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국립공원/국립공원 100경

국립공원 100경 중 제8경_ 설악산 국립공원 천불동 계곡

장한림 2022. 5. 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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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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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물 떨어지는 외설악 천불동 지나 내설악 백담사로

 

 

골에 이르면 산도, 물도, 사람도 물들고 만다지. 노랑과 초록으로 대강 구도 잡은 캔버스에 붉은 물감 붓질이 시작된다. 와선대, 비선대에 이르러서다. 와선대에 누워 주변 경관을 감상하던 ‘마고’라는 신선이 여기서 하늘로 올랐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단다.

물이든 바위든 가리지 않고 곱게 물들이고 있다. 비선대 위로 장군봉과 유선봉, 적벽의 3형제봉 머리 위로 햇살이 창연하다. 클라이머가 맨 오른쪽 봉우리 적벽의 속살을 파고드는 게 보인다.

순간 세 형제를 한꺼번에 업고 알록달록 포대기로 허리를 동여매고는 비선대 청정 옥수에 발을 담근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외설악 금강굴과 마등령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천불동 등산로가 여기서 나눠진다.

 

장군봉, 유선봉, 적벽의 삼형제봉이 가는 길을 배웅해준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을 설악을 즐기시게.”

 

세 형제는 서로 얼굴 내밀어 염려하며 배웅해준다. 북새통 이루는 가을 외설악은 괜히 피하고 싶은 산길이었지만 산이 사람의 생각에 못 미친 적 있었던가. 나선 즉시 그런 생각이 비틀린 거였음을 바로 잡아준다.

 

“설악산에 가기 좋은 시절이잖아.” 

 

갑자기 동익이가 설악산을 언급했는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창훈이와 남영이, 호근이까지 콜사인을 보내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소청대피소를 예약하고 다 같이 배낭을 짊어진다.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설악산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설렘의 연속이다. 짝사랑하는 여인이 만나자는데 열 일 제치고 만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찾아온 설악동 소공원,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반달가슴곰과 먼저 악수하고 바로 통일대불 청동좌상을 보면서 엄지를 추켜세운다. 1987년 통일을 기원하며 108톤이나 되는 청동을 들여 10년 만에 완성한 석가모니 상이다. 

 

“통일이 되긴 하겠죠?”

“통일되고 안 되고는 너희들이 만들어 벌려놓은 하찮은 이념의 차이를 통일시키느냐에 달리지 않았겠느냐.” 

 

그렇게 들렸지만 높이 14.6m, 좌대 높이는 4.3m에 좌대 지름이 13m인 세계 최대의 불상은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한국동란 이전에 설악산은 38선 이북의 땅이었다. 3년여의 전쟁을 치르고 정전협정이 무르익어갈 무렵에도 반도 곳곳에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바야흐로 피아간에 점령지를 넓히려는 땅따먹기 전투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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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설악산이 남한 땅이 되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권금성에 김일성 수령 동지 만세, 노적봉에 천리마 정신 따위의 빨간색 낙서가 적혔을 거 아니겠어.”

“한반도 허리 부분에 위치한 금강산과 설악산이 절묘하게 나뉘긴 했어.”

“서글픈 얘기야. 가을 설악이나 실컷 즐기자고.”

 

세계 자연보전 연맹 IUCN에서 관리가 잘된 세계 국립공원 23곳을 ‘녹색 목록Green List’으로 선정하였는데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설악산과 지리산, 오대산이 선정되었다. 무시무시한 빨간 낙서가 없는 것도 다행이지만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탐방객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케이블카가 오르는 권금성과 그 뒤로 노적봉이 내려다보며 미소를 흘린다. 신흥교를 건너면서 혹처럼 볼록 솟은 세존봉과 마등령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오늘은 그쪽이 아니라 천불동입니다. 가을이잖아요.” 

 

비선대를 지나 마등령이 아닌 왼쪽 천불동계곡으로 방향을 잡는다. 천불동은 산과 물과 사람, 이렇게 셋에 그치지 않고 가릴 것 없이 물들이며 온 세상을 적화赤化시키는 중이다. 그렇게 가을과 설악과 한데 물들어가며 시나브로 넋을 내려놓는 중이다. 행복하다.

 

          

천 개의 불상마다 화들짝 물들었네  

 

바위가 온통 물감으로 덧칠을 했다

 

 

흔히들 지리산을 남성에 비유하고 설악산을 여성에 견준다. 장대하고 너른 지리산의 풍채, 지극한 아름다움의 여성미를 지닌 설악산, 아마도 그런 정도의 의인화擬人化 때문이겠지만 이는 설악산의 실상에 대해 미진할 정도로 간과한 측면이 있다. 

가장 여성스럽다는 외설악까지도 꼼꼼히 살펴보면 먼저 비선대에 이르러 우뚝 솟은 삼형제봉의 위용을 접하게 된다. 더 올라 공룡능선은 차치하고라도 톱날처럼 혹은 송곳처럼 하늘을 떠받치는 천불동 계곡의 침봉들은 그 기세가 얼마나 드세고 강인한가. 그러나 강함은 유함에 속하므로 그 강인함이 극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설악의 풍광에 휘감겨있기 때문일 게다. 가을 설악의 비상한 용모에서 이상적인 여인상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건 아닐까 싶다.

 

“오늘은 귀면암까지 예뻐 보이네.”

 

동익이 말마따나 강인한 용모의 귀면암마저 초록과 갈색의 엷은 화장발이 잘 받아 트랜스젠더처럼 보이기도 하는 데 그리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선 기암절벽들이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선 형상이라는 천불동千佛洞답게 봉우리들은 하늘이 무너질세라 쭉쭉 팔 내밀어 떠받치고 있다. 깊게 팬 협곡의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인위적으로 조경해서는 절대 저리 꾸미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천불동 외에도 공룡능선, 용아장성이 그렇듯 설악산의 기암절벽과 바위 봉우리들은 유난히 수직절리가 발달하여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떨친다.

절대 비경의 협곡 사이로 화채능선의 칠선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어 더욱 조화로운 천불동이다. 크고 작은 폭포수가 서로 먼저 흐르려고 빠르게 추락하다가는 잠시 머물러 거울처럼 비추고, 다시 애무하듯 바위를 타고 흐르며 보석처럼 빛을 발산한다. 보이는 것마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이다.

 

   

바위에 축제의 꽃송이를 꽂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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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리 계곡 넋 나간 채 올라 보이는 것마다 천국

굽이굽이 돌고 돌아 천의 불상 대할 때마다 극락

단풍 물들다 아예 불이 난갑다 

봉우리마다 폭포마다 향내 가득  

   

오련폭포에 다다르면서 단풍은 최적의 절정을 드러낸다. 암벽을 채운 오색의 바위 꽃들이 햇빛까지 받아 찬란하게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폭포의 하단, 상단과 오련교까지 그 어떤 수식어로도 모자란 황홀경이다. 한동안 넋 내려놓고 양폭까지 올라오면 눈에 차는 것마다 아련했던 그리움이다. 천 명의 부처 일일이 뵈어 깨우침을 얻으니 담아지는 것마다 오묘한 비움이다. 

 

천불동 상단의 양폭을 눈여김 없이 지나칠 수는 없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소청까지 다다랐을 때는 이미 어둑해졌다. 예약한 소청대피소에서 하룻밤 유숙한다. 모처럼 오랜 친구들과 산중에서, 그것도 설악산에서 보내는 가을밤은 아스라한 옛 추억이 버무려져 웃음꽃이 만발한다.

 

           

구곡담에서 수렴동으로

  

설악산에서 만큼은 붉은 가을이 보다 길게 이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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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산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 도봉산역이나 수락산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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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둥 마는 둥 설치다가 이른 새벽, 대청봉에서 동해를 빨갛게 물들이는 완벽한 일출을 본다. 오늘의 남은 여정도 감동의 연장일 거란 느낌이 든다.

 

“오늘 대청봉은 호근이 때문에 온 거야.”

 

동익이 말처럼 설악산 정상이 처음이라는 호근이를 배려하여 대청봉까지 왔다가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긴 하다. 

 

“내려가면 대포항에서 내가 쏠게.”

“북쪽으로 잘 겨누고 쏴야 한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청에서 다시 중청, 소청으로 내려간다. 용의 이빨 틈으로 파고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처음 계획대로 백담사 방향 하산로로 발을 내디딘다. 

언제든 맘 내키면 올 수 있는 곳이 설악산이긴 하나 용아장성은 출입통제구간이라 더욱 매혹적인 곳이기도 하다. 봉정암에 이르러서도 뒤로 보이는 용아장성 지붕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봉정암, 우리나라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224m)에 자리 잡았으며 5대 적멸보궁이 있는 사찰 중 한 곳이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 탑 혹은 암자 등을 일컫는데 전殿이나 각閣 등으로 표기하는 시설물들과 달리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은 궁宮으로 높여 부른다. 

적멸보궁은 허다한 불교 문화재 중에서도 그 가치가 출중하다. 소청봉 자락에 있는 봉정암도 그래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와설악 쪽과 차이는 있지만 내설악 쪽으로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설악이 아니라 벼락이요, 구경이 아니라 고경苦境이며, 봉정鳳頂이 아니라 난정難頂이로다.” 

 

조선조 송강 정철은 봉정암을 오른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걸음을 표현한 것인데 지금 순례자들은 쌀부대 등을 짊어지고 이 높은 곳까지 오르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봉정암에 오면 많은 탐방객이 건물 뒤로 우뚝 솟은 거대한 기암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산에서 본 남근바위 중 제일 큰 거 같아.”

“정말 크군.”

“저쪽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창훈이와 남영이가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동익이가 사리탑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리탑엔 왜?”

“남근바위를 더 세밀하게 보여주려고.” 

 

오세암 방향 등산로 초입의 사리탑에서 바위를 바라보자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어! 부처님처럼 보이네.”

 

마치 부처님이 인자하게 봉정암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방향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바위를 숱하게 봤지만 이처럼 상상외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게 경이롭다. 오직 사리탑에서 바라봐야만 부처의 모습으로 보인다. 

소청봉에서 내려오며 볼 때도 사람 얼굴의 형상은 있지만, 사리탑에서 바라보는 완벽한 얼굴 형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바로 부처 바위라고 부르는 기암이다. 

 

“사과드려. 부처님 얼굴을 남근에 비유했으니.”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대부분의 산객들이 봉정암 경내를 거쳐 등산로 따라 오르기에 급급하다 보니 저 부처 바위를 놓치고 말지.”

“그렇겠구나. 부처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어! 여기서 다시 보면 역시 남근바위야.” 

 

봉정암 남근바위

 

설악산의 대표적 기암 능선인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만나는 중간지점에 있는 봉정암은 부처 바위 외에도 주변에 기암 묘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런 봉정암에서 허름한 아침밥 한 끼를 신세 지고 좌측으로 틀어 구곡담 계곡을 지나 수렴동 계곡으로 내려선다.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수렴동 대피소에서 소청봉 아래 봉정암까지의 상류 계곡을 구곡담으로, 백담사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 대략 8㎞에 이르는 하류 계곡을 수렴동으로 구분하는데 2013년 명승 제99호로 지정될 정도로 수려한 계곡들이다.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쌍벽을 이루는 내설악의 으뜸 계곡으로, 대청봉의 서쪽 골짜기를 이루는 구곡담, 가야동, 백운동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합수하여 수렴동 계곡과 백담계곡을 흘러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서 북천에 합쳐진다. 실타래 풀듯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코발트 빛 담을 이루거든 잠시 숨 돌리며 올려다보노라면 멋들어지게 붓질한 동양화 병풍이 펼쳐지는 곳이다.

금강산의 바위, 골짜기와 산봉우리의 이름을 설악산에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많은데 수렴동 계곡도 금강산의 계곡 이름을 빌려 썼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삼연 김창흡은 ‘설악 일기’에서 금강산의 수렴보다 설악산의 수렴이 더 광범위하며, 수렴동 계곡과 폭포가 중국의 황산보다 아름답다고 표현하여 명승지로서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맞아. 황산보다 못하지 않아. 황산 하고는 또 다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수렴동이야.” 

 

잠시 길을 틀어 사자바위 아래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설악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새삼 인식하게 된다. 사자바위에서 간식도 먹으면서 한참을 쉬었다가 영시암을 지나 너른 계곡에서 흐른 땀을 식히고 백담사로 향한다.

 

 

수렴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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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 깔린 비참한 역사의 흔적

     

대청봉 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굽이굽이 휘돌아 100번째 웅덩이를 이룬 개울가에 자리 잡았다는 백담사百潭寺에는 승려 시인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매월당 김시습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홍유손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거쳐 갔다. 그들이 다녀가고도 긴 세월이 흘러서 또 한 사람이 거기 머물렀으니…….

영시암을 지나 너른 계곡에서 흐른 땀을 식히고 백담사로 들어서는데 몇 해 전, 역시 설악산 가는 길에 용대리에서 들은 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영시암

 

 

 “저 가게들이 전부 전두환 때문에 먹고사는 거라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유배되기 전, 백담사라는 절을 제법 안다는 사람도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되었고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글을 썼었다는 정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게 없었을 거였다.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이 절의 기원은 647년 진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한 한계사寒溪寺이다. 그저 설악산 첩첩산중의 말단 산사에 지나지 않던 백담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88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후 이 절에 은거하면서였다. 옛날로 치면 그건 귀양살이였고 당시의 백담사는 유배지였다. 

그해 겨울에도 백담사는 여지없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절의 한쪽 방에서 추위를 참으며 웅크리고 앉은 전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들 부부는 거기서 2년 이상을 보내다가 1990년 12월 30일에 연희동 사저로 돌아간다. 

 

“세상사는 동안 가장 길고도 지루한 두 해였을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리도 참 오랫동안 그 사람과 한 공간에서 사는군.”

“불행한 거지.”

“암울하고.”

 

지존의 자리에 있다가 그 자리를 예정된 후계자에게 물려주다시피 하고 떠밀려간 곳이 인적조차 드문 산사, 여기 백담사라니. 노태우 대통령 취임, 그 이인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인자는 유배지로 향했다. 

이를 악물었을 그 2년간의 세월에서 그의 이빨이 온전했다면 아마도 부처님의 은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운운하며 사찰과 그를 연관시킨 건 곧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내 전 재산은 29만 원이요.”

 

그의 아들, 손자 명의로 된 어마어마한 재산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전 재산을 추징·몰수하라는 여론에 정면 반발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이기적 탐욕이 힘 있는 자에게는 정당화되고 없는 자에게 범법이 된다면 그건 절대 공평치 않다.

 

“전두환 때문에…….”

 

용대리 촌로인 듯한 사람은 ‘덕분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그 덕분에 장사가 잘 되어 고맙게 느낀다는 뉘앙스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내뱉음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지닌 국민감정, 그건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아직 진행되는 현실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라님이 귀양살이했던 곳이니까 구경 왔을 뿐이지요. 다른 의미가 뭐 있겠어요.”

 

백담사를 찾은 관광객들 역시 냉랭하다. 빈정거림이 다분하다. 최고 권좌에서 물러나 머문 절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그게 궁금해서 관광객들은 백담사를 관광코스 중의 한 곳으로 잡는다. 현대판 귀양살이를 한 곳, 그곳에서 과연 어떻게 세월을 보냈을까. 극단적 영욕을 경험하며 비참하게 전락한 현장에서 누군가는 특별한 상념에 젖지 않을까. 

 

“내 아들이 5·18 민주화운동 때 죽었소. 그래서…….” 

 

그들 중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암울함에 빠져드는 이도 있고, 삼청교육대를 떠올리며 분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 부부가 머물렀던 한 칸의 방 앞에서 무거운 걸음을 멈춰 세운다. 

 

백담사 화엄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

 

그렇게 안내문이 적힌 곳은 극락보전 앞에 있는 화엄실의 작은 방이다. 유배 중에 사용했다는 작고 초라한 생활 물품들이 전시된 것을 보고 속이 아리다 못해 쓰려서 곧 토할 것만 같다. 거기 전시된 것들은 유배 생활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했는지를 짐작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는데 그 전시품들이 마치 그의 고행을 추켜올리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가 남긴 비참한 역사의 자취가 아직 핏물처럼 고여 마르지도 않고 있는데, 백담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배지였다는 사실만을 알리며 현대사의 아픔을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단풍 절정의 아름다운 설악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게 더욱 역겨운 것이다.

 

“그만 가자. 헬리콥터에서 무차별 발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담사 다리를 건너는데 계곡에 끝도 없이 쌓인 돌탑들이 보인다. 저걸 쌓은 이들은 무얼 기원하며 쌓았을까. 텅 빈 듯 가벼웠다가 지끈거리는 머릿속을 다시 비워내려고 고개를 흔든다. 내려온 만큼 높이 시선 머물며 어제오늘 자연에 심취했던 초심을 되찾으려 애써본다.

 

“고맙다, 설악아! 수줍어하면서도 네 속살을 죄다 보여줘 감사하구나.”

 

진중하게 계획을 하였거나 느닷없이 나섰거나 설악산은 실망하게 하는 일이 없다. 

 

“고맙다, 설악아! 잠시 옛 인물이 어둠 뿌렸으나 비탈마저 평평하게 우리 육신 안전하게 내려주어 너무나 감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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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이여!

이 밤만 지나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달픈 한 말씀

애원과 기도를 드립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 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되어

이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 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사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이오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통분할 일이 겹칠 적이면

언제나 사랑의 세례를 받으려

당신만을 찾으리이다. 

    

  - 설악산 / 노산 이은상 - 

 

 

                   

때 / 가을

곳 / 설악동 소공원 매표소 - 신흥사 - 와선대 - 비선대 – 천불동 계곡 - 양폭 - 천당 폭 - 희운각 대피소 - 소청 - 중청 대피소 - 대청봉 - 중청 - 소청 - 봉정암 – 구곡담 계곡 – 수렴동 계곡 - 백담사 - 용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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