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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 100경

국립공원 100경 중 제61경_ 지리산 국립공원 화엄사 각황전

장한림 2022. 7. 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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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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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규모가 큰 국보 제67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그 이름을 지은 화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로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에 소재해있는 화엄사華嚴寺라 백제 때의 사찰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화엄사는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 신라의 고승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
오늘날 구례, 광양, 순천 지역은 6세기까지 가야의 영토였고,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가야 전역을 신라에 병합하면서 현재 지리산 자락의 구례도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후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의 건축을 건의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법사가 절을 증축하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7층 탑,층탑 석등롱石燈籠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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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넓힌 신라 진흥왕은 화엄사를 세워 이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함과 동시에 지배력을 강화하고, 아울러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정복지역에 대해 유화정책을 쓰는 신라의 전통방식이자 신라 불교의 특징인 호국불교사상과 연관시켜 추론할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677년(신라 문무왕 17)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각황전을 창건하고 왕명으로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화엄사에 보관한다. 의상대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 사상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경덕왕 때에 8원院 81암자庵子로서 ‘‘화엄 불국 연화장 세계’의’ 면모를 갖추었고, 875년(신라 헌강왕 1)에는 도선대사가 다시 증축하였다. 고려 때에도 증축이 이루어졌는데, 943년(고려 태조 26)가 도선대사의 유지에 따라 중수를 한 이후, 광종, 문종, 인종, 충숙왕 때에 중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597년(조선 선조 30) 임진왜란 때에는 인근 석주관에서 왜군과 대치할 때 승군과 군량을 지원해 준 보복으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고, 살아남은 승려들이 지리산과 주변 동굴에서 은신하다가 폐허 된 화엄사를 재건하기 시작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1636년에, 각황전은 1703년(기록에 따라서는 1643년)에 중건 완료하였다.

국립공원의 산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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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재건을 거치면서 화엄사는 1701년(조선 숙종 27) 사찰 중의 사찰이라는 의미의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큰 절)이 된다. 선교양종이란 불교의 일파인 선종과 교종을 가리키는데 선종은 참선을 통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중시하고, 교종은 경전을 중요시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인데 화엄사 이 두 일파를 모두 갖춘 사찰이다.


“빨치산들이 지리산의 절에 숨을 수도 있으니 화엄사를 불태워라.”

6·25 한국전쟁 때 상부에서 이러한 명령이 떨어졌지만, 당시 차일혁 초대 경찰총경이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이 걸려도 부족하다.”면서 대신 빨치산이 숨기 힘들도록 문짝만 모두 떼어 태울 것을 건의하여 화엄사가 다시 폐허가 될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때문에 차일혁 총경은 감봉 조치를 당했지만 후일 화엄사를 비롯해 지리산의 문화유적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보관문화훈장(3등급)이 추서되었다.


각황전覺皇殿은 대웅전과 함께 화엄사의 주불 전이며 정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계 중층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다보불 등 3여래와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음보살, 지적보살知積菩薩 등 4 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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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은 층을 이루어 높이 쌓은 석단 위에 서쪽을 향해 있으며 팔작지붕 다포多包집 형식의 건물이다. 1962년에 국보 제67호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청 공식 명칭은 ‘구례 화엄사 각황전’이다.
1768년(영조 44), 1847년(헌종 13), 1851년(철종 2)에 각각 중수하고, 1860년(철종 11)에는 후불탱화 3폭을 조성하여 후불벽에 걸었다. 1885년(고종 22)에 또다시 중수하였고 1936년부터 1941년까지 해체·보수되었다. 1961년에 보수한 뒤 이듬해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부분적인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각황전 앞에는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당 중앙에는 국보 제12호인  6.4m 높이의 석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화엄사 각황전은 현존하는 중층 불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가구 구조는 아래층에서 반 칸씩 줄여 위층을 구성한 반칸 물림 방식으로,, 조선 후기 중층건물의 구조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공간은 층의 구분 없이 통층通層으로 구성하여 웅장한 느낌을 준다. 대형 공간에는 최대한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래층에는 사방에 많은 창호를 설치하였으며 위층은 벽체 대신에 채광창을 두었다. 바닥에는 본래 전돌을 깔았으나 1998년에 예불의 편의를 위해 마루를 설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 [求禮華嚴寺覺皇殿]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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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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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안정된 균형감과 엄격한 조화미를 보여주며 건축기법도 뛰어난 건축물이다. 내부에 봉안된 7구의 불·보살상과 후불탱화도 조선 후기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각황전 건축에 관한 설화가 들을만하다.

조선 숙종 때인 1699년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숙종은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다. 계파 스님은 스승인 벽암 스님의 위임을 받아 장육전 중창 불사를 하고자 했는데 건축비 걱정에 밤새 대웅전에서 기도하였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라.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부탁하라.”

비몽사몽간에 한 노인이 나타나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절을 나서 길을 걷는데 간혹 절에 와서 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곤 하던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스님은 난감하였지만, 간밤에 계시받은 대로 그 노파에게 장육전 건립을 위한 시주를 청했다.

“잘 아시다시피 밥도 구걸해 먹는 제가 어떻게……”


노파는 어이없었지만, 스님이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는지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원했다.

“이 몸이 죽으면 다시 왕궁에서 태어나 큰 불사를 할 수 있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는 길옆 늪에 몸을 던졌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에 스님은 놀라 도망쳤다. 몇 년간 걸식하며 돌아다니다 한양에 나타난 계파 스님은 궁궐 밖에서 유모와 함께 나들이하던 어린 공주를 보게 되었는데 공주는 스님에게 다가와 반갑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꼭 쥐어진 한쪽 손이 펴지지 않은 공주였는데 계파 스님이 쥔 손을 만지니 신기하게 손바닥이 펴졌다. 그런데 그 손바닥에는 ‘장육전’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은 계파 스님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감격하여 장육전을 지을 수 있도록 시주하였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TOqxGWXho

나의 산행기_ 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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