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하늘 마당, 진안고원 마이산
전라북도 무주, 장수와 함께 무진장이라는 머리글자로 표기되는 진안에 다시 왔다.
이들 세 고장에 있는 명산들을 헤아려보게 된다. 무주군의 덕유산과 적상산, 진안군 운장산과 구봉산, 장수군의 장안산. 대다수 한두 번 이상씩 와본 산들이다. 몇 해 전 겨울에 와본 이후 두 번째로 명승 제12호이자 전라북도 도립공원 마이산을 찾는다. 이번에는 후배 계원이의 제안에 따라 같이 왔다.
절대 가격 속에 신비한 설화들을 지닌 산
진안 IC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청명한 하늘 위로 솟은 숫마이봉(동봉)과 암마이봉(서봉)이 신비하고도 야릇한 모습을 드러내며 반긴다.
암마이봉이 숫마이봉을 마주 보지 못하고 등 돌려 고개 숙인 것처럼 보이는 건 아마도 전해 내려오는 설화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올라갑시다.”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지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속죄의 세월을 보내며 살던 부부가 다시 하늘로 갈 때가 되어 남편이 사람들 눈을 피해 한밤중에 하늘로 오르고자 했다.
“승천은 새벽 동틀 무렵에 하는 게 맞아요.”
아내는 새벽을 고집했다.
“무슨 소리요. 부지런한 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요?”
“그래도 한밤중에 오르다가 길이라도 잘못 들어 딴데로 새면 어쩌려고요? 부부간에 의견이 다를 땐 아내 말을 듣는 거랬어요. 내 말대로 하세요.”
마지못해 고집 센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D-day 새벽에 승천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어디 가세요?”
그런데 하늘로 오르기 직전에 막 집 밖으로 나온 마을 아낙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땅에서 솟아오르려다 그대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아~ 끝내 마누라 고집 때문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구나.”
부부는 그 자리에서 바위산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동쪽의 숫마이봉은 양쪽에 자식을 안고 있는 모습이고, 서쪽의 암마이봉은 죄책감을 가누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모습이다. 설화의 내용을 알고 암마이봉을 보았을 때 영락없이 큰 잘못을 저지른 모습이다.
“이따 숫마이봉한테 가면 이젠 그만 용서해주라고 설득해야겠어요.”
“저들도 그만 풀어야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마이산은 계절에 따른 특성을 부각해 계절마다 각각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다. 봄에는 두 봉우리가 안개를 뚫고 나온 쌍돛대처럼 보여 돛대봉, 여름엔 울창한 수림을 뚫고 나온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은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 같아 문필봉이라고 부른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이 그러하듯 계절마다 별칭을 갖는 산은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고 있음이라 하겠다. 오늘은 역사와 전설을 지닌 봄철의 명산, 돛대봉을 오르게 된다.
함미산성 들머리에 파릇하게 돋는 새순은 마치 겨울이 진작 자취를 감추어 제 세상을 만난 양 만면에 웃음 띤 모습이다.
진달래도 활짝 피어 한 해 만에 만나는 객들을 반긴다. 500m가량 올라와서 납작한 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벽을 보게 되는데 이곳이 함미산성 터이다.
성터를 지나 잠시 마른땅을 걷다가 암석 구간의 전망 바위에서 숨을 돌린다. 오밀조밀 모여 촌락을 형성한 마령면 평지리 마을 주변의 전답이 깔끔하게 개간된 걸 내려 보다가 다시 경사 급한 암반 지대의 철제 난간을 붙들고 광대봉(해발 609m)에 오른다.
마이귀운馬耳歸雲이란 마이산을 둘러싼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모습을 일컫는 말인데 진안의 빼어난 절경을 일컫는 월랑 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안개구름을 뚫고 볼록 솟은 두 개의 마이봉과 비룡대를 마주 대하면서 마이귀운의 참모습을 직접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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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펼쳐진 너울진 바위 봉우리들을 넋 놓고 보노라면 신세계에 들어선 기분이다. 야트막한 산 숲 사이 보흥사 주변에 활짝 핀 벚꽃까지 눈에 들어오면서 바야흐로 봄은 마이산을 위해 존재하는 계절처럼 착각에 빠지고 만다.
더 심하게 기운 경사 구간을 내려가 보흥사 갈림길에서 고금당 방향으로 나아간다. 광대봉을 돌아보고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닿은 안부에서 침목 계단을 올라 오른쪽 소로로 진행하자 금색 지붕이 보인다. 고금당이다.
바위 경사면에 절묘하게 세운 고금당은 고려 말의 고승이며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세운 암자로 지금은 목탑 형식의 독특한 건물에 황금색을 입혀 눈길을 잡아끈다. 금당사와 탑영 저수지 위로 보이는 마이산은 광대봉에서 볼 때와 달리 크게 방향이 틀어져 있는데 그 풍치 또한 가히 절경이다.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발길도 굳어진다.
바로 아래 나옹선사가 수도했다는 자연 석굴, 나옹 굴도 황금색을 입혔다. 동학 농민항쟁을 주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이 10년 동안이나 숨어 지냈다고도 하며,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항일 의병 결사 창의 동맹이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하다.
고려 말 이성계가 이 산에 왔을 때 신으로부터 금척金尺을 받았던 꿈에서의 모습과 흡사하여 조선 개국의 성지로 삼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산의 형상이 그 금척을 묶어놓은 모습이라 당시 용출산으로 불리던 것을 속금산束金山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성계는 이렇게 시로 묘사했다.
동으로 달리던 천마 이미 지쳤는가,
몸통만 가져가고 두 귀는 남겼는가,
두 개의 봉우리 하늘로 솟아있네.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의 이 시를 음미하고 그때부터 다시 마이산으로 고쳐 불렀다.
고금당 뒤편 산행로를 따라 걷다가 비룡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내려다보이는 남부 주차장엔 관광버스가 가득하고 만발한 벚꽃이 주변 산자락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중이다.
여기서 다시 가파른 철 계단을 올라 나봉암(해발 527m)이라고도 부르는 비룡대 전망대에 올랐다. 용이 날아든다는 비룡대는 마이산 높은 지대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바꿔 말하면 비룡대에 올라서면 마이산 대부분이 관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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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에서 보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은 이제까지 보이던 아기자기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우람한 숫마이봉이 암마이봉의 어깨를 딛고 고개를 내밀어 그 앞으로 늘어선 바위 봉우리들을 눈여겨보는 분위기이다.
다시 암마이봉 입구로 향한다. 바위 봉우리처럼 보였던 암마이봉은 이제 거대한 산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부군께서 화가 안풀리셨나요?”
“휴~ 속좁은 양반이 뒷끝까지 길어서 좀처럼 화해가 안되네요.”
“암마이봉 부인께서 잘못하시긴 했어요. 자고로 가장의 말을 들었어야…”
“소금 어디갔지? 가끔 저런 사람들이 속을 긁어놓고 간다니까.”
“합의이혼도 안해준대요?”
“좀 사라져주지 않을래요?”
괜한 오지랖 떨다가 암마이봉의 속만 뒤집어놓고 물러나고 말았다.
마이산은 암벽들이 곳곳 움푹하게 파여 있는데 타포니taffoni라고 하는 풍화열 현상에 의해 거대한 역암 덩어리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여 단단히 굳은 퇴적암을 역암이라 하는데 이 일대가 호수였던 약 1억 년 전, 상류에서 흘러내린 자갈이 모래 등과 섞여 퇴적되었다가 수천 년에 걸친 지층의 융기 혹은 단층 현상 등으로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그런 암마이봉 담벼락을 끼고 돌뿐 그 품으로 들어서진 못한다. 길을 막아 놓았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중턱에 갈라진 틈의 화암굴에서 샘물이 솟는다고 한다. 확인하고 싶었는데 암마이봉 정상(해발 685m)까지 450m라고 표시된 표지판 앞에서 아쉬움만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이젠 마음을 푸시고 암마이봉을 돌려세워 푸근히 안아주심이 어떨는지요?”
“불난 집 부채질하지 말고 그냥 갈길이나 가게. 내가 부스러져서 자갈이 되더라도 저 여편네는 용서 못해. 보다시피 우리 애들까지 학교도 못가고 바위로 굳어졌잖아.”
은수사로 내려가 뒤로 우뚝 솟은 숫마이봉(해발 678m)을 설득해보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돌아서게 된다. 그는 하얗게 핀 배나무 꽃에 묵연한 시선을 두고 화를 삭이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생전에 두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긴 아예 틀린 거 같아.”
“남의 가정사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내려가시죠.”
숫마이봉의 시선을 따라 배꽃이 활짝 핀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에 눈길을 멈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의 증표로 씨앗을 뿌려 자란 나무라고 한다.
18m 키의 이 청실배나무 아래에 물을 담아두면 고드름이 거꾸로 솟는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한참을 고심하다가 300m를 더 내려가 관광객들이 붐비는 탑사로 들어섰다.
초입에 용궁이라는 샘이 있는데 100여 년 전 이갑룡 처사가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이곳에서 나는 샘물이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이 용궁에 뿌리를 박은 줄사철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0호로 이갑룡 처사가 1910년 탑을 쌓을 때 식수한 것이란다.
탑사라는 사찰 명답게 수많은 돌탑이 쌓여있는데 대웅전 뒤로 높고 뾰족한 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월광탑, 일광탑, 천지탑이라고 명명된 탑들이다.
바로 가까운 거리에 효령대군의 16대손으로 1860년에 태어나 1957년 98세에 세상을 떠난 이갑룡 처사의 석좌상도 보게 된다. 천지 일월과 음양오행의 이치, 제갈공명의 팔진 도법에 따라 이곳에 석탑들을 쌓으며 탑사를 준공했다고 전해진다.
시멘트나 접착제를 바르지 않고 순수하게 손으로 쌓은 돌탑이 거센 비바람 몰아쳐도 쓰러지지 않아 불가사의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도 이갑룡 처사의 3대손 혜명 스님과 4대손 진성 스님이 이곳 탑사를 지키는 중이라고 한다.
대웅전을 돌아 나오다 한 차례 더 놀라게 되는데 암마이봉을 타고 기어오르는 능소화를 보면서이다. 줄기를 암마이봉 암벽에 밀착시켜 가지와 가지를 위로 뻗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원한 생명력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탑사에서 나와 탑영 저수지 수변을 걸으며 벚꽃의 화려함을 만끽하면서도 간혹 마이산의 기이한 현상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겨울에 다시 와서 청실배나무 밑에 물 가득 채운 양동이를 놓아볼까.”
“우리 둘이 젖 먹던 힘까지 보태 월광탑을 밀어도 쓰러지지 않을까요.”
때 / 봄
곳 / 함미산성 입구 - 함미산성 - 광대봉 - 고금당 - 비룡대 – 암마이봉 입구 - 은수사 - 탑사 – 탑영 저수지 - 탐방안내소 – 남부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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