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bookk.co.kr/book/view/134432
태어나서 학업, 사회생활, 결혼, 자녀교육 등 틀에 박힌 삶만
살짝 틀어버릴 수 있다면 지리산이야말로 영혼이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천혜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륙 최대의 산인 지리산은 단일 산의 종주 코스로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주 능선을 포함하여 구례 화엄사에서 유평 대원사까지 화대 종주 코스가 산객들의 로망처럼 여겨진다. 도상거리 약 45km에 달하는 화대 종주는 주 능선에 노고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에 각각 대피소가 있어 1박을 할 수 있다.
주 능선 종주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코스로 서북 능선을 많이 찾는데 지리산의 서북쪽에 해당하는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고리봉, 만복대, 정령치, 세걸산, 바래봉을 지나고 덕두산을 거쳐 구인월까지 연결되는 능선이다.
주 능선과 달리 이 구간에는 대피소가 없다. 백두대간과 겹치는 약 22km의 거리로 10시간 남짓 소요되므로 시간만 잘 조절하면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식수도 성삼재 휴게소, 정령치 휴게소, 바래봉 아래의 샘터에서 조달할 수 있으므로 굳이 무리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실한 궁둥이로 따라붙는 반야봉을 대동하고
산악회에서 미세먼지 없이 기상이 무난한 날을 잡아 덕분에 서북 능선에 설 수 있었다. 새벽 4시 30분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는 사이에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있다.
행정구역상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광의면 사이에 있는 성삼재(해발 1102m)는 지리산 천은사에서 861번 지방도로가 있는 정상부의 성삼재 휴게소까지의 구간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노고단과 주 능선의 고봉들이 이어지며 서북 능선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켜 성삼재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도로를 따라 30m 정도 내려가 들머리에 접어들자 막 기지개를 켠 연한 분홍 철쭉이 꽃잎을 펼쳐 화사하게 맞아준다. 계속해서 철쭉이 따라붙어 제철을 맞아 잘 왔노라고 강조한다.
아침 안개가 옅게 깔려 흐릿하다가 새벽 시야가 트이면서 멀어지기 시작한 노고단이 끝까지 손을 흔들어준다. 주봉인 천왕봉의 반대편 서쪽에서 굳건하게 지리산을 수호하는 노고단은 가끔이지만 볼 때마다 뿌듯하고 상큼하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져 모습을 보이는 반야봉 뒤로 해가 솟아오른다. 지리산에서의 여명, 그 하루의 열림이 장엄하다.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노고단과 반야봉을 드러내며 하늘 가까운 곳부터 온통 산 뿐인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솟아오름이 신비스럽다. 지리산 봉우리 중 가장 덩치가 큰 반야봉의 한쪽 부실한 짝궁뎅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매력적이다.
“이번엔 서북 능선으로 갔구먼. 실컷 철쭉을 즐기시게.”
“넵, 편안하시죠? 여기서나마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3년 전, 화대 종주를 하며 힘겹게 올랐던 반야봉이 엉덩이를 흔들며 아는 체해주는 게 고맙다. 고리봉으로 향하면서 지나온 성삼재 쪽을 돌아보니 구름 안개가 능선을 흘러 넘는 풍광을 보여준다. 얼핏 산까지 고인 물이 수로가 열리면서 산 아래로 물을 쏟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성삼재가 물에 잠기고 만다. 지리 8경의 하나인 노고 운해의 멋진 단면이다.
작은 고리봉(해발 1248m)에 이르러 진행하게 될 능선 너머 아득하게나마 바래봉이 눈에 들어오고 그 위로 솜이불처럼 구름이 덮고 있다. 이곳 서북 능선에는 두 곳의 고리봉이 있는데 먼저 접한 이곳이 작은 고리봉이고 정령치를 지나 백두대간 분기점에 큰 고리봉이 있다.
지리산 주 능선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특히 반야봉을 대동하고 걷는 게 서북 능선 종주의 참맛일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따라붙는 반야봉을 배경으로 철쭉과 산죽,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 영락없이 한 폭 산수화가 그려진다.
작은 고리봉 올라 휘이 둘러보니
어깨너머 바로 반야봉일세.
분홍 연달래 군락 너머 묘봉치 마주하니
무관심하게 터억 내던졌던 기억들
하나둘씩 도드라지네.
떠오르면 미소 머금게 되는
옛 얘기들 수북이 바위 위에 쌓아놓네.
서북 능선 휘덮은 붉은 물결 때문이리라
뾰족하여 굴곡진 흔적은 언제 존재했던가.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움켜쥐어 부서뜨리고 싶었던 속앓이
죄다 털어버리네.
아직 남았을 삶의 파문일랑
흐르는 바람에 실어 보내고
허虛해서 더더욱 가벼운 가슴에
청량한 봄바람으로 그득 채운다네.
구례, 남원 쪽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작은 고리봉, 성삼재, 종석대로 이어지는 능선을 돌아보다가 묘봉치에 이른다. 성삼재에서 2.1km를 왔고, 만복대를 2.2km 남겨두었으며 꺾어져 3km를 내려가면 상위마을로 빠지는 지점이다.
고개를 의미하는 우리말의 재처럼 한자어로는 령嶺, 치峙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대관령, 한계령처럼 큰 산맥, 대체로 높고 험한 고개에 ‘령’을 쓰며, 높은 언덕을 뜻하는 ‘치’나 ‘티’는 그리 높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으나 가파른 고갯길에 주로 사용한다.
봄철의 서북 능선은 1000m가 넘는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반복되지만, 대다수 완만한 꽃길이고 숲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은 편이다. 산죽밭을 걷고 비탈 아래 얼레지 군락도 지나친다.
묘봉치에서 긴 능선을 오르다가 초원에 외떨어진 바위를 보게 되는데 만복대 지킴이 바위라고 부른다. 만복대萬福臺(해발 1438m)에 이르자 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에 이어 지리산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지이다.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경계에 솟아 일대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풍수지리상 지리산 10 승지에 속하는 명당으로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계절 사방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칼바람을 몸으로 뚫고 지나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로 달궁계곡이 그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패 있다.
조선 초까지도 지리산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은 곳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순례와 유람을 위해 찾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상주하는 사람들은 나무꾼과 사냥꾼, 그리고 승려와 무당 등 특수한 계층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의 격전장이었던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에 위치하여 숨을 만한 곳이 널려 있는 지리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삶의 터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멀리 둘러보고 깊이 내려다볼수록 한평생을 보내는데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자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스며드는 곳이 지리산이다. 태어나서 학업, 사회생활, 결혼, 자녀교육 등 틀에 박힌 삶만 살짝 틀어버릴 수 있다면 지리산이야말로 영혼이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천혜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리산은 지혜로운 이들이나 들어와 살 수 있는 곳이잖아.”
지리산은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라고 글자 풀이를 하는데 이 때문인지 여느 산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꼭꼭 숨어들어 도를 닦으며 정진했던 곳이므로 자격 미달인 자에겐 그저 다녀갈 뿐인 곳이다.
18~19세기경 영호남과 인근 지역에서 기근, 역병, 전쟁, 노역과 조세의 부담 등 혼란과 갈등을 피해 많은 이들이 지리산으로 이주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진주 농민항쟁과 동학 농민전쟁에 참여했다가 패배한 농민군과 함께, 전쟁의 폐해를 겪은 사람들이 입산하였다.
요즘에는 지리산을 자락으로 끼고 300여 많은 마을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농업을 기반으로 한 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1000여 명의 반란군이 들어오고 한국동란을 거쳐 빨치산이 거의 토벌된 1956년 무렵까지 빨치산과 군인, 경찰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지리산은 많은 마을이 불에 타거나 주민들이 희생되는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그런 지리산 자락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아도 그건 이미 지나간 한때의 역사라는 양, 살아가다가 생긴 작은 일상 중 하나라는 듯 아무런 흔적을 보이지 않고 그저 깊은 포용으로 팔을 벌리고 있다. 아기자기하게 맛깔스러운 맛은 덜해도 중후하고 인자한 나름의 산악미와 넓은 풍모로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주 능선 백 리 길을 한눈에 담으며
능선의 방향이 틀어지면서 반야봉의 부실한 오른쪽 궁둥이가 점차 제 모습을 회복하는 중이다. 멀리 천왕봉과 중봉도 머리를 드러내니 무척이나 반갑다. 지나온 성삼재와 그 뒤의 노고단은 떠나온 친정처럼 아득해졌다.
남원시와 운봉읍을 내려다보고 정령치로 향하고자 고도를 낮춘다. 철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능선 곳곳의 야생화와 희귀 야생초들에 눈길을 주고 간간이 새들 울음에 귀 기울이다 보면 걸음은 지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대자연의 풍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므로 느긋하게 시공을 즐기기로 한다.
성삼재와 정령치 사이의 반선으로 내려가는 산 중턱에 달궁계곡이 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 시대에도 부족 간의 전쟁이 숱했었는데 진한군에 쫓기던 마한의 왕이 신하와 궁녀들을 이끌고 지리산 계곡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피난 생활을 하였다. 그때 임시 도성이 있던 자리가 지금의 달궁이다.
달궁계곡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적을 피하거나 방어하기에 적합한 위치였다. 휴정 서산대사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마한 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산마루에는 정 장군을, 동쪽 20리 밖의 산마루에는 황 장군을, 남쪽 20리 밖의 산마루에는 성이 각기 다른 세 명의 장군을, 북쪽 30리 밖의 산마루에는 여덟 명의 젊은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도록 함으로써 각각 현재의 정령치, 황령재, 성삼재, 팔랑치라는 명칭이 지어지게 되었고 한다.
사람들 목소리가 커지고 자동차 소리까지 들려온다. 정 장군이 지키던 정령치鄭嶺峙에 이르렀음이다.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백두대간 상에 자리한 정령치(해발 1172m)는 지리산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이다. 주천면에서 내기리를 거쳐 이곳 정령치까지 이르는 12km 거리 861번 지방도로는 가을 지리산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드라이브코스이다. 많은 등산객이 여기서 산행을 시작하여 바래봉을 정점으로 하고 운봉으로 하산하기도 한다.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동으로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 서쪽으로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과 발밑으로 남원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지리산 주 능선 백 리 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茶를 재배한 곳이 지리산이다.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신라의 대렴이 종자를 가져와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 재배에 가장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차 재배에 관광 사업까지?”
지나온 고리봉이 행글라이딩 최적지로 활용되고 있는데 지리산에 활공 레포츠 조성사업의 목적으로 정령치를 국제 활공장으로 개발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사업을 진행 중이라 한다.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돈을 벌되 제발 대자연에 흠집을 내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게 된다.
차 종자를 가져오고 540여 년이 지난 고려 때 문익점은 서장관 자격으로 원나라에 가는 사신과 동행했다가 귀국하면서 목화씨를 몰래 가져왔다. 이듬해 지리산 자락인 산청군 단성면에 시배하여 3년 만에 널리 퍼지게 하면서 백성들이 삼베痲布에서 무명옷綿布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목화를 처음 심은 이 마을을 배양마을이라 불렀으며 1965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삼우당 문선생 면화시배 사적비’가 세워졌다. 지금도 문익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해마다 옛터에 밭을 일구어 면화를 재배하고 있는데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번지에 있는 이곳 목면시배지木棉始培地는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정령치에서 약 300m 거리의 북고리봉 아래에 고려 때 제작된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을 보고자 내려선다. 절벽 바위에 여러 부처 형상을 조각하였는데 전체 12 구로 3구는 비교적 잘 보이며, 나머지 9구는 마모가 심한 편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존상은 마애여래입상으로 높이가 4m 정도인데 조각 솜씨도 뛰어나 으뜸의 존격으로 추정된다.
이제 반야봉은 짝궁뎅이가 아니라 삼각으로 곧게 솟은 봉우리로 깔끔하게 성형을 마쳤다. 능선에 핀 철쭉도 연분홍에서 진홍,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다.
철쭉 철에 내려서서 눈꽃 철을 염두에 두게 되는 서북 능선
정령치를 지나 만나는 첫 봉우리 북고리봉(해발 1304m)은 서북 능선 두 개의 고리봉 중 큰 고리봉이면서 일명 환봉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쭉 같은 방향으로 왔던 일부 등산객들이 여기서 방향을 바꾼다. 여원재로 향하는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이다. 잠시 뒤돌아 만복대를 다시 눈에 새기고 꽃밭과 꽃 터널을 지났다가 다소 버거운 걸음을 이어가며 세걸산(해발 1216m)에 닿았다. 세걸산부터는 단조로운 등로가 이어지면서 조망도 거의 트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걸어 세동치(해발 1107m) 삼거리에 이르러서도 바래봉은 5.1km나 멀리 있다. 바래봉으로 향하면서 본격 철쭉군락이 이어진다. 사방에서 내리 뻗은 산자락 아래로 자그마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데 부운 마을이라고 한다. 참으로 깊숙한 산중에 꼭꼭 숨어 세상을 마다한 촌락처럼 느껴진다. 세동치에서 2.1km를 더 걸어 부운 마을로 내려서는 부운치(해발 1061m) 삼거리를 통과하고 팔랑치(해발 989m)에 이른다. 팔랑치는 예로부터 전라북도의 남동 산간지역과 경상남도의 북부 산간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군사상 천연 요새이기도 하여 신라 때의 성이 남아있다.
이곳 아래로도 팔랑마을이 2km 거리에 있다니 지리산은 영호남의 지붕으로서 넉넉하고 웅장하고 아늑하게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자 생명의 산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된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강은 사람을 모은다고 했다던가. 산의 북쪽으로 만수천, 임천, 엄천강, 경호강, 남강, 낙동강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섬진강이 흘러 주민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한다. 전남 구례, 전북 남원과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의 3도 1시 4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동식물이 넘쳐나는 만큼 문화 또한 동서로 나뉘어 다양하고도 이질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지리산은 단지 크고, 깊고, 넓은 것만으로 그 실체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산이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 걸어왔나 싶게 긴 길이 아득히 이어져 있다. 길게 심호흡을 하고 가던 길을 향한다. 이쯤에서 철쭉의 극치 미를 보는가 싶었는데 다시 바래봉 능선으로 뻗으며 연두색 바탕에 붉은 덧칠의 조화로움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세석평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창출한다.
용산 운봉마을 바래봉 삼거리까지 아름답고도 편안한 숲길을 걸어왔다. 바래봉 아래의 샘터에 귀한 식수를 공급받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섰다. 나무계단 위의 바래봉 정상(해발 1165m)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바래봉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형상이라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운봉 주민들은 산 모양새가 마치 삿갓처럼 보인다 하여 삿갓봉으로 부른다. 바래봉 철쭉의 백미는 이곳 정상에서 막 지나온 약 1.5km 거리의 팔랑치 구간이다. 원래 농림부 산하 국립 시험연구기관인 국립 종축원國立種蓄院 남원지원이 운영하던 목장지대였는데 키우던 면양들이 새순이 돋는 즉시 뜯어먹어 독성이 있는 철쭉 말고는 대다수의 수종이 말라죽었다. 더구나 초지 조성을 위해 비료를 뿌렸기 때문에 철쭉은 더 무성하게 자라 지금의 철쭉 고원을 이룬 것이다.
동쪽 천왕봉에서 서쪽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 능선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여기서 하산을 위해 다음 행로를 잇는다.
바래봉 정상에서 올라온 방향으로 계속 직진을 하여 덕두봉(해발 1150m)에 이르면서 그 많던 등산객들이 꽤 많이 줄었다. 팔랑치를 통해 하산하는 이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여기서 구인월(월평) 마을까지 3.7km를 내려서게 된다. 험하거나 거칠지는 않지만 긴 구간이다. 다소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산에서 내려서자 하얗게 눈꽃 핀 겨울 서북 능선을 염두에 두게 된다.
화대 종주를 마쳤을 때만큼 요란한 뭉클함이 있지는 않지만 거쳐 지나온 봉우리와 높은 언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여전히 붉은 철쭉들은 눈앞에서 곱고 화사하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서서 바라보는 서북 능선이 아스라하다.
때 / 봄
곳 / 성삼재 - 고리봉 - 묘봉치 - 만복대 - 정령치 - 북고리봉 - 세걸산 - 새동치 - 팔랑치 - 바래봉 - 덕두산 - 구인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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