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는 범인들이 타고 온 자동차의 타이어 흔적마저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즉시 도주하지 않았다. 증거로 남을만한 것들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유유자적 사건 현장을 떴다. 용의주도한 놈들이다.
눈은 그쳤지만 길은 더욱 미끄러워 보인다. 나 죽기 전에 며느리는 볼 수 있는 거냐? 어머니의 잔소리는 갈수록 심했다. 더욱 유난스러운 어머니의 성화도 그렇거니와 피해자들까지 만나보고 오라는 김 팀장의 지시가 오늘은 마냥 성가시기만 하다. 심한 거부감이 들자 운전까지 거칠어진다.
양평경찰서는 커다란 혹을 떼어낸 기분이다.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사건을 서울의 강남경찰서에서 맡겠다니 그야말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문뿐 아니라 증거가 될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범인들은 사라졌다. 어두운 밤에 얼굴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몽타주를 만들 수도 없다. 무엇보다 피살자가 J 대학의 남현태 교수라는 점이다.
남현태. 현직 교수의 신분이지만 한국 영화계의 지존이니 영화산업의 대부니 할 정도로 문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영화인으로서, 교수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한껏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인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입지전적 인물이 죽었다. 안됐지만 부담스러운 존재다.
피살의 이유나 범인의 윤곽은 폭설에 덮인 자갈처럼 요원하기 그지없다. 그 2인조 살인강도를 이른 시일 안에 잡지 못하면 언론과 방송에서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이미 9시 정규뉴스에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내 영화산업에 이바지한 공로로 최근에 문화훈장까지 받은 남 교수의 프로필이 소개되었고 작년 말에 개봉되어 초대박 히트를 친 영화, 국내 영화사상 초유의 관객동원기록을 세운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의 원작자이자 총연출자임을 부각했다.
사건 발생 당시 ‘세컨드 레이디’의 여주인공을 맡아 단숨에 인기스타로 주목받은 현소영과 함께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요란스러웠다. 어찌 그뿐인가. 국내 최대의 영화사이자 ‘세컨드 레이디’를 제작한 JM 시네마의 박정민 사장이 동승해 있었고 또 다른 묘령의 여인까지 네 사람이 함께 있었다.
한적한 지방도로에서 남녀 쌍쌍이 탄 승용차를 세우고 그중 한 사람을 죽였다.
‘세컨드 레이디’의 흥행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일어난 살인사건은 세인의 관심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끄럽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은 만들어지고 말았다.
인터넷은 방송이나 신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시끌벅적했다. 누리꾼들은 사건의 수사상황보다 네 사람의 관계에 훨씬 민감했다.
현소영이 죽은 남현태 교수의 정부情婦라는 소문은 근거도 없이 퍼져나갔다. 어느새 ‘세컨드 레이디’와 ‘남현태’ 그리고 ‘현소영’은 인기 검색어 최상위를 오르락거렸다.
강남경찰서 강력팀에서 사흘간의 수사 자료를 모두 넘겨받았다. 김계현 팀장에게 사건을 넘기면서 양평경찰서 김현석 계장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미안하이. 우리 대신 수고 좀 해주시게나. 허허!”
서울로 돌아온 김계현 팀장과 이규태 형사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수사 자료를 건성으로 들춰보다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생각해?”
“뭘요?”
“뭘요라니? 뭘 묻는 줄 몰라서 되묻는 거야?”
계현은 이마에 잔뜩 주름을 만들고 규태를 쏘아봤다. 규태가 보란 듯 기지개를 켜더니 늘어지게 하품까지 한다.
178센티미터쯤 되는 키에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체구를 지녔지만 꾸부정한 자세와 어수룩한 옷차림으로 어딘가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계현은 규태보다 작고 조금 살이 붙기는 했으나 빈틈이 거의 없고 듬직해 보였다. 계현은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냄새 맡은 것 좀 없냔 말이야?”
“내 코가 개콥니까, 냄새나 맡고 다니게.”
“자네 후각이야 개보다 훨씬 낫잖아.”
계현은 그렇게 빈정대고 껄껄 웃었다. 그랬다. 늘 풀어진 눈으로 옷맵시조차 꾀죄죄하다. 형사다운 모습이라곤 아무리 뜯어봐도 찾아내기 어려운 이규태였지만, 사건의 맥을 짚는 예리함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취합된 사건자료로 거의 오차 없이 결론을 도출해내는 추론능력만 보더라도 그는 민완 형사임이 분명했다. 툭툭, 뱉어내듯이 말대꾸하는 태도를 줄이고 머리라도 깔끔하게 빗고 다니면 업어주고 싶을 만큼 아끼는 부하다.
- 딱 2프로만 더 채우면 좋겠는데.
계현은 규태를 볼 때마다 아쉽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딘가 오묘한 구석이 숨어 있는 부하 형사를 대견스러운 듯 쳐다보았는데 규태가 내던지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의자를 홱, 돌려버렸다.
“삼계탕 냄새 안 납니까?”
“젠장, 배고프면 나가서 혼자 먹어.”
계현은 등을 돌린 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쯧쯧, 저러니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여자가 안 생기지.”
“좀 먹여가면서 일 시키는 후한 상사 좀 못 만나나. 지지리도 인복 없는 내 팔자야.”
규태는 일어나 코트를 집어 들고 계현의 귀 가까이에 푸념처럼 내뱉었다.
“인복 없기는 내가 더해. 배 채우고 개처럼 뛰어!”
팀장의 다그치는 소리에 대꾸도 없이 규태는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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