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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요석공주를 버리다_ 소요산

장한림 2022. 3. 2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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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요석공주를 버리다_ 소요산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는 소요산逍遙山은 1981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는데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과 매월당 김시습이 종종 노닐며 거닐었다逍遙하여 소요산이라 부른다. 과거 문인들의 휴양지였다가 지금은 국민 관광지이자 동두천시민의 아늑한 휴식처로 자리한 곳이다.

주차장을 지나 소요산 탐방지원센터 입구부터 조선 초의 역사를 접한다. 이곳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던 별궁인 행궁지가 있다. 

 

“난 그놈이 싫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의 꼴사나운 모습이 싫어 도성 한양을 떠나 함경도 함주로 가는 길에 한동안 소요산에 머무른다. 어렵사리 나라를 건국했는데 권력을 쥐고자 자식들끼리 칼부림을 하였으니 그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소요산은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의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오늘 말발굽을 따라 소요하며 역사의 숨결을 따라가기로 한다. 

 

         

일단 보여주고 산행을 시작하게끔 하는 소요산이다 

    

소요산 단풍문화제에 즈음한 시기라 추색이 완연하기도 하지만 소요산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건 처음 본다. 국민 관광지답게 입구에 아치 형태의 문을 만들어 연리지 문이라 명명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를 형상화하여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천년을 지나 연리지처럼 이어진다고 적어놓았으나 글쎄, 그처럼 열렬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포장도로를 따라 요석 공원에 이르는데 많은 탐방객이 단풍 그늘에 자리를 깔고 가을을 즐기고 있다.

 

“그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지 않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30대의 원효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필경 이 스님이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이렇게 해석한 신라 29대 무열왕은 딸인 요석공주를 원효와 맺게 하여 훗날 대유학자가 된 설총을 낳게 된다. 그 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표주박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이곳 소요산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한다. 그즈음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조그만 별궁을 짓고 원효를 흠모하며 그가 수행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불을 드렸다. 

경기 소금강이라고 덧붙여 적은 자재암 일주문을 통과하니 좌측의 약수터에도 많은 이들이 물을 받고 있다. 조금 더 지나 원효폭포 못미처에 있는 대리석 다리 속리교에서 왼편은 자재암 코스이고 오른편은 공주봉으로 가는 길이다. 어느 쪽으로든 정상 일대의 능선으로 갈 수 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로 명명한 속리교俗離橋를 수많은 속인이 건너고 있다.

 

속리교를 지나 좌측의 아담한 폭포가 원효폭포이다.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수행을 하다가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폭포 옆에 원효굴이라 칭한 작은 동굴이 있다. 원효굴 안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일곱 석불을 봉안하였는데 극락 삼존과 사천왕상이다. 

동굴이 있는 바위 절벽 위를 원효대라 하는데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살하려 뛰어내리려는 순간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소요산은 원효대사가 감독, 주연을 맡고 제작까지 총괄한 원효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108계단을 걸어 오른다. 번뇌를 떨쳐내며 계단을 오른 후 작은 계곡을 지나고 극락교를 건너 자재암에 들어서게 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원효대사가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무애 자재無碍自在의 수행을 쌓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청량폭포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나한전 바로 우측의 원효샘은 지하 100m의 지하수로 물맛 좋기로 이름난 샘물이라 물을 받으려 많은 사람이 줄을 섰다. 고려 시대의 시인 이규보는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며 감탄했다는데 그 맛이 어떤 건지 궁금하기는 한데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일단 보여주고 산행을 시작하게끔 하는 소요산에서 가을 정취와 원효의 숱한 자취, 기암과 폭포를 눈에 담고 해탈문 앞에 멈춘다.

불교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문에 연꽃이 새겨져 있다. 문 위의 종에서는 청아한 소리가 난다. 해탈문을 통과하건만 세속의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고 다시 이르게 된다는 해탈의 경지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해탈문을 통과한들 나옹선사의 ‘선시禪詩’가 주는 채움의 미학을 어찌 헤아려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말없이 살라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 없이 살라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아무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해탈문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하게 된다. 기암괴석과 숲을 끼고 길고도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백운대 능선의 첫 봉우리 하백운대(해발 440m)는 펑퍼짐한 공터이다. 조망은 가렸지만 벌어진 나무 틈으로 울긋불긋한 단풍 숲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소요산에 머물며 노래하였다는 시구가 적혀있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이성계의 진노를 듣고요석공주의 사모를 느끼다 

    

비교적 평탄하여 걷기 좋은 능선의 바위 주변으로 몸통을 함부로 비틀며 이리저리 가지를 뻗은 소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중백운대를 지나 상백운대를 250m 남겨둔 지점에서 선녀탕을 거쳐 자재암으로 하산하는 삼거리를 지난다.

상백운대(해발 560.5m)에 이르자 하늘은 더욱 높고 가을 색은 완연한데 태조 이성계의 진노가 메아리친다.

 

“혈육을 무참히 죽이다니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이성계는 왕자의 난 이후 소요산 아래에 행궁을 짓고 불교 수행에 힘쓰며 이곳에 자주 올라 회한을 달랬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을 잃은 한이 어디 쉽사리 달래질 일이겠는가. 

아마도 이방원에 대한 원망으로 속이 문드러졌을 것이다. 1398년과 1400년, 건국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피비린내 나는 내홍을 두 차례나 겪은 조선이지만 그 후로도 500년을 넘게 이어간다.

상백운대에서 350m 떨어져 크고 작은 편마암들이 즐비한 칼바위는 소요산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구간이다. 바위와 바위틈으로, 혹은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과 울긋불긋 물든 단풍 숲이 걸음을 더디게 한다.

칼바위를 지나 소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한대(해발 571m)에 이른다. 여기서 길을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봉인 의상대(해발 587m)에 닿는다. 바위 봉우리인 의상대에서 인근 마차산을 볼 수 있고 파주 감악산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휘감아 이어지는 걸 보게 된다.

여기서 공주봉으로 향하면서는 능선 아래쪽으로의 풍광이 더욱 아름답다. 소요산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우측 능선으로 오르는 첫 봉우리가 공주봉(해발 526m)이다. 

 

자꾸 아쉬운가보다. 공주봉을 내려서서 고대 돌려 의상대를 올려다본다

 

 

“사랑은 한 사람의 뜻만으로는 끝날 수 없사옵니다.”

 

원효대사를 향한 요석공주의 애끊는 사모를 기려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절이 싫어 떠난 중은 다시 불러들이는 게 아니오.”

 

쉽고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원효는 고행을 택했다. 삶의 결정적 순간에 이질적 판단을 내린 조선 태종 이방원과 원효대사를 대비하며 일개 범부로서 그 두 사람의 입장에 섰다면 어찌했을까. 아마 그 어떤 판단이나 행동도 저들처럼 극단적으로 취하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결과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기도 어렵거니와, 자신의 양심이나 이상을 위해 함께 한 이를 버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는 남다른 이들이 만드는 건가 봐.”

 

복잡한 과거사에서 벗어나 서울 쪽으로 눈을 돌리니 도봉산이 흐릿하다. 공주봉에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하산로는 다소 가파르다가 구절터 인근에서 더욱 험하고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산에서 내려오자 탐방객들이 훨씬 많아졌다. 절정의 가을을 즐기는 이들의 웃음이 여기저기서 말갛게 들린다.

 

 

 

때 / 가을 

곳 / 소요산 관광 탐방안내소 - 소요산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절터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NO4tnr5yW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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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영의 부크크 커뮤니티

장순영은 이러한 책들을 집필, 발행하였습니다. <장편 소설> 흔적을 찾아서(도서출판 야베스,2004년) 대통령의 여자 1, 2권(중명출판사, 2007년) 아수라의 칼 1, 2, 3권(도서출판 발칙한 상상,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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