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국립공원/국립공원 100경

국립공원 100경 중 제26경_ 지리산 국립공원 일출

장한림 2022. 5. 24. 18:49
반응형
728x170
SMALL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르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번 지리산행에서는 꼭 천왕 일출을 보고싶다




 

단일산 종주 코스로는 국내산을 통틀어 최장인 전남 구례의 화엄사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의 이른바 화대 종주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다.

‘화대를 염원하는 산객은 많지만, 화대를 품에 안은 산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고행길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말일 것이다.

노고단 일대는 그야말로 파도 넘실대는 바다였다.
지리산 산신이자 한민족의 어머니라고 전해 내려온 노고 할미의 유래가 있는 곳, 막 올라온 화엄사계곡과 심원계곡이 발원되는 길상봉이 표고 1440m의 노고단이다.

멧돼지가 많이 출몰해서 이름 붙여진 돼지령, 돼지 평전에서 겹겹 산산, 첩첩 골골 그득 담긴 운해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모습이 아직 싱싱하다. 멧돼지라도 잡으면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표정들이다.

 

유순한 동물의 등짝만큼이나 아늑한 능선에서 진정 바라는 걸 염원하고 소망하며 걷다 보니 임걸령이다. 표고 1320m의 임걸령은 주변에 큰 나무들이 많이 늘어서서 녹림호걸들의 은거지로 삼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의적 두목 임걸林傑의 본거지라 불린 명칭이라고도 한다.

 

다시 고개 돌리면 저 아래로 피아골이다.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빚어낼 수 없는 현란한 색상의 단풍, 양력 시월이면 산이 붉게 타고, 물도 붉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까지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이자 지리산 10경에 속하는 피아골이다. 설악산 천불동이나 흘림골의 단풍과 비교하라면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을 만큼 극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다.

 

오고 나면 진작 왔어야 할 곳, 힘들고 지루해 다신 오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떠나 미안해지는 곳, 예정하고도 여기저기 들르느라 늦어 멀리 돌아온 듯싶어 고개 숙이게 되는 곳. 둘러보면 그간의 삶 부끄럽게 다그치는 곳이다. 내려가서 세상 찌든 삶에 허접스럽게 섞이노라면 다시금 마음 추스르게 하는 곳이다.
지리산은 그래서 어머니의 품이고 내 친구의 우정이며 내 내일의 멘토이다.

덕평봉에서 둘러보는 첩첩 산마루도 편안하고 아늑하다. 지리산이 종종 설악산과 비교되는 건 화려하진 않지만, 도저히 자기주장이라곤 없을 듯한 광활한 품새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자식에게도 회초리를 들 것 같지 않은.

 

세석평전이다. 철쭉 대신 희열이 만발한 고원이 너른 품을 벌린다. 5~6월 저기 안갯속에 결코, 호사스럽지 않게 피는 연분홍 철쭉의 목가적 풍치 또한 지리산 10경이다. 실제 도보거리 30km가 넘는 오늘 하루의 강행군을 세석대피소에서 마감한다.

 

새벽 두 시에 기상하여 수프로 간단히 요기하고 화대 이튿날의 긴 거리를 잇는다.
어둠 속 촛대봉을 지나 장터목까지 새벽바람 가르는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봉우리 하나 넘어서면 또 하나의 봉우리가 다가선다. 여기 지나서도 곧 다른 봉우리 있으리니 서둘지 마라. 붙들어 세운다. 온통 까만 세상이지만 연하 선경의 중심 연하봉을 모른 채 지나칠 순 없다.

혹여 천왕봉 일출에 늦을까 봐 속도를 붙였으나 해는 구름 속에서 뒤척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제발 오늘도 어제만큼 날씨가 좋았으면.”

지리산은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하는 산악지형이라 언제 날이 급변할지 모른다. 1년 강수량이 1300mm가 넘는다.

인증샷을 찍고도 30분을 기다렸으나 동편 하늘은 그 빛깔 그대로다.
줄듯 말듯 애태우는 처자의 모습처럼 그대는 붉은 서기 내뿜으며 정녕 뒤태만 보여줄 것인가.

 

"해야, 해야! 어서 솟아라."
잿빛 구름속에서 더디게 게으름 피우는 태양이 날 자꾸 불안스럽게 한다.

 

불그스레 해돋이 여명 아래로 그득 고인 구름만 자꾸 높아간다.

일출을 기다리고, 일출을 보며 이들은 무엇을 느낄까.작은 기대일지라도 이들에게 큰 행복이 현실로 다가섰으면 좋겠다. 우리 는 다같이 산을 사랑하는 동반자들이니까.

 

에이, 오늘도 틀린 것 같다. 시간을 아껴 중봉으로 향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내려가세. 11.7km의 내리막길을 가려면 서두르세나. 일출구경은 틀린 것 같으이."

 

아~ 그런데...

 

아스라히 서기만 어리다가 회색 구름밭을 뚫고 붉은 광채가 홀연히 솟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날마다 뜨는 해가 이처럼 반가울 줄이야.

 

지리산에서의 일출이기에... 올라온 이만 볼 수 있는 천왕에서의 해돋이이므로.
그래서 천왕봉 일출은 비주얼적인 아름다움보다 또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삶에서의 여러 긍정적 측면을 상징하는 의미

 

진인사대천명의 숙어처럼 성실한 노력을 다한 자의 숙연한 기다림 같은...

 

의지와 창의로 소망하는 걸 이루고야 마는 인내의 표상같은...

 

해가 뜨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는 하산하면서 나름대로 깨닫고 정리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늘 보는 일출은 마치 천지개벽의 순간을 연상케 한다.

 

지리 8경인 천왕일출은 장대한 파노라마다.
천왕봉에서 새벽추위에 떨며 기다린지 다섯번째만에 그예 보게 된다.

 

너무나 찬란하여 황홀하기까지 한 장관을 보고있으려니 어제부터의 피로가 일순간에 가시는 기분이다.

 

등뒤에서 빛나는 태양처럼 찬연한 축복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조상의 덕으로 보게 되는 천왕일출이 아니라 부디...

 

오늘 우리가 천왕일출을 봄으로써 우리 자손들이 충만한 덕을 쌓아 많은 이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기를...

 

여기 이 산에서 친구와, 동생과 맞는 해돋이
우리 서로 대자연의 의미를 의미가 되게끔 생장시키세나

 

저만치 해가 솟아오르는 걸 보고 다음 여정 중봉으로 향한다.

 

바위 녹아내릴 듯 뜨거운 여름 천왕봉
치렁치렁 매달리고 목말 탄 식구들
모두 떠나도
헐거워진 고목들 늘어세워
다시 올 새날 위해
기도 올린다.
계절 지나 갈색 낙엽 뒤엉키고 부스러져도
엷은 햇살 뿌려가며 또 오는 이 마중하고
떠나는 이 배웅한다.
다 주어도 모자라
안타까움 금치 못하는 그대는
맛난 반찬 고른 젓가락 자식 입에 넣어주는
자상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이다.

 

산행의 최종 목적은 안전한 하산이다. 그러려면 끝까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걸어온 길, 까마득히 보이는 노고단과 여인네의 풍성한 엉덩이 같은 반야봉을 바라보며 어제부터의 여정을 되짚어본다. 짚이는 곳마다 숨이 가쁘지만 현란한 여정이다.

 

산에 오르면 헤아리고 가다듬어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산에 오면 아쉬워 남겨두었던 것들 쓸어 모아 툭툭 던져버리게 된다. 눈에 가득 아름다웠던 날들, 감사했던 이들 여미어 담아두게 되고, 없어져도 그만일 욕구 부스러기들 훌훌 털어버리게 된다. 겹쳐 포개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버려야 할 것들, 간직해야 할 것들 새기고 되새기며 잇고 끊음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syu7TBoEU 

 

반응형
그리드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