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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호가 있으므로 해서 많은 사람이 그리로 갔었다
청평 하면 산보다는 강과 계곡, 유원지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캠핑, 수상스키, MT……. 청평은 도심 젊은이들의 청춘을 그대로 발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 말 그대로 호반의 도시, 젊음의 장소로 존재해왔다.
그 후, 호명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괜찮단다. 좋은 산이란다. 귀동냥 풍월에 찾는 곳이 산 아니던가. 와보니 호명산은 괜찮다거나 좋다는 그저 그런 호감으로 표현할 산이 아니었다. 산이 그 어디라서 좋지 않으랴마는 호명산은 그 이상의 찬사로 이어져도 고개 끄덕이며 수긍할만한 산이다.
첫인상부터 호감을 지니게 한다. 청평역에 내리자마자 아름드리 미송 울창한 멋진 들머리를 지나는 게 즐겁다. 청평역에서 조종천을 건너면 바로 안전유원지 방면의 들머리이다. 초입부터 가파른 깔딱 길이지만 소소한 봄바람 애교 떨 듯 속삭이고 청평호반 한눈에 들어오니 어릴 적 소풍 나온 기분이다.
봄, 특히 이른 봄 산길은 야단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들에서, 강에서, 산 위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봄이 깜짝 놀라 돌아가지 않게끔 살금살금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렇게 솔 숲길, 아직 습기 머금은 낙엽 길 조심스레 걷는데도 가슴 뻥 뚫어질 것처럼 심장이 아우성치는 건 지금 이 봄기운을 소리 내지 않고 느끼기엔 그 시절 소풍 길처럼 많이 들떴기 때문이다.
명지산에서 뻗은 능선이 남으로 연인산, 매봉, 청우산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동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어 불기산으로 그 맥을 잇고 다시 주발봉에서 남서로 틀어 뻗다가 북한강에 막혀 멈춘 곳이 바로 여기 호명산이다.
산 아래 남쪽으로 굽어 흐르는 조종천이 북한강에 합류되어 유유하고도 도도한 흐름을 길게 이으며 북서로 화야, 축령, 서리, 운악산 등 경기 명산들과 어깨 줄지어 서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운을 지닌 장소인가.
조종천 철교를 건너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땀 씻고 숨 고르는 정상까지의 2.7km 등산로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하지만 정상에서 기차봉까지 노송 줄지어 늘어선 능선 길은 그야말로 초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하긴 이 정도의 산길이라면 계절에 상관없이 그 멋과 맛이 늘 일품일 거란 생각이 든다.
다시 지난가을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이 긴 겨울 폭설을 거둬내고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이른 봄 미풍에 추락한 채 말라지는 아기자기한 암릉길이다. 이 길을 지나 백두산 천지 닮은 호명호수까지의 3.7km 능선은 또 한 번 산이란 실체에 흠뻑 매료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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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 지내려면 이 산 기차봉이 적격이며 기우제 지내려면 호명호수 한눈에 들어오는 수리봉이 안성맞춤이요.”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 같았다. 오래 산을 다니면서 풍수에도 능해졌다고? 절대 그렇지 않지만, 괜히 그런 느낌이 들 만큼 첫 대면에도 이 산은 곳곳이 정겹다.
호명산. 호랑이 담배 피울 무렵,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여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했다. 무얼 소망하고 간절한 기도가 통하려면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호명산은 호랑이 울음虎鳴보다는 좋은 운명을 뜻하는 호명好命이 훨씬 어울리는 호명呼名이 아닐까 싶다.
풍수지리란 기본적으로 지기地氣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땅에 사람이 어떻게 잘 조화하고 균형을 이뤄가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지 않는가. 호명산은 그 지명도에 비해 명산이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있지 않다. 대자연으로서 산세의 우람함이나 우거진 수림 등으로 볼 때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기감氣感이 뛰어난 곳임이 분명하다. 나무와 새들, 햇살까지 생기가 넘친다.
이 산에서 백두산 천지를 조망하다
모진 겨울 용케 골절되지 않은 여린 나목 잔가지들도 살만한 양 훠이, 훠이 팔 내젓는다. 감칠맛 나는 이른 봄 햇살에 작은 새 한 마리 날아들어 다소곳이 가지에 앉아 앙증맞게 입을 맞춘다. 다시 만나 반갑다고, 살아주어 고맙다고 눈물 한 방울 떨구는 걸까. 봄이 뿌려지는 호명산은 등성이 곳곳마다 천상의 공원이다. 그 공원 언저리마다 사랑의 향이 가득하다. 보듬어주고 끌어안아 주는 어진 품성이 도드라진다.
그 겨울 너무 길고 추워서였을까.
지난가을 떨어져 쌓인 그대로의 낙엽들이
눈 녹아 축축한 채 드러나
햇살 받아 바스락 움찔거림에
몸짓 큰 생명력을 느낀다.
호명산 산정 하늘 맞닿은 곳
천지 닮은 호수까지
장백산에 온 양 착각하게 한다.
생동하고 생장하는 봄기운마다
아릿한 젖내 풍겨
하나같이 그 발원이
어머니 품인 듯
착각하게 한다.
전망대에서 보는 호명호수는 평지에서 보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백두산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천지를 조망하는 것처럼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지극한 정성이다.
호수 석비에 적힌 안내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호명호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야에 남아도는 전기를 이용해 지하수를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린 후 전기 수요가 정점일 때 물을 떨어뜨려 비상전력을 얻는 양수발전소 기능의 인공호수로 1980년도에 완공했다. 호명산 정상 4만 5천 평의 면적에 둘레 1.7km로, 730m짜리 수로를 통해 지하 발전기와 연결한 국내 최초의 양수식 발전소란다.
호수 둘레 길을 피크닉 하듯 유유자적 둘러보며 신선한 봄기운 흡입하니 내리막 날머리로 향하는 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아아, 어쩜 이토록 처음과 끝이 달라짐 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지. 산행 내내 곳곳 안전을 위한 시설들이나 안내 표지도 모남 없이 깔끔해서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대갓집 식구들이 총동원된 양 양옆으로 늘어선 미송 숲 내리막길은 지나가기 미안스러울 정도로 과한 배웅을 받는 듯하다.
여름이면 햇빛을 막아줄 터이고, 겨울이면 바람을 막았을 장대하고 굵직한 청록 침엽수림들 틈으로 비켜 비치는 햇살은 비록 저물녘이지만 짙은 청록에 물들었는지 그 푸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싱그럽다.
눈에 가득 담고, 가슴으로 강하게 들이마시며 다시 오마 거듭 기약하게 한다.
때 / 봄
곳 / 청평역 - 철판 다리 - 전망대 - 호명산 - 기차봉 전망대 - 호명호수 - 큰골 능선 - 송전탑 - 상천역
https://www.youtube.com/watch?v=KCw-XKcp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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