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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10_ 문경지교刎頸之交

장한림 2022. 4. 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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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가 앞선 상생의 통 큰 우정

 

조나라 혜문왕은 인상여가 화씨 벽을 둘러싼 진나라의 억지 요구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돌아오자 그를 상대부에 임명하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잔 합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면서 흠뻑 취해봅시다. 술은 내가 사리다.”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진왕이 조왕에게 만남을 청했다. 혜문왕은 진나라의 기세에 압도당해있었기에 진왕의 요청에 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진왕과 대좌하게 된다.

진왕은 조나라가 진나라의 제후국이라는 걸 각인시키고자 허세를 떨치려 일부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는데 화씨 벽 사건 때 기지를 발휘했던 인상여가 나서서 조왕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진왕은 되레 인상여에게 역공을 당해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혜문왕은 인상여가 다시 진나라 왕과의 회담에서 담대한 기개를 발휘하며 나라와 왕의 자존심을 지켜주자 수석 재상인 상경上卿에 제수했다.

 

“나는 전쟁터에 나가 적군의 성을 탈취하는 등 수도 없이 많은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고작 세 치 혓바닥을 놀려 미미한 공로를 세웠을 뿐인데도 나보다 윗자리의 벼슬에 올랐다. 더욱이 그 자는 출신성분도 미천하지 않은가. 도저히 그런 자 밑에 있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인상여가 이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자 조나라의 백전노장이자 최고사령관 염파가 분노한 것이다. 

염파는 대대로 무인 가문으로 숱한 싸움터에서 큰 공을 세운 엘리트 코스의 장수였음에 비해 인상여는 진나라로부터 조나라의 국보 화씨지벽을 지켜낸 공로로 초고속 승진을 한 케이스였다.

혜성같이 등장한 인상여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흔들린다고 판단한 염파는 집안 배경도 초라하고 뚜렷한 공적도 없이 입만 놀려 행운을 누린다고 인상여를 비난했다.

이런 염파의 감정을 파악한 인상여는 그를 피해 다녔다. 대신들의 조회가 열릴 때에도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도 염파의 마차가 보이면 황급히 자신의 마차를 골목으로 피해 숨게 했다. 

 

“저희는 상경을 이 시대의 대장부로 여겨왔으며 드높은 지혜를 흠모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경께서는 염파 장군이 온갖 악담을 퍼붓는 데도 그저 두려워하며 피하고 계십니다. 상경을 따르는 저희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문객들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인상여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대들은 진나라 왕과 염파 장군 중 누가 더 두렵소?” 

“당연히 진나라 왕이지요.” 

 

문객들의 대답에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그 진나라 왕을 면전에서 꾸짖었고 그의 신하들을 욕보인 바 있소. 그런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할 것 같소? 강력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건 염 장군과 나,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그럴진대 우리 둘이 싸우게 되면 어찌 되겠소? 내가 지금 염 장군을 피해 다니는 것은 진나라에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오. 매사에 나라가 우선이지 않겠소?”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는 위태로운 국력이었지만 외교 행정의 문신인 인상여와 백전노장의 무장 염파라는 투톱이 있었기에 적국의 침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걸 대신들 누구라도 모르지 않았다. 

 

“공로를 논하자면 이 나라에 장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겠지만 나라에 대한 충정과 도량을 따지자면 인 상경이 한 걸음 위인 듯 하오.” 

 

이런 인상여의 깊은 속내를 파악한 우경이 염파를 찾아가 말했다. 

 

“나만 보면 피하기 급급한 그 겁쟁이가 무슨 도량이 있단 말이오?” 

“인 상경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 분쟁을 일으키려는 염 장군을 피하면서까지 자신을 숙이고 있을 뿐이오. 염 장군께서 생각을 달리하지 않으면 결국엔 나라의 존립 위기와 장군의 명성이 훼손되는 일만 반복될 뿐이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우경 선생이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내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오.”

 

염파는 곧바로 자기 자신은 죄인이라는 의미로 웃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진 채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가 문 앞에서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비루한 자가 상경의 깊은 헤아림을 모르고 깝죽대며 상경을 깎아내렸소이다. 내 죄는 죽어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오.”  

   

자신을 벌해 달라는 부형청죄負荊請罪의 모습을 본 인상여가 황급히 염파를 일으켜 세웠다. 

     

“장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아닙니다. 저는 상경께 몹쓸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염파가 다시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장군께서 이렇게 아량을 베풀어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구국의 일념으로 사직을 지키는 신하입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사과나 용서가 있겠습니까?”  

   

염파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상경과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이 되고자 하오. 비록 목이 잘리는 일이 있어도 지금 맹세한 우정에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목이 잘려도 변치 않는 사귐이라는 뜻의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우의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이 개인의 이해를 초월해 나라의 존립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공감함으로써 대립을 넘어 상생의 통 큰 우정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사사로운 감정이나 개인의 이해득실이 앞섰다면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인상여와 염파는 합심해 조나라를 든든하게 지켰다. 두 사람이 건재한 동안에는 패권국이었던 진나라도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염파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 반성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애초에 인상여 또한 높은 지위를 내세워 양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호랑이 두 마리가 치열하게 싸우다가 둘 다 큰 상처를 입었을 테고 다른 맹수에게 둘 다 밀려났을 것이며 조나라도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리더란 경쟁자로부터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 있는 위치이다. 인상여에게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게 된다. 현명한 지도자의 자세와 처신이 어떤 건지 인상여는 훤히 알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무릇 양보는 더 나은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며 포용은 강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다.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함으로써 그 이름이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인상여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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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교의 유래를 새기노라면 우정은 내 편하고만 맺는 게 아니라 경쟁자와도 얼마든지 맺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당적이 다르고 파벌로 갈라져도 대승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무조건 자기편을 옹호할 게 아니라 정의와 불의에 대한 호불호가 딱 부러져야 할 것이다.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면 상대를 깎아내리지 말고 나 자신의 퀄리티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경쟁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승부사라면 아무리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파고들지 않으며 상대가 내 약점을 건드리더라도 초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출마자들은 죄다 도둑놈이 되고 부패한 곰팡이로 존재해야 하는 매터도가 아니라 자신을 한껏 내세울 수 있는 선거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대의 장점을 평가하지 못한다면 그건 경쟁이 아니라 이전투구, 진흙탕 속의 개싸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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