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이다

등산과 여행은 과거와 미래에서 지금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등산과 여행의 모든 것

이야기가 있는 산/산에서 듣는 전설

검단선사의 오묘한 지혜와 은덕_ 선운산

장한림 2022. 3. 10.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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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을 지장 도량으로 만든 검단선사

 

도솔계곡의 맑은 물,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3000여 수에 이른다는 동백나무숲,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화신, 상사화. 무엇보다 천애 적벽과 여러 천연 굴이 있어 수시로 들르고 싶은 곳이 여기 선운산이다. 동백 숲 주변에는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아 순수 동백림에 가깝다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 선운산은 전라북도 도립공원 혹은 1984년에 지정된 국민 관광지라는 명찰과 관계없이 귀에 따갑도록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수식어를 쓴다. 그 수식어에 어긋나지 않기에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선운산이 있는 전북 고창에는 도내에 분포하고 있는 330여 기의 지석묘 중 100여 기가 군내 해리면, 부안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보존지구로 지정한 바 있다

고창은 장어와 복분자를 떠올리게 하는 고장이다. 여기에 작설차를 넣어 고창의 3대 명물이라 칭한다. 자연산 장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모두 양식이지만 6개월여 양식 장어를 고창갯벌에서 키워 고창갯벌 풍천장어라는 브랜드로 특허를 냈다.

해안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염도 높기로 유명한 동호해수욕장, 구시포 해수욕장과 사포리 해수욕장 등은 부근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천연의 피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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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머무르며 갈고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다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의 선운산禪雲山이니 와서 불도의 언저리나마 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학講學과 수선修禪의 도량을 표방한 선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수많은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555년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날 미륵 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꾼 다음 감동하여 세웠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2년 뒤에 백제의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당시 이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왕이 남의 나라 땅에 사찰을 건축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검단선사黔丹禪師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도 기록으로 전해내려오는 것은 없다.

단지 백제 위덕왕 때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의 동굴에서 홀로 수도에 정진하는 도승의 검은 얼굴을 빗대 검단선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검단선사가 동굴 속에서 좌선하고 선정에 들어간 어느 날, 금빛 찬란한 후광 속에 관세음보살이 현몽現夢하였다.

 

검단! 인연의 때가 도래하였으니 그대가 말세의 모든 영혼을 천도할 수 있는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지장 도량을 만들라.”

 

흰옷 차림의 관세음보살은 왼손에 감로수 병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검단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검단선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거룩한 관세음보살을 우러르며 물었다.

 

말세 중생이 의지하고 영혼 천도를 할 지장 도량은 어느 곳이옵니까?”

서해안에 있는 도솔산兜率山이니라. 그 도솔산에 지장 도량의 절을 지어 중생을 인도하라.”

 

검단선사는 도솔산을 기필코 지장 도량으로 만들겠다고 관세음보살게 서원誓願하였다. 그러려면 먼저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을 극복해야 했다.

도솔산에는 용이 되려고 수행하다 승천하지 못한 사나운 암놈 이무기 한 마리가 악의를 품고 인간들에게 악행을 자행하니 그 이무기를 악에서 선으로 교화하여 떠나게 하고, 현재 도솔산 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사나운 산적 무리를 교화하여야 하는 게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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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전설을 듣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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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역사를 읽다

얼마 전 갤럽은 우리나라 국민의 취미 생활 중 으뜸이 등산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도봉산 역이나 수락산 역에 내리면 그 결과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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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도솔산으로. 가서 관세음보살님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리라.”

 

도솔산에 도착한 검단은 성질 고약하고 힘이 넘친다는 이무기와 맞닥뜨렸다.

 

여긴 첨부터 내 소유란 말이다.”

등기부등본을 떼봐서 네 거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내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서 그러니 나한테 넘겨줘야겠다.”

하하하! 가소롭구나. 선사라더니 깡패구나.”

이놈이 말이 많구나. 그냥 사라지겠느냐. 아니면 날갯죽지라도 찢겨나가고 기어가겠느냐.”

 

이무기가 큰 입을 벌리며 검단선사를 한 입에 삼키려고 달려들었다. 검단선사는 바위에 정좌하고 합장하여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담긴 보검수진언을 큰소리로 외웠다.
그 즉시 금빛 갑옷차림에 보검을 든 무수한 신장들이 나타나 이무기를 에워쌌다.

 

제가 졌습니다.”

 

이무기는 검단선사 머리 위를 세 번 날아돌며 경의를 표하고 지금의 고창 방장산으로 날아갔다. 이무기가 도솔산을 떠날 때 바위에 굴을 뚫었는데 바로 도솔암 위쪽 바위인 용문굴龍門窟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검단선사가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갔는데 워낙 큰 못인지라 아무리 돌을 던져도 메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기 시작했다.


이 연못에 숯이나 돌을 한 가마씩 부으면 눈병이 나을 것이니라.”

 

감단선사의 말대로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니 눈병이 씻은 듯이 낫는 것이었다.

 

신기하네요. 나도 못에다 숯을 던져 눈병이 나았다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이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연못을 메운 자리에 세운 절이 바로 선운사이다.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의 경지를 얻는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선운사라 지었다.

창건 설화와는 별도로 조선 후기 사료들에는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창건 설화에 걸맞게 절 주위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대웅보전, 석탑과 만세루를 건성으로 들러보고 선운사를 나와 지금부터 유람할 봉우리들을 올려다보니 썩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봉우리마다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산은 날씨나 계절에 의해 채도 혹은 명도가 다소 달라지긴 해도 늘 한결같은 모습 그대로이다. 운무에 가려서도, 백설에 덮여서도 산은 그 존재나 그에 대한 확신을 의심케 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일,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에 저처럼 한결같을 수가 있긴 할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라면 가끔 색감이 달라지긴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변했다면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다시 찾은 선운산도 찾은 이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한 번의 인연으로 늘 변함없는 맺음을 지속하는 산 특유의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상사화 붉은 물결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창연한 오후 햇살 받아 토할 듯 더욱 붉은색이 사랑의 빛깔과 너무나 닮았던 것 같다.

연녹색 이파리는 봄이 다 가도록 피지 않는 꽃을 열망하다 말라 죽고 그런 후에야 꽃대 헤집고 핀 붉은 화신,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꽃말인지라 상사화相思花는 더 애절하고 그리움만 남긴 사랑의 그림자와 그 색감이 흡사했었나 보다. 이곳 고창 선운사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와 함께 3대 상사화 군락지로 꼽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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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들을 교화하여 소금을 굽게 하다

 

선운사 담장을 끼고 주봉인 수리봉으로 향한다. 석상암 갈림길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색 고운 단풍, 바람과 낙엽이 죄다 옛 벗처럼 다감하게 느껴진다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고요한 가을을 만끽하며 검단선사가 관세음보살에게 서원한 또 하나의 숙제를 더듬어본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도솔산은 첩첩산중 울창한 숲으로 관리의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당시 이 무법천지에는 장호張虎와 장표張豹라는 형제가 산적의 무리를 거느리고 온갖 행패를 부리고 마을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찰을 지으려 하니 당신들이 양보해줘야겠소.”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다시 눈에 보이면 선사고 나발이고 목을 내리치겠다. 어서 꺼지거라.”

 

장호, 장표 형제는 자기들의 나와바리에 절을 짓겠다는 말에 도끼와 창을 꺼내들고 검단을 위협했다.
그 무렵, 서해안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나타나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배는 바다로 물러가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면 다시 해안가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산적들과 검단선사가 돌배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돌배는 여전히 사람들을 기피하듯 바다에 떠 있을 뿐이었다. 이때 검단선사가 관세음보살의을 외치며 돌배를 향해 갯벌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제가지와 달리 돌배가 검단선사를 향해 다가왔다.

배에는 단아한 금빛 지장보살상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검단선사의 눈앞에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돌배의 지장보살상은 말세의 지장 도량을 위해 서천 서역국으로부터 모셔 온 것이니 하루 속히 도솔산에 봉안하도록 하여라.”

 

검단선사는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을 불러 지장보살상을 육지로 옮겼다. 지장보살상을 옮기자 돌배는 물러서더니 서해 멀리 사라졌다.

 

저희들이 선사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산적 형제는 검단선사의 신통력에 도끼와 창을 버리고 사죄하며 재생의 길을 물었다.

 

중생이 마음 한 번 바꾸면 부처도 되는 법이지. 자네들이 선한 양민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지. 소금 굽는 방법을 알려줘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터이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게. 과거를 뉘우치고 소금 굽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착한 일로 보은하게.”

 

검단선사는 산적들을 지금의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삼인골에서 고창군 심원면의 바닷가 마을로 집단 이주시키고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쳤다.

양민이 된 이들은 검단선사의 자비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이름을 검단리라 이름 붙였다. 그들은 해마다 소금 수확철이면 검단선사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보은염報恩鹽이라 명명한 소금을 선운사에 보시하였고, 그 관행은 수백 년간 이어져왔다.

마침내 검단선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산적이 살던 곳에 선운사를 창건하였고, 이무기가 조화를 부리며 살던 도솔암 인연의 바위 위에 지장보살의 진신 상주를 의미하는 지장보살상을 모셨다. 드디어 도솔산에 말세 중생의 영혼을 천도하는 지장 성지가 열린 것이다.

 

 

 

산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뽀얗게 운무 가라앉아 아련한 추억 되새기게 하는 이런 산길, 어느새 저버린 낙엽 거침없이 밟으면서 진득한 고독까지 떨쳐낼 수 있는 산길, 내리막 해거름 붉다가 검어지면 다시 곱씹을 애수일지언정 부서지는 햇살 마구 밟으며 걷는 이 길이 마냥 좋기만 하다

아픔이 있기에 치유가 있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극복의 결과물이 있지 않겠는가. 설움 반 자조 반에 이 산 올랐다가 무어 하나 지워내지 못하고 내딛는 무거운 걸음이 거쳐야 할 아픔인 것 같아 그저 좋아지는 것이다. 산이기에 그런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유람하듯 느긋하게 걸어서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마이재 이정표를 보게 된다. 여기서 700m를 더 걸어 수리봉(해발 336m)에 닿으면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개이빨산이라고도 불리는 견치산이 있다.

막 거쳐 온 주차장 일대와 선운사 그리고 외떨어진 석상암만 내려다보이지 않는다면 이곳도 온통 첩첩산중이다. 만일 그렇다면 초절정의 만산홍엽이 너무 아까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참당암 쪽으로 가면서 산 아래 소담하게 담겨 산중 호수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도솔제다. 그 뒤로 탕건바위가 주변 산세들에 비해 유독 튀어 보인다.

바위 두 개가 포개진 모양을 한 포갠바위를 지나 시야 트인 바위에서 낙조대와 천마봉이 기다리는 걸 보고 걸음을 빨리하지만 참당암으로 내려서면서 자연 자생인 듯한 꽃무릇들이 멈춰 세운다. 보고 또 보아도 환상적이고 특이한 모습이다

참당암에서 소리재까지 1km, 조망은 막혔지만 역시 완만한 오르막 숲길이다.

소리재 지나 낙조대로 가면서 보는 천마봉 주변의 기암들이 마치 알록달록 거대한 몸집의 포유류가 얼굴만 삐죽 내밀어 기웃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용문굴 갈림길에서 100m 거리의 용문굴을 보고 가자. 선운산은 내려갔다가 회귀해서 올라가는 게 그다지 힘을 뽑지 않으므로 편안하게 시간만 조절하면 된다.

 

배맨바위는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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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뚫고 지나갔다는 용문굴은 인기 드라마였던 대장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잔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장금 어머니 돌무덤이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거대한 바윗덩이를 큼직한 돌덩이로 받친 듯한 용문굴에서 낙조대로 향한다. 긴 계단을 올라 낙조대에 이를 즈음 뿌옇던 운무가 걷힌다

낙조대 바위 위로 펼쳐진 가을 하늘이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조금만 더 맑았으면 저기 칠산 해안과 변산반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채 걷히지 않은 연무 탓에 서해의 선이 선명하지 않다. 배멘바위와 거길 오르는 철 계단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거로 만족하고 천마봉으로 향한다

 

멋진 풍광의 수묵화에 암자를 그려 넣는 게 괜한 구색이 아니었구나.”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기암 군락이 오색단풍과 어우러져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는데 그 중심에 도솔암이 있다. 불교에 심취한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에 들어가 스스로 법운자法雲子라 칭하고 중으로서 일생을 마쳤다는데 도솔암은 왕비를 위해, 중애암은 공주를 위해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도 286m의 천마봉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조망 장소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낙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자바위 능선과 투구바위 등 주변 경관이 오밀조밀 수려하다. 내려가면서 올려다본 천마봉은 장대한 기골의 너끈한 풍채를 지닌 모습이다.

높이나 크기, 부피와 무게 등 수치로 가늠하는 세상사 잣대를 조롱하는 품새다.

 

도솔암 마애불이 꼿꼿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그런데도 속세 가까이 내려서니 제일 먼저 수치를 끄집어내게 된다. 선운산 날머리 도솔암으로 내려와 마주 대하여 걸음 멈추게 하는 몇몇이 있으니 결국 크기를 재고 높이를 셈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는 보물 1200호인 도솔암 마애불이다. 고려 때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의 마애불상으로 지상 3.3m 높이에서 책상다리하고 앉은 높이가 15.6m라니 과연 고개 꼿꼿이 들어 눈까지 추어올리게 된다.

다른 하나는 내륙에서 제일 큰 송악(천연기념물 제367)과 수령 600년의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이다

 

 

내 육신은 비록 제행무상에 의해 멸하지만, 영혼은 도솔산 산신이 되어 영원히 말세 고해 중생의 지장 도량을 지키겠다. 도솔산 승려들이여, 뼈를 깎는 수행 정진으로 정각을 이루고, 오직 고해 중생을 위해 헌신할 때 말세 불법은 도솔산에서 일어난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제행은 무상하니 촌음을 아껴 수행하고 정진하여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라.”

 

첫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 검단선사는 자신의 선실에서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그를 따르던 사부대중을 불러 이처럼 부촉咐囑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애도하는 열반종 소리를 들으면서 호흡을 끊어 대적멸의 세계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선운사는 3000여 명의 승려가 거처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한다.

도솔암으로 내려와 늠름한 장사송을 바라보며 눈인사 나누고 선운산 유람선에서 하선한다. 어질한 뱃길에 금세 멀미라도 할 듯 창창한 오후 햇살이 흔들거리는 물살처럼 몽롱하다.

산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오늘 선홍의 상사화 물결을 따라 선운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자 어렴풋이 새겨지는 게 하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왜 간절한지,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왜 솟대처럼 높이 세워 염원하는지

    

못미더운 세월

어쭙잖은 작별 잊으려 떨구려

암팡진 바윗길 힘차게 올랐지만

남은 계절 휘저을 기세로 몰려드는

운무에 푹 덮이니 아쉬움 그지없고나

만남도, 헤어짐도

추억도, 기약도 뒤돌아보니 그저

산안개 같고

오락가락

신기루 같기만 하고나 

 

 

     

   

때 / 가을

곳 / 선운산 관리사무소 - 선운사 - 석상암 - 마이재 - 수리봉 - 참당암 - 소리재 - 용문굴 - 낙조대 - 천마봉 - 도솔암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sTIlhko__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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