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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고사를 되짚다 7_ 허허실실虛虛實實

장한림 2022. 3. 1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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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꾀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벽대전에서 촉·오 연합군에 크게 패해 쫓기는 신세가 된 조조는 퇴로마다 제갈량의 군사들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조자룡과 장비에게 혼줄이 난 조조의 군대는 간신히 화용도에 이르렀다. 

제갈량은 각 장수들에게 임무를 부여했지만 관우에게는 아무런 임무도 주지 않았다. 

 

“승상! 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시는 겁니까?”

 

관우가 강하게 따졌다.

 

“장군은 의리가 깊은 사람이라 조조를 만나면 예전에 입은 은혜 때문에 그를 살려 보낼 것이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조를 살려 보낸다면 군법에 따라 내 목을 치시오.”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화용도에 매복해서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내시오. 틀림없이 조조는 그 길로 올 것이오.”

“매복하려면 조용히 숨어 있다가 조조를 잡아야지 왜 불을 피워 적들에게 도망갈 빌미를 준단 말입니까?”

“허한 곳은 실한 듯, 실한 곳은 허한 듯 꾸미라는 병법의 허허실실을 말하는 것이오. 조조는 우리가 허세를 부린다 생각하고 그리로 올 것이오. 내 말이 어긋나면 나도 목숨을 내놓겠소.”

 

관우는 제갈량의 지시에 따라 숨어서 모닥불을 놓아 연기를 피워 올렸다.

화용도에 이른 조조 군의 장수들은 연기가 없는 길로 가기를 청했지만 조조는 제갈량이 그곳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고 판단했다. 연기가 나는 화용도로 향했던 조조 군이 골짜기 깊숙이 들어섰을 때 관우의 군사들이 에워쌌다. 다시 위기에 빠진 조조는 관우에게 몸을 굽혀 애원했다.

 

“내가 싸움에 패해 이곳까지 쫓기다 결국 관운장 앞에서 길이 막히고 말았구려. 부디 옛정을 기억해주시오.”
“공께 입은 은혜는 이미 안량과 문추를 베어 갚았소. 어찌 사사로운 정을 앞세워 대사를 그르치겠소?”
“장군께서는 신의를 중히 여기는 분이시오. 장군이 나를 떠날 때 뒤쫓지 않은 일을 떠올려주시구려. 부디 우리를 놓아주시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린 관우는 결국 군사를 뒤로 물리며 조조를 살려 보냈다. 

 

“승상! 제 목을 치십시오.”

 

조조를 놓아준 관우는 돌아와 제갈량에게 죽음을 청한다. 제갈량이 군법대로 처형하려 할 때 유비가 막아서며 용서를 구하자 마지못한 듯 이를 받아들여 관우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은 허와 실이 뚜렷하지 않아 빈 곳처럼 보이는데 차 있고 차 있는 듯 보이지만 비어 있어 짐작하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계략으로 허술해 보이지만 실제로 아주 튼실하고 실속이 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훗날, 제갈량이 위나라와 싸울 때 사마의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에 쳐들어왔다. 제갈량은 정예군을 모두 전투에 내보내 군사가 거의 없었다. 제갈량은 성을 비우는 공성계를 썼는데 성문을 활짝 열고 부하들과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탄 것이다. 사마의는 허술한 그 모습이 함정에 빠뜨리려는 속셈이라 생각하고 군사를 뒤로 물렸다.

 

하잘 것 없어 보인다고 함부로 대해서는 큰코다친다. 어리다고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는 이야 말고 실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다. 참으로 실한 곡식은 잘 여물어 고개가 숙여져 있다.  

반면 허우대가 듬직하고 가진 게 많아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허와 실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득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지금 당장은 일정 기준에 이르지 못한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이라 할지라도 추후 그 사람의 학문이나 재능이 어떤 경지에 이를지 모를 일이니 허허실실은 미래를 예단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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