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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국립공원 100경

국립공원 100경 중 제7경_ 한려해상 국립공원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장한림 2022. 5. 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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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키 어려운 감명, 불뚝 선 자존감 한산대첩의 재연

<미륵산 -  충무공 이순신의 자취를 찾아>

 

 

경남 통영시의 한산도에서 사천, 남해 등을 거쳐 전남 여수에 이르는 50해리 남해의 물길로 5백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잔잔하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물길 3백 리의 청정해역을 일컬어 한려수도閑麗水道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경남 통영시, 경북 울릉도, 전북 익산시, 강원도 원주시에 같은 한자어를 쓰는 네 곳의 미륵산彌勒山이 있다. 이중 통영의 미륵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이 100대 명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통영시 남쪽 미륵도 중심부에 솟아 장차 미륵존불이 강림할 곳이라고 하여 미륵산으로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용화사와 관음사, 미래사 등 이름에 걸맞은 여러 사찰이 있다.

 

     

 

국립공원 100경 중 최우수 경관을 볼 수 있는 곳, 한산대첩을 떠올리게 하는 곳 

    

용화사광장에서 미륵산 등산 안내도를 살펴보고 출발한다. 용화사로 가는 넓은 도로를 비켜 왼편 숲으로 들어서면 편백 높게 뻗은 오솔길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넓은 잔디밭인 띠밭등은 통영지역 학생들이 소풍을 오곤 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띠밭등에서 100여 m를 지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좀 더 오르면 미륵산 정상을 500m 남겨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거친 바윗길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정상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인 만큼 가파름이 꽤나 심한 편이다. 정상 바로 아래의 70m 계단에 이르러 한려수도가 펼쳐진다.

2008년 3월 1일에 설치했다는 케이블카는 관광 상품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한려수도를 제대로 내려다보고픈 생각에 내처 정상(해발 461m)까지 올라선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거제 해금강 지구, 통영·한산지구, 사천지구, 남해대교지구, 상주·금산지구, 여수·오동도지구 등으로 구분되는데 1968년 지정된 최초의 해상 국립공원이다. 그중 통영·한산지구를 발아래 두고 있다.

통영시 일부 지역과 한산도를 비롯한 미륵도, 추봉도, 죽도, 용초도, 선유도, 도곡도, 연대도, 비진도 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한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승 기념물이 산재해 있는 역사유적지이기도 하다.

 

미륵산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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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다에 묵연히 시선을 담그자 그 위로 불길이 치솟는다. 왜선 60여 척이 불에 타고 아비규환의 왜군들이 바다로 뛰어든다. 

선조 즉위 25년째인 1592년 5월, 이순신의 수군은 사천 선창, 당항포 등 바다 곳곳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지에서는 계속 패전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되자 왜군은 해상에서도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여 가덕도, 거제도 인근 해안에 수십 척의 군함이 출몰한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우수사 이억기와 더불어 49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露梁에 이르러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선 7척과 합세하여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하기로 했다.      

거제도와 고성 사이의 한산도는 사방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고 해도 굶어 죽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아군은 예정대로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러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일제히 왜군을 향해 진격하였다. 거북선의 지자총통地字銃筒, 현자총통玄字銃筒, 승자총통勝字銃筒 등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퍼부었다. 이때 적선을 격파하고 불사른 것만도 66척이나 된다.

적의 잘린 목이 86급, 물에 빠지거나 찔려 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일본 수군을 전멸시킨 이 해상전투가 한산대첩이다.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김시민 정군이 지휘한 진주성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 대첩으로 꼽으며, 명량대첩, 노량대첩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3 대첩에 속한다. 한산대첩의 장면들을 상상하면 형언키 어려운 감명에 사로잡히다가 불뚝 자존감이 세워지는 걸 의식하게 된다.

세계 해전사에 가장 위대한 승리로 평가하는 세계 4대 해전을 보면 기원전 492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살라미스 Salamis 해전, 1588년 스페인함대가 영국을 침공한 칼레 Calais 해전, 1805년 영국을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려던 프랑스 나폴레옹의 트라팔가르Trafalgar 해전과 임진년인 1592년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꼽는다. 

삼도 수군의 본영인 한산도는 충무공이 9000명의 왜병을 수장시킨 한산대첩의 교전 장으로 이충무공 유적(사적 제113호)이 있고 이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대첩 기념비, 대척문, 충무문, 행적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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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www.bookk.co.kr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절대 산처럼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했던 말이다. 왜군과의 교전에서 자칫 경솔하게 대응했다가 패배할 것을 우려했을 테지만 장군은 ‘산처럼’이란 말을 써서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은 저 아래 한산도에서 틈틈이 여기 미륵산을 올랐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산에서 깨우침을 받아 바다를 다스려 승리를 취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미륵산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는 국립공원 100경 중 최우수 경관으로 선정된 바 있어 더더욱 늘어난 등산객과 케이블카 승객들로 정상 일대는 이만저만 분주한 게 아니다. 

 

 

안개만 끼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뻔 했다

 

 

많은 섬과 그 사이의 푸른 물길, 간간이 떠 있는 범선 몇 척과 풍만하게 살진 뭉게구름들이 한려수도의 명성에 어긋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 대마도가 보일 만큼 청명하지는 않지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눈길이 멈춰진다. 순간 그 바닷속에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이 쏜 대포가 유물로 건져 올렸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

 

1992년 8월 1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해군 충무공 해저유물 발굴단에 의해 별황자총통이 발굴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이틀 후의 유물 공개행사는 더더욱 전국을 들썩이게 하였다. 

 

‘만력 병신년(1596년) 6월 모일에 만들어 올린 별황자총통萬曆丙申六月日 造上 別黃字銃筒’

 

조선 수군의 무기였음을 확인시키는 한자체가 대포에 새겨져 있었다. 바야흐로 임진왜란 때 왜선을 침몰시킨 거북선 대포가 발굴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이 벌어진 것인가. 정부는 국민의 흥분과 여론의 성화에 유물이 인양된 지 17일 만에 별황자총통을 국보 제274호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 문화재 역사상 최단기간 국보 지정 사례였다.

그로부터 4년여의 세월이 지나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사기였음이 밝혀진다. 1996년 6월, 한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별황자총통이 위조라는 진술을 듣게 된다. 

 

"조사 결과는 더 경악스러웠죠. 모든 것이 사기였습니다."

 

해저에서 발견된 별황자총통은 골동품상한테 500만 원에 사들인 해군이 한산도 앞바다에 빠뜨린 뒤 잠수부를 동원해 건져 올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일은 당시 뚜렷한 발굴성과가 없어 해체 위기에 몰렸던 해군 충무공 해저유물 발굴단의 조바심에서 비롯된 조작 사건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당연히 별황자총통의 국보 지위가 박탈되었고 국보 제274호는 영구 결번되어 수치스러움의 상징으로 남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이 통탄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특히 허탈에 빠졌고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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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와 그 아래로 한려수도가 보인다

 

해무가 잔뜩 끼어 전망 안내판만큼 시야가 맑지 않다

 

 

정상 조금 아래로 봉수대 터가 있다. 그 당시의 해괴한 사건을 떠올렸다가 봉수대 쪽으로 눈을 돌린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와 백성들을 동원하여 축성했다는 산성인 당포 성터(경상남도 지방기념물 제63호)도 인근에 있으니 이 지역도 그 옛날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급박하게 대비했던 곳임을 실감케 한다. 

통영이 배출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인근에 있다. 전망쉼터에서 선생의 묘소를 내려다보며 마음을 바르게 세워보려 한다. 그러면 세상이 다 보인다고 선생은 그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표현했었다.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적삼 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사람의 사사로운 욕심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비견했는데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공감하게 된다. 통영 상륙작전 전망대에서 한국 전쟁 당시 해병대의 상륙작전 전과와 귀신 잡는 해병의 유래를 읽고 한산대첩 전망대인 케이블카 정류장 지붕으로 내려선다. 한려수도가 더욱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한산도와 멀리 거제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사량도 지리산에서 바로 미륵산으로 왔으니 피곤할만도 할텐데

 

           

이곳땅끝에서 돌아서기 싫어라   

  

용화사광장으로 내려가다가 미래사와 갈라지면 미륵치라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인근의 현금산, 야소골, 박경리 묘소와 용화사 방면으로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용화사 쪽으로 800여 m 아래에 또 다른 사찰 관음사가 있고 조금 더 내려가다 보면 산자락이 깎인 터에 거북등대 모형이 세워져 있다.

한산도 가는 길목 제승당 입구 바다 암초 위에 세운 거북등대의 원석을 여기서 채취했다고 적혀있다. 거북등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을 기리고 한산만으로 입항하는 배들이 항로를 찾게끔 1963년에 준공하였으며 한산대첩의 배경지에 있는 거북등대 실물의 3분의 1 크기로 조형물을 제작한 거라고 한다. 역시 통영은 이 충무공의 충절과 구국의 혼을 그 어느 곳보다 높이 기리는 도시라는 걸 거듭 인식하게 된다.

내려와 용화사에서 올려다보는 미륵산이 정겹다. 다시 또 온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한려수도의 보루인 미륵산을 재차 올려본다. 미륵산에서 내려와 서울로 향하기 전에 다도해와 낙조의 조망처로 유명하다는 달아 공원에 잠시 들렀다. 주변에 10년생 동백 1000그루를 심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되는 경승 1번지로 가꾸고 있다는데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조망하기에 뛰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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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정이라는 정자를 비켜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그야말로 땅끝에 선 기분이다. 이름을 지니지 못한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와 멀리 욕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도해 풍경을 한 폭 그림으로 감상하는 순간이다. 

달아達牙라는 명칭은 지형이 코끼리의 아래위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지금은 달구경 하기 좋은 곳이라는 쉬운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일컫는 도시, 통영. 잠시 들렀다가 떠나면 훌쩍 등 돌리는 것만 같아 올 때마다 아쉬움 고이는 곳이 통영이다.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고 역사와 문화가 깊숙이 배어 있는 통영은 떠나와서는 다시 갈 구실을 만들게 되는 곳이다. 

 

 

충무공의 얼을 되새기고 하산한다

 

 

 

연홍 놀빛 물들이며 해 저무는 한려수도 

서둘러 떠나지 마오 손짓하듯 저 산등성이 

석양녘 긴 그림자 여운처럼 드리우는데

가야 할 낸들 희끗하게 머리 빠진 갈대에라도

지는 노을 붙들어 매고 싶지 않겠소.

예서 보낸 한나절

이곳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길 있다면

지금 저 주홍빛,

먹빛으로 바뀌기 전에

숨찬 목 부여잡고라도

내처 뛰고 또 뛸 수 있을 텐데 

 

 

                   

때 / 여름

곳 / 용화사광장 - 띠밭등 - 미륵산 - 한산대첩 전망대 - 미륵리 - 관음사 - 용화사 – 용화사 광장

 

 

 

https://www.youtube.com/watch?v=Pyh_7BsA4sY 

 

 

https://www.bookk.co.kr/book/view/135164

 

국립공원의 산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스물 두 곳의 국립공원이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들을 찾다 보면 그곳이 국립공원이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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