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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전

삼국지의 고사를 되짚다 9_ 계륵鷄肋

장한림 2022. 3. 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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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앞서가면 자빠질 수 있다

 

조조의 위나라와 유비의 촉나라는 한중 지역을 놓고 수개월간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한중은 토지가 비옥하고 생산량이 풍부한 데다 전략 요충지로서 누가 한중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익주益州를 점령한 유비가 먼저 한중을 차지해서 촉의 세력권에 두고 있었다. 한중 외곽에 진을 치며 오랜 원정에 식량이 바닥나고 사기가 저하된 위의 진영에서는 탈영병이 늘어났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조조는 저녁 식사로 들인 닭국을 먹으면서도 고심이 깊었다.

 

“승상! 오늘 밤 암호를 정해주시지요.”

 

장수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무심코 내뱉었다.

 

“계륵으로 하시오.”

 

하후돈은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계륵’이라고 암호 구호를 전달했다. 

 

“승상께서는 곧 철수할 생각으로 암호를 계륵이라 정하셨소. 떠날 때 허둥대지 말고 모두 미리 짐부터 꾸리시오.”

 

양수는 먹을 게 별로 없으면서 버리기엔 아까운 계륵처럼 한중 지역이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도 아니라고 생각한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이었다. 양수의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양수는 실제 철수 명령이 하달되기 전에 함부로 발설하여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목숨을 잃게 된다.

철수할 준비를 하라는 양수의 행동은 총지휘자가 정식으로 철수 명령을 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병사들의 전투 의지를 고양시켜야 함에도 싸울 의지를 꺾어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양수가 위나라 후계자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조의 눈 밖에 나면서 지혜를 갖춘 양수가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양수의 자업자득일 수 있다.

양수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기로 하자. 

어느 날, 조조가 신하들이 만든 정원 대문에 활活 자만 쓰고 돌아갔다. 신하들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문門에 활活을 썼으니 넓다는 의미의 활闊이요. 정원을 줄이라는 말씀입니다.”

 

양수가 일러 정원 크기를 줄였다. 

 

또 한 번은 조조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술병에 일합一合이라는 글자를 써 신하들에게 돌렸답니다. 신하들이 멍하니 있을 때 이번에도 양수는 글자를 풀면 일인일구一人一口이니 한 사람당 한 모금씩 마시라는 조조의 뜻을 알아챘다. 이렇듯 양수는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탓에 일찍 죽고 만 셈이다.    

 

남보다 뛰어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남보다 잘 아는 것을 입 안에 삼키고 있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아는 것을 생색내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수가 더 지혜로웠다면 입을 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윗사람의 미움을 받고는 있어도 죽는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똑똑하고 일도 잘해 일찍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분별없이 나서면 계륵의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조직의 대표는 지식이나 능력을 갖춘 부하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주제를 알아서 상사이자 갑인 자기에게 알아서 기는 부하를 더욱 사랑한다. 그런 을의 기질을 갖춘 부하와 오래도록 조직생활을 같이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도 버려지는 계륵이 되려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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