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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2-2)

장한림 2022. 3. 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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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천왕봉, 해 뜨는 지리 제1봉으로 다시 어둠을 뚫고 

 

 

대피소에서 이번처럼 편안하게 잠든 적이 없었다. 새벽 두 시에 기상하여 수프로 간단히 요기하고 화대 이튿날의 긴 거리를 잇는다. 

 

장터목으로 향하는 새벽 산행길이 무척 상쾌하다

 

어둠 속 촛대봉을 지나 장터목까지 새벽바람 가르는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봉우리 하나 넘어서면 또 하나의 봉우리가 다가선다. 여기 지나서도 곧 다른 봉우리 있으리니 서둘지 마라. 붙들어 세운다. 온통 까만 세상이지만 연하 선경의 중심 연하봉을 모른 채 지나칠 순 없다. 

여기도 지리 10경에 드는 곳으로 신선의 세계를 눈에 담을 수는 없지만 늘어선 고사목의 향이 그윽하고 바람결에 무언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지리산의 고사목은 세월 지나도 부스러지지 않는다

 

“바위에 이슬 고이면 길 더 미끄러워 조심스러우니 마음 앞서지 말고 지친 다리 주무르고 거친 숨결 고르시게.”

 

장터목대피소에 머무는 것도 잠깐, 또 다른 봉우리 제석봉에서는 늙은 고목이 쓸어주는 비탈길 살그머니 밟고 바삐 지나간다. 혹여 천왕봉 일출에 늦을까 봐 속도를 붙였으나 해는 구름 속에서 뒤척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새벽 땀방울에 젖은 산사나이들의 모습이 이슬보다 청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행의 땀방울을 말려주는 여명이 명품 코디의 화장술처럼 느껴진다.

 

“제발 오늘도 어제만큼 날씨가 좋았으면.”  

   

지리산은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하는 산악지형이라 언제 날이 급변할지 모른다. 1년 강수량이 1300mm가 넘는다. 금요일이었던 1998년 7월 31일 밤 10시경부터 8월 1일 오전까지 영호남 지역에 퍼부은 폭우로 지리산 일대, 특히 피아골, 뱀사골, 대원사 계곡 등지에서 산악지역 재해 사상 최대의 수해가 발생하였다. 

영호남에 최고 226mm의 폭우가 쏟아져 8월 2일 오후 9시까지 105명의 사상자 중 지리산에서만 27명의 사망자와 6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여름 최성수기 휴가철이자 주말을 끼고 있어서 가족 단위의 수많은 피서객이 지리산 계곡에 몰려 야영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그보다 한참 전인 학생 시절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 내내 빗속을 행군하고 비에 젖은 텐트에서 축축하게 밤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 지리산인지라 비에 젖을세라 떠오르던 태양이 숨어 버릴까 봐 조바심이 생긴다. 

 

 

천왕봉 정상석,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일출을 보며 은수의 소망이 서원하고 또 이뤄지길 바란다

 

 

천왕봉, 해발 1925m.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정상은 일출을 맞이하려는 산객들로 붐볐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 일출, 지리산 제1경이다. 

두 해 전 계원이와 둘이 왔을 때의 새벽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었다. 작년에도 해 뜨는 걸 못 보고 등을 돌렸다. 천왕봉에서 해 뜨길 기다리는 게 이번이 다섯 번째다.  

   

“오늘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와 저 자신을 다시는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작년에 처음 와서 일출을 본 친구 병소의 충만한 덕으로 인해 무임 승차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30분을 기다렸으나 동편 하늘은 잿빛 구름 그대로다.  

    

“줄듯 말 듯 애태우는 그대는 붉은 서기 내뿜으며 정녕 뒤태만 보여줄 것인가.” 

     

시간을 아껴 중봉으로 향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여명을 가린 구름은 더 위로 치솟으며 불안감만 증폭시킨다. 

     

“에이, 오늘도 틀렸어.”

“잠깐만.”  

   

그런데, 등을 돌려 다음 행선지로 방향을 틀었는데 회색 구름밭을 뚫고 붉은 광채가 홀연히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우와! 대박!” 

   

 

너무나 찬란하여 황홀하기까지 한 장관을 보고있으려니 어제부터의 피로가 일순간에 가시는 기분이다

 

계원이 등뒤에서 빛나는 태양처럼 찬연한 축복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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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뜨는 해가 이처럼 반가울 줄이야. 지리산에서의 일출이기에, 올라온 이만 볼 수 있는 천왕에서의 해돋이이므로. 그래서 천왕봉 일출은 지리산 비경 중 으뜸이라는 비주얼적인 아름다움보다 또 다른 의미가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삶에서의 여러 긍정적 측면을 상징하는 의미, 진인사대천명의 숙어처럼 성실한 노력을 다한 자의 숙연한 기다림 같은, 의지와 창의로 소망하는 걸 이루고야 마는 인내의 표상 같은…….

어쨌거나 오늘 보는 일출은 마치 천지개벽의 순간을 연상하게 한다. 천왕봉에서 새벽 추위에 떨며 기다린 지 다섯 번째 만에 그예 보게 된다. 너무나 찬란하여 황홀하기까지 한 장관을 보고 있으려니 어제부터의 피로가 일순간에 가신다. 조상의 덕으로 보게 되는 일출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천왕 일출을 봄으로써 우리 자손들이 충만한 덕을 쌓아 많은 이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중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오늘 우리가 무사히 하산하고 또 삶이 다할 때까지 우정 이어가며 오래도록 함께 산행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다음 여정 중봉으로 향한다. 

    

“또 오게 될 때까지 편안히 계십시오. 오늘 해 뜨는 모습 보여주어 감사합니다.”

“잘들 가게나. 난 항상 여기 있으니 그대들이 오랫동안 발길 끊으면 세상 떠난 거로 알겠네.” 

    

내려서면서 뒤돌아본 천왕봉의 산객들은 아직도 환희에 휩싸여 있다. 

 

바위 녹아내릴 듯 뜨거운 여름 천왕봉

치렁치렁 매달리고 목말 탄 식구들

모두 떠나도

헐거워진 고목들 늘어세워

다시 올 새날 위해

기도 올린다.

계절 지나 갈색 낙엽 뒤엉키고 부스러져도

엷은 햇살 뿌려가며 또 오는 이 마중하고

떠나는 이 배웅한다.

다 주어도 모자라 

안타까움 금치 못하는 그대는

맛난 반찬 고른 젓가락 자식 입에 넣어주는

자상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이다. 

 

 

걸어온 갈 되돌아보며 무슨 상념에 잠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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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로 내려서는 긴 유람을 안전하게 

 

산행의 최종 목적은 안전한 하산이다. 그러려면 끝까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좁은 산길, 이슬 젖은 산죽이 바지와 신발을 젖게 하지만 싱그럽다. 끈 풀린 등산화 조여 매고 몇 바퀴 굽이돌자 중봉이다.

걸어온 길, 까마득히 보이는 노고단과 여인네의 풍성한 엉덩이 같은 반야봉을 바라보며 어제부터의 여정을 되짚어본다. 짚이는 곳마다 숨이 가쁘지만 현란한 여정이다. 

산에 오르면 헤아리고 가다듬어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산에 오면 아쉬워 남겨두었던 것들 쓸어 모아 툭툭 던져버리게 된다. 눈에 가득 아름다웠던 날들, 감사했던 이들 여미어 담아두게 되고, 없어져도 그만일 욕구 부스러기들 훌훌 털어버리게 된다. 겹쳐 포개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버려야 할 것들, 간직해야 할 것들 새기고 되새기며 잇고 끊음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늘 길이지만 건조한 무더위가 따갑다. 그래도 막바지 하산하는 걸음은 가볍고 경쾌하기만 하다. 써리봉을 내려와 시야에서 곧 사라질 지리 제1봉을 아쉬워한다. 

 

 

써리봉을 내려와 시야에서 곧 사라질 천왕봉을 배경삼는다

 

몇 번의 나무계단 오르고 내려서길 반복해서 하산 길 유일한 대피소, 치밭목 산장에 도착한다.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하산할 즈음 화대 종주 산악마라톤 참가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치밭목부터 보폭을 늘려 속도를 냈다. 막바지에 흘린 땀이 아마도 어제와 오늘을 더 진한 추억으로 각인시켜줄 것 같았다.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일행들의 걸음걸이는 붙은 가속을 소화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마라토너들이 줄줄 꼬리를 물자 이들에게 식수 대주는 보조 임무까지 맡게 된듯하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산에서,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에서 산악마라톤을 개최하여 나무와 새들을 놀라게 하면서 뛰게 한다는 발상이 너무나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반달곰이 다른 산으로 피신하는 이유가 있었군.”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한 건 곰과 사람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자는 거였는데 말이야.”

 

단순한 멸종위기 동물의 복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상생의 효과가 얼마나 지대한지를 깨우쳐 반달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소한 부주의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원래 지리산의 주인은 곰이었고 호랑이였었거든.”

    

마라토너들에게 길 비켜주며 보폭의 리듬을 깨뜨리긴 했지만 무제치기 다리를 지나 냅다 유평 날머리까지 이르렀다. 결과가 좋을 때 고행을 함께 겪은 이들은 공통된 행복감을 느낀다. 

함께이기에 그 포만감은 큼직하다. 감사하다. 고맙다. 그 어떤 인사말로도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엔 부족하다. 

전우로서 함께 전투를 치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상황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산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고초를 극복해내며 목표 지점까지 완주한다는 건 동반의 가치, 서로라는 의미를 가슴 뜨겁도록 각인시킨다.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냅다 내려오니 유평 날머리에 이르렀다

 

“화대를 같이 했다는 건 삶의 한 구간을 같이 했음이다.” 

    

병소, 계원, 은수. 함께한 이틀 밤낮의 여정은 두고두고 가슴 뭉클한 감사의 심정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단 한 번도 산행에 개인 의사를 표하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이들이 대견스럽고 역시 고맙기 한량없다. 

대원사 계곡 맑고 풍부한 계류에 풍덩 뛰어들어 몸을 푹 담그고 지난 이틀의 땀을 씻어내는데 이 이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표정들이다.  

    

 

 

 

 

때 / 여름

곳 / 1일 차 : 화엄사 – 화엄사 매표소 - 화엄사계곡 - 무넹기고개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 대피소 - 형제봉 - 벽소령대피소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도상거리 30km) 

     2일 차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삼신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 -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 치밭목 대피소 – 유평 계곡 - 유평리 - 대원사 탐방안내소 (도상거리 1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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